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에는 참새도 불에 꾸어 먹었디야”
현우가 창문 너머 전깃줄에 앉아 있는 참새 중 하나를 겨눴다.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 저 쬐깐한 게 무울 데가 어데 있노”
그러니 녀석이 총을 겨누다 말고 이쪽을 돌아봤다.
“진짜라, 옛날에는 참새가 하도 많아갖고, 한꺼번에 엄청 많이 잡아가 묵웄디야”
“ㅋㅋㅋ 야 그라믄, 참새 꾸어가 젓가락으로 뽈가묵나? 아니믄 갈아가 숟가락으로 떠먹나? 미꾸라지보다 무울 거 없긌구만”
그러니 이번엔 꽤 심각한 표정으로 버럭 하는 것이다.
“아, 진짜라고! 우리 아빠가 그랬다니깐”
한껏 진지한 표정을 하고 제 아버지를 들먹이면 딱히 할 말은 없다. 그래도 놈이 여전히 가소롭게 느껴져 자꾸 웃음이 나려 했다.
“아 알았으 알았으, 옛날엔 그랬단 말이제 ㅋㅋ”
“이씨... 내가 한 마리 잡아서 엄마한테 꾸어 달라 한다, 니 딱 보자”
그러곤 비장한 표정으로 참새를 한참이나 겨눴다. 내가 아직도 못 믿는 눈치니, 녀석이 더 약이 오른 것이다.
우리가 서 있는 창문에서 전깃줄까지 거리는 50m가 조금 안 돼 보였다.
“그걸로 잡을 수 있나?”
놈이 갖고 있던 BB탄 권총은 당시 만 원이나 하는, 12살짜리 꼬마들에겐 꽤 비싼 물건이었지만 그래도 50m나 되는 거리의 참새를 잡을 만큼 대단한 건 아니었다. 역시나 하얀 BB탄 총알이 날아가도 참새들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아니 애초에 총알이 거기까지 날아간다는 것부터가 말이 안 됐다.
“에이씨...”
녀석이 분한 듯 괜히 애꿎은 전깃줄의 참새들을 째리는 것이다.
순간 웃음이 터지려 했지만, 거기서 웃었다간 놈에게 쫓겨날지도 몰랐다. 그래도 새어 나는 웃음을 참기 어려워 자꾸 입가가 씰룩였다.
“푸웁! ㅋㅋㅋ”
결국 터졌다.
약 오른 놈이 한껏 구겨진 표정으로 돌아봤다.
“웃지 마 임마”
“야, 그래서 언제 잡을 낀데, 잡으믄 좀 알랴죠, 같이 묵자 ㅋㅋㅋ”
터진 김에 그냥 냅다 웃어 제꼈다.
그러니 더욱 약 오른 놈이 내 어깻죽지를 밀어붙였다.
“아, 웃지 말라고!”
내친김에 놈에게 손가락질까지 해 보였다.
몹시 분개한 표정으로 내 행태를 지켜보던 놈이 이윽고 한마디 했다.
“느그 마누라한테 가! 임마!”
그날은 현우 어머니께 둘 다 혼났다. 놈과 소리 지르며 싸우고 있으니 어머니께서 방으로 들이닥치신 것이다. 만나면 꼭 한 번은 싸워대니, 자꾸 싸우면 둘이 못 놀게 한다고 으름장을 놓으셨다. 그러곤 억지로 악수시키셨는데, 그건 또 그거대로 놈이 못마땅해 화해한 척 조금 있다가 나와버렸다. 치사한 놈. 거기서 그 애 얘길 꺼내다니, 정말이지 치졸하고 졸렬한 놈이다. 사실은 참새도 구이로 먹었다는 걸 나중에 알게 됐을 땐 괜히 자존심 상해 모른 척했다.
중학교 수업이 마칠 때가 되니, 터미널로 가는 거리엔 교복 입은 형 누나들이 제법 보이기 시작했다. 보통 서너 명씩 몰려다니며 길거리 분식 마차에서 떡볶이나 튀김꼬치를 사 먹거나, 문방구 앞에 있는 오락기나 펀치 기기에서 시시덕거리기도 했다.
우리 고장은 꽤 좁은 곳이었다. 사거리 2개가 나란히 있었는데 한 곳은 동쪽 사거리, 다른 한 곳은 서쪽 사거리라고 불렀다. 동쪽 사거리에서 서쪽 사거리로 가는 길까지가 땅값이 가장 비싼, 그러니까 상가와 사람이 제일 많은 번화한 곳이었다. 그래봤자 500m나 됐을까. 2차선 도로가 서로 교차하며 사거릴 만든 것뿐이라 도시의 그것과 비교하기엔 초라하기 그지없었다. 그래도 그 시절 그곳에서 나고 자란 나로선 그 거리가 엄청 커 보이긴 했다.
현우 집이 있는 골목에서 나와 동쪽 사거리에 다다랐을 때였다. 문득 한 무리 교복 입은 누나들이 반대편에서 걸어왔다. 짧게 달라붙은 교복 치마에 하나같이 허옇게 화장했고 입술은 빨겠다. 깻잎 머리에 뭘 바른 건지 번쩍 윤기가 흘렀고, 어떤 누나는 반짝이 가루를 뿌린 모양이었다.
“야, 쟤 봐, 쟈아 가 아이가? 걔 남자친구”
얼굴을 알아볼 수 있는 거리쯤 가까워지자 누나 한 명이 이쪽으로 손가락질하며 소곤대는 것이다.
“아 맞네, 긴가민가했네, 오늘은 와 혼자고?”
옆에 있던 다른 누나들이 맞장구쳤다.
그 애와 같이 걸어갈 때 몇 번 마주친 적 있었나 보다. 어쨌든, 사람 앞에 두고 뭐라는 건지, 내가 꼬마라 들리든 말든 신경조차 쓰지 않는 거 같았다.
반대편으로 고갤 돌려 못 들은 척 지나쳤다.
터미널에 가까워지자 그 애 생각이 났다. 지금쯤 집에 도착해 있겠지. 뭐 하고 있을까. 이번 주에도 놀러 오지 않을 테지. 나야 뭐 상관없지만. 그래도 그 어깨는 좀 펴졌으면 좋겠다, 예전처럼.
터미널은 교복 입은 중학생 형 누나들로 시끄러웠다. 그렇게 많지는 않았지만, 저들끼리 왁자지껄 떠드는 게 너무 정신 사나웠다. 아마도 그 시간 터미널엔 어른도 거의 없던 터라 더 그런 거 같았다.
시끄러운 대합실을 나와 4번 승차장으로 향할 때였다. 멀리, 버스 앞 벤치에 웬 익숙한 모습이 앉아 있는 것이다. 한 걸음 한 걸음 가까이 다가갈수록 누군지 확연히 보였다. 벤치에 앉을 땐 항상 버릇처럼 가방을 앞으로 끌어안고 있는.
왜 아직 저기 있는 거지? 영미와 지혜랑 놀다 온 건가. 그런데 앞에 버스가 있는데 왜 타진 않고.
문득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설마 날 기다린 걸까. 아니 그렇진 않을 거다. 그럴 거면 학교 마칠 때 우리 반 앞에서 기다렸겠지.
그 애가 다가가는 날 보더니 여느 때처럼 살짝 웃어 보였다.
“지금 가니?”
이상했다. 입은 웃고 있는데, 왜 눈은 안 그래 보이는 걸까. 웃음 짓는 그 애 눈빛에서 문득 이유 모를 초조함이 느껴졌다.
그 애 옆에 앉았다.
한동안 아무 말 없이 우린 그냥 서로의 곁에 있었다. 타야 할 버스를 앞에 두고 왠지 서로가 침묵을 깨 주길 바라듯 그저 곁에 있었다.
몇 분이나 지났을까. 이내 그 애가 침묵을 깨며 말했다.
“나 지혜랑 영미랑 놀다가, 방금 왔어...”
그 애를 슬쩍 돌아봤다. 잠시 그 애의 옆 모습을 보다가 이내 고갤 숙였다.
안 물어봤는데, 왜 자꾸 어색하게 구는지.
문득 불편한 감정이 다시금 올라오려 했다. 왜 갑자기 너는 변한 거니? 왜 자꾸 불쌍해 보이는 거야. 차라리 네 마음대로 날 휘두르던 그때가 훨씬 편했던 거 같아.
“안 타나?”
감정이 더 올라와 이상해지기 전에 끊어내려 꺼낸 말이었다.
그러니 날 돌아본 그 애가 여전히 어색한 눈빛으로,
“으응, 지금 타려고, 타자!”
오후 4시를 향하는 시간, 밭에 물을 뿌리고 돌아가는 경운기가 우리 옆을 지나쳤다. 마을에서 성실하기로 유명한 정 씨 아저씬 우리를 돌아보며 슬며시 웃어 보이셨고, 아저씨와 눈이 마주치자 우린 꾸벅 고개 숙였다. 경운기 소음 때문에 굳이 들리지도 않을 안녕하세요 소린 내지 않았다.
그날 그 길엔 일하시는 마을 어른들이 꽤 보였다. 보통 논에 물을 대거나 밭에 비료를 뿌리거나 하는 일들이었다. 쿰쿰하고도 찝찔한 냄새를 풍기는 퇴비를 방금 뿌린 건지, 거뭇한 흙이 밭에 널브러져 있었고 거기선 시골에서 키우는 튼실한 가축들의 체취가 풍겼다.
마을이 가까워지는 길엔 돌담 위로 울타리를 이룬 개나리가 봄의 기운을 머금은 채 만발해 있었다. 30m 남짓 되는 그 개나리 울타리를 지날 때면, 샛노란 그 풍경이 투박한 마을 정경과 제법 잘 어울려 괜시리 설레곤 했다.
문득 저어 멀리 뒷동산에 있는 우리 고추밭에서 허리 숙여 싹을 돌보시는 할머니가 보였다. 허리도 불편하신데, 아빠가 이제 농사짓지 말자고 해도 할머니 할아버지는 50년 넘게 해오신 그 일을 선뜻 놓지 못하셨다.
그 애를 힐끔 쳐다봤다.
“나 할머니 일 도와드리러 가봐야 될 거 같애”
그 애가 이쪽을 돌아보며 고갤 끄덕였다.
“그래”
그리곤 뛰어가려는데, 왠지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괜히 고개 숙여 발끝을 내려다봤다. 양 발끝이 번갈아 가며 앞뒤로 다투고 있었다. 오른발이 땅을 내디디면 그에 질세라 곧바로 왼발이 앞장섰다. 그러면 다시 오른발도 서둘러 나아갔다. 한동안 그 모습을 보며 천천히 걸었다.
가야 된다던 애가 가진 않고 옆에서 걷고 있으니, 곧 그 애가 의아한 눈빛으로 돌아봤다.
나도 그 애를 돌아봤다.
날 똑바로 바라보는 그 애 뒤로 문득, 흐드러진 개나리의 샛노란 배경이 어렴풋이 비춰왔다.
“토요일에... 놀러 올래?”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겨우 꺼낸 말에, 한동안 이쪽을 멍한 듯 쳐다보던 그 애 눈이 문뜩 커졌다. 그리곤 고갤 끄덕이며,
“응... 그래”
대답을 들으니 괜히 어색한 기분이 들었다.
다시 고갤 숙이다가, 이내 할머니 쪽으로 뛰었다.
달리니 멈춰있던 바람이 내게 불어왔다. 바람엔 아늑한 시골 냄새가 있었다. 싱그런 풀냄새와 구수한 흙냄새, 가끔은 찝찔한 퇴비 냄새가 뒤섞여 풍부한 냄새를 만들었다. 그 애를 뒤로하고 달릴 때 맡았던, 그날 그 생기로운 냄새가 기억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