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갈 날들을 위한 가장 느린 공부
한때의 나는 사랑이라는 감정 하나로
세상이 눈부시게 아름다워 보였던 사람이었다.
길가의 나무도, 밤공기도, 아무 의미 없던 하루조차
사랑이라는 필터를 거치면 전부 아름다워졌다.
가슴이 뜨거워서 잠을 이루지 못한 밤도 있었다.
말 한마디, 눈빛 하나에
하루의 온도가 달라지던 시절.
그때의 나는 분명히 살아 있었다.
그런데 지금의 나는
가끔 스스로를 마른 나뭇가지 같다고 느낀다.
잎도 없고, 꽃도 없고
바람이 불어도 흔들리기만 할 뿐
아무 향기도 내지 못하는 그런 가지.
요즘 나는 남아 있는 내 삶을 위해 치열하게 공부하고 있다.
책상 앞에 앉아 펜을 들고 있지만
문득 이런 생각이 스친다.
“나는 잘하고 있는 걸까?”
톨스토이는 *「살아갈 날들을 위한 공부」*에서
사람은 사랑하기 위해 태어났다고 말했다.
그 문장을 읽는 순간
가슴 한쪽이 서늘해졌다.
그렇다면 나는
사랑을 받으며 살아온 사람일까.
아니면 사랑을 갈망하며
끝내 충분히 채우지 못한 사람일까.
열심히는 살았다.
성실했고, 버텼고, 책임을 다했다.
하지만 사랑 앞에서는
늘 조금 부족한 사람 같았다.
그래서 지금의 이 공허함이
사랑이 고갈된 탓은 아닐지
스스로를 의심하게 된다.
그럴 때마다 나는 다시 공부를 한다.
이번엔 더 높은 자리를 위한 공부가 아니라
사랑을 되살리는 방법에 대한 공부다.
사랑은 한 번 불타올랐다가
영원히 꺼져버리는 감정일까.
아니면 계절처럼
잠시 겨울을 지나는 것뿐일까.
마른 나뭇가지도
봄이 오면 가장 먼저 눈을 틔운다.
겉으로는 아무 생명도 없어 보이지만
속에서는 묵묵히
때를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어쩌면 지금의 나는
사랑이 없는 사람이 아니라
사랑을 다시 피워낼 힘을
천천히 모으고 있는 중인지도 모른다.
사랑을 많이 받지 못했다고 느끼는 사람일수록
사랑에 대해 오래 생각한다.
그 생각은 약함이 아니라
사랑을 가볍게 다루지 않겠다는 증거다.
그래서 오늘도 나는
내 삶을 위해, 그리고 사랑을 위해 공부한다.
다시 뜨거워지기 위해서가 아니라
이번에는 조금 더 오래,
조금 더 따뜻하게 사랑하기 위해.
지금은 마른 가지 같아 보여도
나는 믿고 싶다.
내 안에는 아직
사랑으로 자랄 새싹이 남아 있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