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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규2

소설

by 손은경

아침 식사로 삶은 계란 괜찮다 일러준 건, 사실 원규였다.


원규는 그런 친구였다. 달걀엔 어떤 성분이 있고, 우리 몸 어디에 좋으며, 그리하여 하루 섭취는 어느 정도가 적당해 내게 추천해 주는 것이라는. 쓸모없는 것부터 쓸모 있는 것까지 아는 것이 많았다. 그래서인지 그 애와 있을 때면 늘 배우는 입장이곤 했다.


“야, 야. 비행기 날개 끝에 위로 살짝 접혀 있는 부분 알지? 그게 뭐야? 왜 있는 거야?”

“그거 윙렛(winglet)이라고 하는 건데, 우선 이건 알아? 비행기 날개 위랑 아래로 압력이 다른 거.”


나는 그 날로 비행의 시작과 끝을 배웠다.

원규는 알려 주기를 좋아했다. 그보다 어쩌면, 자기의 앎을 나누기 좋아했는지 모른다. 단지 나눌 게 많아 말이 길어진 거였고, 듣는 내가 가끔마다 지루했을 뿐이다. 그저 윙렛(winglet)이 궁금했던 것뿐이었다.


그럼에도 원규와 대화하는 시간은 끝내 즐거웠다. 그 애 대화엔 배려가 있었다. 중간 중간 하품하는 나를 보며 “재미없니? 그만할까?” 물으면, “아니야. (하암) 괜찮아.” 한 건 나였다. 신이나 이야기 하는 원규 흥을 깨뜨리고 싶지는 않았다. 더욱 깊이 있는 사실은, 말이 많은 건 나였다. 원규는 나의 해우소였다. 번뇌로 가득 차 근심 있는 날이면 원규를 찾았다. 특히 고등학교 3학년 내내는 그런 날들의 연속이기도 했다.

내가 부르면 원규는 언제나 시간 내주었다. 수학문제를 풀다가도, mp3 음악을 듣고 있다가도, 엎드려 자다가도, 전부 내 앞에 양보해 주었다. 때로 30분에 걸친 원규‘s 비행이론은 참을 수 있었다.


아침을 거르지 않는 게 두뇌 회전에 좋다는, 고등학교 학창시절 입시 전문가 조언에도 아침은 대충 때우기 일수였다. 전 날도 밤 12시를 넘겨 잠들었다. 그것도 책상에 앉아 문제 풀다가. 졸았던 모양이었다. 눈 뜨니 전방 5cm도 안 되는 곳에 생물2 기출문제가 보였고, 앞으로 꺾어진 목은 빳빳하게 굳어 아파 있었다. 그제야 침대로 몸을 옮겨 짧은 단잠에 들었다. 이른 아침 보충수업에 짧게 자는, 단잠일 수밖에 없었다. 다시 눈을 떠 감긴 눈으로 머리 감고, 마르지 않는 긴 머리로 짐짓 가방 하나 들쳐 메 등교했다. 집을 나서던 시간은 07시가 안 된 시간이었다.


거의 매일이 이 생활이었다.

피가 모자라 피를 찾는 구미호처럼, 잠이 모자라 잠 찾아 헤맸다. 아침밥을 쪽잠 10분에 양보했던 것도 그 때문이다. “밥 먹고 가야지” 하는 엄마 말에 “학교 가서 먹을 게” 하는 것도 그래서였다. 배 안 고프면 거르고, 배고파지면 매점 가 뭐라도 사 먹으면 되었으니까. 고3이 굳이 챙겨야 할 것은 잠이지, 밥은 아니었다. 특히 오늘은 밥 먹고 가라는 엄마 말에 못들은 척, 대놓고 무시할 수밖에 없었다.


등교를 핑계로 원규부터 찾았다.


“이원규! 대박. 나 집 앞에서 남자친구랑 키스하다 엄마한테 걸림. 그런데 더 대박이 뭔지 알아? 엄마가 살짝 자리 피해줬다는 거. 엄마 되돌아가는 모습보고 내가 다 식겁 했네. 후.”

“아침은 먹었어?”

“아침? 우유 배달 온 거랑 희진이가 싸온 빵 조금 먹었나.”

“그게 아침이냐. 여기.”


교복 주머니에 손을 넣더니, 주저 없이 들린 오른손엔 삶은 계란 두 알이 들려 있었다. 생경한 계란에, 알을 품고 있던 원규만 빤히 쳐다봤다.


“아침 굶지 말고. 삶은 계란 두 개씩이라도 챙겨 먹어 버릇해. 몸 상할라.”


십 오년도 더 된, 원규가 건네주던 계란 두 알이 올 해 첫부터 떠올랐다.

고이 간직해온 기억은 때로 꺼내볼 수 있음에 마음이 뭉근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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