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니 학원에서 일하게 되면서 가장 힘들었던 건 일이 학년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이다. 주고 고학년이나 중학생을 가르쳐왔던 나는 욕과 몸싸움, 소음에 익숙했다. 그런데 학원에서 만난 이 조그만 사람들은 너무 달랐다. 큰 녀석들에게 일삼던 직설과 무심함이 이들에게는 허용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들의 감정은 지나치게 섬세해서 작은 충격에도 심하게 출렁였다. 나는 내가 뭘 했는지도 모르는 채 눈물을 뚝뚝 흘리는 아이를 바라보거나 하트로 가득한 러브레터를 받기도 했다. 그 예상할 수 없는 감정의 진폭 앞에서 나는 자주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언니, 나 아무 짓도 안 했는데 쟤가 왜 저러지?”
내가 갑자기 토라져 책상에 엎드린 아이를 어쩌지 못하고 언니에게 달려가면, 언니가 웃으며 교실로 들어와 아이를 데리고 나갔다. 그러면 아이는 몇 분도 채 지나지 않아 말짱한 얼굴로 들어오곤 했다. 아무 짓도 안 한 나는 한동안 억울했다. 아무 짓도 안 한 게 원인이라는 걸 알게 되기까지... 그 후로는 또 한동안 소인국에 떨어진 걸리버처럼 조심스러운 마음으로 허리를 굽히고 얼굴을 가까이 갖다 대고, 귀를 기울이는 연습을 해야 했다.
섬세함이 가까스로 몸에 익고 순조로운 날들이 이어지자 이번엔 새로운 변수가 생겼다.
민하는 자세히 들여다보는 것만으로는 해결되지 않는 아이였다. 도전적인 눈빛으로 나를 빤히 바라보며, 마치 저 아둔한 인간의 인내심이 얼마나 하찮은지를 까발리겠다는 듯 시비를 걸어왔다.
“선생님, 모르겠어요.”
“여기 이 부분을 읽어 봐.”
“읽어 봤는데요.”
“읽었으면 답이 보일 텐데.”
“안 보이는데요.”
나는 숨을 한번 깊게 들이쉬고, 문제의 키워드에 파란 색연필로 동그라미를 치며 설명을 시작한다.
“자 봐봐. 글에서 사실과 의견을 나누라고 했지……”
“알겠다! 3번이요.”
“문제를 먼저 읽고……”
“4번?”
“……”
“5번?”
“아니! 문제를 먼저 읽어야 된다고!”
기어이 목소리가 높아지면 민하는 “아, 됐어요. 혼자 할게요.”하면서 자리로 돌아간다. 그리고 일 분도 안 지나선 또 “선생님!”하고 부른다. 수업 시간 내내 같은 패턴이 되풀이되고 나는 점점 통제 불능의 지경으로 빠져든다.
마지막 순간에 겨우 정신이 들면 잠깐 교실을 빠져나와 물을 마시며 숨을 고른다. 가끔은 때맞춰 언니가 교실로 들어오기도 한다. 기어코 폭발하듯 화를 낸 날은 학부모의 컴플레인을 걱정하며, 고작 2학년한테 휘둘린 나 자신에게 환멸을 느끼며 머리를 쥐어뜯는다. 역시 이런 일은 적성에 맞지 않는다며, 언제쯤이면 이 고단한 일을 때려치우고도 먹고 살 수 있을까, 로또를 살까 하면서...
민하와의 끝없는 신경전이 새로운 국면을 맞은 건 여름이 한창 정점으로 치달을 무렵이었다. 여름방학을 앞두고 1학기 교재를 마무리하느라 정신없이 수업을 몰아치던 중 민하가 비즈로 만든 팔찌를 자랑하듯 팔을 불쑥 내밀었다.
“뭐야, 이쁘네.”
무심결에 대답이 나왔다. 너무 바빠 이건 또 무슨 종류의 도발인지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내가 만들었어요.”
뾰로통한 표정이었지만 의외로 민하의 눈빛이 선선했다. 그 바람에 나는 또 휘둘리고,
“진짜? 마음에 드는데. 나도 만들어 줘.”하고 채점하던 손을 내밀었다.
“만들어 주면 할 거예요?”
“응! 아니, 봐서 마음에 들면.”
“무슨 색?”
“주황색.”
그러곤 다음날 민하는 정말 마음에 쏙 드는 비즈 팔찌를 포장까지 예쁘게 해서 가지고 왔다. 그 자리에서 포장을 풀어 팔찌를 해보았다. 손목에 꼭 맞게 잘 어울렸다. 자기가 직접 만들었다고 생색을 내는 민하 앞에서 그동안 쌓인 감정은 어디로 갔는지 나는 팔을 이리저리 움직이며 바보처럼 헤헤 웃었다.
그렇다고 우리 사이에 신경전이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그야말로 새로운 국면을 맞이한 것일 뿐.
여전히 민하는 문제도 읽지 않고 문제집을 들고 와선 설명을 할라치면 딴청을 부렸다. 내 목소리가 다시 높아지면 슬그머니 팔목을 끌어당기며, “이 하트가 가운데로 가야 된다고요.”하고 팔찌를 선물한 게 누군지 기억하라는 듯 은근히 압력을 가한다. 그런다고 질 내가 아니다.
“됐어, 그럴 거면 도로 가져가.”하고 빼내는 시늉을 한다.
“아, 알았어요!”
그제야 마지못해 대답이 나오고 나는 속으로 히죽 웃는다.
민하는 팔찌가 안 통하자 작전을 바꿔 못 알아듣는 척으로 재도전을 한다.
“네? 뭐라고요?”
“글쓴이가! 말하려고 하는 것은! 무엇이냐고! 여기를 읽어봐, 여기! 여기!!!”
“왜 화를 내고 그래요? 엄마한테 일를까?”
“일러라, 일러! 나도 엄마 있거든? 우리 엄마가 나이 훨씬 많거든. 완전 할머니거든! 그리고 내가 너네 엄마보다도 더 나이 많거든!”
유치뽕짝이 따로 없다. 나이 많은 게 뭐 자랑이라고.... 컴플레인이고 뭐고 간장 종지 만 한 속을 다 내보이며 바락바락 화를 내버리고 만다. 얄밉게도 그 순간에 민하는 씨익 웃으며 제자리로 돌아간다. 도무지 저 사악한 작은 인간을 이길 수 없어서 속이 상한 나는 입이 댓발 나온 채로 5학년 수업까지 이어간다.
한 시간 뒤 옆 반에서 영어 수업을 마친 민하가 문을 빼꼼 열고 굳이 인사를 한다.
“선생님, 잘 있어요.”
공손함이라곤 찾아 볼래야 찾아 볼 수 없다.
“잘 가.”
나도 마지못해 대답한다.
어떤 날은 교실 끝까지 걸어 들어와 어깨를 탁 치면서 “내일 봐요.” 하기도 한다. 그러면 나는 죽는 시늉을 하며 “아야! 학원 폭력으로 신고해야겠다.”하고 약을 올린다. 민하가 유일하게 당황하는 순간이다. “아니! 알았어요. 미안해요.” 하곤 재빨리 도망친다.
오늘도 민하는 언니, 오빠들에게 둘러싸인 나를 찾아왔다.
“갈게요.”
모처럼 인심 쓰자는 마음으로 팔을 뻗어 안아주려고 하자 기겁하며 나를 밀친다.
“뭐예요. 징그럽게.”
“그럼 어쩌라고! 인사를 하지 말던가.”
내가 투덜대자 “그래요, 그래.” 하며 마지못해 몸을 살짝 기울인다.
“잘 가~”
“내일 봐요.”
우리는 마치 싸우고 방금 화해한 연인처럼 인사를 했다. 아마 내일도 그럴 것이다. 이제 나는 문밖으로 사라지는 저 작고 되바라진 악마를 미워하는 건지 사랑하는 건지 알 수가 없게 되었다.
*글 중 아이의 이름은 실명이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