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다름을 전제로 하기에
국제결혼한 부부가 잘 산데요.
서로 다름을 인정해서 그렇데요.
그리고 그럼에도 사랑하기 때문이래요. 다름을 다름으로 받아들인 채, 사랑해서죠.
훈과 결혼하고 우린 뭇 한국인의 부러움을 사왔다. 그날도. 너털웃음 지으며 다음 생엔 외국인과 결혼하겠다는 기혼자도 있었고, 개중엔 나와 훈 관계가 좋을 수밖에 없는 이유를 그럴싸하게 풀어 준 지인도 있었다. 그러니까 서로 다름을 인정해서 그렇다라. 내겐 없던 통찰이었다. 아무렴 우린 다르고 다르게 살아왔다는 걸 외모로, 언어로, 식습관으로, 문화로 매일 살아 있는 실체로 보고 느끼고 있는 걸.
실은 우리가 극복해야 했던 건 다름이 아니라 물리적인 것들에 있었다. 우선 현실적인 이야기들. 결혼 전 우리의 만남은 비행기 12시간을 전제로 했다. 소위 롱디라고도 하지. 장거리 연애가 살갗 부비기에 좋은 조건은 결코 아니다. 그럼에도 몇 달간 힘을 모아 만날 수 있기는 한데, 바이러스가 창궐할 땐 그마저 할 수 없어 영상통화로 그리움을 어르고 달래야했다. 튀르키예와 한국은 시차 6시간이 난다. 한국이 6시간 빠르므로 새벽 3시에 잠드는 건 예삿일도 아니었다. 튀르키예 시간 밤 9시까지 오늘 하루는 뭐 했는지, 그곳 바이러스 상황은 어떤지 과자 부스러기만큼 잘잘한 이야기들을 주고받아야 했다. 함께 살던 동생은 제발 새벽엔 조용히 잘 수 없겠냐며 언성을 높였지만. 추억이 된 이야기다.
그렇게 결혼하기로, 거리 문제를 해결하니 어느 나라에 살아야 할지가 화두로 떠올랐다. 둘 중 한 사람의 터전을 바꾸는 중대사였다. 그러니까 1/2는 무조건 바꾸고 맞추고 적응해야 한다는 말이었다. 직장, 생활환경, 언어, 문화 등 여러 조건을 놓고 고민하다 시작은 한국이기로 했다.
한국에 살기로 결정하니 그 다음엔 비자 발급으로 애를 태워야 했다. 외국인 배우자를 한국에 거주케 하기 위해선 별도의 비자를 발급 받아야 한다. 그러나 문장처럼 간단하지 않다. 서류 작성 후 대사관에 신청하면 그만이 아니라 해당 서류를 통해 사랑하는 사이임을 ‘입증 해내야’ 해서다. 어떤 언어로 대화하는지, 해당 언어로 사랑을 소통할 만큼 충분히 잘 구사하는지, 실제 연인 관계가 맞는지, 둘이 주고받은 메신저 내용과 함께 찍은 사진 따위를 유첨 해야 하고, 한국인 배우자의 소득까지 증명해 제출해야 한다. 속된 말로 사랑이 맞는지 서류를 통해 검증하려는 심사 같은데 당사자 입장에선 유쾌하기 힘들다. 결혼 비자를 악용한 사례들로 선량한 우리가 수고를 해야 하나 아직도 알 수 없다. 그렇게 우리가 나눈 수많은 사랑의 문장들과 하트를 그들이 확인한 후 비자 발급이 완료 되었다. 훈이 한국에 올 수 있었다.
한국에 오니 외모가 언어가 성가심이 된다. 수염을 밀지 않은 날이면 훈은 위축된다. 그걸 아내인 나는 안다. 그러다 외출하고 돌아온 훈의 입에서 “수염 깎고 갈걸. 사람들이 나를 보고 놀랐어요” 할 때는 가슴이 육포처럼 찢기는 기분도 든다. 한국어가 어설프고 성글다 생각한 탓인지 한국어로 말할 때마다 작게 소리 내어 인사하는 것도 아내인 나는 안다. 훈은 목소리가 크다. 튀르키예 사람 대부분이 목소리가 크고 호탕한 기운이 있다. 그러나 상점에 가고 나올 때마다 거의 나만 들리는 목소리로 “안녕계세요”하는 훈을 보면 그러지 않아도 되는데 생각하고 아무 말 않는다. 그저 서울에 지내는 동안 모든 면에서 훈이 안녕했음 좋겠다. 진심에서 묻어난 바람으로 이 글을 쓴다.
그래서 지인 모임 중 한 남자가 “국제결혼한 부부가 잘 산다던데, 은경씨 보면 맞는 거 같아요” 했을 때, 실은 내가 한 말은 이거였다.
- 정말 정말 정말 사랑해서 그래요. 그렇지 않으면 해낼 수 없는 일이에요. 국제결혼이라는 건.
여전히 튀르키예에 와 있는 기분이다가 서울에 버티는 기분이다가, 오락가락 한다. 극복을 해놓고도 건널 수 있는 난관들과 이따금 만난다. 그럼에도 멀리 튀르키예에 있지 않고 내 옆에 붙어 온기를 흘리는 훈을 보면 아무것 아닌 난관이 된다.
그래, 우리가 함께 할 수 있다는 데 이것쯤이야.
아무것 아니지. 정말 그렇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