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영에서 처음으로 묵었던 게스트하우스는 저렴하지만, 방음이 엉망이었다. 옆 방에서 인기척이 들려서, 마치 타인과 한 공간에 있는 듯한 느낌이 드는 그런 곳이었다. 게다가, 숙소에 짐을 두고 온 걸 귀가한 후에서야 깨닫고 황당했다. 숙소 주인에게 전화해 문의하니, 답변이 가관이었다.
“혹시, 거기 제 짐 있나요?”
“네, 있어요.”
“짐을 두고 온 걸 귀가한 후에나 알았네요! 왜 안 알려 주셨어요?”
“다시 찾으러 올 줄 알고, 연락 안 했죠.”
“네? 오전에 퇴실하는 체계인데, 그럴 리가 있나요? 짐을 보관하겠다고 부탁한 것도 아니었잖아요. 짐이 남아 있으면, 전화 한 통만 해주지 그러셨어요!
새벽에 부랴부랴 배 타러 나가느라, 짐을 두고 온 걸 미처 몰랐어요. 물건을 잘 챙기지 못한 건 본인 잘못이지만, 연락해서 알려주셨어야죠. 운영자시잖아요!”
어차피 가야 하는 여정이니, 택배로 부쳐 달라고 부탁하지 않았다. 부탁하고 싶지도 않았고, 택배비가 아까웠기 때문이었다.
일월 내내 통영에 갔고, 총 여덟 개의 섬을 다녀왔다. 주말마다 섬 두 개씩 꼬박꼬박 다녀온 셈이다. 그런데, 통영에서 귀가하는 고속도로에서 과속 과태료 고지서가 발급됐다.
기억이 전혀 나지 않는 걸 보니, 아마 깜빡 졸음운전을 중이었나 보다. 장거리 운전하느라 너무 피곤한데, 벌금까지 물어야 하니 더 싫었다. 유류비, 통행료, 숙박비, 식대 그리고 승선료까지 합산하면 어마어마한 액수였다.
통영에 너무 자주 간 나머지, 이제 지겨웠다. 통영은 제발 그만 가고 싶었다. 허나, 아직 가지 못한 섬이 하나 남아 있었다. 바로, 통영 두미도였다.
배 시간을 맞추지 못해서 한 번, 돌아오는 배가 결항될 수도 있다고 해서 두 번, 다음날에도 같은 이유로 세 번씩이나 못 갔다. 그토록 두미도는 정말 가기 어려운 섬이었다. 떠나는 배와 돌아오는 배는 하루에 오직 한 대씩뿐이었다.
토요일, 여수 바다를 감상하며 카페에서 시간을 보냈다. 거제인 밥줘가 곁에 있었다.
“내일 시간 있어?”
“사천으로 등산 가려고 했는데, 확인해 보니 이미 가본 곳이네요. 안 가려고요.”
“그럼, 통영 두미도 가는 건 어때?”
“그럴까요.”
원래 본가에 가야 했지만, 어머니와의 갈등으로 인해 일정이 취소됐다. 재빨리 통영항 인근 숙소를 검색했다. 아니나 다를까, 주말이라서 게스트하우스는 모두 예약 마감된 후였다. 모텔이나 호텔은 숙박비가 지나치게 과했다.
“하루 재워 줄 수 있어? 빈방 있지?”
밥줘에게 넌지시 물었다.
“부모님이 계셔요. 빈방이 있긴 한데, 난방을 안 해서 추워요. 일단, 아버지께 전화해서 허락 먼저 맡을게요.”
그러나, 밥줘의 아버지는 연락이 닿지 않았다.
“이따 전화 주시겠죠.”
시간이 흘러도, 전화는 오지 않았다.
“나 어떡해?”
조바심이 났다.
“일단, 여수에서 출발해요. 허락 안 맡고, 그냥 가도 돼요.”
여수에서 통영까지 약 두 시간이 걸렸고, 각자 주행해서 통영에서 밥줘와 재회했다.
“숙박비 대신, 저녁 식대를 낼게.”
짬뽕을 먹고, 짐을 챙겨 밥줘의 차에 탔다. 그리고, 그가 사는 거제로 이동했다. 도착하니, 깜깜한 밤이었다. 워낙 외진 시골이라서, 인적이 없었다.
밥줘와 처음 만난 건 지난달이었다. 그간 두 번 만났다. 이번이 세 번째 만남인데, 하룻밤 신세를 지려니 가시방석 같았다. 다행히 그의 부모님은 특별히 반응을 보이거나, 질문하지 않았다.
“집이 낡았다고 흉만 안 보면, 하루 묵어가게 해줄게요.”
거실에서 어머니가 빨랫감을 개며 말했다.
“집 좋은데요.”
거실을 둘러보며 말했다.
애초에 계획하지 않은 터라, 여벌 옷이 없었다. 밥줘에게 옷을 빌려 입었다. 남자가 입던 옷을 입으려니, 민망했다. 밥줘가 놀렸다.
“수면 바지가 잘 어울리는데요?”
출발 두 시간 전부터 기상해서, 나갈 채비를 했다. 세수하고, 옷을 입고, 짐을 챙겼다. 밥줘가 일어나서, 물을 끓였다. 컵라면을 나눠 먹었다.
“누나는 원래 하루 세끼를 다 먹어요?”
“응. 한 끼라도 굶으면 병나. 예전에 그런 적 있어. 넌 하루에 두 끼만 먹어?”
“네. 아침은 안 먹어요.”
“그럼, 뇌세포가 죽어.”
새벽 여섯 시에 길을 나섰다. 통영 두미도의 배가 정상 출항하는지 문의하려고 전화했으나, 아무도 받지 않았다. 덜컥 겁이 났다.
‘통영항까지 갔는데, 결항이면 어쩌지? 불안하다…….’
전화를 몇 번 더 했으나, 묵묵부답이었다. 밥줘는 통영항 주차장에 주차하지 않고, 도로변에 주차했다. 하차 후, 운동화를 벗고 등산화로 갈아 신었다.
“가서, 정상 출항하는지 물어보고 올게요.”
밥줘가 혼자 여객선 터미널로 들어갔다가 돌아왔다.
“배 간대요.”
“오, 진짜? 가는 배, 오는 배 다 정상 출항이래?”
“네.”
“빨리 가자!”
할인권 바다로를 적용하면, 승선권 할인을 받을 수 있어서 이득이다. 그런데, 빕줘는 바다로를 결제하지 않았다.
“거제시민인데, 할인 안 되나요?”
밥줘가 질문했다.
“네, 안됩니다.”
발권 직원이 대답했다.
“왜 구매 안 했어? 할인 못 받잖아.”
안타까웠다.
“지난번 거제 저구항에선 할인되던데…….”
“거긴 거제라서 할인됐나 보지. 여긴 통영이잖아. 너 차 안 옮길 거야? 주차 금지 구역 노란 선인데, 과태료 고지서 나올 수도 있어. 여객선 터미널 주차비는 오천 원이야.”
그때, 전화가 왔다.
“여보세요?”
“빨리 나오세요. 출항합니다!”
검표 직원이었다.
“주차 다시 하고 오면 안 될까요?”
밥줘가 직원에게 물었으나, 그는 재촉만 할 뿐이었다.
떠나는 배를 붙잡을 수 없으니, 불안한 마음은 마찬가지였다. 결국, 밥줘는 재주차하지 못한 채 배에 올랐다. 그게 화근이었다.
통영 두미도 북구항에 도착했다. 천황봉에 오르는 이들은 우리 말고도 더 있었다. 육십 대 이상으로 보이는 부부 두 쌍이었다. 한 쌍은 울산, 다른 한 쌍은 삼천포에서 왔다고 했다. 그들은 투구봉으로 등산을 시작했고, 우리는 다른 길을 선택했다.
인적이 드물었고, 목줄이 묶인 개들이 보였다. 우리를 보더니, 개들이 컹컹 짖어댔다. 시끄러웠다. 밥줘에게 결혼에 대한 개인적인 의견을 말했다.
“결혼하기 전에 계약서를 쓰는 거야. 서로 원하는 항목을 조율해서, 계약서를 나눠 갖는 거지. 그리고, 계약 기간은 평생이 아니라, 유효 기간은 일 년.
매년 결혼기념일이 다가올 거 아냐? 그때, 서로 별 말 없으면 계약 기간 자동 갱신되는 거고, 아니면 합의해서 이혼하는 거지.”
그는 폭소를 터뜨렸다.
“아, 이건 내 생각은 아니야. 결혼 안 해봐서 몰라. 책에서 읽었어. 설득력 있던데.”
햇살이 따사로웠다. 무엇보다, 혼자가 아니라서 좋았다. 남구항을 향해 임도를 따라 약 한 시간 걸었다. 혹시 길을 잘못 들어 헤맬까 봐, 줄곧 긴장했다.
이정표는 정비한 지 얼마 안 된 새것들이었다. 부서지거나 닳은 부분 없이 깔끔했고, 글씨도 선명했다. 등산로 정비도 잘 되어 있었다. 힘든 구간은 특별히 없었으나, 삼 일 내내 연달아 등산하려니 영 기운이 없었다.
“잠깐 앉아서 쉬자. 우리 시간 많아!”
그런데, 갑자기 누런 개 한 마리가 달려왔다. 잘생긴 수컷이었다. 간식을 나눠주려 했으나, 입맛이 까다로웠다. 전혀 받아먹지 않았다. 정상에서 한 아주머니가 오징어를 개에게 주었으나, 누렁이는 그것도 역시 먹지 않았다.
“왜 안 먹지?”
우리 모두 의아했다. 아주머니는 누렁이에게 이것저것 주며 먹어 보라고 했다.
“달걀흰자는 좋아하네.”
누렁이는 빵도 거부하고, 유일하게 달걀흰자만 먹었다.
“고 녀석, 까다롭네!”
아저씨가 말했다.
노부부들이 등산했던 투구봉으로 하산했다. 노부부들은 우리가 등산했던 곳으로 하산했다. 듣자 하니, 투구봉은 굉장히 힘들고 험하다고 했다.
“오, 그럼 저는 안 갈래요!”
“그래도, 여기까지 왔는데 한번 가보지 그래요. 경치가 다르잖아요.”
“음, 알겠어요.”
조언을 받아들였다. 아니나 다를까, 과연 힘들었다. 가파른 경사와 바위가 즐비했고, 쉴 수 있는 평지는 도무지 보이지 않았다.
“오늘 통영 졸업식인데, 졸업 시험 난이도가 최상급이네.”
한 발 한 발 조심히 디디며, 그 와중에도 재치를 잃지 않았다.
“아까 다른 분들은 여길 등산하신 거네요? 힘드셨겠어요. 차라리, 하산으로 선택하길 잘한 것 같아요.”
밥줘가 말했다. 다행히, 거리가 짧아서 하산은 금방 끝났다. 등산 약 세 시간, 하산 약 한 시간이 소요됐다. 이제 막 정오가 지났을 뿐이었다. 아직도 배가 오려면 세 시간 이상이나 남았다.
“여기 누워서 쉬다 가자. 일찍 내려가봤자, 갈 데도 없잖아.”
입고 있던 점퍼를 벗어 바닥에 깔고, 드러누웠다. 피곤해서 한숨 잘까 싶었지만, 잠이 안 올 것 같았다. 파란 하늘과 앙상한 나뭇가지를 올려다보며 한낮의 여유를 즐겼다.
“심심한데, 끝말잇기 할래?”
밥줘는 물타기라는 단어를 말했다.
“그게 무슨 뜻인데?”
검색하니, 실제로 있는 단어였다.
“이런 단어가 있어? 처음 알았네! 너 의미도 모르고 막 던진 거지? 이산화 나트륨.”
결과적으로 두 번 모두 승리했고, 별 어려움은 없었다.
“배 못 타면, 어떡해요?”
밥줘가 물었다.
“안돼, 배 탈 거야. 네가 어제 나한테 한 짓 생각하면, 이 섬에 더 머물면 안 될 것 같아!”
“왜요?”
“네가 나 덮칠까 봐.”
“추워서 그런 거였어요.”
“허리는 왜 안아? 그럼 안돼!”
“남자의 본능인데……. 안마해 드릴까요?”
“응.”
수작 부리는 게 뻔했지만, 군말 없이 엎드렸다. 원래 안마받는 걸 좋아하는 편이다. 밥줘가 손으로 여기저기 꾹꾹 눌렀으나, 하나도 안 시원했다.
“손도 안마할까요?”
“끼 부리네.”
“계속 끼 부릴 거예요.”
다시 돌아누웠다. 밥줘는 손을 만지작거리나 싶더니, 이내 관뒀다. 그냥, 손이 잡고 싶었던 모양이다.
밥줘는 내내 불안해했다. 통영항으로 돌아가는 배 안에서 과태료 문자를 보며, 안절부절못했다. 문자가 무려 네 통이나 왔다고 했다.
“좀 보태줄까?”
안쓰러워서 물었다.
“아니에요.”
물줘가 거절했다.
“밥 살게. 복국 어때?”
마침, 가려고 점찍은 복국 맛집이 있었다. 그러나, 서호 시장 대부분의 식당은 점심 장사만 하고 폐점하는 모양이었다. 그래서, 그냥 가까운 복국 식당으로 들어갔다. 참복국이 졸복국보다 이천 원 더 비쌌다.
“어떤 차이점이 있나요?”
주인아주머니에게 질문했다.
“참복국은 국물이 맛있고, 졸복국은 생선이 맛있어요. 식초를 넣으면, 국물이 더 시원해요.”
참복과 졸복은 생김새가 달랐다. 맛은 별 차이가 없었다. 무슨 차이인지, 가늠하기 어려웠다.
“끝말잇기 두 번이나 이겼으니까, 진 사람이 후식 사.”
카페 사장에게 상호 뜻을 물으니, 슈크림처럼 달콤한 바다라는 뜻이었다. 때마침 일몰이 지는 시간이었다. 밥줘를 처음 만나기 전, 그가 내게 야경 보자고 제안했던 말이 떠올랐다. 아름다운 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