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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광섭 Jul 18. 2019

브런치 글을 도둑맞았다

누가 내 글을 가져갔을 때 대처하는 법


브런치 글을 도용당했을 때 대처법을 알리기 위해 공익적 목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당사자를 특정할 수 없도록 일부 지칭은 변경하였습니다.


저작권 침해를 당했다. 그리고 협박(?)도 당했다. 하지만 범인이 누군진 말할 수 없다. 우리나라는 법이 혼란해서 사실을 말해도 명예훼손이라며 잡아가기 때문이다. 마음 같아선 명탐정 코난처럼 모리 탐정 아저씨를 때려눕히고(?) 의자 뒤에서 녹음기라도 틀어두고 싶다. 그런데 마취총도 없고 아저씨도 없으니 안타까울 따름이다.

이 세상 모든 사건이 그렇듯 이 일도 예기치 못한 곳에서 시작됐다. 하루는 행사 초청을 받아 조금 멀리 떨어진 공유 오피스를 찾아가고 있었다. 오피스가 워낙 골목 사이에 있어서 지도 앱은 쓸모가 없었고 네이버 블로그 선생님들의 탐험기로부터 도움을 받아야 했다. 그러다 우연히 얼마 전 있었던 공유 오피스 행사의 포스팅을 보게 되었다.

상세 정보를 찾기 위해 포스팅을 스르륵 내리던 중 어딘지 익숙한 화면이 눈에 들어왔다. 내가 브런치에 작성했던 파이썬 분석 결과였다. 그런데 놀라운 점은 웬 모르는 어머니 뻘의 멘토 한 분이 그 피피티를 세워두고 열띤 강연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분명 나에게 자료 사용을 허락받은 적이 없는 분이었다. (그동안 독자분들이 자료 사용을 요청하시면 모두 허락해드렸지만 이분은 처음 보는 분이었다.)

그분의 강연 내용은 더욱 놀라웠다. 당시 내가 만든 자료는 조금 까다로운 웹 크롤링과 그에 대한 자연어 분석 코드였다. 그런데 그분은 그걸 머신 러닝으로 강연하고 계셨다. 수많은 청년들이 강연을 듣고 끄덕댔을 것을 생각하니 블랙코미디가 따로 없었다. 다음날 곧바로 오피스 매니저에게 전화를 했다. 그리고 자료가 도용당한 화면을 보내주었다. 오피스 매니저는 즉시 도용 사실을 확인했다. 곧이어 도용자(실장)로부터 짧은 사과 메일이 도착했다. 나는 1. 전화로 정식 사과하시고, 2. 강연료는 자선단체에 기부하시거나 오피스에 반납하시면 더 이상 문제 삼지 않겠다고 답했다. (재능 기부라고 답변하셨지만 강의료가 있는 강연이었다)


하루가 지나고 실장님(도용자) 밑에서 일하는 과장님 한 분의 전화가 왔다. 그분의 첫마디는 이거였다. '실장님께서 사과하신다니 저희 사무실로 오시죠.' 순간 느낌표와 물음표가 동시에 떴다. 그분은 피해자인 나에게 가해자를 찾아오라 하셨다. 나는 곧바로 응수했다. '네? 제가 거길 왜 가요; 잘못한 사람이 찾아와야죠. 그게 맞지 않나요?' 그러자 그분은 더 재밌는 말을 하셨다. '오셔서 실장님 멘토링도 받으시면 좋죠, 얼마나 좋은 기회예요!'


멘토링이라구요?


껄껄, 이건 대체 무슨 자신감이란 말인가. 자료를 도용한 사람이 원작자를 멘토링 하겠다니. 어처구니가 없었지만 목소리를 가라앉히고 차분히 대답했다. '제가 왜 법을 어긴 사람의 멘토링을 받아야 하죠? 지금 뭔가 오해가 있으신 것 같아요.' 이 말은 그분을 화나게 한 것 같았다. 곧이어 정말 영화 같은 대답이 돌아왔기 때문이다. '당신 내가 조사해보니까, 작년 OO 신입사원이던데 맞죠?'

잠시 꽤 성공한 인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나이에 뒷조사도 당해보다니. 그 뒤로 이어진 대화란 29금 수준의 점입가경이었다. 나는 더 이상 당사자도 아닌 벽창호와 얘기해서 득 볼 게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화를 꾹 누르며 '본인이 직접 전화하시든지 아니면 법대로 조치하겠습니다' 말씀하고 통화를 끊으려 했다. 그러자 그분은 100만 볼트를 맞고 날아가는 로켓단처럼 '지금 당신 행동이 협박죄란건 알고 있냐'며 의미심장한 마무-리 멘트를 날리셨다. (쓰고 보니 나도 믿기지 않지만 진짜다.)

하지만 얼마 안가 상황 파악이 되셨던지 실장님이 직접 전화를 거셨다. 그분은 10분 동안 '나는 구글링 한 것을 썼을 뿐이다'(??) 설명하시곤 기계적으로 미안하다 하셨다. 흥미로웠던 것은 그분의 말투였다. 그분은 통화하면서 꼭 '나'라는 단어를 애매한 존대와 섞어 쓰셨다. 그러니까 피해자는 '저'라고 하고 가해자가 '나'라고 한 것이다. 껄껄. 무슨 대통령이랑 말하는 줄 알았다. 이게 존경받는 오피니언 리더의 삶이구나. 일류는 잘못한 순간에도 당당하구나. 그동안 뉴스에 등장하던 수많은 일류들이 이런 마음이었구나 이해할 수 있었다.

내가 바란 건 변명 없는 사과와 부당하게 번 돈을 기부하는 것뿐이었다. 그런데 실장님과 부하직원은 도리어 반말을 하시거나, 나에게 찾아오라 하셨고, 협박죄까지 말씀하셨다. 그리고 끝끝내 정말 억지로 사과하셨다. 요지경인 세상이다. 3일 전 우여곡절 끝에 정리된 사과 메일을 받았다. 그리고 오피스 측에 다시 한번 장문의 상소문을 쓴 뒤에야, 오늘 겨우 수익금 반납 통보를 받았다.

순둥이 원작자들(브런치 작가)은 보통 자료 도용을 항의할 경우 도용자가 곧바로 사과할 거라 생각한다. 하지만 불행히도 자료를 훔친 사람에게는 뺏긴 사람이 생각하는 것과 동일한 상식이 없다. 이럴 때는 1. 내용 증명서를 작성하여 메일로 전달하고 (검색하면 나온다, 변호사가 싸인해주면 좋다.) 2. 가까운 경찰서에 가서 고발장을 작성한 뒤, 3. 나의 요구사항을 명시하고 형사 절차를 기다리시면 된다. 복잡하게 가해자와 연락하고 자시고 하는 것보다 이게 깔끔하다.

이 바보가 대화로 문제를 해결하려 했던 뻘짓이 다른 분들의 시행착오를 줄여주길. 그래서 순진한 사람이 더 이상 도용자에게 당하지 않길. 결국엔 좀 더 바르고 깨끗한 세상이 되길 바란다. 더불어 멘토를 찾는 청년들에게는 '멘토는 스스로 멘토라고 말하지 않는다는 점', '좋은 멘토는 가르치려 하지 않고 같이 고민해주신다는 점'을 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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