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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은경 Dec 28. 2020

너는 나의 씨앗소재

쓰는 삶을 시작한 후 주변 모두가 소재가 된다.

지인 이야기는 물론이고 봤던 티비 프로그램, 갔던 여행지, 들었던 노래, 심지어 사물까지, 글밭 세상이다. 나를 스친 모든 것은 나를 통해 글이 된다. 거의 모두를 글로 빚어내는 힘이 생겨난 후로는 이런 느낌마저 든다. 잡히기만 해봐라, 뭐든 쓰겠다.


결국 쟈스민 레이더망에 걸린 대부분은 (나를 거쳐)글이 된다. 쓰임 당하길 원하던 원치 않던, 나의 횟감이 된 당신을 내 시선대로 쓱싹여 간다. 쓰는 일은 쓰는 사람 마음이기 때문이다. 내 마음 속엔 내 마음만 있어 퉤퉤콩, 을 외치던 어린 날이 생각나는 건 왜 때문인지 모르겠다.


그렇다고 작가인 나를 부담스러워 하는 사람은 없다.

쟤한테 한 번 걸리면 끝장, 어떻게 써줄지 몰라, 고로 잘 보여야 해, 뭐 이런 마음으로 나를 만나는 사람은 (내 느낌엔)없는 거 같다. 최약체의 자신을 보여주는 일과, 굳이 부탁하지 않아도 절로 비밀 하게 되는 엄청난 이야기를 내게 스스럼없이 털어 놓는 걸 보면 그렇다. 또 참 별로인 당신을 내게 대놓고 드러내는 사람만 봐도 알 수 있다. 전부가 소재인 나라는 걸 모르나 보다.


딱 “글”로 멈추기가 보통이지만(오직 쓰기 소재 삼을 뿐이지만), 가끔 악용할 때도 있다. 약은 면이 없지 않아 글이라는 무기로 겁박한다.


“어어? 너 지금 행동 다음 책에 넣을 줄 알아(까불지 말고 얼른 고집을 버려. 네가 먹고 싶은 엽기적인 떡볶이 대신 햄버거 먹겠다고 해 당장.)”

“아 알겠어. 우리 동생은 똥고집이다, 이런 거 쓰지 마. 알았지? 무슨 버거 먹을래?”

“알겠어. 난 베토디*. 네가 시킬 거지?”


나의 첫 책, 특히 본인 소재 삼아 쓴 부분을 과장보태 백 번은 더 읽은 동생에겐 겁이 통한다. 사실(“막내 고집은 알아줘야 한다.”)을 썼지만 미화(“우리 동생은 본인 신념에 흔들림이 없다. 나는 그런 그녀를 존경한다.”)를 바라는 그녀 욕심 때문이다. 동생의 남자친구가 읽을 책이고, 같은 직장 사람이 볼 책이라 그렇다고 대놓고 말하는 동생이다. 잘 아는 나는 이를 몇 번이나 이용해 먹었다. 햄버거가 먹고 싶을 때도 그랬다.

(이것 때문에 지랄스러운 경우도 있었다. 세 번째 책 퇴고할 땐 심지어 동생의 컨펌을 받아야 했다. x페이지 x번째 줄부터 y번째 줄까지. 수정 끝에 간신히 컨펌 받을 수 있었다.)


꼭 담아주고 싶은 때도 만난다.

어쩜 이런, 어머 이런 소재가 어떻게 나에게, 이렇게 아름다워도 되는 건가요, 할 때가 그렇다. 드물게 만나는 순간마다 나의 두 손을 빌려 알리고 싶어진다. 자랑하고 싶어, 내가 받은 따뜻함을 나누고 싶어 쓰게 된다. “읽은 것이 곧 나”라는 말처럼 내가 전하는 따뜻함으로 당신 마음 체온 1도가 올라갔으면, 하기 때문이다. 잊지 않고 꼭 써야하는 게 온도 소재다.


*

두 번째 책이 나오며 결국 또 다른 나를 알리게 되었다.

글 공간에 쟈스민으로 살고 있는 나를 삶 터전의 손은경으로, 삶터에 손은경인 나를 글쓰는 쟈스민으로 소개했다. 둘을 분리시켜 두었다. 글쓰는 쟈스민은 쟈스민으로, 살아가는 손은경은 손은경으로 살고자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실 알리고 싶지 않았다. 각각의 나를 그저 내버려 두세요, 하고 싶었는데 믿고 출간해준 출판사 대표님을 위해 잠시 분리를 거두게 되었다. 내가 생각하는 책임감이다. 이곳과 저곳에 다른 나를 알리자 몇이 묻는다.


“네가 디즈니 공주야?ㅋㅋ"

“이거 뭐야? 여기 뭐하는 공간이야? 처음 보는 사이트(브런치)네.”


나는 답한다.


“ㅇㅇ 공주임ㅋㅋㅋㅋ.”

“잘 모를 거야. 글 쓰는 사이트인데 나도 몰랐다가 최근에 알았어ㅋㅋ”


전에 쓴 글을 찾아 댓글까지 달고 간 지인이 생겼다.

고마운데, 편하지가 않다. 나의 씨앗 소재인 당신들이 이곳에 다녀갈지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니 공연히 내 마음이 그렇다. 아주 자유롭게 쓰고 싶은데, 때로는 당사자만 모르게 내 마음을 고백하기도, 욕을 하기도, 일터에서 보인 일 없던 나를 여기서만은 자유롭고 싶은데, 젠장. 지인 몇이 내 글을 너무 좋아한다. 두 번째 책에만 관심 두길 바랐지만 지난 글까지 전부 털렸다.


새로운 관계를 가져가야 할까보다.

작가와 팬으로.

팬이라 생각하니, 여전히 막 쓸 수 있을 것 같다. “내가 쓴 글”이 좋아 “내 글”을 찾는 사람에게, 나는 쓰는 사람일 뿐이기 때문이다. 당신이 아는 내가 쓴 글을 좋아한다니 하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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