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애가 나를 탐탁지 않게 여기고 있다는 건 진작에 알고 있었다.
살을 할퀴는 메마른 추위에 마음마저 얼어붙었던, 유난히도 고달팠던 그해 겨울. 짧은 방황 후에 도착한 그곳은 따듯한 봄바람이 하늘하늘 이는 어느 포근한 농촌이었다.
서울만큼 편리하고 찬란한 문명의 혜택을 누릴 수 없다는 걸 어린 나이에도 알 수 있을 만큼 그곳은 작고 외지고 낙후된 곳이었지만 그래도 나는 그곳이 썩 마음에 들었다. 그곳은 한적한 듯하면서도 어딘지 모르게 늘 소란스러웠고, 이따금 깨끗한 바람에 실려 오는 사람들의 푸근한 정은 그들이 구사하는 사투리만큼이나 구수하고 정겨웠다. 그곳에 사는 사람들은 얼굴이 거무잡잡했고 손에서는 들기름 냄새가 났다.
빌딩 숲 사이로 빼꼼히만 비추던 서울의 하늘과는 다르게, 그곳에서는 저어 멀리 지평선 끝까지도 펼쳐진 맑고 푸른 하늘을 언제고 올려다볼 수 있었다. 꽤 널리 퍼져있던 뭉게구름마저 그 맑음에 물들어 그늘 하나 드리우지 않을 만큼 그곳 하늘은 밝고 청명했다. 그토록 예쁜 하늘을 본 건 서울에서도 몇 번 없던 일이었다. 마루에 앉아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노라면 이따금 푸르른 그 속으로 훌쩍 날아가 버리는 상상을 하곤 했다. 하늘 끝까지 올라 상쾌한 바람을 헤치고 풍성한 구름들 사이를 오가다 보면, 어쩌면 그리운 이가 있는 곳까지도 가 닿을 수 있지 않을까.
그 애를 처음 본 그날, 마침 봄이었다. 따스한 날에야 비로소 찾아온다는 시골집 제비가 처마 밑 그늘과 포근한 햇볕 사이를 부지런히 오가던 그날, 마루에 앉아 하염없이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노라니 문득 대문 밖으로부터 어느 낯선 아이 소리를 들은 것이다. 그날 그곳에서 그 애를 만난 건, 적어도 나는 어떤 운명 같은 거라고 느꼈다. 그 애를 본 순간 생각했다. 도무지 이유는 모르겠지만, 일단 저 애를 잡아야 한다고.
“안녕, 네가 옆집 애구나? 만나서 반가워”
시골에 내려온 후로 방에서 앓고만 있는 엄마는 내게 어떤 언질도 없었지만, 할머니가 옆집에 동갑내기 친구가 산다고 말씀하신 적이 있었다. 온종일 하늘만 올려다보고 있는 내가 안쓰러우셨는지 친구라도 사귀라고 그러셨던 것이다.
제 앞으로 다가서는 날 놀란 듯 돌아본 그 애는 맞잡은 손가락들을 꼼지락거리며 우물쭈물했다.
“나, 나는 이 집에 살아”
너는 누구냐 거나, 어디서 왔냐 거나, 저 또한 반갑다는 등의 흔한 반응을 예상했지만 엉뚱하게도 그 애는 자기 집을 가리켰다. 그리고 오후 3시가 넘은 시간에 웬 밥을 먹으러 가야 된다는 것이다.
“아까 점심 안 먹었어? 아니면 저녁을 일찍 먹는 거야?”
그러니 그 애는 왠지 당황해하며 안절부절못했다.
설마 날 피하려 어리숙한 변명을 댄 것일까. 조금 서운한 마음이 들었다.
슬며시 숟가락을 놓았다.
“와? 더 안 묵고?”
할머니가 걱정스런 얼굴로 물었다.
살짝 쓰게 웃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두세 숟갈을 겨우 먹었을까. 벌써 속이 거북해져 매스껍기 시작했다.
“그래, 가가 쉬어라, 내일은 할비랑 같이 핵교 가보구로”
할아버지를 보며 고개를 끄덕인 후 일어났다.
“쫌만 더 무우라, 그라지 말고 한 숟갈만 더 무우봐”
“아이고 놔 또라, 그래도 어제보담 한 숟갈 더 뜨묵읐네”
잘 먹었다는 인사를 드리기도 민망해 그냥 슬쩍 방을 나왔다.
방 안에서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작게 투닥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엄마가 있는 방을 지났다. 여전히 불이 꺼져있었고 숨소리도 들리지 않을 만큼 조용했다.
내 방에 들어오자마자 벽을 보고 털썩 누웠다. 문득 엄마가 이해됐다. 불을 켤 수 있었지만 그랬다간 형광등의 환함이 내 신경을 긁어댈 것 같은 기분이었다. 베개도 있었지만 그냥 팔을 옆으로 포개 머리를 받쳤다. 보일러로 데워진 방바닥의 땃땃함이 몸을 침범해 들어와 찔렀다. 도저히 해결될 수 없는 고민과 후회는 정신을 갉아먹어 간다. 그러니 엄마도 저렇게 앓고만 있는 거겠지.
불 꺼진 방안에서 벽만 쳐다보고 있으니 점차 어둠에 익숙해져 어렴풋이 주변 사물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제일 먼저 벽지의 기하학적 무늬들이 스멀스멀 드러났다. 동그라미와 세모 네모가 꽃도 별도 아닌 기이한 모양을 이루고 있었다. 그다음, 내 물건들이 들어있는 캐리어와 책가방이 벽에 기대어진 채 뾰루퉁하니 서 있고, 그 옆으로 잘 개어진 이불과 베개가 푹신할 것 같지 않냐며 비꼬고 있다.
돌아누웠다.
눈을 감았다. 이대로 아무 생각 없이 잠들어버려 내일 아침에 눈 뜨면 좋겠다. 날이 밝으면 다시 하늘이라도 볼 수 있겠지.
“정미야! 정미야아!”
별안간 밖에서 웬 엄마를 부르는 소리에 산통이 깨졌다. 그저께 이곳에 도착했을 때 엄마와 나를 맞아주셨던 옆집 아저씨 목소리였다.
마당으로 들어선 아저씨를 할머니가 나가 맞이했다.
“으여, 혁수가?”
“예 어머이, 안녕하시예, 정미는요?”
“방에... 방에 있다...”
감정이 북받쳤는지 할머니의 말끝이 흐려졌다.
“정미야! 이리 나와봐라, 니 언제까지 그라고 있을 끼고!”
그리곤 대답을 기다리는 듯 한동안 정적이 흘렀다.
여전히 반응이 없자 답답하셨는지,
“정미야!”
재차 엄마를 불렀다.
곧 엄마가 있는 옆방 문이 스르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오빠, 왔나...”
방문을 연 엄마는 입을 떼는 것마저도 힘에 겨운 듯 겨우 소리 내 대답하고 있었다.
“정미야, 인자 정신 좀 챙기라, 언제까지 밥도 안 묵고.........................”
방 안에 있느라 잘 들리진 않았지만, 엄마를 나무라는 소리가 한동안 이어졌다. 그 옆에서 할머니가 작게 훌쩍이는 소리도 이따금 들려왔다.
방문을 슬쩍 열어 틈새로 빼꼼히 내다봤다.
몰래 엿보려 그랬던 거지만 문득 아저씨와 눈이 마주치고 말았다.
“학교엔 내가 말해 놓을 테끼네, 내일 아버지 보내지 말고 니가 쟈아 학교 델꼬 가라이! 안 그람 가만 안 둘 끼다이!”
아저씨가 날 가리키자, 흐르는 눈물을 닦으신 할머니도 이쪽을 돌아봤다.
아저씨는 그렇게 마지막으로 으르곤 돌아가셨다.
엄마는 고개 숙인 채 한동안 마루에 서 있다 곧 다시 방 안으로 들어갔다.
다음날 엄마와 같이 학교에 다녀올 수 있었다.
이틀 뒤부터 그곳 학교에 다니기 시작했다. 할머니의 부탁이었는지 아저씨가 그 애를 내 곁에 붙여주어 같이 등교하게 됐다. 한동안 아저씨와 아주머니는 우리가 등교하는 걸 배웅하셨다.
“우리 같은 학교 다니니까 좋다 그치? 히히”
“어”
“근데 너는 여기서 쭉 살았어? 여기서 태어났어?”
“어”
“이 동네엔 우리 둘뿐이야? 다른 친구는 없어?”
“친구는 없고, 형들하고 누...”
“그럼 너 되게 심심했겠다, 이제 내가 있으니깐 우리 둘이서 놀자! 히히, 옆집에 친구 있으니까 되게 좋다 그치?”
“어, 어...”
나는 활달하고 외향적이긴 하지만 사실 그렇게 말이 많은 성격은 아니다. 그런데 그 애는 보기보다 낯을 많이 가렸고 별안간 닥쳐온 낯선 친구를 어색해했다. 그 어색함이 내게도 옮아와서일까. 나는 그 애의 심드렁하고 서먹한 반응을 견딜 수 없었고, 그 애 앞에서는 왠지 실없는 얘기를 자꾸 하게 됐다.
“나 여기 좋아, 이제 여기서 계속 살 거야, 그래서 어제는 학교도 가보고 우리 동네로 오는 버스도 타봤어, 버스 타는 거 생각보다 어렵지 않더라, 근데 동네에서 학교로 가는 건 첨이야, 히히”
그 애 앞에서는 모든 게 서툴렀고 늘 조마조마했다.
누구나 날 좋아했고 친구를 쉽게 사귀었던 나는 관계를 맺는 것을 가볍게 생각했다. 그래서, 너무 급히 다가가면 달아나는 이도 있다는 걸 그땐 몰랐던 것이다. 하지만 아직 미숙하고 어렸던 난, 그 애가 왜 날 불편해하고 언짢게 여기는지 이유는 모른 채 그저 마음만 조급해했었지. 그런데 그 애는 알까. 그래도 나는 네 마음에 들려고 부단히도 노력했었단 사실을. 그 모든 게 결국 소용없는 짓이었다는 걸 나중에야 알게 됐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