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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은경 Aug 07. 2020

40일의 회고

40. 7월 24일, 금요일 : 40일의 회고



나의 찬란한 40일을 되돌아보며.


오늘은 취중기록이다.

글도 못 쓸 만큼 취기가 오른 건 아니지만, 어쨌든 취중임에는 틀림없다.


당장 쓰고 싶던 건 아니었다.

‘술도 좀 깨고, 정신 말짱해 지면 써야지!’


다짐과는 달리, 쓰고 싶은 안달이 노트북 켜게 만들었다.


맥주 한 잔에 취해 얼굴에 난 열을 달래려 냉장고에 모셔둔 팩을 꺼냈다. 세수를 하고 시원히 달궈진 마스크 팩 얼굴에 붙이는 일. 상쾌하다. 눈에 난 구멍이며 코에 난 구멍 샅샅이 맞추다 문득, 나 대학교 1학년 때가 생각났다.


보여 지는 모습 어떨지는 모르겠으나, 나 은근 (내 기준)모범생이었다. 하지 말아야 할 것은 하지 않았고, 해야 할 것에 집중해 살았던 나. 그런 내가 스무 살 성년이 되고, 처음 술이란 걸 마시게 되었다. 맨 처음은 엄마였다. 수능 끝 집에 돌아와 엄마가 시켜준 치킨과 맥주. 사실 그땐 맥주 맛 보다 치킨 맛에 취해, 맥주는 그저 기분 내기 용으로 홀짝 홀짝 들이켰던 게 전부였는데. 대학생이 되고, 부어라 마셔라 들이키는 동기들 덕에 나도 그 대열 맨 뒤에 합류하게 되었다. 그 날도 그런 날이었다. 서울에 사는 나와 내 동기를 만나러 저 멀리, 경북에서 전남에서 와준 친구들. 서울역에서 만난 우리는 당시 내가 알고 있던 힙하다는 종로 거리를 누비게 되었고. 그 날 우리는, 제대로 취했다.


기억에 희미하지만, 어느 펍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그저 성인이 되었다는 성취감에, 민증만 보여주면 모든 허락 된다는 자신감에 아무 술이나 마구 시켰다.


“여기 과일 소주 한 병이요!”

“맥주도 하나 주세요.”


그렇게 홀짝 홀짝. 우리는 취했고, 주량조차 몰랐던 난. 죽음을 맛보았다.

술이 어떤 놈 인줄도 모르고 상대하던 때. 그래, 어른들 즐겨하는 취함이 뭔지, 성년이 된 나로서 즐겨 보자는 그 어떤 호기심으로 덤벼들던 때. 잊고 싶어, 취하고 싶어 마시기보다 객기로 한 잔, 두 잔 들이키던 네 명의 아이들. 정말, 왜인지 모르겠지만 얼굴에 팩을 붙이는 중에 그때 생각이 났다.


‘우리 그랬었는데.’


40일간의 회고와는 어느 상관도 없이, 그때가 살짝 그리웠다. 숙취에 고단함은 있었을지언정, 적어도. 아무 생각 없이 그 찰나만 즐겼기 때문 아니었을까.


나와 약속했던 40일이 지났다.

‘누가 내 하루에 대해 궁금하겠어.’라는 약간의 불안에도 이 책을 쓰기 시작한 건. 기다림의 그 날 동안, 하루를 기다림 중의 하나로 치부해 버리는 내가 싫어서였다. 내 하루, 충분히 값진 시간인데 그저 “그 날, 빨리 오기를.”하는 마음에 날려 버리던 시간이랄까. 올바른 비유인지는 모르겠지만, 빵 봉지에 있던 띠부띠부 스티커 모으고 싶어 빵 맛은 볼 틈도 없이 싹 다 버리던 꼴이었달까. 띠부띠부 구하려 먹었던 빵이었지만, 그래도 초코 맛, 생크림 맛 다 맛 볼 수 있었는데. 찾고 싶었다. 잊고 있던 나의 하루가 얼마나 값지고 소중한지를. 그래서 쓰기로 한 거다.


찾으려고 보니, 하루를 두고도 책 한 권 쓰겠다 싶을 만큼 많은 일들이 공존했다. 어떤 날은 쓰고 싶지도 않을 만큼 지치기도, 어떤 날은 써도, 써도 모자랄 만큼 하고 싶은 말 많기도 했지만. 어쨌든 꾸역꾸역 혹은 넘치는 필력으로 꾸준히 40일을 보냈다.


“아장대던 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시집을 간다네.”


엄마가 했던 말. 모든 게 엊그제 같다는 말이, 40일 동안에도 실감난다. 40일, 삶의 패턴에 큰 변화는 없었지만 참. 많은 일들이 있었구나. 지난날, 하루를 되돌아보며 느꼈던 것 단 세 줄로 요약 하자면.


40일도, 금방이구나.

별거 없어 보이는 일상, 동일한 패턴 속에도 나는 성장하고 있었구나.

생각 없이 흘려보낸 듯 느껴지던 시간도, 사실은 의미가 있었구나.


평범한 진리에도 내게 깨달음을 줬던 건, 아주 평범한 사실도 잊고 살기가 보통이어서 그런 거 아닐까.

마지막이 되고,

하나의 주제에 A4 분량 1.5페이지밖에 할애하지 못한다는 아쉬움이 남는 건 왜인지 모르겠다. 꼭 마지막이라고 하면 아쉽더라. 그렇게 내 찬란함의 기록 대신 이제는, 여러분에게 보여주어야 할 때가 되었지만 멈추어야 한다는 아쉬움 대신 나와 함께 나눌 당신을 위해.


기쁜 마음으로 40일 여정은 오늘로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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