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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은경 Jul 18. 2023

[이것]만 넣어도 [글의 품위]가 달라진다

질질 끄는 거 딱 재미없다죠. 하여 정답부터 말하고 갑니다.

글의 품위를 높이는 요소란 뭘까요? 바로 ‘메시지’입니다. 글쓰기에 꽤나 관심 있던 분이라면 한 번쯤 들어보셨을 겁니다. 글에 메시지를 넣어야… 어쩌고 저쩌고 부리부리 나바리.      




그러나 진짜 문제는 여기서부터 시작입니다. 상당히 많은 분이 제게 질문하곤 합니다.     




‘메시지, 뭔지 알긴 알겠는데 잘 모르겠어요(?)’ 혹은

‘전할 메시지가 딱히 없는데 어떡하면 좋죠.’     





위 질문에 대한 해설 전, 하나 말씀드릴 게 있습니다. 일단 모든 글에 반드시 메시지가 존재해야 하지는 않습니다. 오직 ‘재미’가 있는 글도 (독자를 기쁘게 했으므로)글로서 제 역할을 충실히 한 거고, 다만. 다만 글의 품위는 메시지 유무로 가름한다는 게 제 의견입니다. 독자 가슴에 퍼지는 잔잔한 울림이 품위를 만든다는 생각.     




자, 그럼 본격 ‘메시지’ 파악에 앞서 우선 정의부터 내려야겠습니다.

당신은 메시지란 무어라고 생각하나요? 당신만의 정의를 내릴 수 있나요?     




"메시지란, 독자에게 전할 작가의 깨달음이다."




위는 대백과사전이나 국어사전에 편찬된 [메시지] 정의는 아닙니다. 단지 수년간 써온 저만의 정의인데요. 메시지란 독자에게 전할 작가의 깨달음입니다. 글에 담긴 메시지를 설명할 이만한 정의는 없어 보이고, 근거는 위 문장에 포함된 핵심 단어 때문입니다. 뭘까요? 바로 [깨달음]입니다.  




메시지란 곧 작가의 깨달음을 말합니다. 그렇다면 깨달음이란 무언지 알아야겠습니다. 이는 영적 스승 레스터 레븐슨의 정의로 대신합니다.     




깨달음이란

“깨달음이 일어나면 우리는 안다. 그리고 우리는 우리가 안다는 것을 안다. 깨달음이란 어떤 것을 정말 처음으로 알게 되는 것을 말한다. 비록 그것에 대해 이전에 수도 없이 들었다 할지라도 말이다. … 이것은 마음에 전깃불이 들어오는 것 같다. 그리고 당신은 말한다. 아, 이제 알겠다.”

- 레스터 레븐슨     




누구나 살며 ‘아, 알겠다’ 싶은 순간을 만납니다. 가령 이해 못한 채 덮어야 했던 책 한 구절을 어느 날 ‘아하! 그거였어!’하고 알게 되던 때, 땡볕 더위 시원한 커피숍에 앉아 먹는 팥빙수 한 입에 ‘아 소확행이 이거였어’하던 때, 또는 한 차례 시련이 있고  ‘인생 별거 있냐. 즐기다 가자’하는 것과 같이. 깨달음은 불쑥 우리를 찾아와 뜨거운 희열을 남기고 갑니다. 따라서 뜨거워진 적 있다면 당신이 깨달음과 조우했다는 증거. 그게 바로 깨달음입니다. 멀리 있어 장시간 비행기 타고 가야 만날 수 있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깨달음이란 멀리 있지 않습니다.
현상의 원인은 책에서 구할 수 있지만 깨달음은 책 밖에서 구할 수밖에 없는 것.
그것은 책이 아닌 당신 내면에 있기 때문입니다.     




메시지란 독자에게 전할 작가의 깨달음이라 했습니다. 그렇기에  작가의 [깨달음] 없이 메시지는 떠오를 수 없다는 조건이 있습니다. 때문에 작가는 습관처럼 깨달음을 구하게 됩니다. 글 쓰며 성장한다는 격언 많이 들어보셨을 겁니다. 바로 이런 이유에서입니다. 작가는 일련의 사건 혹은 일상 심지어 매 순간 배움을 구하고 있습니다. 오직 깨닫기 위해서 말이지요. 나아가 깨달음을 독자에게 전하기 위해 글을 쓰지요. 깨달음을 위한 정신 수련자와 작가는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다만, 수련자와 작가의 차이는 글로서 남기느냐 남기지 않느냐 정도라 할까요.     




1. 글에 메시지를 담지 못했던 첫 번째 이유

- 메시지란 곧 깨달음임을 몰랐네(정의 부재)     




결국 메시지 없는 글은 작가의 깨달음이 없었다고 밖에는 말할 수 없습니다. 메시지란 원래 그런 것이니까요. 그러나 이것이 유일한 이유일까요? 그렇지는 않을 테죠. 누누이 말하듯 우리는 인생이라는 관계 안에 작거나 큰 깨달음을 매일 얻고 있습니다. 다만 언어화해 본 일이 없을 뿐입니다.     




생각이란

“감각기관에 의해 지각된 오감 이미지를 언어와 기호로 바꾸어 계산, 판단, 추론하는 작업이다.”

- 작가 김용규 & 김유림     




작가 김용규와 김유림은 말합니다. 생각이란 감각기관에 의해 지각된 오감 이미지를 언어와 기호로 바꾸어 계산, 판단, 추론하는 작업이다. 생각이 위 같은 행위를 말하는 것이라면, 곧 언어와 기호로 바꾸지 않는다는 것은 [생각하지 않는다]는 뜻이 됩니다. 눈으로 찍고 그대로 넘기면 그것은 생각이 되지 않습니다. 보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닙니다. 마찬가지로 깨달음을 언어로 변환하지 않았다면 그 또한 온전히 생각했다고도 할 수 없습니다. 언어화하기 전 완전히 자기 것이 된 깨달음은 있을 수 없거든요. 윌리엄 진서 작가가 저서 『공부가 되는 글쓰기』에서 주장한 바도 같습니다. 쓰다보면 자기 것이 됩니다. 내 것이 된 순간 비로소 독자에게 나누어 줄 거리가 생깁니다.     




그러니 이제라도 깨달음을 언어와 기호로 만들어 메시지라는 형태로 독자에게 전달하는 연습을 해야겠습니다. 그간 써온 글에 메시지가 없었다면 말입니다. 발신하지 않으면 독자는 수신할 수 없습니다. 쓰지 않으면 독자는 읽을 수 없습니다. 그렇게 메시지가 빠진 글이 됩니다.




2. 글에 메시지를 남기지 못했던 두 번째 이유

-깨달음을 문장화하지 못했거나     




어쨌거나 쓰는 사람은 씀으로 보여주어야겠습니다. 작가가 독자를 향한 애정을 드러내는 방식, 오직 [글]이겠습니다.     




저는 요즘 제 (글쓰기)멘티와 [깨달음의 문장화]라는 작업 중에 있습니다. 소소한 깨달음을 언어화 해 메시지로 남기기 위한 훈련이라고 생각하시면 되는데요. 오늘부터 당신도 함께 연습하는 것 어떨까요? 혹시 아나요. 언젠가 당신 글에 포함 될 깨달음 한 문장으로 백만 독자를 만날 지.     




세상일은 모르는 겁니다. 그래서 흥미진진한 법이고요.     






- 위 칼럼은 <손은경 글방> 쓰기 : 생각의 소화에 게시 된 일부 입니다

- 잘 쓰고 싶은 지성을 위한 독서모임 [일월일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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