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밀한 산행
다랑, 서비와 함께 셋이서 만났다. 목적지는 문경 장성봉, 블랙야크 인증지이다. 곧 백두대간 75좌를 달성할 예정이었고, 순식간에 80좌를 돌파할 기세였다. 다랑과 서비는 첫 만남이었다. 서로 인사를 나누고, 간단히 자기소개했다.
"안녕하세요. 슈히 누나와 아는 동생, 서비예요. 산악회에서 만났어요."
"내 생일에 가방 사준 애야. 전에도 말했지? 서비가 나한테 관심 있는 줄 알고, 얼마나 놀랐게? 근데, 다른 여자랑 사귀더라고!"
"안녕하세요. 슈히 남자 친구 다랑이에요."
"음, 내가 연장자로군. 이번엔 다랑이 막내가 아니네?"
들머리에서 플래카드를 발견했다. 빨간색으로 백두대간 출입 통제 구간이라고 쓰여있었다. 주위를 둘러보니, CCTV나 감시원은 없었다. 불안한 마음을 안고 발걸음을 옮기자, 다른 이들이 다녀간 흔적이 보였다. 진입 금지 경고문이 있었으나, 누가 일부러 그런 건지 아예 바닥에 엎어져 있었다. 아마, 많은 사람들이 몰래 다녀가는 구간인 듯 보였다.
"만약 걸리면, 과태료는 각자 냅시다. 남을 탓하거나 원망하기 없기!"
"에이, 설마 걸리겠어? 소리소문 없이 남들도 다 왔다 갔더구먼......"
"그러게. 그러니까, 인터넷에 정보를 공유했겠지. 그 정보를 보고, 우리가 여기 모인 거고."
편도 약 1시간 거리라서, 가벼운 마음으로 올랐다. 백두대간은 종주 구간이 많아서, 이런 날로 먹기 인증지는 드물다. 그래서, 일부러 아껴둔 장소이다. 다랑과 단둘이 다닐 땐 종주하고, 산악회원이나 지인과 어울릴 땐 이렇게 쉬운 곳을 선택하는 편이다. 타인을 괜히 힘든 곳으로 끌고 가면, 영영 못 보는 수가 있기 때문이다.
산행 거리가 짧은 만큼, 가팔랐다. 비탈길과 험난한 바위 구간을 맞닥뜨렸을 땐, 아찔했다. 두 남자의 도움을 받아 힘든 지점을 무사히 지났다.
서비와는 작년에 둘이서 인천 섬을 산행했다. 원래 다랑과 가려고 했지만, 안개가 심해서 배가 결항되고 말았다. 인천까지 갔지만, 헛걸음했다. 귀가 후 서비에게 연락하자, 마침 다음날이 휴무라고 해서 단둘이 가게 됐다. 그런데, 다랑이 그걸 굉장히 질투했다. 그는 출근해야 돼서, 자리하지 못했다.
"어! 슈히 누나, 혹시 이 분이 누나 남자 친구에요?"
문갑도 산행을 마치고, 육지로 돌아가는 배를 기다릴 때였다. 서비가 자신의 SNS를 보여주며 물었다. 다랑이 서비의 계정을 검색해 연락한 모양이었다.
"남자 친구가 맞긴 한데......, 너한테 왜 연락했대? 아, 무서워! 스토커 같아."
다랑은 질투의 화신이었다. 만약, 여자 친구가 다른 남자와 단둘이 여행을 간다면 남자 친구 입장에서는 상식적으로 당연히 질투하리라. 일반적인 반응이긴 하지만, 그래도 부담스러웠다. 다랑의 질투심은 절제를 몰랐다.
몇 달 전, 서비와 문경 장성봉에 가기로 약속했을 무렵이었다. 다랑에게 참석 여부를 물었더니, 그는 다짜고짜 화를 냈다.
"둘이 마음대로 정해 놓고, 나한테 통보하는 거야?"
평소 온순한 그의 성품과는 너무 다른 모습이라서, 질겁했다.
"...... 이게 그렇게 화낼 일이야? 서비는 교대 근무자라서, 주말에 쉬는 날이 드물어. 그래서, 서비랑 둘이 먼저 상의하고, 너한테 나중에 전한 건데......"
출국하기 며칠 전에 벌어진 일이었다. 마음 같아선, 예약한 해외여행 전부를 당장 엎어버리고 싶었다. 하지만, 위약금이 있기에 쉽사리 취소할 수 없었다. 이 사건에 대해 서비에게 의견을 물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