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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슈히 Jul 24. 2023

[블랙야크 백두대간] 함양 구시봉과 민령

  혼자보단 둘을, 둘보단 셋을 선호하는 편입니다. 다른 모임에서 등산 동행을 한 명 구했습니다. 한 살 터울의 남자인데, 팔 월 말까지 휴직 예정이라고 했습니다. 일요일의 일기예보를 보니, 열 시경에 비 소식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강수 확률이 애매했습니다.

  '육십 퍼센트이면, 아무래도 비 안 올 것 같은데......'

다랑에게 말했더니, 그는 걱정했습니다.

  "누나 몸이 아프니까, 그냥 쉬자."

하지만, 이번 산행을 연기하거나 취소하면 새 동행과의 만남도 역시 흐지부지될지도 모릅니다. 그럴 순 없습니다.

  "아냐. 그냥 견뎌야지. 일정대로 하자. 비 소식이 있으니, 출발 시간 한 시간 앞당기자."

  초면인 상대에게 준비물을 고지했습니다.

  "생수, 행동식, 등산화, 등산 양말, 스틱, 손수건, 우의, 모자, 선글라스, 여벌옷, 슬리퍼 등."

혹시 비가 올 수도 있으니, 우의를 챙겼습니다.

  일요일 새벽 다섯 시, 집결 장소에 셋이 모였습니다. 용용 씨는 마지막에 나타났습니다. 작달막한 그는 큰 안경이 얼굴의 절반 이상을 가리고 있었습니다.

  "앞에 타세요! 조수석에 앉은 사람은 졸면 안 되는 거, 알죠?"

가벼운 농담을 건넸습니다. 다랑에게도 미리 말해 두었습니다.

  "몸이 아프니까, 뒷좌석에서 잘게. 용용 씨랑 대화하면서 가도록 해."

 차 한 대를 타고, 육십령 휴게소로 향했습니다. 곧 잠이 들었습니다.

  눈을 뜨니, 어느새 목적지에 도착했습니다. 잘 잤습니다. 용용 씨가 흡연하러 멀찌감치 떨어진 사이, 다랑이 귀띔했습니다.

  "결혼 두 번 하셨고, 이혼하셨대. 첫째 부인이 낳은 열네 살 아들, 둘째 부인이 낳은 여섯 살 아들. 이렇게 둘을 혼자 키우신대."

깜짝 놀랐습니다. 용용 씨는 또래이긴 하지만, 한 살 어립니다.


  “첫 산행 갈 때 입었던 옷인데, 어때?”

  다랑이 물었습니다. 지난 유 월에 남원 수정봉 갔을 때 그가 입은 하늘색 반소매 등산복이었습니다. 그때와 지금은 무려 십 킬로그램이나 차이가 납니다. 가슴과 뱃살이 조금 줄어든 게 느껴졌습니다.

  “살 좀 빠졌네, 목표까진 아직 멀었지만.”

다랑은 아직 이십 킬로그램이나 더 감량해야 표준 체중이 됩니다.


  들머리인 육십령 휴게소는 이 주 전, 함양 할미봉을 등산할 때 왔던 곳입니다. 그때 같이 왔던 등생아가 잠시 떠올랐습니다.

  나무 계단을 따라 직진했습니다. 이정표가 보였습니다. 갈림길에서 우측으로 가면, 구시봉과 민령으로 갈 수 있습니다. 다랑이 앞장섰고, 그 뒤를 용용 씨가 따랐습니다. 생리통 때문에 괴로웠지만, 견뎠습니다. 여태 몸이 아파도, 가급적이면 쉬지 않고 등산을 다녔습니다. 한 주라도 쉬면, 등력이 떨어질 것을 염려했기 때문입니다. 

  '그나마 쉬운 곳이라서, 다행이다. 힘들어......'

 “너무 쉬운 곳이라서, 아쉽네요.”

용용 씨가 말했습니다. 대조적인 심정이었습니다.

  "초면에 힘든 곳 데려가면 욕할까 봐, 일부러 초급 산행지로 왔어요. 다음엔 더 어려운 곳으로 가요. 다랑이랑 둘이서 할미봉 다녀올래요? 난 몸이 아파서, 차에서 쉬고 있을게요."


  구시봉 정상에 도착했습니다. 용용 님은 블랙야크 앱을 설치한 후, 첫 인증에 성공했습니다.

  "다랑이 용용 님 멘토해줘. 그리고, 둘이 명산 100 같이 다녀. 가르치려면, 공부해야 되거든. 멘티 잘 키워 봐."

목표를 주고, 둘 사이를 이었습니다. 오히려 멘티 용용 님이 멘토 다랑을 앞지를 수도 있습니다. 다랑은 멘토 슈히를 우선적으로 보좌해야 하니까요.


  두 번째 목적지 민령으로 출발했습니다. 줄곧 내리막이어서, 수월했습니다. 민령 이정목에 곧 도착했습니다.


슈히: 용용 씨, 미쉐린 타이어 캐릭터 알아요? 다랑 첫인상이 그랬어요.

용용: 알죠. 지금도 그런 것 같은데요?

다랑: 살 좀 빼고 올 테니까, 우리 두 달 후에 만날까?

멘토: 네가 못 견딜 텐데?

다랑: 젠장......


  다랑은 발걸음을 재촉했습니다. 그저 웃었습니다. 만날 때마다 헤어짐을 아쉬워하는 그가 두 달간 그리움을 과연 버틸 수 있을까요? 다랑은 좋아하는 티를 안 내려고 무던히 노력했다고 하지만, 아마 용용 님은 눈치챘으리라 예상합니다.


  주차장으로 돌아가기 위해 구시봉으로 다시 돌아왔습니다. 육십 대 후반으로 보이는 어르신을 한 명 만났습니다. 그는 빨간색 반소매 상의와 반바지 차림이었습니다. 전반적으로 건강한 인상이었으나, 흡연자였습니다.

  "저거, 담배예요?"

바위 위에 떡하니 보이는 담배를 보고, 이맛살을 찌푸렸습니다. 담배인걸 몰라서 물은 게 아니라, 산에서 담배를 피우려고 가지고 온 거냐는 의도였습니다.

  

  용용 씨가 선두에 서고, 그 뒤를 따랐습니다. 다랑이 후미에 섰습니다.

  “초혼인 여자가 결혼하자고 하면, 어떨 거 같아요?”

용용 씨에게 물었습니다.

  “생각해 본 적은 없는데, 긍정적으로 고민해 봐야죠!”

  "그럼, 재혼인 여자는요?"

  "가족 관계가 복잡해져서 안 돼요. 아이들한테도 의사를 물어야 하고요."

그는 최근까지 연애 중이었는데, 헤어진 상태라고 했습니다. 실례될까 봐, 많은 것을 묻지는 못했습니다.

  "결혼 못 해봤는데, 하지 말까요?"

  "하지 마세요, 비추천."

  "다랑은 재혼하고 싶다는데요? 어서 뜯어말리세요!"

용용 씨도 분명 어두운 과거가 있을 테지만, 사랑하는 사람이 생기면 생각은 바뀔 수도 있습니다. 현재 다랑의 상태가 그렇거든요.

  "지인이 결혼하려는 여자가 마마걸이었대요. 결국 파혼했다네요."

  "조상님이 도우셨네요."

  "아, 그런 거예요?"

  "장모님의 간섭 속에서 세 명이 함께 사는 꼴이 될 수도 있어요." 

과연, 두 번씩이나 다녀온 사람은 선견지명이 남다릅니다.


  무사히 하산을 마쳤습니다. 

  "우리, 뭐 먹지?"

다랑이 냉면을 추천했습니다. 휴게소에 들렀을 때, 다랑이 델리만쥬를 사줬습니다. 달콤했습니다. 그런데, 비가 많이 왔습니다.

  “누가 냉면 먹자고 했지?”

  “.......”

  회냉면과 물냉면, 메밀만두를 먹었습니다. 회냉면이 너무 달아서, 다랑이 먹던 물냉면과 바꿔 먹었습니다. 다랑은 여태 빙수를 먹지 못했습니다. 용용 씨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빙수 사줄 거야?"

다랑이 물었습니다.

  "그래!"

후식까지 맛있게 먹었습니다.


  귀가 도중, 한 산악회에서 강제 퇴장 당한 것을 알아차렸습니다. 오는 팔 월에 울릉도와 독도를 가기 위해서 공지를 올렸는데, 모임장의 태도가 석연치 않았습니다. 장려는커녕 오히려 껄끄러운 반응이었습니다. 이 모임에서는 회원이 셋 이상 모이면 산행을 진행할 수 있는데, 두 명만 모집된 상태였습니다.

  "지인 한 명 초대해도 돼요?"

모임장에게 묻자, 그는 단호히 거절했습니다.

  "안 돼요."

  '본인 친구는 같이 활동하면서, 왜 내 지인은 못 부르게 한담? 별꼴이네.'


  소식 씨에게 전화했습니다. 모임장의 친구입니다.


  슈히: 소식 씨 번호, 맞죠?

  소식: 누구세요?

  슈히: 슈히요.

  소식: 내 번호는 어떻게 알았어요?

  슈히: 본인이 단체 대화방에 올렸잖아요. 쓸모 있을 것 같아서, 저장했죠.

   소식: 무슨 일 있어요?

  슈히: 저 강제 퇴장됐어요. 모임장이 강퇴시켰던데?

  소식: 저 지금 일어났어요.

  슈히: 울릉도, 독도 공지 올린 거 봤죠?

  소식: 네.

  슈히: 세 명 중 한 명이 취소해서, 둘이거든요. 그래서, 모임장한테 지인 초대해도 되냐고 물었더니,

         안 된대요. 근데, 소식 씨는 모임장 친구잖아요.

  소식: 네.

  슈히: 모임장 친구는 되고, 회원 친구는 안 돼요? 이거 독재 아니에요?

  소식: 무슨 말씀하시는지 모르겠네요.

  슈히: 뚜렷한 이유가 없잖아. 본인 친구는 되고, 내 친구는 활동하면 안 되고? 이상하지 않아요?

         납득이 안 돼.

  소식: 뭐, 가입하면 되는 거 아니에요?

  슈히: 가입 못 하게 했다니까?

  소식: 그냥 가입하면 되죠. 그걸 이재한테 굳이 물어볼 필요는 없을 텐데.

  슈히: 아무튼, 강퇴됐어요. 황당하지.



  모임장에게 전화했습니다.


  이재: 강퇴시킨 이유는, 친구 초대해서예요.

  슈히: 신입 회원이 내 친구라는 증거 있어요?

  이재: 울릉도 공지에 참석 댓글을 달은 게 이해가 안 되거든요.

  슈히: 물어보지 그랬어요? 둘이 친구냐고?

  이재: 왠지 느낌이 친구인 것 같았어요.

  슈히: 잘못짚었어요.

  이재: 예전부터 사람들이 말 많았어요.

  슈히: 뭐라고요?

  이재: 슈히 님 욕을 한 건 아니고.

  슈히: 욕을 한 것 같은데요?

  이재: 욕한 건 아니에요. 약간 독특하시다고 생각은 하고 있었는데, 이 참에 정리한 거예요.

          특별한 나쁜  뜻은 없어요.

  슈히: 그럼, 본인 발로 나가라고 하는 게 낫지 않을까요? 이렇게 강제 퇴장을 시켜야겠어요?

         네 명 인원  맞춰서 울릉도, 독도 숙소 예약 다 해놓고 배표 끊어 놨는데? 제 입장은 어떻게 되죠?

  이재: 글쎄요.

  슈히: 가지 말라고 처음부터 말을 하든가. 한희 씨는 가겠다고 했잖아요.

  이재: 한희한테도 사정 다 얘기했어요.

  슈히: 내가 준 블랙야크 100좌 패치, 돈 돌려줄 테니까 나한테 다시 보내세요.

  이재: 알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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