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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은경 Mar 19. 2021

지방의 기쁨과 슬픔

# 공공연한 1130


서울 도심의 점심식사는 이르게 시작한다. 암묵적 룰과 같아 오전 11시 30분만 되면 먹이를 찾아 헤매는 하이에나로 건물은 활기를 띈다. 부지런 하지 않으면, 12시 반이 돼서도 고픈 배를 주리고 있을 확률이 높다. 간신히 식사 마치고 부랴부랴 사무실로 들어가야 할지 모른다. 그렇게 식후땡 한 잔 즐길 여유도 없다는 걸 이곳 대개가 알게 된 날로, 공공연한 1130이 되었다.


# 1130부터 1300을 나의 것으로 채운다.


그럼에도 오후 1시라는 데드라인에는 변함이 없어, 총 1시간 30분 동안이 식사시간이 된다. 적지 않은 개인적 일을 처리할 틈이 주어진다. 나 또한 최대한 사적인 시간으로 보내려 한다. 지인과 약속을 잡기도 하지만, 보통은 루틴대로 보내고자 한다. 오늘도 11시 30분 땡 치자마자 자리에 일어서, 물 한 병 주섬주섬 챙겨 급히 사무실을 빠져나왔다. 이토록 배고파 보이겠지만, 공복이 일사분란하게 만드는 것은 아니고 운동가야 하여 그렇다. 점심 먹는 시간임에도 나는 식당 말고 헬스장에 들른다. 짧고 굵은 건 여기도 통해 주어진 한 시간 반이면 충분하다.


# 데스크 들러 체온 체크를 하고, QR 인증을 거친다. 그리고 탈의실로 들어가 운동복으로 환복 한다.


운동 하고부터 몸에 예민해졌다.

전에는 한 뭉텅이 같던 근육이, 이제는 작은 단위로 느껴진다. 선명해졌다 해야 하나. 수축과 이완을 반복 할 때 마다 관여 된 근육에 불이 켜지는 느낌을 받는다. 그 뿐 아니라, 아무래도 세심한 것은 지방과 근육이 차지하는 비율에 있어서다. 몸의 미세한 변화를 몸으로 눈치 챈다. 기계 따위, 그러니까 인바디나 체중계가 나를 측정하도록 두지 않는다. 극도로 정직하지만 한편 믿을 건 못 돼서 그렇다. 숫자로 드러나는 적나라한 몸무게가 보여 지는 내 몸은 아니고, 인바디 또한 늘 오차범위가 존재해 옳다 할 수 없다. 무엇보다 어디까지나 기계는 기계라 눈으로 보이는 몸을 평가할 수는 없다. 대신 보거나 만지기. 시각과 촉각을 신뢰한다.


# 특히 손의 감각을 따르는 편이다. 운동복으로 갈아입으며 몸을 더듬거려 본다.


내겐 측정센서가 있다. 특정 부위에 손을 가져다 대자마자 대충 각 나오는, 감으로 익혀 시각적 점검 보다 정확한 그런 기능을 가지고 있다. AI는 아니고, 이것도 만지다 감이 는다. 센서는 보통 두 부위에서 잘 작동하는 편이다. 하나는 팔목을 덮은 살가죽을 검지와 엄지로 집어 들었을 때 느끼는 겉가죽 두께다. 지방이 걷힐수록 두께감이 얄팍해 진다. 프로필 사진 촬영이나 대회를 앞두고 있는 트쌤(*트레이너 선생을 부르는 약칭)의 겉살을 집어 들어보면 달랑 가죽 한 장 남아있는 걸 만질 수 있다. 수업하며 내 팔목 살 집어 들던 트쌤한테 배운 측정법이었다. 다른 하나는 나밖에 할 수 없는 건데, 한 손에 가슴 한 짝을 쥐었을 때다.


# 가슴이 차올랐다.


아프기 전, 마지막으로 운동 갔던 2주 전과 묘하게 다른 걸 캐치했다. 손바닥 바짝 갖다 대 살짝 움켜쥐니 오르기가 실하다. 어쩐지 속옷에 남는 공간이 없다, 했다. 본능에서 오는 뿌듯함이 +1 된 게, 지방의 기쁨이 오늘날 내게도.

여자 가슴 대개가 지방으로 구성 되어 있어 그럴 수 있다. 물론 유전적 요소가 많이 좌우되는 필드지만, 어쨌거나 그러소이다. 가끔 방학 내 살이 쪄 온 여자 애들이 속옷이 맞지 않는다며 푸념 아닌 자랑을 늘어놓은 걸 보면, 여자에게 가슴은 자부심이 되기도 한다. 하여튼 빅빅(BigBig)익선이다. 그런 걸 보면 지방은 기쁨이 된다.


# 아무래도 살이 찐 것 같다.


가슴의 풍요가 기쁘다가도 슬퍼질 수밖에 없는 건 그래서다. 아무렴 쪘다. 허벅다리와 배때기 요목조목 살이 붙었다. 바지 입기가 불편해 지더니, 단추에 잠긴 허리춤이 불편하다. 한 손에 쥐어 본 가슴의 감촉은 왜 틀린 적이 없나. 지방에도 기쁨과 슬픔이.

지방을 더느냐 마느냐, 그것은 햄릿의 죽는거냐 사는거냐와 같은 문제일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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