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중 그 애 22화

22. 복수하는 법

by 차태주

그곳 아이들은 시골 애들이라 그런지 참 순박했고 서울에서 온 날 신기해하면서도 동경하는 눈치였다.





놈의 볼때기를 주먹으로 후려쳤다.

힘이 가해진 방향으로 획 돌아 바닥에 엎어지는 걸 보니 기대한 만큼 세게 때린 것 같았다. 별안간 가해진 충격으로 얼이 빠졌는지 놈이 잔뜩 놀란 얼굴로 이쪽을 돌아봤다. 엎어진 자세 그대로 올려다보는 모양새가 언뜻 처량해 보이기도 했다. 기습 공격이었다. 전학 온 이후 내내 웃으며 상냥하게만 굴었던 내가 그럴 줄은 몰랐겠지. 반 애들도 많이 놀란 듯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놈이 잠시 어버버 거리며 상황을 살피는 듯하더니 이내 일어나 욕설을 퍼부었다.

“씨발 뭐고? 니 미칬나! 죽고 싶아서 그라나!”

한 차례 더 주먹을 휘둘렀다.

얼굴을 향해 아무렇게나 휘두른 주먹이 이번엔 놈의 한쪽 눈두덩이를 때렸다.

그러니 얻어맞은 제 눈을 퍼뜩 양손으로 가린 놈이 뒤로 자빠지며 엉덩방아를 찧었다. 그리곤 분한 건지 아니면 아파서 그런 건지 이윽고 눈물을 찔끔 쏟으며 작게 흐느끼기 시작했다.

어휴, 같잖은 놈. 고작 여자애 주먹 두 방에 질질 짤 소갈머리로 여태껏 그래왔단 걸 생각하니 어처구니가 없다.

“내가 하지 말라고 했지?”

윽박지르며 놈에게 한 걸음 다가갔다.

“아, 아아! 잠깐! 잠깐!”

놈은 질질 짜면서도 기겁하며 손바닥을 내게 뻗었다. 움찔움찔 떠는 모습이 참 하찮아 보였다.

김호정. 정말이지 저질스럽고 비열한 놈이다. 가만히 보니 놈은, 저보다 작고 약한 애들을 무시하고 모욕하는 것을 즐기는가 하면, 가끔은 이유 없이 때리기도 했다. 아마 열등감 때문이겠지. 눈알만 튀어나온 북어같이 바짝 말라서는 키만 멀대같이 큰 그놈은 머리도 아둔한 데다 혀가 짧은지 말도 어눌하게 했다.

지혜는 좋은 애다. 배려심 많고 친절한 애다. 전학 온 첫날부터 뒷자리에 혼자 앉게 된 나를 살갑게 대해주었다. 뭐든 물으면 성심껏 알려주었고 숙제며 준비물이며 자꾸 챙겨주려 했다. 내겐 딱히 필요는 없었지만, 그냥 그 선의가 고마웠다. 지혜는 그림도 잘 그렸다. 쉬는 시간이면 제 그림 연습장을 펼쳐 그림을 그리며 시간을 보냈다. 공주나 곰돌이 같은 아기자기하고 귀여운 캐릭터들을 조잡하게 그렸지만, 그림을 배운 적 없는 초등학생 어린애치고는 제법 잘 그렸다. 한번은 나를 그렸다며 부끄러운 듯 연습장을 내밀었는데, 솔직히 나와는 전혀 닮지 않은 화려한 액세서리와 드레스로 치장한 예쁘기만 한 캐릭터라 조금 웃음이 났다. 어쨌든 나는 지혜의 그 선의가 고마웠다.

그런 애가 고작 조금 통통하다는 이유로 저 비열한 놈에게 못생긴 돼지 새끼라고 조롱받아선 안 된다. 지혜는 꽤나 익숙해진 모양인지 놈이 말끝마다 돼지, 돼지 새끼, 돼지 냄새, 돼지 년, 꿀꿀이 등으로 부르며 모욕하는 데도 아무런 대응도 하지 않았다. 놈이 다가오면 한 번 째려보고는 뭐라고 놀리든 무시한 채 그저 연습장에 그림 그리는 데만 열중했다. 그 모습이 참 대견하다고 생각했다. 그래, 저런 하찮은 자식은 무시해버려. 상대해줄 가치도 없어.

놈에게 하지 말라고 경고하기 시작한 건 지혜의 그림이 엉망이 되고부터였다. 놈이 한차례 조롱하고 가면 지혜의 그림은 모양이 들쑥날쑥 엉망진창이 되어 있었다. 면전에 대고 그렇게 욕보이면 누군들 그러지 않을까. 지혜는 버티고 있었지만, 상처는 쌓이고 있는 듯했다.

“야! 그만 좀 해, 너는 뭐가 그리 잘 나서 가만 있는 애한테 그러니?”

그러니 놈이 잔뜩 커진 눈으로 이쪽을 돌아봤다.

“니는 뭔데 참견이고? 니 할 일이나 해”

그러고는 흉측해 보일 정도로 큰 눈을 부라리며 인상을 구겼다.

그 모습을 본 다른 여자애들 몇몇이 거들었다.

“니는 못생긴 게 뭐 잘났다고 애 놀리는데!”

“키만 멀대 같이 큰 게!”

“니는 아직 구구단도 다 못 외웠다 아이가!”

애들 여럿이 저를 공격하니 놈이 욕설을 주절거리며 마지못해 자리를 피했다.

지혜는 인기가 조금 있었다. 성격이 그리 상냥하니 인기 있을 만도 하지. 하지만 문제는 지혜의 상처를 알아볼 만큼 가까운 친구는 없다는 것이었다. 솔직히 말하면 지혜는 조금 뚱뚱한 편이다. 그리고 뚱뚱한 사람이 으레 그렇듯 그리 호감을 살 법한 외모는 아니다. 뚱뚱하거나 못생겼다는 게 호감을 살 수 없는 이유가 되지는 않을 것이지만, 다만 원래부터 부끄럼이 많아 친구를 쉽게 사귀기 어려웠던 지혜는, 하필이면 김호정이라는 악재를 만나 학기 초부터 악랄한 조롱으로 자존감에 상처를 입은 터였다. 그러니 누군가와 친해지긴 더 어려웠을 테지. 애들 역시 지혜를 불쌍히 여겼고 가끔은 놈을 질타하며 지켜주기도 했지만, 딱히 먼저 다가가 친해질 계기는 없었던 것 같다. 다들 그저 지혜가 아무렇지 않게 잘 버티는 줄만 알았겠지. 나도 그런 줄 알았으니까.

보통은 누군가를 놀리려 할 때 상대가 반응이 없으면 흥미가 떨어지기 마련이다. 지혜는 나름 잘 대처하고 있었다. 굳이 놈을 상대하지 않고 잘 참아내고 있었다. 곧 놈이 흥미를 잃으면 괴롭힘을 멈출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놈은 생각보다 더 악랄한 놈이었고, 놈의 조롱은 점점 더 수악해져갔다. 그런데도 여전히 저를 무시하니 이윽고 손을 대기 시작한 것이다.

내가 놈에게 주먹을 날린 이유가 그 때문이었다. 애들과 화장실에 갔다가 교실로 들어선 순간, 놈이 지혜의 머리를 손가락으로 밀어붙이는 모습을 보게 된 것이다. 지혜는 머리가 밀려 뒤로 젖혀지는 대도 꾹 참고 있었다. 하지만 그림 연습장 위에 올려진 지혜의 손이 덜덜 떨리는 것을 본 나는 곧 화가 치밀어 올랐다.

놈에게 다가가 냅다 주먹을 날렸다.


수업이 끝나는 종이 울리자 선생님은 교실 뒤에서 무릎 꿇고 손들고 있던 나와 김호정을 선생님이 앞으로 불러냈다.

쉬는 시간 동안 제각기 장난을 치거나 화장실에 가려 일어나는 등 부산한 아이들 사이를 지나 선생님 앞에 다다랐다. 선생님에게서 서늘할 정도로 향긋한 화장품 냄새가 확 끼쳐왔다.

나는 굳이 숨기지 않고 자초지종을 세세히 설명했다. 그동안 놈이 지혜를 지독히도 괴롭혀왔으며 마지막엔 지혜의 머리를 주먹으로 아주 세게 그리고 수차례 때렸다고 일러바쳤다.

그런데 놈은 억울한지, 자기는 지혜를 때린 적이 없고 그냥 조금 장난친 것뿐이라며, 오히려 자기만 갑자기 나한테 맞았다고 항변했다.

우리 의견이 다르니 선생님은 놈에게 재차 물었다.

“그래서 니는 때린 적이 없단 말이제?”

“네, 때린 게 아니고 그냥 장난친 건데요”

뻔뻔한 놈. 그게 장난이었다고?

“제가 지혜 뒷자리여서 맨날 봤어요, 돼지 새끼, 냄새난다, 나가 죽어라, 내가 너 죽일 거다, 그리고... 아, 너네 엄마도 돼지냐, 너네 가족도 죽여줄까, 라면서 매일 놀리고 협박하고 때렸어요”

그러니 선생님의 표정이 잔뜩 구겨졌다.

옆을 돌아보니 놈은 어이가 없다 못해 거의 질겁하여 어버버 거렸다.

“내.. 내가 어.. 언제 그랬는데! 이! 니! 거짓말 치지마아!”

“쉿! 조용”

놈이 흥분하여 소리치자 선생님이 검지로 놈의 얼굴을 가까이 가리키며 제지했다.

선생님은 결국 지혜를 불러냈다.

자기 자리에서 초조한 표정으로 이쪽을 보고 있던 지혜가 쭈뼛거리며 다가와 섰다.

“니 들읐제? 야아 말이 맞나?”

못 들었을 것이다. 교실은 아이들로 제법 소란스러웠고, 지혜 자리는 선생님 책상과 꽤 멀리 떨어져 있다. 적어도 나는 지혜가 들을 만큼 큰 소리로 말하지 않았을뿐더러, 설령 들었다고 하더라도 지혜는 더더욱 사실대로 대답하지 못할 것이다.

잘못한 것도 없으면서 괜히 주눅 들어 있는 지혜의 모습이 답답했다.

문득 지혜가 내 눈치를 살피려는지 눈동자를 돌려 이쪽을 봤다.

눈이 마주쳤다. 분명, 못 들었다고 되물을 용기가 없어 나를 본 거겠지.

나는 아주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니 지혜는 이내 결심한 듯,

“네...”

고개를 끄덕였다.

“아니에요! 아니에요! 저는...”

짝!

순간 선생님의 손바닥이 놈의 얼굴로 가 부딪혔다. 선생님의 분홍색 주름치마가 소용돌이치며 휘날렸다.

멀대만큼이나 크지만 소갈머리는 깃털만큼이나 가벼운 놈의 몸이 획 돌아 바닥에 고꾸라졌다. 참으로 개운한 광경이지 않은가.

“일어나”

그 순간 주순자 선생님의 목소리는 살기마저 느껴질 정도로 메말라 있었다.

선생님은 놈을 일으켜 세워 여러 차례 더 뺨을 때렸다. 별안간 벌어진 험악한 상황에 잔뜩 긴장한 아이들의 시선이 사건의 현장으로 몰렸다. 놈은 벌게지고 일그러진 얼굴로 울지도 못한 채 눈물만 그렁그렁하여 뺨을 마저 맞았다.

문득 지혜를 보니 얼굴이 새하얗게 질려 벌벌 떨고 있었다. 바보 같은 기집애, 이럴 땐 통쾌해해야지. 이제 저놈은 너를 괴롭히지 못할 거야. 후련하지 않아?

예상대로 놈은 더 이상 지혜를 괴롭히지 못했다. 가끔은 억울하고 한 맺힌 표정으로 날 몰래 쳐다보기도 했지만, 놈의 시선이 느껴져 돌아보면 놈은 허겁지겁 내 눈을 피하며 딴청을 부렸다. 허튼짓했다간 몇 배로 응징해줄 테니 뭐라도 할 수 있음 해보라지.

복수는 이렇게 하는 거다. 내겐 복수할 대상이 있다. 우리 아빠를 주저앉힌 그 개새끼한테도 언젠가 몇 배로 되갚아줄 거다.

그날 이후 지혜는 나를 조금은 두려워하는 듯하면서도 내게 더 의지했다. 나는 흔쾌히 지혜의 단짝이 되어주기로 했다.


keyword
일요일 연재
이전 21화21. 소녀의 사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