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중 그 애 08화

8. 시장 나들이

by 차태주

그곳 고장은, 그 좁고도 얼기설긴 시장통의 골목들만큼이나 사람들 간의 인심 또한 복잡하게 얽힌 곳이었다.




내가 자란 그곳은 하늘이 참 예뻤다.

낮엔 티 없이 맑고 뚜렷한 연파랑이 청연하게 펼쳐져, 이따금 마주치는 뭉게구름을 북돋는 듯했다. 그곳 하늘에 떠 있는 뭉게구름은 특히나 하얗고 풍성했던 거 같다. 그 풍성함에도 그늘 하나 드리우지 않을 만큼 그곳은 청명하고 밝은 곳이기도 했다. 종종 마당 평상에 누워 하늘에 떠가는 구름을 보곤 했다. 그러면 쏴 하고 펼쳐지는 무한한 공간으로의 해방감이 기분을 상쾌하게 만들었다. 그 공간 속에서 하얗고 뭉게한 구름들은 텅 빈 하늘을 쓸쓸하지 않게 했다. 그래서 그 구름들이 바람에 떠밀려 가는 걸 썩 좋아하진 않았지만.

그곳의 밤은 어둡지 않은 것이었다. 아직 미세먼지와 온갖 매연에 대기가 오염되지 않았던 시절, 모래 알갱이처럼 밤하늘에 빈틈없이 흩뿌려진 수많은 반짝임의 물결이 기억난다. 우리 집 옥상은 아름답고도 무서운 곳이었다. 열대야가 닥쳐온 여름밤이면, 옥상에 돗자리를 펴놓고 그 수만 가지 빛깔의 파도를 마주한 채 누워있곤 했다. 아빠는 그 빛깔이 아름답노라 말했지만, 9살짜리 꼬마에겐 그 찬란하고도 헤아릴 수 없는 경이로움이 문득 무섭다고 느껴졌던 것이다. 저 아름다운 것이 나에게 떨어지기라도 한다면, 나는 어쩌면 좋을까.

인구 5만 명이 조금 넘는 그 시골 고장엔 항상 장이 열렸던 거 같다.

5일마다 열리는 장날이면 할머니 손을 잡고 온갖 비린내를 구수하게 풍기는 그 시장통을 놀이터처럼 누비곤 했다. 차가 다니는 도로서부터 시작해, 갖가지 채소나 과일이 나뉘어 담긴 바구니들을 바닥에 늘어놓고 목청껏 흥정을 거는 아주머니들을 지나 시장통으로 들어서면, 생선과 젓갈 비린내와 참깨나 들깨의 고소한 냄새와 전통 한과를 흉내 내는, 공장에서 찍어낸 싸구려 과자들의 단내가 풍경처럼 섞여왔다. 그곳엔 사투리가 가득했고, 모여든 사람들에게선 흙냄새가 났다.

집에서 먹을 찬거리와 간식으로 먹을 튀밥이나 생과자를 사고 나면 어김없이 어둑해지기 시작할 시간이었다. 그러면 노을 내리던 그곳 풍경이 어찌나 아쉽게 느껴지던지.


5월 4일, 그날은 온 읍내가 어수선했다. 그날은 학교 수업은 하지 않았다. 그저 아이들에게 만화영화를 보여준 뒤, 과자와 선물이 담긴 비닐봉지를 들려준 채 12시면 집에 보내줬다. 아이들은 각기 학교에서 받은 과자와 사탕과 초콜릿 등이 든 봉지를 들고 들뜬 채 뛰어다녔고, 평소엔 없던 온갖 진귀한 장난감을 가게 앞에 진열해 놓은 문방구들이 어린이날 노래를 흘려보내며 아이들을 홀려댔다.

학교에서 준 어린이날 비닐봉지에는, 읍내 어느 빵집에서 공수해 왔을 상투과자나 밤만주, 혹은 혀가 얼얼할 정도로 달콤한 찹쌀떡 등이 들어있었고, 크라운산도나 종합젤리, 땅콩카라멜, ABC초콜릿 등이 들러리로 들어있기도 했다. 사탕은 보통 여러 가지 맛의 대명사 종합캔디였다. 아이들을 실망케 했던 계피 맛 사탕의 원조인 종합캔디는 어린이날뿐 아니라 소풍이나 운동회 같은 연례행사엔 항상 빠지지 않고 등장했던 거 같다.

선물은 뭘 거 같은가? 정말이지 융통성이라곤 눈꿉만치도 없는 꽉 막힌 교육자 어르신들께서는, 이제 막 10대로 들어선 꿈나무들에게 줄 거라곤 연필이나 공책 같은 학용품 따위들 뿐이었다. 차라리 그 돈으로 과자나 한 봉지 더 사줄 것이지. 참, 옛날 사람들이란.

그해 어린이날은 화요일이었다. 토요일이나 월요일이었다면 일요일과 함께 이틀을 연달아 쉴 수 있었을 텐데. 조금 아쉽긴 하지만 그럼에도 어린이날은 어린이날인지라 아이들은 부모님과 함께 패밀리레스토랑에서 먹을 돈가스 생각에 은근 설렜을 터였다.

나도 그랬다. 매년 돌아오는 어린이날이면 가족들과 읍에서 돈가스를 먹었던 게 기억난다. 엄마는 내가 좋아하는 잡채와 갈비찜을 해주기도 했다. 조금 더 커서 삼겹살 맛을 알게 됐을 땐 마당에서 고기 구워 먹는 게 그렇게 좋았다. 이번 어린이날도 마찬가지다. 곧 내일이면 내가 좋아하는 삼겹살을 먹게 될 테지.

“여기 횡단보도는 아무래도 위험하단 말이야”

계획대로만 됐다면, 그 애를 따돌리고 집으로 가는 버스에서 느긋하게 학교에서 받은 과자봉지나 뒤적거릴 터였다. 하지만 그날도 어김없이 그 애에게 붙잡히고 만 것이다. 어쩌면 그 애에게 초능력 같은 게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래야만 그동안의 내 노력이 허무하게 무산됐던 걸 어쩔 수 없었다고 여길 수 있을 테니까. 어쩌면 그때쯤엔 어느 정도 체념하고 있던 걸지도 모른다.

“파란 불이야! 내 손 꽉 잡아”

그 애가 다급한 듯 잡은 내 손목을 세게 당겼다.

어이가 없어 대꾸도 안 했다. 아니, 네가 지금 내 손목 잡고 있잖아.

도로를 다 건넌 후 그 애가 건너편 골목을 가리켜 보였다.

“저쪽 모퉁이 돌아서 오는 차들이 잘 살피지도 않고 오더라, 너도 그때 봤지? 사람들 건너는데도 막 달려왔잖아”

그리곤 이쪽을 돌아보며 활짝 웃는 것이다.

“그래도 나랑 있을 땐 괜찮아, 넌 그냥 내 손 꽉 잡고 잘 따라오기만 하면 돼”

지난번에 비슷한 멘트를 버스에서 들은 거 같은데.

학교를 벗어나 터미널과 가까워지는 길에서는 그나마 나았다. 기집애한테 손목을 붙들려 다니는 덜떨어진 머심애를 길 가는 어른들이 비웃진 않았으니까. 아, 가끔 길에서 마주친 중고등학생 누나들이 쟤들 사귀나 봐라며 저들끼리 낄낄대는 건 몇 번 봤지만, 그래도 또래 머심애들에게 놀려지는 것 보단 나았다.

곧 터미널에 다다랐다.

“이제 좀 놓으면 안 되나, 다 왔다 아이가...”

모여든 사람들로 시끌시끌한 터미널 입구로 들어서면서, 그 애가 잠시 조용해진 틈을 놓치지 않고 내 심중을 전했다.

“저것 봐, 버스 출발까지 십 분 남았어, 딱 맞춰 도착했다, 그치?”

에라이... 들은 체도 안 하는 것이다.

사람들로 어수선한 대합실을 가로질렀다. 버스를 기다리는 사람들 대부분은 선반 위에 얹힌 TV를 보며 시간을 죽이고 있었고, 그중 몸이 무거운 노인이나 큰 짐을 들고 있는 사람은 두 줄 남짓한 기다란 나무의자에 앉아 있었다. 한쪽 구석에서 과자와 음료수, 여행용 휴지 등을 진열해 놓은 조그만 매점의 아주머니는 지루한 오후의 나른함을 반쯤 졸린 눈으로 버티고 계셨다.

매표소 앞에서 표를 끊으려 줄 서 있는 사람들 사이를 헤치고 승차장 쪽으로 향했다.

그때 문득 뒤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우리 쑤깨들 오데가노?”

날 수캐라는 별칭으로 부르는 사람은 할머니뿐이었다.

뒤돌았다. 그 애도 들은 건지 걸음을 멈추고 고갤 돌렸다.

면 소재지 미용실에서 한 뽀글뽀글 파마머리에 주름 자글한 얼굴로 든든한 고목같이 웃음 지은 할머니가 조금 불편한 허리를 뒷짐으로 지고 서 계셨다.


핫도그. 나무젓가락에 꽂은 소시지를 물반죽 하여 튀긴 후, 익으면 여러 번 더 물반죽 입혀 크기가 꽤 컸다. 12살짜리 꼬마들이 점심으로 먹기엔 충분한 양이었다.

난 설탕과 케첩을 다 뿌렸고, 그 애는 케첩만 뿌렸다. 설탕 뿌린 핫도그를 미심쩍어하던 그 애가 맛있게 먹는 내 모습을 보곤 저도 한입 맛보자고 하는 것이다. 좀 찝찝했지만 흔쾌히 허락했다. 내 걸 맛본 그 애가 케첩만 뿌려진 제 것을 후회스런 눈초리로 보던 게 기억난다. 조금 통쾌했었지.

그날 할머니는 장에 가시는 길이었다. 내일이 어린이날이니까 나에게 먹일 찬거리와 과자를 사러 나오신 거다. 할머니와 장에 가는 걸 좋아했다. 어떻게 보면 그곳은 시골에서 가장 번화한 곳이었고, 온갖 음식들과 공산품들과 사람들의 인심이 가득한 곳이었다. 그 풍족해 넘치는 생기가 좋았다. 그곳에서 풍기는 삶의 냄새가 좋았다. 어지럽지만 나름 질서 있던 그 번잡함도 좋았다.

그때 그 애는 내 손목을 잡고 있지 않았다. 핫도그 먹느라 그런 걸까, 아니면 시장 구경하느라 그런 걸까.

우린 할머니가 사주신 핫도그를 뜯으며 장으로 들어섰다. 할머니가 앞장서셨고, 나와 그 애는 나란히 뒤따랐다. 곧 왁자지껄한 그곳 풍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장에 들어설 때면 항상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던 게 불에 달궈지며 돌아가는 뻥튀기였다. 곧 뻥하는 소리와 함께 먹음직스럽게 부푼 쌀튀밥이 고소한 연기를 내뿜으며 쏟아져 나오면, 그 옆에서 물엿에 버무린 그것들을 납작하게 눌러 자를 것이었다. 시장 입구 쪽은 항상 사람들로 붐벼 길이 비좁게 느껴지기도 했다. 서로 엉겨 붙어 오가는 사람들을 헤치고 몇 걸음 더 들어가면 고소한 참기름 냄새와 찐 쌀 냄새가 섞여 풍겨오는 시장떡집이 뿌연 수증기를 내뿜으며 갓 나온 떡을 자르고 있다. 그 푸근하고도 맛깔스런 냄새는 지나가는 사람들을 꼭 한 번씩은 돌아보게 만들었다. 그 건너편엔 온갖 한과와 외래 과자를 함께 늘어놓은 전통과자집이 약과와 옥춘사탕, 다식 등은 네모난 스티로폼 접시에, 그리고 땅콩과자와 유과, 깨강정, 오란다 등은 박스째 진열해 놓은 것이다. 지금은 거의 볼 수 없지만, 당시 그곳 시장엔 김가루나 땅콩가루를 붙인 센베를 생과자로 구워주는 곳이 있었다. 고소하면서도 달근한 냄새를 풍기는 그곳은 장을 다 보고 나오면서 꼭 마지막으로 들르는 곳이었다.

그때쯤 핫도그를 다 먹고 빈 나무젓가락을 괜시리 흔들어댔다. 그 애는 아직 반쯤 남아있었는데, 그 조그만 입으로 먹어 보겠다며 열심히 뜯어대는 게 애처로워 보였다. 알아서 잘 먹겠지 뭐.

단내가 나는 그곳을 지나 안으로 들어갔다.

몇몇 건어물집에선 말린 생선과 오징어 등을 좌판에 늘어놨고, 또 몇몇 좌대에선 각종 젓갈과 김치를 봉지째 건네며 천 원짜리 몇 장을 쥐어 든 아주머니와 실랑이하는 것이다. 유리문을 위에서 밀어 여는 판매용 냉장고에 생닭을 포개놓은 닭집 옆에는 통닭 튀기는 고소한 냄새가 진동했다. 그 앞엔 닭이 얼른 튀겨지길 기다리는 또래 아이들과 가족으로 보이는 어른들이 항상 줄 서 있었던 거 같다.

시장에 갈 때면 할머니는 꼭 들러 인사 나누는 건어물집이 있었다. 그곳은 황태와 멸치, 마른오징어 등 각종 건어물뿐 아니라 곶감이나 육포, 말린 대추 같은 건조식품을 두루 취급하는 곳이었다. 할머니는 그곳 곶감이 질이 좋다며 제사 때는 항상 거기서 곶감을 사셨다. 가끔 할아버지가 새참으로 먹기 좋아하는 마른오징어나 육포를 사시기도 했다.

장판을 올린 평상에 앉아 조그만 TV를 켜놓고 계시던 건어물집 할머니는 다리가 조금 불편하셨지만 우리 할머니를 맞을 땐 꼭 일어나 손을 맞잡으셨다. 아마 할머니의 오랜 친구일 거라 짐작한다.

보통 땐 그곳에서 한동안 얘길 주고받다가 나올 터였지만, 그날은 가는 길이 바빠 인사만 나누고 나왔다. 가게에서 나와 발을 옮기려니 건어물집 할머니께서 그 불편한 다리로 따라 나오셔서는 나와 그 애에게 곶감을 한 개씩 쥐여주셨다. 곶감을 건네받을 때 닿았던 그 따듯한 손의 온기만큼, 참 달콤했던 곶감 맛이 기억난다.

조금 더 안으로 들어갔다. 바닥에 물이 흥건해지며 각종 해물 비린내가 나기 시작한다. 좌대에 올려진 갈치나 고등어 같은 것들, 그 외 이름 모를 각양각색의 생선들 위로 파리채가 휘둘러지며 날벌레들을 쫓았고, 제법 깔끔한 시장통 횟집에서는 물고기와 멍게, 가끔은 전복이나 해삼 같은 것들이 아주 싱싱하다는 듯 하늘색 수족관에서 연신 물을 넘치도록 흘려보내고 있었다. 힐끗 비치는 횟집 안쪽엔, 종종 이른 낮술로 얼굴이 벌게진 아저씨들 여럿이 뭐가 그리 즐거운지 껄껄대며 웃고 떠들거나, 가끔은 음정 박자 다 무시한 채 소리만 양껏 질러대는 의미 모를 노랫소리가 흘러나오기도 했다.

다른 쪽 골목으로 들어서면 시장 잡내가 사라지며 신사복과 숙녀복 집들이 손님을 맞았고, 양말과 내복을 늘어놓은 집들과 이불과 베게, 카펫 등을 차곡 쌓아놓은 집들이 늘어섰다. 그때쯤부터는 사람들의 발길이 비교적 뜸해 제법 한산했다. 그 골목을 조금 더 지나면, 돼지 부속과 순대를 파는 국밥집, 찌짐과 막걸리를 파는 전집, 삼겹살이 맛있는 식육식당 등이 감질나는 냄새를 풍겼고, 조금 더 들어가면 두루치기를 잘하는 그 백반집의 음식솜씨가 좋던 아주머니가 분주하게 움직이고 계셨다.

그 애는 잔뜩 상기된 채 여기저기 구경하느라 연신 눈을 굴려댔다. 쉴 새 없이 재잘대던 그 입이 조용할 정도니, 충격이 꽤 컸던 듯하다. 참, 그 나이 먹도록 시장에도 한 번 안 가보고 뭐 했는지 몰라.

할머니와 순대국밥집으로 들어갔다. 아직 식사를 하시지 않은 할머니는 돼지 내장이 고루 들어간 순대국밥을 드셨고, 나와 그 애는 납작하게 썰은 무가 듬뿍 들어간 소고기국밥을 먹었다.

꽤 젊어 보이는 이모가 이제 중년을 넘어섰을 아주머니를 도와 함께 장사하시던 그 순대국밥집은, 우리가 순대국 맛을 알게 됐을 한 3년쯤 뒤부터 우리의 성지가 될 것이다. 하지만 아직 순대국 맛을 모르던 그땐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었지.

얼마 뒤, 식사를 끝내신 할머니가 식당 전화를 빌리러 카운터로 가셨다. 값을 계산하면서 옆집에 그 애를 데리고 있다고 전화하실 모양이다.

그나저나 그 애는 국밥을 다 먹지 못할 듯했다. 내가 다 먹었을 때도 여전히 반도 못 먹은 것이다. 눈치를 보아하니 열심히 먹기는 먹는다만, 아무래도 깨작대는 게 힘겨워 보였다. 핫도그를 먹은 지 얼마 되지 않은 터라 배가 부른 게 분명했다.

“너, 다 못 먹겠으면... 내가 먹어줄까?”

그 애는 놀라며 흠칫 돌아보더니, 곧 눈썹이 일그러졌다.

“아니야 다 먹을 수 있어! 천천히 먹느라 그런 거야!”

그러고는 보란 듯 숟가락을 더 빨리 놀렸다.

버럭 할 건 뭐람. 일단 잠자코 있었다.

저쪽에선 할머니가 수화기를 들고 번호를 누르고 계셨다.

잠시 뒤 몇 숟갈 떠먹던 그 애가 숟가락을 내려놓더니 넌지시 말했다.

“내가 진짜 다 먹을 수 있는데, 네가 먹고 싶어 하는 것 같으니까, 너 주는 거야”

그러고는 손가락으로 그릇을 살짝 내 쪽으로 미는 것이다.

순간 그 애의 표정을 봤다. 조금은 울먹이는 듯, 눈썹 사이가 찌푸려지며 시선이 아래로 향했고, 아랫입술이 윗입술을 덮을 듯 올라가 앙다물어진 표정.

하! 평소엔 호방한 척 의젓한 척 굴더니, 결국은 국밥 한 그릇도 다 못 하는 꼬맹이였던 것이다. 웃음이 나려 했지만 일단 참았다. 자존심 상한 그 애가 도로 뺏어갈 수도 있으니.


식당을 나와 시장을 더 둘러봤다. 파와 당근 조금이랑 양념에 절일 얇게 저민 소고기, 그리고 마당에서 구워 먹을 돼지고기를 샀다. 혹시나 저렴하고 유용할 물건이 더 있을지 다른 쪽 골목도 돌면서 들어왔던 시장 입구로 향했다.

보통 장을 본 후 집에 갈 땐 아빠가 데리러 왔다. 시장에서 이것저것 사고 나면 짐이 많아져서 허리가 불편하신 할머니와 어린 내가 집까지 가져가기 힘들었다. 곧 가까운 공중전화에서 할머니가 아빠 삐삐로 전화하셨다. 아빠가 도착하기까지 보통 30분 정도 걸렸고, 그동안 우린 센베 굽는 과자집을 들렀다.

“우리 쑤깨는 쎈뻬 좋아하나?”

공중전화 박스에서 나오신 할머니가 그 애를 보며 물으셨다.

“네, 좋아해요! 근데 쎔뻬가 뭐예요?”

할머니가 끌끌 웃으셨다.

“과자라, 맛있어”

내가 끼어들어 설명했다. 센베 먹을 생각에 기분이 좋아진 것이다.

중년쯤 돼 보이는 아저씨가 노련한 손놀림으로 밀가루 반죽을 굽고 계시는 그곳은 시장 초입에 위치한 걸 감안하더라도 장사가 꽤 잘 됐다. 생각해 보면, 시장에 들어서자마자 그 고소하고 달콤한 냄새가 제일 먼저 맞이하니 누군들 그곳을 그냥 지나칠 수 있을까.

“오셨으예 어머이, 혁수 올라믄 좀 있어야 되지예?”

할머니가 다가가니 아저씨가 반갑게 인사하며 맞아주셨다.

아저씨와 우리 아빠가 아는 사이라는 건 짐작하고 있었지만, 중학교를 같이 나온 친구 사이라는 건 나중에 알게 됐다.

“오야, 하하, 요오 큰 걸로 하나 주보래”

“예 어머이, 요 들어와 좀 앉아 계시소, 금방 꾸어 드릴게예, 느그도 들어오이라”

가게 안에 마련된 기다란 의자에 앉았다.

노련한 아저씨의 기술은 한 손으로 우리에게 손짓하면서도, 다른 한 손만으로 과자를 구워내는 데 어렵지 않을 만큼 대단한 것이었다. 아저씨가 구운 건 공장에서 찍어낸 것들관 달랐다. 더 도톰하고 고급스런 맛이 났다.

이미 진열해 놓은 과자가 있었지만, 아저씬 우리에게 갓 구운 걸 주기 위해 방금 구워진 것들만 따로 빼놓기 시작하셨다. 어쩌면 아빠가 도착하기까지 시간이 걸리니 가게 안에서 편하게 기다리라는 배려였는지도 모른다.

“요새 모내기 철이라 마이 바쁘시지예?”

기다리는 동안 할머니가 심심하시지 않게 얘깃거릴 던지며 말꼬를 튼 것이었다.

“하이고, 말도 몬 해, 그슥께, 뒷 말에 논 스무 마지기 남은 그, 고마 팔자꼬 팔자꼬 캐도, 그글 뫈데 팔아 카믄스 갖고 있드만, 그그 모심는다꼬 아직도 저래 앉았으, 인자 보래, 할바시 내후년에 골뱅들어 뒤질란가도 몰라”

그러니 아저씨가 박장대소하시는 것이다.

“아이고 어머이요, 아버님 돌아가심 어짭니꺼”

“몰라 어짤란고!”

그러곤 할머니도 덩달아 끌끌 웃으셨다.

“야 애비도 인자 농사 안 지을라 카는데, 우짜 그라는지 몰라, 참 내”

그러니 문득 아저씨가 이쪽을 보셨다.

“니가 올해 몇 살이고?”

“열두 살이요”

쭈뼛거리며 대답했다.

“공부는 잘하나?”

“.....예”

자신감 없는 내 대답에 아저씨가 끌끌 웃으셨다.

“옆에 야는 누군교 어머이?”

“야가, 그 와, 옆집!”

할머니 대답을 들은 아저씨가 한껏 커진 눈으로 그 애를 돌아보셨다.

“뭐예? 야가 정미 딸래미라요? 하이구야, 마이 컸네!”

그러자 그 애가 일어나 꾸벅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아저씨, 한 달 전에 이사 왔어요”

끌끌 웃으시던 아저씨는 옆에 방금 구운 것들 중 다 식었을 법한 걸 몇 개 만져보시더니 나와 그 애에게 하나씩 들려주셨다.

“어머이도 하나 드셔 보시예”

할머니께도 하나 내미셨다.

할머닌 손사래 치시며,

“아이라, 저어, 묵고 왔으”

“이거 하나 묵는다고 어데 배가 부릅니꺼, 하나만 드셔 보시예”

아저씨가 재차 권하니 할머니가 못 이긴 척 받으며 끌끌 웃으셨다.

방금 구운 아저씨의 과자는 더 바삭하고 향이 몇 배는 더 좋았던 거 같다. 식었다곤 해도 아직 온기가 남아있었다.

아저씨의 노련한 손놀림은 제법 큰 상자를 금방 채울 만큼 빠르고 정교했다. 평소라면 작은 상자를 살 것이었지만, 그날은 왠지 큰 상자를 산 것이다. 한 달은 두고 먹을 만큼 많은 과자가 그 상자에 가득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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