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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광섭 Sep 22. 2019

혼자 튀지 좀 마실래요?

너는 조직문화를 이길 수 없어


저 컴퓨터가 한 대 필요해요!


한창 서비스를 개발하고 있을 때였다. 기획자의 본분에 맞게 속칭 (개)잡부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었는데 문제가 하나 생겼다. 사용하던 컴퓨터가 아-주 구닥다리였던 것이다. 그래서 같이 일하는 사람들이 쓰는 도구(프로그램)를 하나도 쓸 수가 없었다. 예를 들어 기획자가 개발팀과 실랑이를 하려면 깃이나 스튜디오를 보면서 해야 했고, 디자인 팀과 죽네사네 하는 데는 스케치, 제플린 같은 도구가 필수였다. 물론 '전 그런 거 모르니까 알아서 요로케, 조로케, 해주세요' 할 수도 있었지만, 그렇게 하면 똑같은 일도 2-3배가 걸렸다.


당시 내 컴퓨터는 상태가 꽤 심각했다. 어느 정도였느냐 하면 프로그램(소스트리) 하나를 여는데만 20분이 넘게 걸렸다. 그나마 두 번 중에 한 번은 켜지지도 않았다. 그래서 매일 아침 출근을 하면 첫 번째로 하는 일이 탕비실에서 '동서 둥굴레차' 하나를 고-이 떠다 두곤 '신령님 오늘은 부디 컴퓨터가 꼬장 부리지 않도록 살펴주시옵소서' 빌며 더블 클릭을 하는 것이었다. 그렇게라도 프로그램을 켜 놓으면 컴퓨터가 '아이고-나죽네!! 무슨 짓이야!!' 하며 우아아앙- 소리를 질러댔다. 주변 사람들에게 아-주 민망하고 좋았다. 어찌어찌 기획 단계까지는 이런 일이 참을만했으나 본격적으로 개발에 들어가니 하루하루 호박 고구마밭에서 잡초를 뽑는 것처럼 숨이 턱턱 막혔다.


'저.. 프로젝트 잘하려면 맥북 한 대가 필요합니다. 새로 사주시면 좋고, 안되면 창고에 있는 장비라도 하나만 빌려주실 수 있을까요?' 팀장님과 상의한 끝에 경영지원 부서에 구구절절 메일을 썼다. 그러자 정해진 양식대로 다시 작성해 오라는 사무적인 답변이 툭 날아왔다. 사유서는 매우 길고 복잡했다. 하지만 언제까지 토착 신앙에 기대며 둥굴레차 파티를 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기 때문에 기쁜 마음으로 쓱싹! 적었다. 팀장님도 불쌍한 막내가 매번 모니터 앞에서 '히히 켜졌다! 히히' 쪼개며 병들어 가는 모습을 가엾이 여기시곤 물심양면 도와주셨다. 작성한 내용은 필요 장비, 현재 문제점 3가지 이상, 향후 사용 계획, 장비 반납 계획, 장비 처리 절차 등등.


답신이 왔다. 답장에는 '검토는 해봤지만 당신 팀은 개발 특화 조직이 아니기 때문에 개발 장비를 줄 수 없다'는 내용이 띡-하고 적혀있었다. 내 멘탈에도 띡-하고 금이 갔다. 팀장님과 나는 곧장 모르도르를 올라가는 프로도와 샘처럼 새로운 꼬장의 원흉을 만나러 갔다. 이후 일문일답은 나와 사우론 아저씨의 대화.

Q. 당신이 이 프로젝트 개발자예요?
A. 아니요
Q. 그런데 개발장비가 왜 필요해요?
A. 제가 프로젝트 관리를 하니까요
Q. 당신이 남의 일을 왜 해요?
A. 그것도 제 일의 일부인데요.

담당자는 말문이 막혔던지 한 5초 정도 얌전히 계시고는 '혼자 튀지 좀 마실래요? 다른 분들은 다 참고 하는데 왜 자꾸 예외를 만들라고 해요' 라며 쿨하게 일갈하셨다. 와우.


나으리 저 산 정상에 맥북이 있답니다.


함께 있던 팀장님은 '그게.. 그래도..'라 강변하며 옆자리에서 쭈글대고 있던 샘(나)의 편을 들어주셨다. 하지만 나는 저 말을 듣자마자 더 이상 이 주제를 꺼내는 것은 나와 앞자리 아조씨, 그리고 우리 모두를 둘러싼 이 콘크리트 거미줄에게 무의미한 시간을 욱여넣는 짓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곧장 '앗! 팀장님 이제 괜찮습니다, 에구 제가 잘 몰랐네요. 알겠습니다'라 둘러댄 뒤 제자리로 돌아왔다. 그리고 1초도 망설이지 않은 채 쿠팡 로켓 배송에서 내 돈 200만 원을 시원하게 질렀다. 결국 지금은 개인 장비에 보안 프로그램을 설치하고 컴퓨터 2개를 드럼스틱처럼 들고 다니며 쿵짜자쿵짝 일하고 있다.


그러니까 이 실랑이는 절차도 잘 따랐고 사유도 합당하지만 '좀 튀지 말라'는 이유로 불발된 주니어의 요란한 요구 정도로 남았다. 더불어 내가 조직문화의 마수를 뼈저리게 체험한 대표적인 사례가 되기도 했다. 그래서 요즘은 뭔가 분위기 상 '이야- 이거 안될 것 같다' 싶으면 괜히 시간낭비를 하지 않고 바로 다른 방법을 찾아보는 '어른'이 되었다. 그리고 재미있는 사실 하나도 문신처럼 몸에 새겼다.


개인은 조직문화와 싸워 이길 수 없다. 그리고 그 이유는 단지 개인은 콩알만큼 작고, 조직은 콩나무처럼 거대하기 때문이 아니다. 더군다나 요즘처럼 아닌 건 곧 죽어도 못 참는 90년대생 또라이들이 쿠키에 초코칩마냥 박혀있는 '뉴회사'에서는 불합리가 단순히 '크다'는 이유로 살아남을 수 없다. 이런 멍청이들은 '말도 안된다'고 느끼면 여기저기 들이받으면서 맞다고 생각하는 것을 하기 때문이다.


개인이 조직문화를 거역할 수 없는 진짜 이유는 이 싸움이 '나와 조직문화'의 싸움이 아니라 '내편과 조직문화'의 싸움이기 때문이다. 내가 우기고, 고집 피우고, 바락바락 대들면, 반항하는 나의 고생은 당연한 것이고, 나를 위해 편들어주는 착한 사람들이 모두 함께 희생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어지간한 강심장이 아니고서는 주변 사람들이 나 하나 때문에 같이 받는 스트레스를 팔짱 끼고 지켜보고 있을 수가 없다. 그래서 또라이도 일단 순한 양처럼 얌전해지고 조직은 삐그덕 거릴지라도 원래 굴러가던 대로만 도리-도리- 굴러간다.


저 먼 고려시대에는 지방 호족을 견제하기 위해 기인 제도라는 게 있었다고 한다. 쉽게 말하자면 지방에서 반란이 일어날 것을 두려워한 왕이 그 지역 호족의 아들래미를 개경에다 붙잡아 두고서는 '느이 아부지가 반란하면 재미없어-'라며 협박하는 합법(?)적인 인질 제도다. 나는 조직문화가 개인을 침묵하게 하는 방식이 이것과 똑같다고 생각한다. 조금이라도 바꿔보려는 사람이 있으면 조직문화는 주변 사람들을 붙잡고 '너어- 그렇게 나오면 이 사람들 재미없어져-'라며 겁박을 한다. 이걸 보면 1000년 전이나 지금이나 똑-같구나 하는 생각도 든다.




야밤에 친구와 요런 얘기를 하고 있으려니 친구가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야지'라고 실없는 소리를 한다. 나는 도리어 '와- 종교계에서조차 조직문화란 무시무시한 것이로군요!'라며 정신나간 생각을 털어 놓는다. 그러면서 동시에 '내가 나이를 먹어도 이 모양인 건 똑같으려나'하고 10년쯤 뒤 어딘가를 더듬더듬 가늠해 본다.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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