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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은경 Dec 31. 2020

두 아빠

터벅터벅.

길을 걷다 두 아저씨가 눈에 들어온다. 거둘 수 없는 시선으로 그들을 바라보는 건, 꼭 그런 거 같아 그래.


하나는 길고 말라 바지가 헐렁인다. 한참 남는 바지 사이로 줄기차게 바람이 일 것 같다. 얼굴에는 인상 가득, 한껏 예민해있다. 고단하고 고단한 지 안색마저 좋지 않다. 마른 체격 탓일까, 고되 보이는 모습 탓일까, 애잔한 감정을 지울 수 없다. 삶이라는 짐 전부를 혼자 지고 있는 듯한 앙상한 아저씨가 눈에 걸린다. 눈길을 거둘 수 없더니, 곧 마음마저 불편해져 온다. 따뜻함이 될 수 있다면 손이라도 한 번 잡아주고 싶지만, 그럴 수는 없다. 길을 간다.


다시 걷다 머리카락 하얗게 세어 올백(白)을 한 아저씨를 만난다. 다소 시려 보일 정도로 짧은 스포츠형 머리를 하고 있는데, 어쩐지 각 잡힌 모습이다. 젊은 날이나 늙은 날 헤어에 변함없었을 것이라는 추측을 한다. 단정히 깎은 머리를 보며 드는 생각이다. 할아버지라 부르는 건 실례라는 확신이다. 건장하고, 건강하여, 기백이 있다. 다만 안쓰러운 건 왠지 모를 마음이다. 검정색 짧은 패딩 점퍼를 걸치고, 아래는 등산용 바지를 입고 있는 모습이 왜 짠-한지 모른다. 왜 울컥거리는지 모른다. 향하던 시선을 급히 다른 곳으로 돌린다. 청승맞게 이곳에서 울고 싶지 않다. 무엇이 떠올라 멀쩡하던 나를 그립게 만든다.





나에겐 아빠가 둘이나 있다.

자주 표현되기를 낳아준 분과 사랑으로 낳아준 분이라던데. 그렇게 나에게도 성(姓)을 물려준 아빠와 사랑(愛)을 보여준 아빠 두 분이 있다. 손아빠는 굉장히 마른 몸에 키가 컸다. 주식이라면 두꺼비가 그려진 소주와 김치, 아니면 멸치볶음이었다. 안쓰러운 몸을 한 손아빠는 미간에 내 천(川)자를 가졌었다. 미소 대신 화를 달고 산 덕에 기본은 늘 찌푸린 인상이라 그렇다. 술과 담배를 달고 살아 낯은 흑빛과 같았다. 무서워 멀리했다. 손아빠 하면 회자되는 아름다운 추억은 드물다. 엄마를 괴롭혔고, 지 애미 닮은 나 또한 미움의 대상이었고, 나는 그런 아빠를 싫어했다. 여기서 받은 사랑은 잘 없어, 편부모 사랑이라는 말이 나오게 되었다.


부정(父情)이란 걸 알게 해준 아빠는 대학교 3학년 때 만났다. 강아빠는 병이 있던 아내를 먼저 보낸 상태였고, 슬하엔 장성한 아들과 딸 하나, 하나가 있었다. 그런 아빠가 우리엄마를 좋아한다 했다. 엄마도 그렇다 했는데, 그 둘의 사랑 덕분에 비어있던 아빠라는 공간이 채워지게 되었다. 강아빠는 적지 않게 오래 산편이다. 머리가 하얗게 센 것도 그래서다. 오랜 시간 사복경찰로 근무해 온 강아빠는 생활에도 각이 잡혔다. 짧게 자른 머리도 각의 일종이다. 다부진 몸은 꾸준히 운동해 온 덕분이다. 아빠에겐 기백이 있다. 그리고 엄마 못지않게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다. 우리 두 딸은 절대 할 수 없는 역할을, 남자인 아빠가 해주었다. 우리 둘만큼, 아니 그 보다 엄마를 사랑해 주었고, 아빠라는 공간을 내게 선물했다. 그런 강아빠가 나는 참 좋다.


상반된 아림이 나에게도 찾아온다. 요즘 들어 아빠, 에 대한 감정이 깊어간다.

이 땅의 가장에게서 수고를 본 이후부터 아닐까, 하는 내 추측이다. 종종 외로움도 보이는데, 그럴 때마다 나의 두 아빠는 어땠을까, 생각한다. 미워했지만, 미워만 하다 사랑한다는 말 한 마디 못하고 보낸 사람이지만, 아빠가 가졌을 외로움에 어린 날이 후회 된다. 지금이라면 아빠를 이해하려는 노력이라도 했을 텐데, 들어 주었을 텐데. 나이 들어가는 또 다른 아빠를 보면서는 늙어감이 야속해진다. 우리아빠 언제 이렇게 나이 드셨나, 딸의 눈에 보이는 아빠 주름은 그저 속상함뿐이라 더욱. 함께 보내는 24시간이지만 아빠의 시간은 조금 천천히 흘렀으면 하고 바라본다. 가족 돌보느라 정작 돌보지 못한 아빠를, 이젠 내가 지켜주고 싶다.



아빠와 함께한 시간보다 아빠를 떠나보낸 시간이 3년이나 더 길어졌다. 길어 질 일만 남았다. 기억 속 아빠가 희미해져 간다.
아빠에 대해 생각해 본다. 아빠는 어떤 사람이었을까. (중략)

아빠가 그립다.
<스스로 품위를 지키는 삶, 자존>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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