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광섭 Nov 07. 2018

호구라서 느낄 수 있는 기쁨에 관하여

어쩌면 바보가 세상을 좀 더 따뜻하게 하는 걸지도 모르겠다


일요일 오후 9시 퇴근길이었다. '일요일'과 '오후 9시' '퇴근'이라는 세단어가 만드는 콜라보레이션은 회사원 하나가 두 시간 정도 궁시렁대기에 손색이 없는 소재를 제공해준다. '비판적' 사고방식을 가진 새내기인 나는 그날도 어김없이 툴툴대는 투덜이 스머프로 분해 있었다. '얼른 집 가서 이불 뒤집어쓰고 유튜브나 봐야겠다'며 칠렐레 팔렐레 걸어가고 있던 차 '저기요!'하고 부르는 불협화음이 끼어들었다. 그와 동시에 연세가 쉰 언저리로 보이는 아저씨 한 분이 내 옆 공간으로 호다닥 파고 드셨다. 그리곤 대뜸 자기 말을 좀 들어달라고 하시는 것이었다.


보통 신나게 뛰어나가는 퇴근길..

이야기를 들어보니 이랬다. 본인은 사업차 대전에서 서울 을지로로 올라왔는데, 만나기로 한 거래 파트너와 연락이 닿지 않는다고 하셨다. (사실 사업처럼 딱딱한 단어가 아니면 삭막한 을지로 한복판에 있을 이유가 없긴 하다.) 그런데 때마침 지갑마저 분실하셨단다. 땡전 한 푼 없이 서울  대로 한복판에 있으려니 차비가 필요하다고 말씀하셨다. 한 만원 정도.


숙련된 서울인인 나는 대학시절부터 이런 분들을 정말 숱하게 만나왔다. 삼성동 코엑스에서 한번, 봉천동 골목길에서 한번, 그리고 사당역 12번 출구에서 한번. 당장 기억나는 것만도 3번이나 되니 갑자기 내 얼굴이 '돈 잘 빌려주게 생긴 관상'인가 하는 생각마저 든다. 대학교 1학년 새내기 시절에는 이런 '프로 지갑분실러'에게 한번 속은 적이 있었다. 지금 돌이켜 보면 20살의 나는 왜 그렇게 의심 한점 없었는지 그 수상한 아저씨에게 전재산 3만 원을 건네 드리며 식사는 꼭 챙겨 드시라는 오지랖까지 부렸더랬다. 그때 이후로 연락이 끊긴 아저씨가 지금도 잘 살고 계신지 궁금하긴 하다.

아무튼 그렇게 '서울 어른'이 된 나는 이제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그래서 새롭게 만난 프로 분실러 아저씨의 말은 단칼에 끊어 버리고 '수고하세요'하며 가던 길을 계속 걸어갔다. 그런데 그 순간 얼마 전, 내가 브런치에 올렸던 글 한편이 떠올랐다. '낯선 시람이 나에게 말을 걸 때'라는 글이었는데, 그 글의 마지막 문단 이렇게 끝난다.


앞으로 누군가 나에게 말을 걸면 적어도 한마디는 들어보아야겠다. 100번의 귀찮음이 있더라도 한 명에게 따뜻함을 전할 수 있는 그런 사람, 서울에 사는 캐나다 호호 할머니가 되어야겠다고 다짐해보는 시간이었다.


이런 다짐만 안 했다면 그냥 지나쳤으련만, 막상 예전에 썼던 말이 생각나고 보니 '저 아저씨가 진실로 곤란한 상황이라면 내가 얼마나 야속하고 애가 타실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왔던 길을 다시 터벅터벅 돌아가 잠시만 기다리시라고 말한 뒤 근처 ATM기에서 현금 만원을 뽑았다. 아저씨는 먼발치에서 걸어오는 나를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바라보고 계셨다. 조심조심 만원을 건네드리자 아저씨께서는 연신 감사하다는 인사를 하시곤, 핸드폰 번호를 받아가셨다. 내일 중으로 반드시 연락 주시겠다는 말씀과 함께.


결론부터 말하자면 나는 그 돈을 돌려받았다. 착한 아저씨께서는 그날 정말 고마웠다며 감사 전화도 잊지 않으셨다. 전화를 통해 서로 덕담을 나누던 순간은 정말 기쁘고 가슴 따뜻해지는 경험이었다. 사실 그 짜그만 돈을 돌려받아서 기뻤다기 보단, 내가 정말 곤란한 사람을 도왔다는 것이 즐거웠고, 앞으로도 같은 행동을 반복할 수 있다는 것이 제일 좋았다. 그렇게 조금씩 조금씩이라도 서로를 믿을 수 있는 세상을 짓는데 내가 작은 벽돌 한 장 정도는 올려놓은 것 같았다.


그날 나는 아저씨께 만 원을 빌려드린 뒤 친구들에게 이 사실을 이야기 했었다. 그러자 모두들 한결같이 '괜한 짓 했네', '만원 버렸네', '이 자식 호구네'처럼 진심 어린(?) 질타를 보내 주었다. 그런 막상 '호구'인 내가 먼저 줬던 믿음을 돌려받고 보니, 이런 경험은 여태까지 느껴보지 못했던 또 다른 종류의 행복을 느끼게 해주는 것 같았다. 호구만이 느낄 수 있는 기쁨이라고 해야할까?


믿음을 돌려주신 아저씨와의 전화와 문자

속칭 호구들은 조금 바보같은 사람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이런 사람들이 먼저 보여주는 믿음이 세상에 작은 따뜻함을 더하고 있는 것은 아닐지 이번 호구 체험(?)을 통해 생각해보게 되었다. 속임수와 거짓말이 판치는 세상이지만, 정말 곤란해 보이는 사람을 만나는 경우라면 눈 딱 감고 이번 한 번만 호구가 되어보는 것은 어떨까.

어쩌면 이 호구 복권이 두 사람의 마음에 따뜻한 기쁨과 신뢰로 당첨될지도 모르는 일이니 말이다.


작가의 이전글 2020년의 이마트가 궁금한가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