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 아침은 할머니가 부엌 불을 켜시면서 시작된다.
새벽 5시, 마당을 살짝 덮은 처마 밑에 살림을 잡은 우리 집 제비가 짜르르대며 아침의 울음을 소리 내면, 큰방 바로 옆에 붙어있는 부엌에서 불이 켜진다. 그러면 미닫이문의 유리창을 통해 새어 들어온 불빛이 눈두덩이를 쏘아대곤 했다.
이내 지하수를 끌어올리는 모터가 돌아가며 윙윙 소리를 냈고, 수도꼭지에서 쏴아 하며 물 쏟아지는 소리가 난다. 덜그덕대는 쌀 씻는 소리에 이어 가스레인지 불 켜는 소리가 들린 후엔 항상 국이 보글보글 끓는 소리가 들려왔고, 멸치볶음이나 어묵볶음 같은 반찬 볶는 달그락거리는 소리가 나기 시작하면 간장과 참기름이 불에 달궈지는 감질나는 냄새가 풍겨왔다. 가끔 집에서 곰국을 끓일 때면 새벽부터 아랫방을 데우는 아궁이에 불이 붙었고, 메케한 회색 연기와 함께 장작 타는 냄새가 온 새벽에 들어차기도 했다.
그때쯤엔 할아버지가 일어나셨다. 할아버진 아침에 꼭 방 청소를 하고 마당까지 빗자루로 쓸어야 직성이 풀리는 성미셨다. 마당을 쓴 후엔 소와 염소들 여물과 해피 밥까지 챙기셨고, 종종 회관에 아침 방송을 하러 가시기도 했다. 가끔 논이나 밭에 물을 대거나 약을 치기로 한 날엔 아침부터 경운기를 꿍꿍 울리며 분주하게 움직이셨다.
보통 방 청소는 내 몫이었다. 청소는 별거 없다. 이불을 갠 후, 방문 밖에 걸어둔 빗자루로 방을 쓸고 걸레질은 대충 하면 됐다.
늦가을부터 시작해 겨울을 지나 이른 봄까진 큰방에서 할머니 할아버지 옆에서 잤다. 굳이 내 방에까지 보일러를 켤 필요가 없으니까. 그래서 학교 안 가는 일요일 아침엔 방 청소를 끝내면 더 자기 위해 곧장 내 방으로 갔다. 이미 잠이 다 깼을 법도 했지만, 침대에 누우면 잠은 다시 들었다.
우리 집은 휴일에 늦잠을 자더라도 특별히 할 일이 없는 한 굳이 깨우거나 하지 않는 분위기였다. 그래서 주중에 출근하느라 고생한 엄마와 아빠는 보통 일요일엔 늦게까지 주무셨다.
할머니는 밥 먹는 걸 아주 중요하게 여기셨다. 가끔 입맛이 없을 때 한 끼 정도 거르려 하면 엄마와 아빠는 대수롭지 않게 여겼지만 할머니는 기겁을 하셨다. 요즘엔 굶는 게 건강을 위한 대책 중 하나지만 옛날 할머니 세대 땐 끼니를 해결하는 게 곧 살기 위한 대책이었다고 한다. 가끔 삼촌이나 고모들이 집에 쉬러 내려오면 할아버진 늦게까지 잠을 자도록 두셨다. 하지만 할머니는 깨워서 꼭 밥은 먹이고 싶어 하셨다. 그래서 삼촌이나 고모가 집에 온 다음 날 아침이면 항상 두 분이 옥신각신하던 게 기억난다.
할머니의 성미를 잘 알고 있던 엄마와 아빠는 할머니가 차려 주신 아침을 먹고 다시 잠드는 데 적응됐을 터였다. 하지만 나는 손자로서의 특혜로, 일요일엔 아침을 조금 늦게 먹을 수 있었다. 8시에 방영하는 디즈니 만화영화를 보기 위해 잠자리에서 일어나면 곧 할머니가 아침을 차려 주셨다. 내가 일어났을 땐 보통 가족들이 식사를 끝낸 뒤였고, 할머니는 내가 일어나길 기다리셨다가 뒤늦게 밥상을 차려 주셨던 것이다.
아침을 먹은 후 TV를 보고 있으면 곧 그 애가 대문 밖 옆집에서부터 달려오는 소리가 들려왔다. 다른 건 몰라도 그 애가 오는 소리는 어떻게 알아듣는 건지 신기할 따름이다. 그 애는 시간도 잘 지켰다. 우연인지는 모르지만, 그 애가 우리 집에 도착하는 시간은 거진 항상 9시쯤이었다.
그 애가 우리 집에 놀러 오기 시작한 첫 번째 일요일. 아침을 먹지 않았다는 그 애 말에 할머니는 거의 기겁하기 직전이셨다.
“아이고 어머이, 요새 아아들은 원체 잘 묵고 커가, 밥 한 끼 안 무우도 돼예”
“아이가! 밥을 안 묵고 되나!”
헐레벌떡 밥상을 차리시는 할머니를 엄마가 말리려 해도 할머닌 막무가내셨다.
“할머니, 저 원래 아침 안 먹어요, 정말 안 먹어도 돼요”
“아이가! 야가 큰일 날라꼬!”
그 애의 완곡한 거절도 소용없었다.
이후 그 애는 일요일 아침마다 할머니한테 거짓말해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거의 강제로 아침을 먹게 됐으니까.
그 애는 매 토요일과 일요일이면 우리 집에서 점심을 먹었고 간식도 실컷 얻어먹고 돌아갔다. 할머니는 그 애가 잘 먹을 때 더 좋아하셨다. 쌀농사 짓는 우리 집은 쌀이 남아돌아, 냉장고 밑 칸엔 항상 많은 가래떡이 들어 있었고, 가끔은 팥가루를 잔뜩 뿌린 시루떡과 봄철엔 쑥을 넣은 쑥떡을 읍에서 한가득 해오곤 했다. 한 달에 한 번은 쌀로 만든 대롱과자와 튀밥을 내 몸보다도 큰 비닐봉지에 꽉꽉 채워오기도 했다. 이젠 내게 너무 지겨웠던 그런 것들이 그 애 입맛엔 너무 잘 맞았던 것이다. 특히 그 애는 쌀튀밥을 물엿에 굳힌 튀밥강정을 참 좋아했는데, 그 때문에 할머니가 튀밥강정은 더 많이 해오시기도 했다.
그날도 그 애는 밥을 아주 많이 먹고 왔노라며 할머니를 안심시킨 후, 내 방에서 튀밥강정과 참외를 먹으며 천녀유혼을 다시 보려 되감기 했다.
이번에 그 애가 갖고 온 비디오는 강시가 나오는 강시선생과 헬로강시였다. 나름 웃긴 장면도 있었고 멋진 도사가 나와 강시들을 물리치는 게, 저번에 가져온 것 보다는 덜 무섭고 흥미로운 내용이었다. 제발 정상적인 거 좀 보자고 그 애에게 애원하자 갖고 온 것들이다.
그 애가 갖고 있는 비디오는 하나같이 우악스럽고 기괴했으며 충격적이었다. 저번 주에 봤던 건 에이리언과 여곡성이었고, 그 전주는 프레데터와 사탄의 인형이었다. 특히 무서웠던 건 여곡성에서 귀신이 나오는 장면이었는데, 거기서는 정말이지 더는 견딜 수 없어 문을 박차고 뛰쳐나갔다. 그러니 그 애도 당황하여 날 진정시키려 쫓아왔는데, 비디오를 안 끄고 오는 바람에 열린 문으로 귀신의 괴성이 들려와 자지러지게 비명을 지르고 말았다.
당최가 그 애는 왜 저런 걸 좋아하는지. 어떻게 그런 무섭고 해괴한 걸 아무렇지 않게 볼 수 있는 건지. 도대체 그 애 머릿속엔 뭐가 들었는 걸까.
오전 내 비디오를 보고 있으니 곧 점심시간이 됐다.
그날은 집에 아무도 없었다. 할머니는 옆 마을에 가셨고 다른 가족들은 읍에 나간 참이었다.
“라면 끓여 먹을까?”
할머니가 아침에 끓여놓은 국이 있었지만, 왠지 밥 챙겨 먹기가 귀찮았다. 그리고 라면이 영양가 없다며 간섭하는 어른이 아무도 없을 때가 아니면 먹을 수 있는 날이 거의 없기도 했다.
저가 가져온 비디오테이프를 꽂아 넣던 그 애가 뒤돌아봤다.
“너 라면 끓일 줄 알아?”
“어”
순간 그 애 눈빛이 흔들리는 듯했다. 눈이 약간 커진 거도 같았다.
“아, 음... 그래, 나도 끓일 수 있는데, 오늘은 네가 한 번 끓여봐”
그 애는 굳이 부엌까지 따라와 라면 끓이는 걸 구경하며 시끄럽게 굴었다.
“넌 언제부터 혼자서 라면 끓였어? 가스렌지 불 켤 줄 알아? 뭐, 나도 라면 되게 잘 끓여, 나도 혼자서 많이 끓여 먹어 봤어, 다음번엔 내가 끓여 줄게”
라면 하나 끓이는 걸로 뭘 이렇게 호들갑인지. 그냥 방에 조용히 있으면 될 걸 굳이 따라와서 재잘대는 게 영 성가셨다.
“방에 있으면 끓여서 가져갈게”
그러니 그 애가 손사래 치며,
“아니야, 너 혼자 있으면 혹시 사고 날지 모르니까, 어른이 옆에 있어야지”
순간 잘못 들었나 했다. 지금 자길 어른이라고 한 건가. 어이가 없어 말도 안 나왔다. 그럼 난 뭔데?
기분이 언짢아져 괜히 못 들은 척하며 냄비에 물을 올렸다.
라면을 가지러 부엌문을 열고 고방으로 향했다. 그 애는 거기까지도 따라붙으며 귀찮게 기웃거렸다. 곧 제 집에서 낮잠 자던 해피가 마당을 가로질러 다가와 꼬리를 흔들며 나와 그 애 발목을 핥았다.
라면박스에서 라면 3개를 꺼냈을 때였다. 박스에 들어갔다 나온 내 손에 라면 3개가 들려있는 걸 본 그 애가,
“응? 왜 세 개야?”
왜 3개냐니. 저는 라면 1개로 충분할 거고, 나는 2개는 먹어야 양이 찬다. 혹시 적다고 생각한 걸까.
“나 두 개 먹을 건데, 니도 두 개 먹을 끼가?”
순간 그 애 눈빛이 흔들리는 듯하며 잠시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그리곤 이윽고,
“어, 으응, 당연하지이! 나도 두 개 먹을 수 있어!”
눈썹이 구겨지며 조금은 떨리는 목소리로 따지듯 하는 것이다. 갑자기 버럭 쏴대는 게 어이없었지만, 어쨌든 박스에서 라면 1개를 더 꺼냈다.
물이 끓어올라 면을 넣고 스프를 뿌렸다. 딱딱한 면이 풀어지며 빨간 국물과 함께 꽤 큰 냄비를 가득 채워 보글보글 휘몰아쳤다. 면이 거의 익을 때쯤 계란 2개를 깨 넣었다. 그 애도 계란은 반숙이 좋다고 했다.
라면 4개는 꽤 많은 양이었다. 그 양이 꼬마 둘이 먹겠다고 하기엔 과하게 많아 보였다. 사실 12살짜리가 라면 2개 먹는 것도 흔치는 않을 것이다. 그 애도 분명 잘 알고 있을 터였다.
양이 많은 터라 냄비가 무거워서 굳이 내 방까지 가져가지 않고 큰방에 상을 폈다. 상 가운데 냄비를 놓고 각자 그릇에 면을 덜어 먹었다. 국자를 가져와 국물을 떴다. 면과 국물을 뜰 때마다 뜨거운 김이 후욱 새어 올랐다. 김치는 적당히 익은 열무김치. 오랜만에 먹는 라면은 혀에 착착 감기며 몇 번 씹히지도 않고 금세 목으로 넘어갔다.
라면 먹을 때 그 애는 비교적 조용했다. 연신 면을 빨아들이는 후루룩하는 소리만 내댔다. 기집애가 참 게걸스럽게도 잘 먹었다. 여기저기 국물을 튀기기도 하고, 젓가락으로 면을 듬뿍 집어 들어 입안에 가득 밀어 넣기도 했다.
그 기세에도 불구하고 결국 그 애는 라면 2개 양을 먹진 못했다. 나는 알 수 있다. 나에게 라면 2개는 딱 배부른 정도의 양이다. 그런데 내가 그 정도를 넘어섰을 때, 그 애는 젓가락을 힘겹게 놀리며 억지로 꾸역대는 것이다. 어쩔 수 없이 그 애가 못 먹은 양만큼 내가 먹어야 했다.
하, 기집애, 왜 그런 이상한 자존심을 부린 건지. 결국 그날 우린 둘 다 배탈이 나 앓아눕고 말았다. 둘이서 라면 4개를 끓여 먹었노라 말하니 이번엔 엄마가 기겁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