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blo Casals, Antonio Janigro
바흐의 작품 중에 고전음악 애호가들에게 가장 널리 사랑받는 것은 아마도 무반주 첼로 조곡이 아닐까 한다. 그리고 무반주 첼로 조곡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첼리스트는 물론 Pablo Casals이겠다. Casals는 요즘 종종 스페인으로부터의 독립 이야기가 들리는 Catalonia 사람인데, 원래 이름은 Pau Casals i Defilló 이며 1876년 생이다. 불과 여섯살에 솔로 바이올린 연주를 할 수 있었고, 열한살에 처음으로 첼로소리를 듣고, 첼리스트가 되기로 하였다고 한다. Madrid와 Paris 음악학교를 거쳐 1899년경에는 이미 국제적인 투어를 하기 시작했고, 1904년에는 벌써 백악관에 초대를 받아 연주를 할 정도의 국제적 명성이 있었다.
비발디나 헨델에 비하여 살아 생전 덜 알려져 있던 바흐가 지금처럼 전세계적인 인지도를 갖게 되기까지는 19세기라는 한 세기가 꼬박 걸렸다고 한다. 물론 모차르트나 베토벤등의 18세기 이후 음악가들에게야 그 진가가 잘 알려져 있었던 듯 하나, 일단 생전에 출판된 작품이 워낙 소수이다 보니 한세기라는 시간이 걸려서야 일반 음악 애호가에게까지 그의 이름이 널리 알려지게 된 것이다.
이러한 상황을 생각하면 이 첼로 조곡이 19세기말 당시 13세의 Casals의 손에 우연히 들어가면서 빛을 발하게 되었다는 오래된 이야기가, 조금은 소설같이 들림에도 불구하고, 어느 정도의 설득력이 있다. 하여튼 이 이야기에 따르면, 바르셀로나의 잡화점에서 이 악보를 발견한 후 수십여년간 혼자의 힘으로 이를 소화하여 연주를 시작하였다는데, 그의 나이 60이 된 1936년에야 그 첫 녹음을 하였다.
Art of Fugue가 어떤 악기를 위해 쓰인 것인지 불분명한 것 만큼은 아니더라도, 이 조곡의 정체에 대한 의구심이 적지 않았다고 하는데, 예를 들어, Casals 이전에는 실제 연주를 위해 쓴 것이 아니라는 인상이 지배적이었던 모양이다. 특히 남아있는 악보에 현의 연주법에 대한 정보가 없어 그러했는데, 이는 곧, 많은 부분 연주자의 몫이 될 수 밖에 없었다는 이야기이고, Casals 라는 거목이 필요했던 이유이기도 하다.
물론 19세기 음악가들이 이 악보의 존재자체를 모르지는 않았다는데, 예를 들어 슈만의 경우 이를 피아노와 첼로의 협주 형태로 편곡을 하였으나 그 대부분이 소실되었다고 하고, Casals가 구한 악보 역시 Friedrich Grützmacher가 편곡을 한 버젼이었다.
바흐의 유명한 솔로 기악곡이 대개 그러하듯이, 이 작품 역시 하나 이상의 선율이 동시에 진행되는 대위법(Counterpoint)이 사용된 곡이다. 대위법은 다성음악(Polyphony)의 일종으로 18세기 바로크 음악의 정점이기도하고, 수세기 전의 작품들이 현대의 음악 감성에 모자람 없게 느껴지게 하는 하나의 이유이기도 하다.
피아노와 같은 건반악기와는 달리 현악기는 자연스레 단선율에 기반을 두는데, 두줄 이상의 현을 동시에 연주하는 double stop, triple stop 을 자주 사용하고, 주된 멜로디 라인의 쉬는 중간 중간에 다른 라인을 끼워넣는 방식으로 다성음악의 효과를 만들어내는데, 연주의 난이도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Casals의 이 1930년대 말 연주는 현재 CD와 LP의 모습으로 구매가 가능하고, 거의 한세기가 지난 지금도 가장 널리 알려진 음반이라고 할 수 있다. 80년 전의 이 원본을 다시 발매할 때마다 리마스터링 하는 방법에 따라 조금씩 다른 결과가 나올테지만, 원본이 주는 한계는 어쩔 수 없어, 요즘의 녹음에 비하여 극악한 음질을 기대하는게 당연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른쪽 사진의 CD를 근 30년간 들어 왔는데, 유학시절부터 써오던 오디오를 몇년 전에 소위 하이엔드급으로 업그레이드 하면서 예상치 못한 문제가 생겨버렸다. 오디오 성능에 투자를 하는 사람들이 스스로를 조롱하는 말 중에 “음악을 듣지 않고 기계를 듣는다”라는 표현이 있는데, 그 일이 실제로 생겨 버린 것이다. 보유한 음반의 절반 이상이 갑작스레 불편해졌다. 모두 연주가 아닌 녹음의 문제인데, 잘된 녹음과 그렇지 않은 경우의 차이가 확연히 들리기 시작하니, 자연히 음악이 아닌 음질에 더 신경이 쓰이게 된 것이다. 이 80년전 녹음을, 그렇게 점점 멀리하게 되었다.
이 무렵 발견한 것이 Antonio Janigro라는, 한때 Casals에게 사사하기도 한 이태리 출신의 첼리스트이다. 1918년생인데 한창 연주생활을 시작하던 중, 1939년에 유고슬라비아에 휴가를 갔다가 2차 세계대전의 발발로 그 곳에서 전쟁이 끝날 때까지 발이 묶이는 황당한 상황을 겪었다고 한다. 이로 인해 Zagreb의 음악학교에서 가르치기 시작했고, 전후에는 연주활동을 재개했으면서도 1965년까지 그곳에서 가르쳤으며, 유고슬라비아의 첼로 연주 전통에 지대한 영향을 주었다고 한다. 현대의 유명 첼리스트에 비하여서는, 예를 들어 Rostropovich, Yo-Yo Ma, Fournier등에 비하여서는 그 인지도는 낮은 편이지만, 연주자로서의 그리고 많은 제자를 길러낸 선생님으로서의 음악계에서의 명성은 작지 않다.
그 역시 무반주 첼로 조곡을 한차례 녹음 했는데, 이 음반을 듣고 난 나의 첫 인상은 “훨씬 더 잘 녹음된 Casals”였다. Casals가 주는 감동을 고스란히 준다는 사실 하나 만으로도 내게는 충분히 중요한 음반이 되었다.
사실 Casals 녹음과는 불과 20년을 사이에 두고 만들어진 1950년대의 음반이고 스테레오도 아닌 모노이다. 위에 이야기한대로 음악이 아닌 음질에 한동안 빠져 있을때 알게된 이상한 점 중 하나는, 최근 음반에서 가장 좋은 음질을 찾을 수 없다는 사실인데, 특히 1970년대 이전의 녹음 중에는 놀랍도록 생생한 것들을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50-60년대에 Columbia 레이블로 출판된 Bruno Walter의 연주들이 이에 해당한다.
아마도 이는 1950년대 후반부터는 이미 충분히 좋은 녹음 기술이 만들어졌고, 그 이후 실제로 음질을 좌우한 것은, 어느 장소에서, 어느 엔지니어가 녹음하였고, 그리고 음반화할때 어떤 프로세스를 거쳤느냐 이라는 것을 시사한다. 특히 디지탈 녹음이 만능은 아니라는 것을 말해준다. Janigro의 CD버젼은 60년된 아날로그 녹음이라는 것을 의식할 수 없을 정도로 깔끔한 음질을 자랑하는데, 훌륭한 아날로그 원본이 있었고 좋은 엔지니어가 리매스터링을 한 모양이다.
아쉬운 것은 역시 Janigro의 다른 음반을 찾기 매우 힘들다는 것이다. 최근 흔히 겪고 있는 어려움인데, 물론 대중적이기 않기 때문이다. 사실 고전 음악계에도 “상품성”이라는게 있을터인데, 이러한 전혀 음악과 관련 없는 이유로 그 진가에 비하여 대중적으로는 덜 알려진 인물들을 흔히 볼 수 있다. 바이올린의 Ida Haendel나 피아노의 Lazar Berman이 그러하다. (알만한 사람은 다 알아도, 모르는 사람이 더 많을 Carlos Kleiber의 경우도 굳이 지휘자 중에 찾자면 이런 경우일 것이다.)
이들의 공통점이라면, 스튜디오 음반이 많지 않다는 것인데, 매니아들은 그래서 어쩌다 음질 나쁜 실황 음반이라도 하나 튀어나오면 그냥 지나치지 못하게 된다. Janigro의 경우 적지 않은 50여개의 음반이 출판되었다고 하지만 노후에는 연주 활동보다는 제자를 길러내는데 더 심혈을 기울여서인지 지금은 대중의 기억에서 사라져버린 모양이다. 한두 사람이라도 더 이들 거장들에게 관심을 갖게 되길 바라면서 이 글을 쓴다. 이들의 이야기는 나중에 차근 차근 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