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슈히 Jul 20. 2023

[블야 섬&산 81좌] 신안 우이도 상산봉(361m)

  수요일 11시에 목포 연안 여객 터미널에 도착했으나, 주차장은 만석이었습니다.

  '세상에 노는 사람 많구나! 평일에 웬 차가 이리 많담? 어쩌지, 다 노란선인데......'

물어 물어 우여곡절 끝에 무료 주차장에 주차한 후, 짐을 챙겨 헐레벌떡 뛰었습니다. 봄 햇살이 따가웠습니다. 배는 정오 전에 출항했고, 선내에서 법정 스님의 책을 읽었습니다. 자다 깨다를 반복하며, 네 시가 다 돼서야 목적지인 이구 돈목 마을에 다다랐습니다.

  '돼지 눈이라는 뜻이네.'

  돈목 선착장 대합실에서 국립공원 스탬프 투어 도장을 찍었습니다. 총 스무 개의 인증지 중, 열 아홉 번째로 인증하는 셈이었습니다. 가슴이 벅찼습니다. 산악회원들에게 이 사실을 알리니, 다들 대단하다고 감탄했습니다. 이제, 남은 하나는 진도의 관매도입니다.  



  우이도는 소의 귀 모양과 비슷하다고 붙여진 이름입니다. 우이도에는 규모 팔십 미터의 풍성사구가 있는데 비, 바람에 의해 매일같이 그 형태가 변하는 모래언덕은 자연의 신비로움을 자아냅니다. 향토유적으로 지정되어 있으며, 현재는 보호를 위해 관리되고 있습니다. 이 외에도 기암괴석과 넓게 펼쳐진 해변도 인기가 많은 곳 중의 하나입니다.  - 국립공원 스탬프 투어 여권 섬+바다



  민박집에 짐을 놔두고, 밖으로 나왔습니다. 도민들에게 물어 들머리를 찾았습니다.

  "혼자 등산 가요?"

  "네."

  "대단하네!"

어떤 점이 대단하다고 생각하는지 궁금했지만, 질문하지 않았습니다. 대화할 여유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굳이 묻지 않아도 이유를 알 것 같습니다. 여태 대부분 그런 반응이었기 때문입니다. 여자 혼자 여행 가거나 등산 가면, 일반적으로 대단하다고 생각하나 봅니다. 곧 해가 질 테니, 정신 바짝 차려서 서둘러야만 했습니다. 등산하기엔 다소 늦은 시간이었습니다. 혼자 등산하는 길은 길고도 지루했습니다. 예전에 다니던 회사의 동료 선생님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한애: 사람들이 결혼하기 싫어서, 사십 언저리 되서야 억지로 결혼하는 추세잖아, 요즘. 남자가 여자 진짜 사랑하잖아요? 조건 안 봐요. 그래서, 여자가 유리한 거야.

슈히: 우와!

한애: 여자는 조건 봐야 해. 아이를 낳을 수도 있으니까. 내 자녀까지 경제적으로 책임질 수 있는지, 남자의 능력까지 생각해야지. 사랑만으론 안 돼. 이건 상식적인 거야.

슈히: 결국, B는 저를 덜 좋아했군요. 조건을 따졌으니까요.

한애: 맞아. 사랑하지 않는 거지.

슈히: 그게 결론이네요.

한애: '저 남자, 저 여자라면 내 모든 걸 줘도 아깝지 않겠다.' 싶으면 인생을 거는 거지. 연예인 중에 어떤 이가, '저 사람이라면 불구가 돼서 병들어도, 내가 책임질 만한 확신이 든다.' 해서 결혼했다더라고.

슈히: 그래요?

한애: 상대가 장애인이 돼도 같이 살 마음이 들면, 결혼하는 게 맞지. 자기도 그런 생각은 안 들었잖아. 그 정도로 사랑하진 않잖아.

슈히: 그렇죠. 잘 모르겠어요.

한애: 결혼하려면, 그런 확신이 있어야 하는 거지.

슈히: 남자가 비혼주의자에 딩크를 원해요. 소개받아서 만난 여자도 같은 가치관을 갖고 있대요. 그래서, 둘이 오래오래 사귈 수 있을 것 같다고 하네요.

한애: 자기한테 솔직하게 말하고, 떠난 사람한테 감사할 일이야.

슈히: 오히려?

한애: 너무 미련이 많은데, 이제 생각 그만해. 다른 남자를 만나, 빨리!

슈히: 다른 남자 만나긴 했는데, 키가 작아서 마음에 안 들어요.

한애: 그럼, 또 다른 남자를 만나!

슈히: 아, 피곤해요.

한애: 다른 데 집중해. 작품에 몰입하던지. 내가 자꾸 신경 쓰면, 그 대상이 도망가. 자기가 본인 생활에 충실하면, 뭔가 다가올 거야. 뭐든지 때라는 게 있기 때문에. 자꾸 집착하면, 몸과 마음이 망가지니까.

슈히: 맞는 말씀이에요. 삼십 대에는 조건 보는구나, 그 생각에 충격받았어요.

한애: 사십 대에도 조건 봐. 오십 대엔 조건 안 볼 수도 있지. 이건 철학적인 개념인데, 재물이 별 의미가 없다는 걸 깨달으면 조건 안 봐. 만남과 결혼을 굳이 삼십 대에 꼭 해야 한다고 정해 놓을 필요가 있나? 백 세 시대잖아. 난 지금 오십 대 중반이고, 자식들도 다 키워 놨어. 내 또래 사람들은 이렇게 말해. '남은 오십 년을 같은 배우자랑 살아야 하나? 이제 갈아탈 때가 되지 않았어?'

슈히: 헐......

한애: 어이가 없는 거지. 오히려 늦게 만나서 잘 사는 사람들도 있으니까.

슈히: 결론은, 제가 그 남자를 더 많이 좋아했던 거죠. 제가 필요할 때 곁에 있어준 은인이거든요. 그거에 큰 비중을 뒀죠.

한애: 외롭고, 힘들 때 누가 나타나면, 영혼이 빨리는 거지.

슈히: 등산 다니면서 동행이 늘 필요했는데, 얘가 사는 도시에서 두 시간 거리인 완도까지 와줬거든요. 처음 만났을 때, 그 애가 무릎이 아프다길래, '그럼, 등산을 어떻게 해요?'하고 물었어요. 알고 봤더니, 제가 궁금해서 왔다는 거예요.

한애: 사람은 절대 단기간 보는 게 아니에요. 짧은 시간 동안 불꽃 튀기는 관계는 엄청 많이 싸워요. 결국, 피 터지면서 끝나. 썸탈 때나 재밌지.

슈히: 등산 오 년 차에 마음에 드는 사람 처음 만났어요.

한애: 남자 만나려고 등산해요?

슈히: 그건 아닌데, 그간 다가온 남자들은 다 별로였거든요.

한애: 거리가 멀면, 이미 끝났어.

슈히: 나이도 다섯 살 연상이니까요.

한애: 그건 문제가 안 돼요.

슈히: 가장 어려운 건, 성격이요. '누나는, 대체 무슨 생각하고 사는지 모르겠어.' 그러더라고요.

한애: 성격은 다 안 맞아요. 상대는 내가 아닌데, 어떻게 나랑 성격이 맞을 수 있어.

슈히: 맞아요. '누나 직장 생활 어땠어? 누나에 대해 호불호 갈릴 것 같다.'라고 말했을 때, 그때 느꼈죠. 아, 얘는 날 좋아하지 않는구나.

한애: 호기심 가졌다가, 자기 취향 아니니까 가버린 거야.

슈히: 게다가, 강제 추행 사건이 하나 있어요. 여수 남자가 초면에 제 하체를 주물렀거든요?

한애: 미친놈 아냐?

슈히: 신고했거든요?

한애: 잘했어.

슈히: B는 이 사건에 대해 저를 걱정해 주는 게 아니라, 저에 대해 마음이 식었대요. B가 다른 일정이 있어서 못 만나고, 산악회에서 공지 올려서 다른 사람이랑 주말에 놀러 갔거든요. B 입장에서는 이게 기분이 나쁠 수도 있죠. 자기 놔두고, 다른 남자랑 만나는 게.

한애: 그럴 수 있죠. 안 좋은 두 가지를 한꺼번에 봤잖아. 

슈히: B가 그랬어요. '누나는 자유롭게 여행 다니면서 낯선 사람들과 계속 어울릴 텐데, 보수적인 나랑 계속 갈등이 생길 것 같다.'고요.

한애: 자기도 감정적인 부분에서 B에게 실수했네. 지금 썸 타는 남자한테 조심해도 될까, 말까인데 다른 이성과 놀러 갔으니 어땠겠어? 짜증 났겠지.

슈히: 혼자 가긴 싫었어요.

한애: 안 갔어야지!

슈히: 서로 이익이 충돌한 거죠.

한애: 나 같아도 자기랑 잘해 볼 마음이 생겼다가도 없어지겠어.

슈히: 그래요? 제가 원흉이에요?(웃음)

한애: 왜 그렇게 행동해? 여수 남자는 좋아라 집적거렸을걸? 자기는 동행이 없어서 여수 남자랑 간 것뿐이라고 하지만, 여수 남자 입장에선 그렇게 생각 안 했을걸? 남자와 여자는 달라. 게다가, 여수 남자 신고했다며? B 입장에선 정이 뚝 떨어진 거지.

슈히: 이미 끝난 관계라서, 되돌릴 수 없어요.

한애: 내가 당신을 위로하는 말을 해줄게. B도 당신을 좋아했어. 그런데, 이런 사건을 겪고 정 떨어져서 당신을 안 만나. 이만저만 실수한 게 아니구만!

슈히: 실수라고 생각하진 않아요. 있는 그대로의 상대를 존중해야죠.

한애: 당신은 평생 연애 못 하겠다.

슈히: 안타깝네요. 심지어, 강제 추행 사건이 두 건이에요.

한애: (한숨)

슈히: 납득이 안 가요. 전 분명 확실히 거절했는데, 남자들은 제가 여지를 준다고 생각하나 봐요.

한애: 공간에 둘만 있어도, 여지를 주는 거야.

슈히: 아, 그런 거예요?

한애: 뭔들 못 하겠어.

슈히: 아, 말이 되네요. 그렇게는 생각 못 했어요.

한애: 내가 남자를 꼬시려고 하면, 어떻게 해서든 둘만 있게 자리를 만들겠어.

슈히: 둘이 있어도 아무 일도 없는 경우도 있어요.

한애: 그럴 수 있지.

슈히: 아무튼, 선생님과 대화하니 정리가 되네요.

한애: 남자든, 여자든 성적 매력이 없으면 안 집적거려요. 누구나 그런 마음이 있어요. 탐이 나죠.

슈히: B는 넓은 어깨와 두꺼운 팔뚝, 탄탄한 가슴을 지녔죠. 몸이 좋아요.

한애: 사람은 오래 만나봐야 알아요. 그런 것만으론 살 수 없어요.

슈히: 맞아요.

한애: 그런 게 좋으면, 돈 주고 남자를 사. 거절하는 남자 아무도 없을걸?

슈히: 지난 삼 월에 우리 완도 보길도에서 처음 만났어요. 등산하다 휴대전화를 떨어뜨렸는데, 액정이 그만 파손됐어요. 내비게이션을 못 보니 집에 못 가는 상황이었어요. '나 숙소 예약 좀 해줘요.'하고 B에게 말했더니, '나도 자고 갈래요.' 하는 거예요. 처음엔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는데, 그날 이후로도 계속 연락이 오는 거예요. '원나잇이 아니었나?'하고 생각했죠. 그런데, 얘는 저랑 잠자리만 원하고 마음은 원치 않더군요. 이용당한 느낌이 든다고 B에게 말했더니, 얘는 서로 즐긴 거라고 생각한대요. 

한애: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은 거지. 남자는 안 힘든데, 여자는 힘들어요.

슈히: 정신이 피폐해요.

한애: 여자는 마음이 먼저 열려야, 몸도 열리거든.

슈히: 좋아서, 만났어요.

한애: 갱년기 증후군에 시달리는 나한테 지금 그걸 말하는 거야? 바쁘고, 힘든데!

슈히: 많이 편찮으세요? 제가 갱년기를 아직 겪지 않아서, 잘 몰라요.

한애: 십 년 기다려 봐. 어떤 건지 느낄 거야.

슈히: 그때까지 못 살지도 몰라요. 많이 힘드세요?

한애: 많이 힘들어요.

슈히: 운동은 하세요?

한애: 운동 안 해요.

슈히: 운동해서 극복하세요!

한애: 태양인이 허약해서, 운동하면 안 돼요.

슈히: 아무튼, 고민 상담해주셔서 고맙습니다.

한애: 고민 상담인줄 알았으면, 통화 안 했을 텐데!

슈히: 처음엔 그냥 안부 인사 차원이었어요.

한애: 아, 기 빨려! 나 살기도 바빠 죽겠는데, 아직도 연애 환상에서 못 벗어나서!

슈히: 환상에서 벗어나야 해요?

한애: 이랬으면 좋겠다, 저랬으면 좋겠다 하고 바라면 오히려 도망간다니까?

슈히: 현실을 직시해야 돼요?

한애: 자기는 존재만으로도 매력 있고, 멋있어. 남자들이 봤을 때, 괜찮아. 근데, 자꾸 바보 같은 실수를 하니, 누가 좋아해?

슈히: 그게 실수예요? 저는 실수라고 생각 안 하는데요.

한애: 자기가 무슨 실수를 했는지도 모르니까, 그런 거지. 공부를 좀 해야겠다.

슈히: 사촌 언니도 지적하더라고요. '다른 남자랑 놀러 간 건, 네가 잘못한 거 아냐?' 하고요.

한애: 손해 안 보려고 따박따박 따지는 것도 보기 안 좋아. 마음의 여유가 있고 내공이 튼튼한 사람들은 안 그래. '그럴 수 있지. 귀엽네.'하고 넘어가. 자기는 용서가 안 되거든. 남이 실수하면, 끝까지 후벼 파서 보복해 주고 싶고, 당하는 꼴 보고 싶고. 화가 굉장히 많거든. 결국, 본인이 가장 힘들고, 지쳐. 

슈히: 소송 걸어서, 합의금도 다 받았어요. 결국은, 본인 하고픈 대로 하게 돼 있어요.

한애: 어린이 같은 마음이 있어.

슈히: 수렴형 아니고, 발산형이라서 그래요.

한애: 마음공부를 많이 해야 돼, 자기. 내 조언들이 자기한테 도움이 됐으면 좋겠어.

슈히: 도움 많이 됐어요! 고맙습니다.

한애: 자기가 마음의 여유가 있으면, 남들이 아니라 본인에게 제일 좋아. 사람은 다 똑같아. 나도 화나는 일 있으면 화 나. 그런데, 질질 끌려가면 지는 거야. 사랑하는 사람이 생기는 순간, 고통과 책임이 따라요.

슈히: 아이고, 끔찍하다! 미혼이 낫네요. 평생 혼자 살아야겠다. 좋아하는 사람은 나한테 무관심하고, 관심 없는 남자들만 집적대니.

한애: 자기가 B에게 관심 없는 척, 했어야 그 사람이 왔어.

슈히: 아, 그런 거예요?

한애: 아휴, 언제 배워...... 세상은 넓고, 남자는 많으니까 잘 꼬셔서 사귀어 봐, 알았지?

슈히: 고맙습니다. 잘 새겨들을게요.

한애: 마음만 먹으면, 다 내 남자야.

슈히: 명언이네요.

한애: 음흉해야 이겨요.

슈히: 전 못 이기겠네요.

한애: 절대 속을 드러내지 말고, 말을 아끼고. 남자가 무슨 말하면, 웃음으로 끝내고. 칭찬 많이 해주고. 여지는 주되, 너무 솔직하지 마. 다 까발리면, 뭐가 궁금하겠어? 안 까발리고, 조금씩만 보여줘야 궁금해서 달려드는 거지. 먹잇감을 조금만 줘야 안 떨어져 나가는 거 아니야?

슈히: 아, 저는 그렇게 계산하는 게 너무 싫어요.

한애: 계산하는 게 아니라, 너무 다 보여주지 말라고. 신비주의! 개뿔 아무것도 없어도, 신비한 척 하라고.

슈히: (웃음)

한애: 너무 쉬워서 탈이야.

슈히: 그냥 좋아한다고 하면 안 돼요?

한애: 좋은 사람이 나타나면, 정말 신중하게 해. 음흉하게 살아요.(웃음)

슈히: 휴, 기혼이시니까 부럽네요.

한애: 너무 순진해서 첫 남자가 마지막 남자 된 거 아니야, 내가. 여자는 남자 많이 만날수록 좋아요. 남자는 여자 많이 만나도, 속아서 결혼해.

슈히: 아, 그래요?

한애: 자기가 경험한 게 짜증나고, 싫어도 최악은 아니야. 절대 아니야. 좋은 경험한 거야.

슈히: B는 좋은 남자는 아니에요.

한애: 세상은 넓어요. 빛 좋은 개살구도 있어. 오래 두고 봐.

슈히: 육체 관계는 되도록 늦게 하라는데. 그날은 사고였어요. 영화나 드라마에 나오는 것처럼요.

한애: 육체 멀쩡한 남녀가 만났는데 어떻게 사고가 안 나. 안 나는 게 더 이상한 거지. 다른 사람들도 다 그래. 말만 안 해서 그렇지, 다 한 번쯤은 그런 일 있지 않았을까?

슈히: 휴대전화만 고장나지 않았어도 그런 일은 안 났을 텐데...... 원망스럽네요.

한애: 그런 경험 안 하면, 무슨 어른이야?

슈히: 충격이었어요.

한애: 경험이라니까. 지금은 지나간 일이니 편하게 얘기할 수 있잖아. 

슈히: 좋은 일이 있어야 할 텐데, 좋은 일이 없네요.

한애: 지금도 좋아. 날마다 새로 태어나는 거라니까?

슈히: 좋은 표현이네요.

한애: 하루하루가 다시 오지 않는 새날이잖아. 얼마나 좋아!

슈히: 갱년기 때문에 힘드시다는데, 힘내세요!

한애: 괜찮아요. 이렇게 늘어져 있는 것도 좋아요. 결혼하면, 챙겨야 할 사람이 너무 많아요.

슈히: 자녀가 셋이라고 하셨죠?

한애: 애만 챙기나? 남편도 애예요. 부모님도 계시고. 지루하고 심심한 삶을 살고 싶은데, 당분간은 안 될 것 같아.

슈히: 저는 노년에는 아무데도 안 가려고요. 

한애: 무슨 소리야, 노년에도 소일거리가 있어야 행복하지.

슈히: 그 때까지 과연 살아 있을까요? 지금 심정으론 사람 만나기도 싫어요. 자꾸 문제가 생기니까.

한애: 그게 살아 있다는 증거지. 처리만 잘 하면 되지. B와의 일이 아픔이라고 생각해? 추억이지.

슈히: 추억이긴 하죠. 사고 같은 사랑.

한애: 좋은 거지.

슈히: 작품으로 승화해야죠.

한애: 누굴 만나든 인연법이라는 게 있어요. 만남이 있으면, 이별이 있죠. 언젠간 꼭 헤어져요. 반드시 좋게 헤어지라는 법은 없어요. 아쉬움을 동반하죠. 기간이 정해져 있어요. 가는 사람, 오는 사람 막지 말라는 게 그 얘기야.

슈히: 공부를 많이 하셨군요. 어쩜 그리 잘 아세요?

한애: 오래 살았잖아. 나, 철학 좋아해.

슈히: 오...... 뭔가 배울 점이 있을 것 같아서 연락했어요.

한애: 인생은 외롭고 힘들어요. 나만 그런 것 같지? 

슈히: 다 그렇죠.

한애: 외로운 건, 정상이야. 남이 채워주지 않아요. 결국, 내가 채워야 해요.

슈히: 오늘은 안 좋은 일로 연락 드렸네요.

한애: 아닌데, 안 좋은 일 아니에요.

슈히: 전화위복이 되면 좋겠죠.

한애: 지금 당장은 내 감정이 아프고 쓰리겠지만, 그게 다 잘 되려고 생긴 일이야. 성장하고 있어.


  하산 후, 민박집에 돌아가 칠십 대 주인 내외와 겸상하며 대화를 나눴습니다. 자녀들은 모두 육지에서 생활하며, 결혼해서 가정을 꾸렸다고 했습니다.

  "그럼, 다들 문제 없이 행복하겠네요."

  "그렇진 않아요. 사십 대 아들이 작년에 띠동갑 연하랑 결혼했는데, 장모님이랑 좀 불편한가 봐요."

  "띠동갑 연하요? 오, 엄청난 나이 차네요! 어디서 어떻게 만났대요?"

  "원래 아들이 결혼 안 하려고 했는데, 교회에서 짝을 만난 거지. 오빠, 동생 사이로 지내다가 부부가 됐어요."

  "장모랑 사위가 사이가 나쁠 일이 뭐가 있어요? 사위 사랑은 장모 아닌가요?"

  "뭔가 불만이 있으면, 남편과 잘 해결할 일을 친정 엄마한테 어린 며느리가 말해버리나 봐요."

  "엥? 왜 그러지? 그럼 안 되는데......"

  "우리도 많이 타일렀어요. '아가야, 서운한 게 있으면 차라리 나한테 말하거라. 내가 엄마니까 아들을 잘 타일러 볼게. 나도 자식들 다 키워봤는데, 내가 말하면 되지 않겠니?' 하고요. 근데, 그렇겐 안 되더라고요. 난 아무래도 며느리한테 시엄마니까."

  혼자 살면 외로워서 둘이고 싶은데, 막상 둘이 되면 남과 내가 같을 순 없으니 이렇게 갈등이 생기나 봅니다. 미혼은 그저 상상만 할 뿐입니다. 식사를 마치니, 달콤한 후식이 땡겼습니다.

  "혹시 점방 있어요?"

  주인아주머니에게 물었습니다.

  "바로 옆에 슈퍼 있어요. 장애인이 운영해요."


  작은 섬이라 물건은 몇 없을 테지만, 호기심이 일어 한번 들렀습니다.

  "계세요?"

  "○○아, 손님 오셨다!"

어머니로 짐작되는 이는 아까 목포에서 함께 배를 타고 온 할머니였습니다. 이윽고, 미닫이 방문이 드르륵 열리더니 작고 마른 남자가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들어 오세요."

장애인이라는 말을 미리 들어서 알고 있었으나, 어떻게 대해야할 지 난감했습니다. 의연하게 눈을 마주쳐야 하나, 아니면 시선을 회피해야 하나 난처했습니다. 주인은 힘겹게 바닥을 기었습니다. 그 모습을 보니, 물건을 안 살 수가 없었습니다. 

  "이거 얼마예요?"

  "이천 원이요."

과자는 유통기한이 이미 지났지만, 하나 집어 들었습니다.

  '먹고 설마 죽기야 하겠어.'


  방으로 돌아와 달콤한 과자를 먹으며 책을 폈습니다. 뜨끈한 방에서 잘 자고 일어나, 아침 일찍 해안 사구를 산책했습니다. 나팔꽃 닮은 갯메꽃과, 통보리사초를 처음 봤습니다.

  '키가 작은데 벌써 열매가 달렸네?'

춥지도, 덥지도 않은 알맞은 기온이 참 좋았습니다. 해변에는 개미 그림자도 보이지 않고, 오직 혼자였습니다. 여유로웠습니다.


  일곱 시, 배를 타기 위해 선착장으로 나왔습니다. 매표소 직원과 실랑이를 벌였습니다.

  "바다로 할인 적용해 주세요."

  "그게 뭔데요?"

  "직원이 그걸 모르세요?"

  "뭔진 모르지만, 적용 안 돼요."

  "여기 올 땐 적용 되던데, 지금은 왜 안 돼요?"

배를 타고 육지로 돌아가야 하기 때문에, 할인권 적용을 받지 않고 발권하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일단 배를 타고, 아홉 시 이후에 해운사에 전화해 문의했습니다.

  "죄송해요! 어르신이라서 할인권에 대해서 모르셔요."

  젊은 여직원이 대신 사과했습니다.

  "모르면 다인가요? 모르면 알아 보려고 해야죠!"

  "발권 취소하고, 재결제 해드릴게요."


  오 월의 따스한 햇살과 기온 덕분에 관광객들이 더러 있었습니다. 다들 섬 나들이를 온 여유로운 관광객들이었습니다. 목포로 돌아와 올해 첫 콩국수를 먹었습니다. 이제, 여름입니다. 



통보리사초
홍가시 나무(1)
홍가시 나무(2)
목포 유달 콩물에서 올 여름 첫 콩국수!^^


매거진의 이전글 [블야 섬&산 85좌] 신안 임자도 대둔산(320m)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