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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은경 Nov 27. 2020

삶의 끝에도 감사할 수 있었다.

중환자실에서 하는 감사

쟈스민 금요 인사 올립니다. 한 주 무탈하셨지요?^_^

“좋튀”하기도 벅찬, 여유 시간에도 무언가를 해야 하는 바쁜 날의 연속입니다. 맡겨진 일이 하나 더 늘었어요.


11월 들어 책 편집 작업을 도와드리고 있습니다.

상담 전문가가 쓴 “감사 나눔”이 그것인데요.

지적장애인 딸을 통해 깨닫게 된 진정한 감사와, 감사하고 나눔으로써 감화된 자신과 주변 모습을 상담 내용과 어울려 쓴 책입니다. 흥미 돋죠?^_^


아래는 책 내용 일부에요. 저자로부터 “감사 나눔”교육 받았던 중환자실 수간호사가 쓴 하루 감사입니다. 공유에 의미가 있겠다 싶어 이곳에 담아 봅니다.


삶의 끝에 위치한 그곳에서도 감사할 수 있음을 배웁니다. 내가 해온 불평불만은 무엇이었나 되돌아봅니다. 편집하는 내내가 아름답던 이 작업에 내가 참여 할 수 있었음에, 감사함을 느낍니다.

그리고 내가 느낀 그것을, 여러분도 느꼈음 합니다. 따뜻해졌으면 합니다.




*

수요일, 오늘은 어떤 감사로 하루를 채울지 아침부터 고민한다.

이른 새벽 시간 맞춰 오는 버스가 감사다. 늦게 오기라도 하면 택시를 타야하고, 부서원 눈치도 봐야하는데 말이다. 버스에 오르며 “안녕하세요.”하고 인사했을 때 반갑게 응해주는 기사님께도 감사다. 무사히 도착해 입구에 계신 청소반장님께 반갑게 인사한다. 그들 역시 나를 반갑게 맞아 주어 감사하다. 온밤을 하얗게 지켜낸 후 병원 구석구석을 제일 먼저 청소해 주시는 분이다. 정말 감사다.


4층 중환자실 입구. 오늘도 적출물 박스 냄새가 날 반긴다.

또 누군가 밤새 피똥을 쏟았나보다 냄새가 진하다. 밤새 무사하셨기를 바라며 확인한 차트에 다행히 큰 일은 없었다. 무사하심에 감사다.


부서원들이 분주하다.

가래를 뽑고, 청소를 하고, 약을 챙기고, 인계준비를 하고, 물품 장비 약제 카운트 하느라 정신없다. 우리의 바쁨은 아랑곳 않고 여기저기 아우성 소리가 들린다.


“화장실 간다고!”

“당신 때문에 온밤을 새웠어. 고소 할 거야.”

“어이. 아가씨, 아줌마, ㅇㅇ야.”


오늘도 쉽지 않을 것 같다. 그래도 감사다.

밤을 꼬박 새가며 중환자실을 지켜준 동료들. 모두 눈이 뿅하다. 빨리 보내줘야겠다. 그리고 기도해야겠다. 밤 근무자들 퇴근해 편안한 잠 잘 수 있게 해 달라고. 다행이다. 비가 내린다. 그들이 잘 잘 수 있을 것 같다. 감사다.


의식 없이 중환자실에 온 분이 있었다. 어느 정도 회복 되어 오늘 퇴원한다기에 인사드리니, “다시는 중환자실에 안 올 거 에요.”한다. 감사다. 다시 못 볼 인연이라도 건강하셨으면 좋겠다.


식사 시간이다.

오늘은 밥 차가 2층 키 탑 차로 왔다. 열다섯 환자 중 일곱 명 보조 하는 날. 여기저기 다툼이다.


“안 먹는다고!”

“조금만 더 드세요 선생님.”

“할머니 한 번만, 한번만 더요. 이게 마지막 숟가락이에요.”


계속 마지막이라며 한 입이라도 더 먹이려 노력한다. 갑자기 와장창하는 소리가 들린다. 몸이 자유스럽지 못한 한 분에게 밥상 차려놓은 상태로 조금 기다리라고 하는 사이, 본인이 직접 먹어보겠다고 힘쓰다 상을 엎어버렸다. ‘아뿔싸 전동침대!’ 다행히 국물이 안 흘러 들어갔다. 감사다. 하마터면 침대 수리비 엄청 나올 뻔. 지우는 것쯤이야. 치우면서도 행복하다.


한 쪽 구석 홀로 배식 받은 음식 드시고 계시는 분이 보인다. 스스로 숟가락 질 할 수 있는 그 분의 상태가 얼마나 감사인가. 행복한 일이라는 생각에 입가에 웃음이 절로 난다. 감사다. 환자분 식사 다 도와드리고 오늘은 우리도 밥을 먹을 수 있겠다. 참으로 행복하고 감사한 하루다. 다 밥 먹고 살자고 하는 일이니까.


입원 두 달, 숱한 고비를 넘기고 드디어 병실로 가는 분이 있다. 그동안 감사했다며 편지를 써 주셨다. 말도 못하는 그분이 입을 씰룩씰룩, 잡은 손을 놓지 않는다. 그분 마음이 전해져 오니, 괜스레 찡해졌다. 중환자실에 계시며 가래 뽑는다, 자세변경 한다며 늘 아프게만 한 것 같아 내 마음이 아프다. ‘어쨌든 호전되어 가시는 거니 잘됐어.’하며 스스로를 위로하고 퇴근했다.


다음날 아침. 출근과 동시에 동료가 비보를 전한다.


“그 분 오늘 새벽 심장마비로 돌아가셨어요. 지금 장례식장에 계세요.”


이게 무슨 날벼락일까. 손의 온기가 아직 내 가슴에 이렇게 남아 있는데. 내가 감사편지 읽는 동안 허공을 응시하며 무언가 생각하던 그 눈빛. 보낼 수 없었다. 한동안을 그분 생각에 가슴이 너무 아팠다. 다행히 마지막 내 마음을 잘 전달할 수 있었음에 위로 받았고 또 감사했다. 장례가 끝나고 아내와 딸이 찾아왔다.


“퇴원하면 쓰려고 사두었던 기저귀와 물품인데 이제 필요 없어서요.”


두 카트 가득 기저귀 패드, 장갑 등 중환자실에서 아주 요긴하게 사용할 만한 물품을 갖고 오셨다. 쓰는 내내 그분이 옆에 계신 것 같았다. 잊을 수 없는 분이다. 오랜 기간을 병상에서 고생한 분이 있었다. 인공호흡기조차 그 분에겐 버거웠다.


“차라리 저거라도 안 달았더라면 편히 가셨을 텐데. 떼지도 못하고.”


피부는 짓물러 있었고, 뼈만 앙상히 남아 있을 정도로 몸은 말라 있었다.

감사편지를 썼다.


“모든 미련은 잊고 편안히 가세요. 그동안 너무 고생하셨고, 모든 간호 처치 힘드셨을 텐데 잘 견뎌주셔서 감사했습니다.”


다음날 그분 자리가 비어 있었다. 주변을 통해 편안히 가셨다는 말을 들었다. 감사다. 그런 한 편, 감사편지 쓰기가 두려워지기도 했다. 호흡기에 의존한 삶이 외려 그분께 고통을 주는 것 같아 그 분을 위해 했던 기도였지만 정말. 바로 그렇게 가실까봐.


우리 일생에 환자로서든 보호자로서든, 중환자실의 경험을 할 수도 있고 안할 수도 있다. 그리고 그 한 번의 경험이 평생에 지워지지 않는 지옥이 되기도 하고, 잊을 수 없는 감사의 힘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안다. 나 아파 병원에 입원했을 때 밤새 병상을 오가며 열을 재고, 괜찮냐고 물어봐 주던 이름 모를 간호사의 따스한 기억, 친정아버지와 마지막으로 보낸 중환자실 한 달의 기억 때문에 중환자실 간호사를 계속 할 수 없던 몹쓸 기억도 모두, 고스란히 남아 20년이 지난 지금도 선명하다.


오늘도 끊임없이 병상이 채워지고 비워진다. 

우리를 찾아 온 모두에게 중환자실에서의 기억이 평생의 따뜻함과 감사한 기억으로 남겨지길 간절히 바라며, 오늘도 감사를 쓴다.


“오늘이 나의 마지막이 될지라도 감사합니다.

수많은 마지막 배웅을 하며, 오늘도 내 스스로 움직이고, 호흡하며, 일하고, 입으로 먹고, 잠을 잘 자고, 내 맘대로 화장실 가고, 고통 없이 살아 있고, 아픈 마음을 어루만져 줄 수 있고, 따뜻한 말을 해 줄 수 있고, 기저귀를 갈아 줄 수 있고, 발을 닦아 줄 수 있고, 밥을 먹여 드릴 수 있어서, 그분들의 손과 발 눈과 귀가 되어 줄 수 있어서 감사합니다.


내겐 삼천배의 절로도 모자랄 만큼의 감사함이 있습니다.

오늘, 이렇게, 여기 있음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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