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애 손을 처음 잡았을 때를 기억한다. 오만하게도 내가 그 애를 지켜낼 수 있을 거라 감히 자신했었지. 아니 어쩌면, 눅눅히 젖은 지난밤들을 홀로 시름 할 때, 가슴 깊게 찔러 넣었던 후회를 그때 마침 발동했던 건지도 모른다.
“차도로 너무 가까이 가면 안 돼, 안 되겠다, 이리 와”
손을 뻗자 그 애가 팔을 움찔 떨었다.
그 애 손목을 잡아끌었다.
“길 건널 땐 위험하니까 항상 좌우를 잘 살펴야 돼”
그 애는 꺼림칙한 표정이 되어 마지못해 내게 이끌렸다.
“우리는 이제 같이 다닐 거니까, 내가 항상 잘 살필게, 너는 나만 믿고 따라오면 돼, 히히”
너를 위해 내가 온 신경을 쏟을 거라고, 나와 같이 다니면 네가 안전할 거라는 걸 알려주고 싶었다.
“학교에서 터미널까지 십 분쯤 걸리니까, 마치고 바로 오면 오십 분쯤 되겠다, 조금 느긋하게 와도 돼”
건널목을 건너는 것도, 버스 시간을 맞추는 것도, 전부 내게 맡기면 된다고,
“삼 번 버스는 타면 안 돼, 우리는 사 번 버스를 타야 되는데, 삼 번이랑 사 번 위치가 약간 엇갈려 있어서 헷갈릴 수가 있어”
하지만 내 선의가 누군가에겐 그저 불편하기만 한 오지랖일 수도 있다는 걸 그땐 몰랐다.
“여기 애들 되게 착하더라, 나 오늘도 친구 많이 사귀었다, 너는 어땠어? 너도 친구들이랑 사이좋게 지냈어? 수업은 잘 들었고?”
아쉽게도 우리는 같은 반이 아니니까 그렇게라도 너와 학교생활을 공유하려 했다. 그러면 너도 자연스레 나를 친구로 받아들이지 않을까.
그 애 손을 붙잡고 다니기 시작한 건 그 애가 내게서 도망가려 할 때부터였다. 언젠가부터 그 애는 복도에서 기다리는 날 피해 달아나려 했다. 처음엔 날 못 본 척 슬그머니 나가는 걸 붙잡았더니, 다음엔 교실에서 늦게 나오는가 하면, 나중엔 쌩하니 뛰어가 버리는 것이다. 이렇게나 미련할 수가. 그제야 그 애가 나를 진심으로 피하려 한다는 걸 깨달았다. 그건, 한 번도 누군가에게 거부당한 적 없던 내게 적잖은 충격이었다. 그땐 정말 서운하기도 하고 자존심도 상했었지. 그럼에도 나는 아무렇지 않은 척 애써 그 애를 쫓아가 붙잡을 수밖에 없었다.
“너랑 같이 다니기 싫어!”
그 애가 내 손을 뿌리쳤다.
꽤 세게 휘둘렸는지 손목이 욱신거렸다.
뒤돌아보니 제법 비장한 눈빛으로 날 노려보고 있었다.
싫어하는 걸 뻔히 알면서도 거의 반강제로 붙잡고 다녔으니 그럴 만도 하지. 이해는 하지만 서운한 마음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그것참 아쉬운 얘기구나, 네가 싫다면 어쩔 수 없는 거겠지..........”
그 애 눈이 휘둥그레졌다.
이런 반응은 예상 못 했겠지. 그래, 네가 원한다면 나는 널 놓아줄 용의가 충분히 있어. 하지만 네가 나를 놓을 수 없게 만들 수도 있지.
“이제부턴 나와 같이 다니지 않아도 돼, 나는 아주 많이 슬프겠지만..........”
그러니 그 애가 당황한 듯 안절부절못하며 다시 제 손을 잡는 걸 허락했다.
이후부턴 어딜 가든 그 애가 도망갈 수 없게 꼭 잡고 놓아주지 않았다. 그 애가 싫어하는 걸 알았고 가끔은 내게 놓아달라 요구하기도 했지만, 못 들은 체하거나 감정에 호소하면 그 애는 더 이상 저항하지 못했다. 내 부당한 요구도 쉽게 거절하지 못할 만큼 그 애는 가녀리고 순진했다. 내가 이기적이란 걸 알지만, 무슨 수를 써서든 그 애를 곁에 두어야 할 만큼 그 시절 나는 절박했었다.
나는 그 애를 붙잡아 둘 명분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 애에게 친구 이상의 어떤 의미가 되기로 했다. 큰 의미일수록 좋을 것 같았다. 예전에 독감으로 병원에 갔을 때 간호사 언니가 아빠에게 보호자분이라고 부르는 것을 본 적이 있다. 보호자라는 건 아이의 부모를 말하는 걸까, 아니면 아이를 병원에 데리고 갈 수 있는 어른을 말하는 걸까.
그 애의 보호자가 되기로 결심했다. 그 애는 몹시 연약하고 순진무구한 아이다. 남에게 싫은 소리 한 번 하는 데도 많은 고민과 망설임이 필요할 만큼 여리고 약한 아이다. 그런 네가 이렇게도 험난한 세상에서 살아갈 수 있을까. 아니, 넌 절대 못 할 거야. 분명 간사하고 사악한 인간들에게 속아 넘어가 빼앗기고 상처받을 테지, 우리 아빠처럼. 어쩌면 눈앞에서 버젓이 자기 것을 앗아가는 데도 구경만 하고 있을지 모른다. 그래서 너에겐 내가 필요해. 내가 널 지켜줄 수 있어. 언젠가 내게 고마워할 날이 있을 테니, 두고 봐.
목구멍으로부터 뿜어져 나온 내용물들이 고여있던 웅덩이를 출렁였다. 온갖 이물질들이 잔잔하던 그것을 침범해 오염시켜갔다. 시큼하고 역한 냄새가 올라왔다.
괜찮아지는가 싶더니 이윽고 한 번 더 구역질이 났다. 뒤에서 지켜보던 엄마가 등을 두드려줬다. 한 차례 더 내용물들이 쏟아졌다. 쏟아 내는 동안 숨이 막혀 가슴이 답답했다.
전부 쏟아 내고 나니 이젠 현기증이 올라왔다. 축축한 타일 바닥에 주저앉아 막혔던 숨을 들이쉬었다. 벌겋던 욕실 천장이 조금씩 원래 색깔로 돌아왔다.
시장에서 먹었던 것들을 전부 토해내고 나니 허전한 기분이 들었다.
“입 헹구고 물 마셔”
엄마가 물이 반쯤 찬 물컵을 건넸다.
받아 들 기운도 없어 작게 손사래만 쳤다. 입 안에서 찝찝하고 비릿한 맛이 감돌았다.
문득 밖에서 인기척이 들렸다. 눈을 돌리니 열린 욕실 문 너머로 어째선지 그 애가 마당에 서 있는 모습이 얼핏 보이는 것이다.
급히 문을 닫았다.
아무 일 없는 듯 엄마가 그 애를 살갑게 맞아주는 소리가 닫힌 문 너머로 들렸다.
잠시 뒤, 엄마가 집 안으로 들어오는 소리가 들려 살며시 문을 열어보았다. 살짝 열린 문틈으로 아직 마당에 서 있는 그 애가 보였다. 우리 집에 온 것은 처음이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창피한 기분이 들었다.
남의 집 마당에 혼자 서 있는 게 어색한지 잠시 두리번거리던 그 애가 열린 안방 문 너머 이쪽으로 문뜩 시선을 돌렸다. 나는 얼른 문을 닫아버렸다. 순간 눈이 마주친 것 같은 기분이 들어 초조해졌다.
굳게 닫힌 문 너머로 곧 그 애가 인사하고 돌아가는 소리가 들렸다. 그럼에도 한동안 문을 열지 못해 그저 욕실 바닥에 주저앉아 있었다. 바닥의 물기에 엉덩이가 축축이 젖어왔다.
그 애 집에서 음식을 잔뜩 얻어먹고 집에서도 저녁을 먹을 수 있게 되면서 나는 예전의 체중을 조금씩 되찾아 가고 있었다. 조금은 밝아진 내 모습을 본 엄마도 어느새 정신을 차리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분명 나는 괜찮아지고 있었다. 전부 그 애 덕분이었다.
나는 어른이 되려 했다. 어른이 아이를 보호할 수 있는 거니까. 그래서 그 애에게 어른으로 보이고 싶었다. 하지만 생각보다 나는 나약했고 그 모습을 그 애에게도 보이고 말았으니 이제 나를 어른으로서 우러러볼 일은 없겠지. 이제 내겐 그 애를 붙잡아 둘 명분이 없다.
도저히 잠이 오지 않아 뒤척이다가, 이윽고 일어나 앉았다.
미닫이 방문의 반투명 유리창 너머 바깥으로부터 엷고 푸른 빛이 비쳐오고 있었다. 밤이라는 게 이렇게나 밝을 수도 있었구나.
‘흑... 윽... 끄흑...’
문득 옆방에서 작게 흐느끼는 소리가 들려왔다. 며칠 안 그래서 괜찮아진 줄 알았더니, 혹시 오늘 나 때문에 다시 그러는 걸까.
그 시절 엄마는 밤마다 조용히 울었던 걸 내가 못 들었을 거라고 생각했겠지만, 사실 나는 그 구슬픈 소리가 그렇게 싫지는 않았다. 어른이 되기로 한 이후 다시는 울지 않을 거라 다짐했던 나는 엄마의 흐느끼는 소리가 들려올 때면 그쪽 가까이로 돌아누워 가만히 듣고 있기도 했으니까.
하지만 그날은 가슴이 답답했던 걸까. 왠지 평소보다 밝게 느껴지는 밤을 맞이하러 나가보고 싶었다.
엄마가 들을세라 조용히 문을 열고 나와, 마당으로 나가는 현관문을 열었다. 봄날의 제법 쌀쌀한 밤공기가 확 끼쳐왔다.
마루에서 마당으로 내려가는 디딤돌로 내려섰다. 방문에서 비치던 옅은 푸른 빛이 한층 더 화사해져 마당의 사물들을 밝게 비추고 있었다.
그리고 눈을 들었을 때, 나는 그만 그 엷고 푸른 빛의 정체를 보게 되었다.
왜 저토록 아름다운 걸 지금까지 본 일이 없던 걸까. 온 마을에 고요한 어둠이 내린 어느 깊은 밤, 잠들지 못한 뒤척임 끝에 은밀히 나온 마당에서 수천억 빛의 너울을 마주하고 만 것이다. 찬란한 그것들 사이로 어둠은 덧없이만 느껴졌고, 조용한 밝음으로 가만히 온 세상을 메아리치고 있었다.
그 찬란함에 매료되어 한동안 멍하니 보고 있자니 문득 애타는 기분이 들었다. 저 아름다운 것 중 하나라도 내게 떨어져 준다면 나는 얼마나 좋을까. 저 높은 곳에서 모든 세상을 보아왔던 너라면, 어쩌면 보고 싶은 이의 소식도 전해줄 수 있을 텐데. 그토록 아름다우면서 그렇게나 눈부시면서 왜 그 높은 곳에서 가만히 지켜보고만 있는 거야.
애달프고 섭섭한 마음에 속에서 올라오려는 눈물을 억지로 삼키고 있을 때였다.
웬 부드러운 손길이 별안간 어깨를 감싸왔다.
‘엄마가 미안해’
먹먹하게 잠긴 목소리가 따듯하게 흘러들었다.
그러지 않으려 했는데, 이내 가슴이 콱 조여오는 듯하다가, 결국 그것이 터져 눈으로 새어나 볼을 타고 마구 흘러내렸다.
허리춤에 고개를 파묻고 기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