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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은경 Jan 11. 2023

북한군과 한 사랑이 아니라 다행이야

제4화

-이전글 : 제3화, 그럼 나랑 결혼할래?



반면 우리 집에선 어떤 편견 없이 훈을 받아들여주었다.

엄마 생각은 이랬던 듯하다. 옳은 말이랍시고 잔소리만 해대며 방귀나 뿡뿡 뀌는 우리 큰딸, 뭐 예쁘다고 한국까지 와 살겠다니. ‘외국인’, ‘다름’ 보다 오히려 그 점을 기특히 여겨주었고 그렇게 훈은 아들 같은 사위가 되기에 이른다. 이 부분은 지금도 나 당신들 가족 구성원임에 자랑스러운 이유가 된다. 


    

그러나 튀르키예 아빠의 ‘차이’ 극복에 관한 염려는 마르지 않았다. 사실 나도 현장에 있지 않아 얼마나 심각했는지는 알지 못한다. 그저 훈이 해주는 말에 의지하는 수밖에. 훈은 때때로 아빠가 인정을 안 해준다는 이야기를 해주었고, 다툴 때마다 시엄마는 중간에 껴 곤욕을 치뤄야 했을 것이었다. 이런 다툼은 굳이 필요 없을 텐데, 하고 속으로 생각했지만 아무 말 하지 않았다.     



시아빠가 알면서도 모르고 싶던 삶의 진리가 있었다. 자식이기는 부모는 없고, 약삭빠르게도 자식은 그것을 알고 있다. 그리고 그 사실을 알고 있던 나의 엄마는 구태여 나를 이기려 하지 않았지만, 튀르키예 아빠는 이를 무시하고 싶어했다. 자식 이기는 부모 첫 번째 케이스가 되고 싶었던지 모른다. 그럼에도 결국, 훈은 아빠를 이겼다. 그러나 아빠도 지지 않고 이겼다. 행복한 결혼 생활을 꾸려나가는 아들을 보며 아빠는 훗날 아직 솔로인 훈의 형, 즉 큰아들에게 이런 말을 남기기도 한다. “너도 한국 여자랑 결혼하는 건 어떻냐.” 딸 같은 며느리가 된 나는 이 상황을 예상할 수 있었다.     





그때로 우리는 혼인신고 및 결혼 비자 발급 장정에 들어간다. 공적인 것, 준비사항과 절차 진행 상황 등을 보고하는 날이 이어졌다. 베이비 오늘은 대사관에 다녀왔어. 며칠 뒤 연락 줄 거라고 조금만 기다리라 하시네. 혹시 대사관 대머리 튀르키예 아저씨 알아? 그분이 나더러 결혼 축하한다고 엄지 척 해주시더라. 키킥. 결혼 축하에 기분 좋았어. 그렇게 하루 보고를 마치면 훈은 수고했다 해주었다. 다소 달뜬 마음으로 잠에 들곤 했다. 그와 만날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희망 때문이었다. 실은 훈에게 내색하진 않았지만 이대로 영영 헤어지게 되는 건 아닐까, 공연한 마음 앓이를 하기도 했다. 그 맘쯤 드라마 ‘사랑의 불시착’에 지독히 이입도 했는데 나는 손예진 훈은 현빈 같았기 때문이다(물론 외모 말고). 북한 사람을 사랑한다는 건 어떤 느낌일까, 그들을 가로막은 38선 그것은 얼마나 죽도록 부수어 버리고 싶은 장애물이려나, 전쟁이 사랑을 막을 수 있을까, 하물며 바이러스는. 이런 신파를 찍기도 했다. 마음은 가까이 있어도 몸과 눈에서 멀어진다는 건, 연인 사이에 그런 일이다. 한편 훈이 북한 현빈이 아니고 내가 남한 손예진이 아니라 다행이라고도 생각했다. 엉뚱한 밤들이었다.     



혼인신고와 비자 따위를 준비하며, 의례적 행사인 결혼‘식’은 생략하기로 했다. 우리 둘의 마음이 맞아떨어진 곳은 여러 군데였는데 개중 결혼‘식’에 대한 무관심도 그러했다. 상황이 허락했다면 글쎄, 양 부모 주장에 의해 결혼‘식’을 올렸을지는 모르겠으나 식은 아무렴 행사에 불과하다는 의견이었다.     



하나하나 순조롭게 처리하며 최종 결혼 비자 신청만 남았다. 비자 신청에 가장 큰 공을 들여야 했다. 수두룩 빽빽하게 준비해야 하는 서류, 한국에서 나의 소득 수준과 자산 정도, 심지어 실제 사랑으로 맺어진 사이가 맞는지를 증명하기 위한 짧은 에세이 그리고 주고받은 메시지들, 사진들. 단정하고도 공손하게 정리한 그것들을 DHL 서비스로 이스탄불에 보내며 나의 간절함도 함께 실었다. 제발, 비자 내어주세요. 플리즈. 얼른요!     

훈의 비자 신청이 있고 일주일쯤 지났을까. 영상통화를 하던 중 훈에게 메일이 왔다.     

- 비자 발급 완료되었으니 여권과 비자 가지고 가세요     



“베이비! 대사관에서 메일 왔어요! 비자 가져 가래요!!!!!”

“진짜???? 꺄! 끼야아아아악!!!!!”     



의사결정의 완성도는 시간이 지나며 드러난다. 우리의 판단은 옳았다. 우리가 혼인에 이르고 1년이 더 지나 튀르키예에서 여행객 방문을 허용한다는 결정을 내렸다. 만약 그때, 우리가 결혼하기로 하지 않았더라면 어땠을까. 1년쯤이야 기다릴 수 있었으려나. ‘What if’로 시작해 상대의 대답 유도하기를 즐기는 우리가 언젠가 했던 질문이었다. 어땠을까. 훈이 이런 말을 했다. 아마 그랬다면, 지금쯤 각자의 곁에 다른 사람이 있지 않을까. 그런 말이 어딨냐며 훈의 가슴을 퍽퍽 쳐댔지만 아주 비현실적이진 않은 이야기였다. 그게 더 소름 끼치도록 무서웠다. 훈이 없는 삶이란 정말이지 인정하고 싶지 않은 것.     





그날, 우리는 당일 밤 출발 비행기 티켓을 샀다. 마침 터키쉬에어라인에서 운항하는 직항편이 있었다. 다음날 오후 5시경 인천공항에 도착하는 스케쥴이었다. 그날만큼은 영상통화도 없이 각자의 시간을 보낸 듯하다. 훈은 급히 나에게 줄 기념품을 사러 이스탄불 시내를 돌아다녔고 밤엔 무사히 공항에 도착했다는 메시지를 남겼다. 그동안 나는 미친 듯이 집을 쓸고 닦았다. 훈이 좋아하던 한국 음식 해주려 장을 보고, 소주와 맥주 가득 냉장고를 채우기도 했다. 기쁨의 축배를 들어야 할 테니까. 바이러스 창궐 이후 가장 명랑하게 움직였던 시간. 장장 11시간 비행을 끝으로 우리가 만난다. 그저 무사히 오기를, 새어 나오는 웃음을 주체하지 못해 간신히 잠에 든다.     



인천공항으로 훈을 마중 가던 날은 휴가를 냈다. 갈 때는 남자친구였으나 올 때는 남편이 되어버리는 그, 그를 맞는 일은 신성해야 한다. 아침부터 샤워를 했다. 오랫동안 방치해 뻣뻣하게 굳어있던 마스카라도 발랐고, 회사 갈 땐 쳐다도 보지 않는 치마를 꺼내 입기도 했다. 2시간 후면 훈을 만난다. 지금 내가 훈에게 보일 수 있는 최상의 모습이 2시간 만에 증발하지 않기를 바라며 메이크업 픽서를 듬뿍 발랐다.     



이르게 도착했다. 훈이 출국하던 날 이후 처음 공항에 가는 길이었다. 공항철도 창으로 바라본 하늘은 유난히 맑게 빛났다. 도착을 알리는 전광판에는 고작 대여섯개의 항공편쯤, 그중 하나가 이스탄불에서 온 터키쉬에어라인이었다. 가슴에 미니언즈가 뛰노는 것처럼 쿵쾅댄다. 뭐라고 그를 맞이하면 좋을까, 뭐라고 말할까. 남자친구 말고 남편이라고 불러야겠지. 이런 낯섦, 어색함은 어떻게 극복하면 좋지. 바이러스로 입국자와 배웅자 사이를 그어둔 바리케이트가 있었는데 그 뒤 편에 서 하염없이 생각했다.     



한참이 지났다. 마스크를 낀 모든 입국자가 다 훈처럼 보이려 할 때, 저 멀리 낯익은 외형이 보이기 시작한다. 키, 옷차림, 잘 깎은 밤톨 같은 헤어스타일. 내가 아는 그인 듯하다. 높이 손을 들어 흔들어 보였다. 나 여기, 여기 있어! 그제야 나를 알아본 훈이 성큼성큼 내 곁으로 다가온다. 약 6개월 만에 실감한 그의 존재. 이토록 오랜만에 만난 내 남자친구가 갑자기 남편이 되어 있다니.     



그렇게 서울, 국제부부 생활이 시작되었다.




(계속)





이 글은 네이버 연재 중인 글로, 원본에 해당합니다.


https://m.post.naver.com/viewer/postView.naver?volumeNo=34799229&memberNo=38753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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