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결혼이라는 세계(10)

2. 서울에 버티는 기분(아 시댁 가고 싶다)

by 손은경

훈과 결혼한다는 소식을 경미가 들었을 때, 눈과 몸의 두 가지 말을 해준 기억이 난다. 하나는 “시댁이 외국이군요” 하고 눈망울을 반짝였던 것이고 또 하나는.



- 훈씨 여동생 말하는 거죠? 시누가 4살이라. 할 만 하겠는데요? 키킥.



그가 육성으로 뱉은 ‘할 만 하겠다’라는 말과 ‘키킥’이 어떤 의미인지 어렴풋 이해할 것 같았다. 에르바는 시누라는 다소 날카로운 호칭보다 아이라는 천진난만함에 잘 어울리는 4살 꼬마소녀였다. 지금은 구 직장이 되어버린 전사(前社) 부장도 내게 이런 말을 했었다.



- 이야, 손팀장은 시댁이 외국에 있네. 그럼 고부갈등은 없겠다.



그러더니 회사 창 밖에 솟은 인왕산을 아련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두 여자, 노모와 아내를 떠올리는 듯했다. 그러며 나도 외국 여성이랑 결혼했다면 어땠을까, 하고 상상해 본다고 덧붙였다. 후회는 아니고 막연한 아쉬움 같은 거였다.



외국인과 결혼했(한)다는 소식에 ‘국제결혼’이라는 모종의 환상을 품고 건네받은 말들이 많다. 특히 시댁에 관한 것들이 대부분이었다. 뭇 여성들 반응은 시댁이 저 머얼리 있어 마냥 부럽다는 감정의 이야기였고, 그러며 너는 다툴 일은 없겠다, 너는 명절에 시댁에 안 가도 되겠다, 너는 그렇겠다, 너는, 너는…, 이라는 말을 흘렸다. ‘너는’이라는 말로 나와 자신을 분리시켰다. 한편 나도 너와 같은 상황을 꿈꿔라는 말로 들리기도 했다.


KakaoTalk_20221002_154416617_03.jpg 안탈리아에서



그러나 정작 당사자인 나는 내 처지가 부럽지 않다. 아 정말정말정말 시댁에 가고 싶다. 우리 부부의 주말은 주로 햇살이 들이치는 거실 소파에 앉아 유튜브 보는 것으로 시작한다. 채널 선택은 주로 내가 하는데 큰 고민 없이 트는 영상이 있다. 여행 유튜브. 돋보기처럼 생긴 검색창에 ‘튀르키예’라고 치면 줄줄이 영상이 추천되는데 그것을 순서대로 본다. 봤던 것도 있고 그래서 또 보는 것도 있지만 개의치 않는다. 가고 싶지만 갈 수 없는 내가 영상으로 나마 튀르키예와 조우하는 순간이다. 그러다 훈에게 볼멘소리를 늘어놓는다. 가고 싶다고 갈 수 있는 거리가 아니기 때문이고, 그 거리만큼 지불 해야 하는 시간과 비용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몇 달에 걸려 시간과 비용을 비축한 후에야 가족을 만날 수 있다.



- 튀르키예 가고 싶어. 너무너무너어어무.

그런 나를 튀르키예를 떠나 온 훈이 달랜다.

- 베이비 이번 겨울엔 꼭 갈 수 있을 거야. 그렇게 되도록 하고야 말거야. 그러니 조금만 참아 주세요. 알겠죠?


엉엉대고 울다가 받아든 사탕에 눈물을 뚝 그친 아이처럼, 훈의 약속에 징징대기를 멈춘다. 그의 문장은 믿게 되기 때문이다. 그제야 멈춘 영상을 다시 재생해 화면으로나마 이스탄불 거리를 걷는다. 새파랗고 따사로운 햇빛 아래 튀르키예 사람들이 있다. 나도 그들과 함께이던 때가 있었다.



누구보다 시댁에 가고 싶어 하는 이유는 두 가지다. 첫째는 튀르키예(시댁)에 가는 기분 마치 여행처럼 느껴져서이고 둘째는 시댁 갈 때면 바뀌는 내 정체성 때문이다. 시댁이 튀르키예라는 사실과 그들이 내 시댁식구라는 기쁨이 나를 온통 그곳으로 내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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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댁이 외국이라 갈 때마다 여행가는 기분은 더 말할 것이 없다. 실제 작년 시댁에 갈 때, 나는 몇 달을 ‘튀르키예에 간다’는 예정된 계획만으로 3개월 고된 직장생활을 버텼다. 강서구 화곡동은 언덕이 많아 출퇴근 길, 오르고 내려야 하는 순간으로 이루어진다. 오르막을 오르면서는 가쁜 숨을 고라야 하는데 이것은 마치 회사에 가기 싫어 숨이 거칠어지는 것 아닐까 오해할 때 마다 속으로 외친 말이 있다. 이 오르막, 월-금 5일 x 4주 x 3개월 그러니까 60번 오르고 나면 너는 튀르키예행 비행기에 올라 있을 거야. 한국에서 내뿜던 한숨, 한숨 짖게 한 사람 모두 미세 먼지처럼 가소롭게 느껴질 거야. 갈 테니까, 그 희망으로 버텨.



그리고 정말 오지 않을 것 같던 시간은 찾아 왔고 우리는 비행기에 몸을 실은 상태였다. 새벽 1시 비행기였지만 탑승하고 난 뒤로도 쭉 피곤하지 않았다. 한국과 비로소 항공거리 3시간쯤 멀어졌을 때, 더는 돌아가기 쉽지 않다는 걸 알아챘을 때 눈꺼풀이 무거워져 왔다.



그렇게 도착한 튀르키예의 한 도시 안탈리아엔 가족이 있었다. 뷸렌트 아빠, 규벤 엄마, 제훈 형, 마지막으로 시누 에르바. 공항에 마중 나와 “잘 왔어 환영한다” 하며 가슴이 살짝 뭉개질 정도로 나를 꼭 안으며 인사해준 그 순간은 지금도 잊을 수 없다. 배고플 텐데 어서 가 밥 먹자며, 도착하기도 전 식탁 가득 차려 놓고는 우리가 오기만을 기다리던 그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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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댁에 가면 나는 그 집의 큰 딸이 된다. 그래서 ‘큰 에르바’라는 애칭이 붙기도 했다. 시누나 나나 행동하는 꼴이 똑같아서 인지 몰라도 딸처럼 생각하는 마음이 깔려 있기 때문이라고 나는 굳게 믿는다. 여기서 푹 쉬며 안탈리아의 명소들을 모두 즐기다 갈 수 있도록 극진히 배려해주셨기 때문이다. (딸 같은)며느리와 딸의 간극은 ‘행동 제약’일 것이다. 나서야 할 때와 뒷서야 할 때를 눈치껏 챙겨야 하고, 조심스러워 편할리 없고, 우리엄마 앞에서 하는 내 행동이 결코 이렇지는 않은 것처럼. 그러나 시댁에서 나는 딸 같은 딸이었다.



그리고 사랑은, 며느리가 시부모를 향한 것보다 딸이 부모를 향한 것이 진심에 훨씬 가까울 것이다. 나는 딸로서 내 마음에 우러나는 것들을 행했다. 어느 날은 드셔 보시라며 라볶이를 대접했고, 요리며 설거지하지 말라고 대신 맛있게 먹으라고, 그거면 된다는 가족들 마음에 고마워 물이나 컵, 그릇 가지를 남편 따라 날라 주었으며, 떠나기 전엔 엄마가 갖고 싶다고 했던 꽤 비싼 운동화를 몰래 사(화를 내며 필요 없다 했을 것이기 때문에) 침대 맡에 놓고 왔다. 짧은 편지와 함께. 딸은 튀르키예에 지내는 나의 엄마아빠가 그립다.



KakaoTalk_20221002_154416617_07.jpg 떠나기 전, 내가 저지른 애교ㅋ



그리고 아까 하지 못한 마지막 고백, 시댁에 가야 하는 또 다른 이유는 시아빠랑 했던 약속 때문이다. 곧 예순인 그의 주름진 눈가 밑이 순식간에 붉어지다 눈물로 통통하게 차오르던, 말을 잇다가 멈추었다가를 반복하던, 아빠가 꼭 하고 싶던 말이었는지 그럼에도 해야 했던 그 말을 나는 지금도 잊지 않고 있다.



- 사랑하는 며느리 잘 가렴. 우리 훈이 잘 부탁해. 그리고 생각이 바뀌거든 언제든 튀르키예에 오렴. 가까이 살면 정말 좋겠구나.

- 네, 아빠. 훈이 잘 돌볼게요. 그리고 1년에 한 번은 꼭 튀르키예에 올 거예요. 무슨 일이 있어도 그럴 거예요. 그러니 너무 슬퍼하지 마세요. 사랑해요.



사는 게 뭔지, 그렇게 시댁에 다녀온 지 1년이 지나버렸다. 그러나 올해가 가기 전에는 시댁에 가 아빠랑 엄마, 형 그리고 시누를 만날 것이다. 더는 지체할 수 없다.




*

‘아빠, 이번 겨울에는 꼭 갈게요. 어떻게 해서든 갈 거예요.

한국에서 선물사서 갈게요. 조금만 기다려요.


가을이 왔으니 금방 겨울도 올 거예요.

올해가 가기 전 우리는 만나게 될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