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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은경 Nov 30. 2020

꿈에

어떤 말을 해야 하는 지, 난 너무 가슴이 떨려서

난 남자가 있는데, 꿈에 배우 이민호가 나왔다. 쌩뚱이었다.


꿈에서도 그는 전부가 컸다. 입도 크고, 눈도 크고, 키도 크고 건장하여 한 몸에 앵기고 싶은 몸을 하고 있었다. 패션 풍미 또한 남달랐다. 캐주얼 차림의 검정 진과 상아색 맨투맨 티, 베이지 바탕의 체크무늬 셔츠를 허리춤에 둘러맨 채였다. 어딘가 난놈의 형상을 하고 있어, 남자친구로 내놓아도 손색없을 외모였다.


그런 그 내 연인이었다. 비현실적 일이 실제 비현실 공간에서 벌어졌다. 다정다감한 스타일은 아니었다. 세심한 배려란 없던 희뿌연 기억이 있다. 그것이 “멋짐”이라는 세계에 통용되는 행동강령인지는 모른다. 하여튼 좀 멋진 애들은 그런 것 같았는데, 적어도 그라서, 그이기 때문에 용서되는 모습이긴 했다. 민호는 수업 마친 나를 데리러 왔다. 차는 없었다. 맨 몸이었다. 그런 그를 보고 나는 설레 죽을 뻔 했다. 그는 알바트로스 날개와도 같은 긴 팔을 내 어깨에 두르더니 나를 이끌고 학교를 벗어났다.


알바트로스 민호와 함께 걷는다는 것에는 왠지 모를 의기양양이 있었다. 반면 그의 여친 된 내 자질을 의심하기도 했다. 스펙차이가 좀 심한 것 같았다. 저곳 현실 세계에서는 나 또한 한 콧대 하는 여성이지만, 이곳 비현실 세계 이민호 옆에서는 초특급 오징어가 되었다. 낯부끄러움에 불타 구워지더니 점점 오그라들어 진정 구운 오징어가 되었다. 알바트로스와 군 오징어가 길을 걸었다.


줏대 없이 질질 끌려 다니는 사랑이 존심에 편치 않은 일이었음에도, 나는 그를 찬양했다. 하고 싶다는 것을 했고, 가자는 곳으로 갔고, 기다리라하여 기다렸다. 황홀경에 빠진 약자가 되었다. 알바트로스 옆 오징어는 그런 거였다.


꿈에 그는 첩자 비슷한 일을 하고 있었다.

어딘가 자유롭지 못한 행동과, 시도 때도 없이 보는 눈치와, 금방 올 테니 기다리라는 말을 자주 했다. 데이트다운 데이트는 꿈의 꿈에도 없었다. 성질 같아선 대번에 지랄을 하고 싶었지만, 꾹꾹 참고 고개를 위아래로 내저었다.


“응. 여기 있을 게. 빨리 와.”


오우 쉣.

이민호를 기다리던 사이 흔한 뽀뽀 한 번을 못해보고 꿈에 깼다. 이럴 순 없었다. 그러나 잠에 빠져있던 그 시간만큼은 행복했다. 건 꿈인 걸 알지만 지금 이대로 깨지 않고서 영원히 잠 잘 수 있다면, 좋겠다 싶었다. (자꾸) 이러면 안 되는데, 나의 남자는 잠시 잊고 다시 잠에 들기로 하였다. 깰랑말랑해 이내 잠들지 않으면 금세 또렷해질 것만 같아, 최대한 빨리 수면 상태와 비슷한 나로 돌아갔다.


깬 일 없던 척, 태아자세로 누운 뒤 목까지 이불감아 올려 냉큼 눈을 감았다. 연속해서 자는 잠이니 꿈도 연속으로 꾸기를 바랐다. 잠에 깬 시간과 잠에 든 시간 사이 제법 촘촘하니, 이 정도 틈은 민호도 기다려 줄 것 같았다. 꿈꾸던 내내 나는 이민호를 기다리기만 했으니까, 이번은 저도 나를 기다려줄 차례였다.


그대로 2시간이나 더 잤다.

민호는 나오지 않았지만, 눈 떠 보니 시계는 낮 12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간만에 푹, 꿀 잠 잤다. 아끼던 공유였다면 모를까, 왜 이민호였는지는 물음표다. 꿈에 연인으로 나온 연예인 대부분이 그러했듯, 이민호 또한 아웃 오브 관심이었기 때문이다. 무의식의 이민호가 내게 무엇이었는지는 모르겠다. 다만 예상 밖 이민호와의 만남에 잠시나마 깨지 않고 싶었다.




<난 여자가 있는데, 박진영> + <꿈에, 박정현>


https://www.youtube.com/watch?v=kY-Qj3kMYGw

https://www.youtube.com/watch?v=QP9VQaI_uQ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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