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손은경 Nov 22. 2022

여의도 연가

무의식이 쓰는 의식의 흐름에 따른 글

이 글은 곧 나의 팬, 팬이 거창하다면 나에 대한 호기심, 혹은 쟤는 뭐하는 인간 쟤는 뭐하고 사는 인간 쟤는 무슨 생각을 하고 사는 인간인지 궁금해 할 뭇 이들에겐 다분히 유쾌한 글이 되겠지만 그 외의 독자들에겐 아무런 득이 되지 못할 것임을 전제로 한다. 무의식으로 쓸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유익도 없고 재미 또한 없을 수 있음에. 보통 글은 타인이 보고 ‘아이구 예쁘다’ 해주기를 바라면서 쓰지만 오늘은 철저히 작가인 나 하나를 위해 쓰는 글이니 더욱 그러할 것이다. 그러니까 논리도 논리에 따른 전개도 주제도 메시지도 아무것도 없을 것이다. 오로지 무의식이 쓰는 흐름에 따라 쓸 글이므로, 이런 글도 언젠가 한 번쯤은 써 보고 싶었으므로(더러 썼었나…? 가물가물).



나는 지금 여의도에 위치한 모 커피숍에 와 있다. 이르게 온다고 왔지만 여기 창가자리는 늘 인기가 많아 차지하기가 힘들다. 그러고 보면 우린 참 비슷하지. 좋아하는 것도 싫어하는 것도. 그렇게 한참을, 기다랗고 커다란 네모 테이블을 조각내어 타인과 나눠 사용하다 우연히 한 자리 난 것을 발견했다. 여기 앉게 되었다. 내 앞에는 여의도 근무하는 양복 입은 직장인 열 명이 멀찌감치 떨어진 채 길을 걷고 있다. 성인 남자들은 두 손을 바지 주머니에 놓고 걷거나 핸드폰을 만지고 있는데 길을 갈 때 내가 하는 짓과 닮아 있다. 고만고만, 누구하나 도드라지는 사람은 없다.     



사람 보는 재미가 쏠쏠한 건 아니다. 한 번씩, 이유 없이 보게 된다. 글이 안 써질 때면 특히 그렇게 된다.     

여기 커피는 맛이 좋다. 쓰지도 맹맹하지도. 그래서 좋은데 빨리 식어서 맛이 빨리 단다. 여기 오래 버티고 있으려면 커피 두 잔은 도리 없이 시켜야 한다. 그럼 9,600원이 홀라당하고 이 커피숍 계좌로 넘어간다. 그러나 창가에 앉아 여의도 직장인을 바라보고 그마저 지루하면 책을 보고 다시 글을 쓰고 흘러나오는 피아노 소리와 함께 사색 하다보면 96,000원 같은 시간이 흘러가 있으므로, 아깝지는 않다. 돈은 숫자가 아니라 가치 중심으로 지출해야 한다고 어딘가에서 들은 기억이 있다.     



내 오른쪽 오른쪽에 한 남자가 앉아 있다. 그는 조금 전까지 조용히 카톡을 했는데(안 보고 싶어도 보임) 내가 이 글을 쓰고 난 뒤로 나를 의식한 건지, 묘한 타자 경쟁이 붙었다. 와다다닥 치고 있는 그가 나는 의식이 되고, 뭘 쓰는지는 모르겠지만 또 와다다닥 치고 있는 나를 그는 의식한다. 우리는 관계 속에 열라 타자를 친다. 우리 집, 내가 마련한 작업실에서는 상상할 수도 없는 일. 나는 나를 관계로 타자하고 집중을 잃고 거실로 나자빠지기 일쑤이나, 내 오른쪽 오른쪽에 있는 어제 막 결혼했을 것 같은 늙지도 젊지도 않은, 한창 사회생활에 몰두할 대략 삼십대 남성을 보며 생각한다. 네가 나보다 타자는 빠를지 언정, 글을 잘 쓰지는 않았음 좋겠어.     




요즘은 하루가 길다. 하루가 길어서 하루를 두 개로 사는 것 같기도 하고 어떤 날은 세 개로 사는 것도 같다. 오전을 보내고 나면 꼭 어제 일처럼 느껴진다. 그래서 오후가 새롭다. 오전의 찌꺼기 낀 감정은 오후라는 필터에 걸러져, 가쁜 두 번째 하루(오후)를 맞을 수 있다. 오후를 보내고 나면 퇴근할 남편 기다리는 일이 남는다. 그게 세 번째 하루를 살게 하는 느낌도 난다. 그래서일까. 오전을 망쳐도 내겐 오후가 있고, 오후까지 일을 다 못 마쳐도 남편 퇴근까지 남은 시간이 있다는 생각. 그렇게 하루를 두 개나 세 개로 사는데, 어떤 날은 무료하기도 하다가 어떤 날은 굉장히 뿌듯하기도 하다가 그런다. 어제는 피곤하고 무료했고 오늘은 기지개를 쭈욱 켠 듯 뿌듯하다.     



부장이 “왜 나가려고 하는데, 뭐가 문제야”하고 물었을 때, “모든 게 문제에요”하지 않고 “아시잖아요” 하고 말았을 때, 그 뒤로 8개월이 흘렀다. 그 전까지 나는 매달 25일 정해진 월급을 규칙적으로 받아왔다. 한 달을 네 번 더 보내고 나면, 월급 규칙에 벗어난 지 1년이 되겠지. 그때가 오면 내가 세운 규칙에 맞추어 사는 삶 1년차를 축하할 것이다.     



퇴사 후 나는 비로소 ‘생각’이라는 것과 ‘관찰’, ‘성찰’, ‘통찰’ 이라는 것을 하고 사는 듯하다. 나 스스로 느껴지는 대목이므로 지난 30년 뭘 하고 살았던 것인가, 시간을 거슬러 곱씹게 한다. 오로지 공부 오로지 시험 100점 맞는 나는 최고 80점 맞는 나는 용납할 수 없는 것, 그렇게 살아왔음을 여실히 알게 된다.     



그러나 잃기가 두려워 뭇 직장인을 망설이게 하는, 규칙적 수입이 사라졌다. 그래서 나더러들 ‘대단하다’거나 ‘용기있다’, 혹은 ‘멋지다’고 했을 테다. 이제 나는 내가, 내 글이, 내 강의가 유명해지거나 인정받았을 때에 타인으로부터 건네어진 천 단위의 숫자(돈)로, 이 곳에 와 커피를 마시고, 책을 사고, 이따금 외식을 할 수 있는 형편이 되었다. 하나 알게 된 것은 돈은 정말이지 숫자에 불과하다. 어떤 날은 오만 원이 들어오기도 하고 어떤 날은 한 번에 그의 10배가 훨 넘는 돈이 들어오기도 한다. 그때 나의 반응은 동일하면서도 흥미롭다. ‘올 것이 왔네.’ 그러고 나서 엑셀 파일을 열어 입금자와 입금일을 표시하고는 곧장 엑스박스를 누른다. 더 크고 새로워 나의 겨드랑이 땀을 주르륵 흐르게 할 커다란 프로젝트 없을까. 엑스를 누르면서 그런 생각을 한다.    

그보다는 신뢰로, 나와 내 글과 내 강의를 찾아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에 희열을 느낀다.     




*

그러다 지금, 무의식 중 쓰던 글에 의식이 돌아왔으므로 더는 쓸 수 없게 되었다. 이후 계속.



22.11.22

데칼코마니 같은 날

여의도에서,

요즘 나 이렇게 살고 있네






매거진의 이전글 그런 네가 성공하면 나는 화가 날 것 같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