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야크 섬&산 46좌
금요일 20시 30분경, 물줘로부터 연락이 왔습니다.
"내일 어디 가세요?"
전화해서 물었습니다.
"내일 시간 돼?"
"네, 돼요."
"여수인들이랑 돌산도 봉황산 가기로 했어. 너도 올래?"
"그럴까요."
토요일 8시, 죽포 삼거리에서 네 명이 모였습니다. 여수인 K 님과 S 님은 이름이 둘 다 여자 같은데, 둘 다 남자였습니다.
"ㄱㅎ랑 ㅅㅇ은 둘 다 여자 이름 아니에요?"
내가 묻자,
"남자 이름으로도 써요."
하고 K 님이 대답했습니다. 등산을 시작하기 전, 혼자 사라졌다가 조금 뒤에 나타났습니다. 흡연자인 듯했습니다.
굴다리를 지나 임도를 걸었습니다. 서로 나이를 정확히 몰랐는데, K 님은 가장 연장자였습니다.
"오, 동안이시네요!"
S 님이 칭찬했습니다.
물줘와 S 님은 꼭 붙어 다녔습니다. 둘이 동갑이라서, 서로 친밀하게 느꼈나 봅니다. 코를 찌르는 악취가 엄습했는데, 고개를 들어 주위를 훑으니 소들이 우리를 쳐다보고 있었습니다. 물줘와 S는 하산할 때가 돼서야 뒤늦게 마구간의 소들을 발견했습니다.
"어? 아까도 소가 있었나?"
물줘가 말했습니다.
"그럼, 아까도 있었지! 대체 뭘 본 거니? S 님과 둘만의 세계에 빠져 있었네! 엄청 친한 척하더니?"
톡 쏘아붙였습니다.
들머리를 찾느라, 초반에 조금 헤맸습니다. 시간이 조금 지체됐습니다. 다행히, 곧 정상적인 등산로로 진입했습니다.
K 님은 블랙야크 명산 100 인증자였습니다. 주로 혼자 다니는 모양이었습니다.
"블랙 다이아몬드 스틱 쓰시네요! 저도요. 같은 브랜드로 계속 쓰고 있어요. 저렴하고, 튼튼해서 좋아요."
반가웠습니다.
그는 상당히 힘겨워했습니다.
"먼저 가세요! 저는 뒤따라 갈게요. 휴, 왜 이리 힘들지......"
가파른 구간이 잠시 있긴 했지만, 고통스러운 정도는 아니었습니다.
"금연하세요!"
냉정하지만, 현실적이고도 진심 어린 조언을 건넸습니다.
일기 예보에서는 한낮 최고 기온이 영상 8도였으나, 오전의 산속은 체감 영하였습니다.
"오늘 입춘인데, 완전 한겨울이네!"
오들오들 떨며 부지런히 몸을 놀렸습니다.
등산객은 우리들뿐이었습니다. S님과 내가 앞장서고, 물줘와 K 님이 한참 뒤에서 따라왔습니다. 어머니한테 전화가 왔는데, 좋은 내용이 아니었습니다. 통화를 마친 후, S 님과 가족에 관한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진로, 연애 등 다양한 화제가 오갔습니다. 하산 후 주차장으로 돌아갈 때, S 님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등산하면서 이렇게 대화를 많이 할 수 있다니......"
물줘와 K 님에게 물었습니다.
"무슨 얘기했어요?"
K 님이 대답했습니다.
"여자 이야기요!"
의외였습니다.
"우린 가족 이야기 했는데. 우리가 한 수 위네요. 여자 얘기 뭐 했는데요? 알려주세요!"
궁금했습니다. 남자가 보는 여자란 과연 어떤지, 알 수 없습니다.
"여자들은 왜 그럴까, 그런 얘기를 했어요."
유쾌한 내용이 아니었나 봅니다.
"우리는 부모님들은 대체 왜 그럴까, 그런 대화했어요."
맞장구쳤습니다.
드디어 봉황산 정상에 도착했습니다. 칼바람이 매서워 오래 머물지는 못했습니다. 주변 풍경 감상하기도 잠시, 서둘러 촬영했습니다. 준비한 간식들을 풀었습니다. 블루베리 베이글, 햄참치 샌드위치, 초콜릿 우유 등을 나눠 먹었습니다.
"귤은 못생겨서 안 먹을래요."
S 님이 말했습니다. 못생기고 오래된 귤은 훗날 더없이 소중한 식량이 됐습니다.
정상석에서 단체 사진을 찍으려고 했으나, 부탁할 만한 등산객이 아무도 없었습니다. K 님이 우리들을 촬영해 주었고, 때문에 그의 모습은 사진 속에 없습니다.
"여수 맛집 좋은 곳 있을까요? 너무 멀지 않으면 좋겠어요."
요청에 따라, 현지인 K 님이 좋은 곳을 소개했습니다. 가수 ㅅㅅㄱ이 개인 방송에서 소개한 식당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S 님은 오후에 다른 일정이 있어서 식사를 못한다고 했습니다.
"저런! 같이 점심 먹고 해산하면 좋은데, 아쉽네요."
안타깝게도, S 님은 K 님이 사주는 공짜밥을 얻어먹지 못했습니다. K 님은 시외에서 온 물줘와 나를 손님이라고 생각했는지, 초면에 식사를 대접했습니다.
"오, 밥을 왜 사시는 거예요?"
K 님이 밥을 산다길래, 놀라서 물었습니다.
"그야, 뭐...... 산에서 간식도 주셨고......"
"먹지도 않으셨잖아요."
난생처음 먹어보는 아귀탕은 입맛에 딱 들었습니다. 생선 살도 푸짐해서, 만족스러웠습니다. 오히려, 익숙한 음식인 아귀찜은 비교적 실망스러웠습니다. 너무 짜고, 매워서 손이 가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뼈만 앙상했습니다. 물줘는 서대회를 궁금해했습니다.
"깨끗이 발라 먹어야지! 살이 그대로 있는데, 이게 다 먹은 거야?"
"네, 이게 다 먹은 거예요."
"이렇게 먹으면, 네 미래의 부인이 싫어할걸?"
눈을 흘겼습니다.
원산지 표시판에 '금풍쉥이'라는 단어가 낯설었습니다. 사투리인 듯했습니다. 나중에 검색하니, '군평선이'라는 물고기였습니다. 백과사전의 설명을 쭉 읽는데, '샛서방'이라는 단어가 눈에 띄었습니다. 남편에게는 안 주고, 샛서방에게만 몰래 주는 물고기라고 합니다.
'어, 샛서방이 뭐야?'
모르는 단어였습니다. 검색하니, 흥미로웠습니다. 물고기 박사 옥구슬 씨에게 알렸더니, 신기해했습니다. 맛있는 음식을 먹고, 새로운 생물에 대해 배울 수 있어 보람 있는 시간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