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녀의 가족이 해체되던 날, 처음 들었던 소리가 있다.
쩡!
철제 현관문이 부서지며 대여섯 명의 사람들이 집 안으로 들이닥쳤다.
처음에 그들은 악을 쓰며 모녀를 위협했다. 강사장 어디 있냐며 내 돈 내놓으라고 윽박질렀다. 그러다 결국엔 울부짖었다. 살려달라고, 지금 자기들이 죽게 생겼다고, 제발, 제발 제발, 제발 살려달라고 애원했다.
한낱 12살 꼬마가 사람들의 생사를 헤아릴 수나 있을까. 소녀를 방에 피신시킨 엄마는 의연하게 그들과 대면했지만, 문 너머로 들려오는 절박한 울음소리는 소름 돋을 만큼 공포스러웠다.
얼마쯤 지나자 사람들 여럿이 더 들어왔는지 문밖이 소란스러웠다. 신발들이 집 안 바닥을 걸어 다니는 소리가 들렸고 쿵쿵거리거나 뭔가가 무너지거나 깨지는 소리가 이따금 이어졌다. 그들은 곧 소녀가 숨은 방앞까지 와서 웅성거렸다. 엄마는 그들과 악을 쓰며 싸웠으나, 곧 그 방문마저 쾅 하고 부서졌다.
소녀는 방안으로 가장 먼저 뛰어 들어온 엄마의 품에 안겼다.
그들은 소녀가 쓰던 가구와 물건들을 옮기기 시작했다. 책을 읽고 공부하던 소녀의 책상은 사람들에 의해 해체되어 사라졌다. 소녀가 좋아하던 대백과사전과 아름아름 읽었던 문학책들이 바닥에 흩어져 사람들에게 밟혔다. 작년에 아빠가 사준 컴퓨터를 서로 갖겠다며 싸우다 어느 중년 여성의 이마가 찢어지며 흘린 피가 바닥에 널브러진 책들 위로 떨어지는 것을 엄마의 허리춤 너머로 볼 수 있었다. 대백과사전보다 재미있지는 않았지만 나름대로 감명 깊게 읽은 어린 왕자의 모습이 끈적하고 붉은 액체로 물들어갔다.
소녀를 굳게 감싸 안은 엄마의 양팔이 떨고 있었다. 그 때문인지 소녀의 몸도 떨리는 것 같았다.
며칠째 학교에 가지 못했다. 학교에 가면 교문 앞에도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어, 엄마는 차를 돌리며 당분간 학교에는 가지 않는 게 좋을 것 같다고 했다.
제대로 먹지도 못했다. 아니 먹을 수 없었다. 밥솥이 없어져 버렸으니까. 사람들이 가구며 TV며 값비싼 물건들을 모조리 가지고 간 통에 집이 텅텅 비어 버렸다. 그 와중에 신기하게도 침대만은 갖고 가지 않아 엄마는 그 위에서 끙끙 앓으며 누워있을 수 있었다.
아빠를 찾으러 가는 건지 아니면 회사에 나가는 건지 엄마는 아침이면 어김없이 밖으로 나갔다. 나가면서 만 원짜리 지폐 2장을 소녀의 곁에 두고 갔다. 현관문이 닫히면 부서진 잠금장치 대신 문고리가 딸깍하며 잠기는 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에 매일 아침 소녀는 잠에서 깼다.
아무도, 가구마저도 없는 텅 빈 집에 혼자 있는 건 외롭고 쓸쓸한 일이었다. 태어나 처음 경험해본 처량함이었다. 소파도 TV도 없는 거실 바닥에서 그저 앉아있거나 누워있거나 할 뿐이었다. 소녀의 방에 책들이 있었지만, 바닥에 널브러진 책들 위로 핏자국이 보이면 구역질이 나 문을 닫아버렸다.
딸깍 소리에 잠에서 깨 텅 빈 거실로 나오면 베란다를 통해 들어온 아침 햇살이 어김없이 TV가 있었던 거실 저쪽 끝을 비추고 있었다. 그 반대편 소파가 있었던 자리에 소녀는 무릎을 끌어안고 앉았다. 가구들 밑에 쌓여 있던 먼지와 집안을 유린했던 신발 자국들이 바닥에 그대로 남아 있었지만, 왠지 신경 쓰이지는 않았다. 먼지가 쌓인 황량한 거실 바닥을 비추는 네모난 창문 모양의 햇살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소녀는 문득 피로가 느껴져 옆으로 팔을 포개 누웠다. 창문 모양의 햇살이 서서히 다가왔다.
공허하고 오랜 시간 동안 햇살은 모르는 사이 서서히 소녀에게로 오고 있었다. 그 공간에서 유일하게 생기있는 것은 그 햇살뿐인 것 같았다.
문득 눈을 뜨니 햇살은 어느새 거실 가운데까지 와 있었다. 다시 눈을 감았다.
다시 눈을 떴을 때 햇살은 소녀의 코앞까지 와 있었다. 겨울의 날은 점점 어두워지고 밖에는 날쌘 바람이 창문을 때리며 지나가고 있었다. 거실을 쓸어 비추던 햇살이 이윽고 소녀에게 닿으려 할 때, 밤의 어둠이 짙어지며 그날의 햇살은 옅어졌다.
소녀는 옅어진 햇살 속으로 슬며시 손을 넣어 보았다. 겨울 저녁의 추위가 거실을 스멀스멀 덮쳐왔다.
엄마는 매일 밤이 늦어서야 돌아왔다. 씻지도 않고 아침에 차려입고 나간 정장 차림 그대로 침대로 가 누웠다. 그리고 곧 다시 끙끙 앓기 시작했다. 그러면 소녀는 엄마 옆에 등을 대고 누워, 앓는 소리를 들었다.
엄마가 나간 어느 날 오후, 한번은 너무 외로워 밖으로 나가 보았다. 무너진 소녀의 집과 달리 세상은 그대로 평온했다. 햇볕이 밝게 내리쬐어 맑은 하늘은 드높았고, 차가 다니고 사람들이 걷고 이따금 책가방을 뒤로 맨 아이들이 뛰어다녔다.
자주 가던 집 앞 슈퍼로 향할 때였다. 밝은 회색 양복 차림의 어느 남자가 다가와 대뜸 앞을 막아섰다.
“어디 가? 아빠한테 가니? 너희 아빠 어디 있어? 응? 너희 아빠 어디 있어!”
이내 그는 그 억센 손아귀로 소녀의 어깨를 잡고 흔들기 시작했다.
소녀는 너무 무서워 울음이 났다.
그 모습을 본 슈퍼 아주머니가 달려와 남자를 쫓아냈다.
과자 몇 개와 라면을 사서 돌아왔다. 라면은 끓일 줄 몰라 부숴 먹었다. 딱딱한 라면을 씹을 때마다 아까 흘렸던 눈물의 자국이 볼을 타고 간질거렸다. 언젠가 라면을 끓일 수 있으면 좋겠다고 소녀는 생각했다.
문뜩 현관문이 두드려지는 소리가 났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지만 떨리는 걸음으로 조심스레 다가가 보았다. 찌그러진 문 한쪽의 갈라진 틈새로 누군가의 시선이 안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곧 나지막한 욕설과 함께 그 시선은 발걸음 소리로 멀어져 갔다. 이후 밖엔 나가지 않게 되었다.
아빠가 사라진 후 며칠이 지났을까. 하루에도 몇 번씩 아빠를 찾는 사람들 때문에 더 이상 집에도 있지 못하게 되었을 때 아빠로부터 연락이 왔다.
아직 겨울의 기운이 다 가시지 않은 차가운 봄날, 인천의 어느 어시장 뒷골목에서 만난 아빠는 그 새 무척 야위어 있었다. 즐겨 입던 명품 정장과 검은색 고급 승용차는 그대로였지만 왠지 그것들이 아빠를 더 꾀죄죄하고 볼품없어 보이게 했다. 엄마는 그런 아빠를 껴안고 한동안 서럽게 울었다.
아빠는 동해로 간다고 했다. 딱 1년만 먼데 바다로 나가는 배에서 일하면 피해 입은 돈의 대부분을 복구할 만큼 돈을 벌 수 있다면서, 그동안 자기 걱정은 하지 말고 시골로 내려가 지내고 있으라 했다.
소녀는 꺼림칙한 기분이 들었다.
겨우 1년 일한 것으로 그 많은 돈을 마련할 수 있냐는 건 어린 소녀로서는 헤아릴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지만, 분명한 것은 제아무리 바닷가 마을에서 태어나 어릴 때부터 고기잡이를 해 온 아빠라 하더라도 그 먼바다까지 나가는 건 매우 위험한 일이라는 걸 어째선지 소녀는 알아챈 것이다.
소녀는 얼른 아빠의 소매를 잡아당겼다.
“아빠, 안 가면 안 돼?”
그리고는 아빠의 손목까지 올려 잡았다. 손에 힘을 줘 힘껏 쥐었다.
아빠는 고개를 숙여 소녀를 내려다보다, 이내 앉아 눈을 맞췄다.
“아빠 꼭 가야 돼, 걱정하지 마, 딱 일 년만 기다리고 있으면 아빠가 돈 많이 벌어서 꼭 찾아갈게”
그렇게 말하는 아빠는 웃고 있었고 울고 있었다. 그때 알았다. 웃음과 울음이 한 끗 차이일 수도 있다는걸.
아빠는 다시 일어나 걸음을 옮기려 했다. 하지만 소녀는 쥔 손을 놓지 않았다. 더 세게 아빠의 손목을 움켜쥐었다.
그런 소녀를 내려다보던 아빠는 잡은 소녀의 손 위로 살포시 손을 얹었다.
“우리 딸, 아빠가 미안해”
슬픔에 절은 눈동자가 소녀의 가슴을 후볐다.
그러니 움켜쥔 손에서 힘이 빠졌다. 그렇게 소녀는 아빠의 손목을 놓치고 말았다.
엄마 역시 뒤돌아 가는 아빠를 잡지 못해 벌겋게 충혈된 눈으로 좇기만 할 뿐이었다.
아빠가 떠난 후부터 소녀는 음식을 먹을 수 없게 되었다. 모녀가 잠시 신세를 지게 된 소녀의 이모는 음식을 삼키지 못하는, 삼키면 도로 토해내는 조카를 병원에 데려갔다. 병원에서는 신체적인 이상은 없다고 하여 그냥 수액만 맞고 돌아와야 했다.
음식을 먹을수록 소녀는 구토가 나 힘이 더 빠져갔다. 힘이 빠지면 그나마 남아 있던 체중도 주는 것이었다. 그런 소녀를 바라보는 이모도 미칠 노릇이었지만, 뿜어져 나온 뱃속의 이물질이 바닥을 더럽히는 꼴을 매일 봐야 하는 소녀 역시 제정신은 아니었다.
소녀가 하루하루 말라가는데도 매일 회사에 출근하는 언니를 동생은 이해할 수 없었다. 하루는 출근하는 언니를 미친년이라고 퍼부어보기도 했지만, 언니는 정말로 미치기라도 한 건지 그저 메마른 표정으로 조용히 문을 열고 나가 버릴 뿐이었다.
이모의 보살핌으로 소녀는 음식을 조금씩은 먹을 수 있게 되었지만, 그것만으로는 영양실조를 해결하지 못할 것이었다. 그리고 이모는 조카를 살아가게 해야 했다. 학교에 다닐 수 있게 해야 했고 친구도 사귀게 해야 했다. 언니가 절대 무슨 일이 있어도 부모님께는 말하지 말라고 했기에 그러지는 않았지만, 대신 동생은 유일하게 언니를 제지하고 야단칠 수 있는 한 사람에게 연락하기로 했다.
무너진 세상에서 소녀가 그나마 숨이 트인 곳은 명절에나 가끔 내려가던 시골 외갓집이었다. 엄마의 고향인 그곳은 너무나 작고 외진 곳이라 소녀의 가족을 내쫓은 세상의 냉정한 손길도 그곳만큼은 닿지 않을 것 같았다. 한순간 뒤바뀐 세상에 어쩔 도리도 아무런 힘도 없던 어린 소녀는 안전하고 평온한 그곳 마당 한 켠에 앉아 그저 상념에 잠겨 있을 뿐이었다.
그러다 그 애를 봤다.
대문 밖에서 웬 깔깔대는 소리가 들려 다가가니, 문틈 사이로 어떤 아이가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모습이 흘깃 비춰지는 것이다. 늘어지고 색이 바랜 티셔츠에 제 발보다 훨씬 큰 슬리퍼를 질질 끌며 시골 똥개와 함께 옆집 주변을 뛰노는. 어디서 묻혀왔는지 말라붙은 진흙이 엉덩이에 묻어있고, 흠... 저게 책에서 봤던 도깨비바늘이라는 건가?
누가 자기를 훔쳐보는지도 모르는 채 그 애는 그저 깔깔거리며 뛰다가, 작은 막대기를 던져 강아지에게 물어오라고 하다가, 제 옆에서 꼬리만 흔들고 있으니 그냥 자기가 달려가 막대기를 주워오는, 어리숙하고 순진하고 순박한, 세상 어떤 근심도 변고도 비껴갈 것만 같이 해맑은 그 애는,
하얬다, 그저.
그 어떤 고귀한 단어로도 형언할 수 없을 새하얀 순수함이 그 애의 뒤로 후광처럼 비춰왔다. 그 하얗고 밝은 빛에 그만 넋을 잃고 다가가야만 했다. 향기로운 꽃에 벌과 나비가 꼬이듯, 스스로도 자각하지 못한 사이 그 애의 발치에 다가가 섰던 것이다.
강아지와 막대기 뺐기 놀이를 하던 그 애가 흠칫 뒤돌았다. 그 순간, 땀 냄새와 흙냄새, 그리고 그 애의 순진한 냄새가 향기처럼 풍겨왔다.
그 애는 키가 꽤 컸다. 또래의 남자애들 중에서는 큰 편이었다. 햇볕에 탄 건지 피부는 까무잡잡했지만, 활짝 웃을 때 드러나는 헌칠한 치아는 하얗고 가지런했다. 그 애는 먹성도 좋았다. 같이 밥 먹을 땐 항상 밥 두 그릇은 꼭 비웠다. 반찬 투정 한 번 하는 법 없이 나물과 찌개를 참 맛있게도 먹었다.
이상하게도 그 애와 함께 있을 땐 식욕이 돌아왔다. 밥 두 그릇까진 아니지만, 고봉밥 한 그릇은 거뜬히 비울 수 있었고 간식도 잔뜩 먹을 수 있었다. 주말마다 그 애 집에 갔다 돌아오면 불러있는 내 배를 보며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기뻐하셨다. 그 애와 함께 하교했던 저녁이면 집에서도 밥을 제법 먹을 수 있었다.
그래, 내가 그 애를 붙잡고 집착했던 것은, 그 애에게 어떤 애착이 있었던 게 아니라 순전히 내가 살기 위해서였던 것이다.
이제 알겠다. 그 애는 아빠를 닮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