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애와 함께 어린이날을 보냈다면 어땠을까. 그저 여느 때처럼 집에서 TV나 비디오를 보며 놀았을까. 그리고 마당에서 같이 고기를 구워 먹었겠지. 그 애는 넉살이 좋으니까 우리 가족의 파티에도 흔쾌히 끼었을 테지.
옆이 허전했다. 같이 가던 그 애가 보이지 않았다. 처음엔 뒤에서 따라오겠거니 했는데, 시장 입구에 다다를 때까지도 그 애가 보이지 않자 옆에 없다는 걸 깨달은 것이다.
주위를 몇 번 두리번거리다가 뒤돌았다. 저쪽에 그 애가 보였다. 양손으로 제 머리를 감싼 채 주저앉아 있는.
“저, 와 일카노, 와 일카노, 야야 괘않나?”
튀밥강정을 자르시던 아주머니가 놀라며 그 애에게 다가가셨다.
“뻥 하이까네 놀랐는갑다, 아이고 우야노”
그때쯤 할머니도 뒤가 허전하신지 돌아보시곤 이쪽으로 서둘러 오시기 시작했다.
그 애 앞으로 다가가 앉았다. 아저씨가 주신 과자가 땅에 떨어져 깨져 있었다.
“야, 괜찮나? 왜 그래?”
듣지 못하는 거 같았다. 그저 눈을 질끈 감은 채 떨고 있었다. 주위에서 몇몇 사람들이 몰려들어 웅성댔지만, 그것도 모르는 거 같았다. 뭐에 겁먹은 건지 그저 잔뜩 웅크린 채 덜덜거리는 것이다.
어느새 할머니가 다가와 그 애 어깨에 손을 얹으셨다. 그러니 그 애가 움찔거리며 고갤 들었고, 앞에 있는 날 보게 됐다.
순간 그 애가 팔을 뻗어 휘저었다. 번뜩 떠진 두 눈이 무언갈 간절하게 갈구하듯 허공을 필사적으로 나돌았고, 두 팔은 맨땅에 내동댕이쳐진 물고기의 파닥거림처럼 절박하게 휘둘러졌다. 날 잡으려는 거 같았다.
휘젓는 그 손에 내 팔뚝을 가져갔다. 팔이 제 손이 닿자 그 애는 잡아당겨 제 몸을 이쪽으로 건네왔다. 순간 놀랐지만 피하진 못했다. 뒤로 묶어 정갈하게 정리된 머리가 그대로 내 가슴을 파고들었다. 잔뜩 겁먹어 떠는 그 애를 뿌리칠 수 없어 껴안아 다독였다.
아빠 차를 타고 집으로 향하는 동안에도 그 애는 아무 말도 없었다. 어디가 아픈 걸까. 아까 놀랐던 게 아직도 진정되지 않은 걸까. 그 애를 좋아하진 않지만, 그래도 아픈 건 싫었다. 대체 뻥튀기 소리가 그 애에겐 얼마나 컸길래 그렇게나 놀랐던 걸까. 처음 듣는 거라면, 뭐 그럴 수도 있겠거니 생각은 하지만.
그 애 시선은 줄곧 창밖을 향해 있었다. 하지만 무언갈 보고 있는 거 같진 않았다. 그저 초점 없는 눈으로 멍하니 생각에 잠겨있는 듯했다. 말 없는 그 애가 걱정됐지만, 굳이 말을 걸거나 건드려보고 싶진 않았다.
집에 도착하자 아빠가 그 애를 옆집으로 데려다줬다.
난 내 방으로 와서 모처럼 한가한 오후의 여유로운 시간을 갖게 됐다.
시장에서 사 온 과자를 몇 개 꺼내왔다. TV를 켜고 내가 제일 좋아하는 터미네이터2 비디오를 꽂았다. 잠시 뒤 화면에는 영화가 끝날 때 나타나는 검은색 바탕이 띄워졌다. 아, 저번에 되감기 안 해놨었지. 역방향 화살표가 두 개 겹쳐진 버튼으로 손가락을 가져갔다. 문득 그 버튼 위로 검지 손가락 끝이 미끄러져 뱅글뱅글 돌았다. 손가락에서 점점 힘이 빠져 손을 내렸다. 화면은 여전히 검은색 바탕을 나타내고 있었고, 거기에 어렴풋이 내 모습이 비쳤다. 한동안 멍하니 그 검은 화면을 바라봤다.
문뜩 부엌에서 할머니가 부르시는 소리가 들렸다.
“요오, 옆집에 갖다주고 오이라”
부엌 바닥엔 봉지 안에 차곡차곡 정리된 과자가 종이박스에 가지런히 담겨 있었다. 옆집에도 주려고 그렇게 큰 걸 사셨던 거구나.
상자를 들고 대문을 나섰다.
오후 4시였다. 아직 밖은 환한 대낮이었고, 여전히 하루가 더 남아있다며 햇볕이 한껏 밝은 빛을 내리쬐고 있었다. 원래라면 지금쯤 성가시고 귀찮은 그 애와 같이 놀고 있을 터였다. 그런데 왠지 아쉬운 기분이 드는 건 뭘까.
옆집 대문을 들어서니 아주머니께서 반갑게 맞아주셨다.
“하이고 고맙구로, 할머니께 감사하다고 전해주래이”
“네, 안녕히 계세요”
꾸벅 인사드리고 돌아서려는데,
“야야, 잠깐만 있어 보래”
그러고는 안으로 들어가시는 것이다.
한동안 그곳 마당에 서 있었다.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밖에 나가셨는지 집안이 조용했다.
문득, 그 애가 저 안에 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말이 참 많던 그 애. 정말 시끄러웠는데, 왜 지금은 이렇게나 조용한 걸까. 그 애가 저 안 어딘가에, 꽤 가까이 있을 거란 생각이 드니 왠지 모를 위화감이 들었다.
잠시 뒤 아주머니께서 무언가 가득 든 검은 봉지를 들고나오셨다.
“오디라, 날이 좋아가 좀 일찍 나왔드라, 할머니 좋아하실 끼라”
꽤 묵직하게도, 봉지 안엔 제법 많은 오디가 들어있었다.
“감사합니다”
꾸벅 인사드렸다.
그리곤 돌아서려는데, 왠지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잠깐, 아주머니 뒤로 문이 반쯤 열려있는 집안을 넘어 보다, 다시 아주머니를 올려다보다, 이내 발걸음을 돌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