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들 집에 조심히 들어가구요, 내일 봅시다”
선생님도 알고 계셨을지 모르지만, 유쾌하게 웃으며 양손을 흔드는 선생님의 일방적인 인사는 앞다퉈 먼저 교실을 나가려는 아이들에게 가 닿지 않을 터였다. 왜냐면 6교시에 이르는 기나긴 수업을 치른 12살짜리 아이들은 선생님의 지겨운 종례마저 버티기엔 아직 너무 어렸던 것이다. 그리고 그때쯤엔 애들도 어느 정도 질려 있을 터였다. 사실은 8할이 자기 자랑뿐이고, 따지고 보면 그다지 유익하다고 할 수도 없었으니까.
무엇보다 애들을 더 초조하게 만들었던 건, 우리 반 애들이 그 지겨운 종례 시간마저 견뎌야 했을 때 다른 반 애들은 학교 일과가 드디어 끝났다며 즐겁게 웃고 떠들며 우리 교실 옆을 지나가는 거였다. 때문에 교실 밖에서 꺄르르 웃는 소리가 들려올 때면 애들의 고개가 저절로 그쪽으로 돌아가곤 했다.
새삼 말하는 거지만, 나는 선생님의 잔소리가 그다지 지겹게 느껴지지 않을 만큼 원래가 느긋하고 낙천적인 성격이다. 그동안의 경험에 따르면 우리 반 종례 시간은 길어져봤자 10분에서 13분이면 끝난다. 뭐, 다른 반 종례 시간이 대충 2~3분 정도인 걸 비교하면 꽤 길긴 하지만, 그래도 고작 10분 더 기다리는 건 내겐 그다지 힘든 일도 아니다.
하지만 어느샌가 교실 밖의 꺄르르 소리에 나도 애들과 같이 반응하기 시작한 건 꽤 큰 고민거리였다. 그 애 반이 종례를 먼저 마치는 한 그 애가 먼저 학교를 나서게 될 것이었고, 그러면 그 애를 따라잡기 힘들어진다.
“이제 오니?”
버스 중간쯤 자리에 앉아 있던 그 애가 쭈뼛대며 다가가는 날 보더니 살며시 웃음 지었다. 그리곤 아침에도 그랬던 거처럼 별다른 말 없이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 애를 지나쳐 버스 뒤쪽 자리에 앉았다.
그날 이후 그 애는 날 기다리지 않는다. 처음엔, 복도에서 기다리고 있을 것이던 그 애가 보이지 않아 의아했지만, 아마 저번처럼 지혜와 영미랑 놀러 갔을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터미널에 와보니 그 애가 먼저 도착해 버스에 타고 있는 것이다.
시도 때도 없이 떠들던 그 애가 별안간 조용해진 것도 그날 이후부터다. 아침에 학교 가는 버스 안에서도, 같이 길을 걸어가는 중에도 평소라면 세상 밝은 표정으로 끝없이 재잘댈 것인 그 애가 어쩐지 그날 이후 말을 하지 않는다. 물론 평범한 또래 아이들처럼 인사도 하고 간단한 일상적인 얘긴 했지만, 지금까지 정신없고 시끄러운 그 애를 겪었던 나로선 그 애와 평범한 대화를 나누는 게 얼마나 어색하기 짝이 없는 일인지 아주 잘 이해하고 있을 터였다.
바라던 거 아니냐고?
당연히 그렇지. 너무너무 바라던 일이다. 그 애에게 손목을 붙들려 끌려다니지도 않고 마음 편히 집에 갈 수 있다니. 이 얼마 만에 느껴보는 자유로움인지. 그 해방감이란, 그 애가 옆집에 있는 한, 아니 어쩌면 평생 그 애에게 끌려다니게 될지도 모른다는 우려로부터 마침내 벗어났다는 사실로 말미암은 것이다.
그렇기에 하루아침에 돌변한 그 애 태도에 홀가분하기보단 오히려 어안이 벙벙했다. 그리고 호기심이 일었다. 내 호기심을 설명하자면 절대 다른 감정이나 의도가 있는 게 아니라, 순전히 당면한 상황에 대해 이해하지 못한다는 것에서 비롯된 거다. 그 애가 변한 이유가 뭔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건지, 앞으로 어쩔 작정인지. 그래서 종례가 끝나면 부리나케 그 애 뒤를 쫓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 애를 관찰하다 보면 뭔가 답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그 애는 뒤에 있는 날 의식하는 거 같진 않았다. 우리 아빠 차를 타고 집으로 가던 그날처럼 그저 차창 밖을 하염없이 바라보다 이따금 고개 숙여 나지막이 한숨을 쉬기도 했다. 그리곤 다시 차창으로 고갤 돌리는데, 멍한 채 앉아 있는 그 모습이 문득 초라하게 느껴지는 것이다. 아니, 불쌍해 보인다고 하는 게 맞을까.
버스에서 내려 집으로 걸어갈 땐 나란히 걸었다. 그 애가 내 손목을 잡아끌었을 땐 항상 저가 앞장섰었지만 이젠 그러지 않는다. 나란히 걷는 건 그 애와 처음 학교에 같이 가던 며칠간 이후 거의 없던 일이었다. 그래서 항상 그 애 뒷모습만 보다가 옆에서 걷는 그 애를 보는 건 꽤 어색한 기분이었다.
그 애가 말을 하지 않으니 걸어가는 동안에도 서로 거의 대화가 없었다. 버스에선 창밖만 쳐다보더니 걸어갈 때 그 애는 멍하니 앞만 쳐다봤다. 무슨 생각을 하는 건지 이전보다 걸음이 느려졌고, 볼품없이 축 늘어진 어깨로 맹한 표정을 하고 있다. 지금까지 겪은 그 애는 항상 밝고 씩씩했다. 늠름하고 자신감 넘치는 모습으로 매번 날 억압해 왔었지. 하지만 그날 이후 그 애는 어떠한 의욕도 의지도 없는 듯한 모습으로 맥없이 시들어 있는 것이다. 그건 정말이지 적응하기 힘든 것이었다.
일주일이 지났다.
지난 토요일과 일요일에도 그 애는 우리 집에 오지 않았다.
이제 학교를 마치면 바로 터미널로 달려가지 않는다. 그 애가 타고 있을 버스를 놓치고 다음 차를 탄다. 어느샌가 그 애와 같이 집에 가는 게 어색하다 못해 거북해졌다. 왠지 불쌍해 보이는 그 애를 마주하는 건 생각보다 불편한 것이었다.
“처음엔 다 놀래긴 하지, 가시내들은 더 놀래겠제”
그러곤 현우는 잠시 골똘히 생각하더니 이내 이상하단 표정으로 돌봤다.
“근데 가아는 므심아 아이가? 그랄 수가 있나아?”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몰라 괜히 고개를 숙였다.
“몰라”
종례를 마치고 운동장을 가로지르는 길에 5학년은 거의 우리 반 애들밖에 없었다. 다른 반 애들은 이미 10여 분 전에 학교를 나갔으니까. 개중엔 날 기다렸던 그 애처럼 우리 반 애를 기다렸다가 같이 나가는 다른 반 애도 있긴 했다.
“야, 그라믄 이번 토요일에 우리 집에 와, 니 어차피 가아한테 안 잽히가긌네 ㅋㅋ”
잡혀가다니. 놈이 또 은근히 놀리는 것이다.
놈을 돌아보며 눈을 째리니, 놈이 능글맞게 히죽거렸다.
“ㅋㅋㅋ 알았으 알았으, 토요일에 온나, 놀자, 울 엄마 할머니 집에 갈지도 몰라”
놈에게서 눈을 돌려 다시 고개를 숙였다.
현우 집에 놀러 가면, 보통은 녀석의 보물 1호인 글록 BB탄 권총을 쏘고 놀거나 체스를 두기도 했다. 가끔 어머니가 안 계실 땐 거실에서 게임기를 할 수도 있었다. 체스는 거의 비등비등했지만 게임은 놈이 훨씬 잘했다.
게임기를 하는 날은 거의 저녁이 되기 전까지 정신없이 놀았다. TV에 연결하는 그 게임기는 각종 오락실 게임을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그 시절 초등학생에겐 최고로 진귀한 물건이었다. 읍내 오락실에선 한 판에 100원이나 하는 게임을 공짜로 마음껏 할 수 있는 것이다. 더군다나 4교시만 하는 토요일에 어머니마저 안 계신다면 진짜 날 잡은 거다. 녀석과 라면도 끓여 먹으며, 거의 반나절 동안 실컷 놀 걸 생각하니 벌써부터 설렜다.
“몰라...”
그런데 왠지 내키지 않았다. 만약 현우와 이미 약속했는데 갑자기 그 애가 집에 같이 가자고 하면 어쩌지. 그동안 같이 못 놀았으니 이번엔 무조건 같이 놀아야 된다고 막무가내로 고집 피면 어쩌지. 그 애는 고집도 꽤 센 편이니까, 그렇게 되면 참 난감할 거 같다.
잠시 고민에 빠져있을 때 현우가 서 있는 오른편에서 문뜩 축구공이 날아왔다. 운동장에서 축구를 하던, 4학년으로 보이는 애들이 공을 잘못 차 우리 쪽으로 온 거 같았다.
공이 지나가도록 우린 잠시 멈춰 섰고, 축구 하던 4학년 애들 몇이 우리 눈치를 보며 앞을 지나갔다.
참 좋을 때다. 일찍 마치면 운동장에서 축구도 할 수 있고. 하지만 너네도 1살 더 먹어봐라. 우리처럼 늦게까지 공부해야 될 테니까.
애들이 앞을 지나가고, 현우와 다시 걷기 시작할 때였다.
“아! 이 새끼들 뭐고? 저리 꺼져!”
별안간 공이 지나간 왼편으로 웬 욕설이 들렸다. 그리곤 공이 다시 돌아와 우리가 가는 방향으로 휭 날아가는 것이다. 그쪽으로 돌아보니 난처한 표정으로 기웃거리는 4학년 애들 사이로 한진규가 실실 웃으며 우리 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쟈아는 또 와 따라오노?’
불편한 듯 표정이 굳은 현우가 조용히 소곤댔다.
저놈이 다가와 또 실없는 소릴 해댈 걸 생각하니 나도 조금 짜증이 났다.
“어이! 친구들, 같이 가자!”
기어이 놈이 이쪽으로 따라붙었다.
현우는 떨떠름한 표정으로 앞만 쳐다보며 걷기 시작했다.
“아아! 씹새끼들 내가 누군지 알고 나한테 공을 차노, 안 글나?”
놈이 내 왼쪽 팔을 잡아당기더니 날 올려다보며 실실거렸다.
이쪽으로 다가와 한다는 첫 마디부터가 영 마음에 들지 않아 저절로 표정이 구겨졌다.
“하아! 사 학년 새끼들, 언제 한 번 모다가, 교육 한 번 시키야 안 되긌나? 이잉?”
잔뜩 구겨진 내 표정을 봤을 텐데도 아랑곳 않고 주절대는 것이다.
놈은 연신 이상한 추임새를 내며 거드럭거렸다. 같잖은 게, 지가 뭐라고 애들을 모아서 뭘 어쩐다는 건지. 추측하건대, 이번엔 아마 조폭이나 불량배가 나오는 어쭙잖은 삼류 영화 같은 걸 보고 따라 하는 걸 테지.
교문을 지나 주택이 늘어선 큰 골목으로 나왔다. 그 사이엔 문방구와 돈가스 꼬치를 파는 분식집도 있었다.
얼토당토않은 놈의 말에 별 대꾸도 하지 않고 걷고만 있으니, 문득 놈이 물어왔다.
“야 근데, 니 요즘에는 와 가아랑 같이 안 다니노?”
놈을 돌아봤다.
“뭘 같이 안 다녀? 누구?”
네가 언급 한 사람이 누구를 말하는 거냐고 물은 건 아니다. 갑자기 그 애 얘길 꺼낸 것에 대한 짜증 같은 거였다. 그런데도 놈은 눈치 없이 말을 이었다.
“와, 자꾸 니 끌고 다니던 가시나 말이라, 그 싸가지 없는 년 ㅋㅋ”
잘못 들었나 했다. 한 걸음 정도 앞서 걷던 현우도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돌아봤다.
“와? 둘이 싸웠나? 내 그랄 줄 알았다, 그년 그거 좆긑이 생기가 성깔도 드릅제? 있어봐라, 내 쫌 있다 형들한테 그년 잡아가 손 한 번 봐달라 할끼라”
뭐 같이 생겼다는, 12살짜리 입에서 나왔으리라곤 생각지도 못할 욕에 대한 건, 한진규라는 인물을 이유로 댄다면 납득할 만도 하다.
그런데 왜일까. 순간 화가 났다. 아니 분노가 치밀었다.
“그 씨발년도 교육 한 번 시키.....”
“야 이 씨발놈아...”
나도 모르게 놈의 멱살을 잡았다. 오른손이 주먹으로 꽉 쥐어져 떨렸다.
왜 그랬을까. 이유 모를, 가눌 수 없는 감정이 휘몰아쳐 진규놈에게 퍼부어지려 할 거 같았다.
그런 감정을 느껴본 일이 있을까. 7살 때 같은 유치원 다니던 김호정이가 유치원 옆집 강아지를 몰래 훔쳐 와 괴롭히는 걸 봤을 때, 항상 내게 살갑게 굴던 몽실이의 새끼가 낑낑거리며 비명 지르던 그때 느꼈던 감정과 비슷한 걸까.
“와, 와 이라는데, 니, 니 미칬나?”
갑작스런 행동에 놈이 당황했는지 눈이 동그래져서는 말까지 더듬었다.
“입 닥치라! 이 새끼야”
반대편 전봇대로 놈을 밀어붙였다.
그때쯤 현우가 다가왔다.
“야, 와 그라노, 고마해”
현우는 나와 놈 사이를 양손으로 헤치며 말리기 시작했다.
전봇대로 밀쳐지며 몸이 짓눌러지자 진규놈이 자존심 상했는지 되려 악을 썼다.
“뭐 이 미친 새끼야! 너도 그년 싫어했잖아!”
기어코 놈이, 간신히 참고 있던 감정을 퍼붓게 만들려는 거 같았다. 주먹이 꽉 쥐어진 오른손이 올라와 뒤로 젖혀졌다. 7살 그때, 들고 있던 장난감으로 김호정의 머리를 때렸었지. 유치원으로 달려오신 엄마한테 많이 혼났었는데. 그날 현우가 아니었다면 또 그랬을지도 모른다.
“야! 하지 마! 아 쫌 하지 마라고! 니도 임마 좀 닥치라! 니가 먼저 욕 했다 아이가!”
현우가 내 오른손을 잡고 늘어졌다. 그리곤 나와 진규놈을 번갈아 돌아보며 다급하게도 외쳐댔다.
결국 놓아줘야 했다. 놈은 도망가는 중에도 연신 욕을 해댔다. 쫓으려 하면 현우가 막아서는 통에 나도 그냥 욕하며 응수하는 수밖에 없었다.
현우 집은 읍에서 제일 큰 네거리를 지나 골목들 사이를 통과하면 나오는, 읍에서 두 번째로 큰 아파트였다.
네거리를 지나 골목으로 들어섰을 때, 한동안 씩씩거리던 내가 조금 진정되는 듯하자 녀석이 문득 어깨동무를 해왔다.
“내 여자 아이가!”
이씨... 그새를 못 참고 또 놀리는 것이다. 망할 자식.
“아, 하지 마라고!”
녀석을 밀쳐내며 눈을 째리니, 놈이 키득거리며 도망갔다.
그날 나는 왜 그렇게 화가 났던 걸까. 그딴 저질스런 단어로 그 애를 형용했다는 것에 화가 났던 걸까. 아니면 수준 낮은 양아치 주제에 감히 그 애를 어떻게 하겠다는 말에 화가 났던 걸까.
어쨌든 그때쯤 나는 깨달았다. 그 애도 내 친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