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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평균율 Nov 25. 2018

바이올린 협주곡 2선

Francescatti, Oistrakh, Neveu, Haendel


20세기의 미국은 2차 세계대전을 계기로 초강대국으로 올라서게 된다. 이미 그 한참 전에 GDP로는 영국을 앞섰으니, 세계 질서가 단순히 경제규모의 산술적 우위로 정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말해주는 좋은 교훈인데, 양대 세계대전이라는 인류사에 몇 되지 않을 대사건을 통하여 유럽의 경제와 군사력이 붕괴됨과 함께 자연스레 패권은 미국으로 넘어오게 된다.

이런 과정에서 구대륙에서 신대륙으로 흘러들어온 인적자산 역시 이후 미국의 번성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을 텐데, 이는 과학이나 문화계에도 적용되는 이야기이다. 현대 물리학을 만들어낸 인물들인, 아인슈타인, 디락, 페르미 같은 기라성 같은 과학자들이, 혹은 쫓겨서 혹은 자발적으로 미국에 정착하면서 1940년대 이후 미국은 과학에 있어서도 헤게모니를 쥐게 된다.


고전 음악계에도 이렇게 유럽을 떠나 미국으로 넘어온 인물들이 적지 않은데, 지휘자들 중에도 여럿 찾을 수 있다. 헝가리 출신의 Eugene Ormandy와 George Szell이, 유럽 문화계 입장에서는 "듣보잡"수준이었을 Philadelphia와 Cleveland의 교향악단을 세계적인 수준으로 끌어올린 것은 유명한 이야기이다. 그나마 Stokowski에게서 이어받은 Ormandy에 비하여, 거의 아무것도 없이 시작한 Szell의 경우가 특히 인상적이었는데, 1970년에 Szell이 별세하고도 10년이 넘게 지난 1980년대에 Cleveland를 이끌었던 Dohnanyi가 했다는 말이 조금 슬프다: "We give a great concert, and George Szell gets a great review."


Bruno Walter (1876-1962)

미국으로 넘어온 또 다른 유럽 출신 지휘자로서 큰 족적을 남긴 인물이라면, Mahler의 챔피언으로 잘 알려져 있는, 20세기 거장 중의 거장인 Bruno Walter이다. Columbia사가 스튜디오 전용으로 조직한 Columbia Symphony Orchestra와의 스테레오 녹음들은 지금까지도 레퍼런스로서 가치를 지키고 있다.


(다른 글에서도 언급하였듯이 이 Columbia사 음반들의 음질은 60년 전 것이란 것을 믿기 힘들 정도로 훌륭하다. 실내악이 아닌 대편성인 교향곡, 협주곡, 합창곡이라는 점에서 더욱 놀라운데, 스튜디오 전용 오케스트라의 장점이었는지, 유별나게 능력 있는 엔지니어의 힘이었는지 모르겠다. 당시의 엔지니어 겸 프로듀서는 John McClure라는 사람이었다는데, 고전음악 혹은 녹음기술 어느 쪽도 전공으로서의 교육을 받지 않은 사람이었으나, 그 걸출한 능력으로 이후 잘 알려졌고, 나중에는 스트라빈스키와 번슈타인과의 협업으로도 유명했다고 한다.)




하여튼, 이 글에서 소개할 음반은 Walter와 Ormandy의 지휘로 각기 연주된 베토벤과 시벨리우스의 바이올린 협주곡의 합본이다. 참여한 악단과 솔로이스트는 각기, Columbia Symphony와 Fracescatti, 그리고 Philadelphia와 Oistrakh이고, 지금은 Columba 음반사를 인수한 SONY의 레이블을 달고 나온다. 전에 언급한 Kleiber의 베토벤 5번과 7번의 합본처럼, 보이면 역시 여러 말 말고 그냥 한 장 들여놓자. 오래된 녹음의 복각이라는 의미 없는 이유로, 미안할 정도로 저렴하게 구할 수 있다.


전에도 주장하였듯이 고전음악의 가장 화려한 상품은 협주곡이다. 현란한 솔로이스트와, 이를 받혀주는 관현악단의 대화는 사람을 몰입하게 하는 특별한 무언가가 있다. 특히, 중성적이면서 다재다능한 피아노에 비하여 여성적인 그 소리 때문인지, 바이올린 협주곡들은 듣는 사람에게 100% 집중하라고 한다. 


누구였는지 기억은 잘 안 나지만, 어떤 비평가가 말하길 가장 성공적인 협주곡은 2류 작곡가들이 만들어낸다고 했었다. 여기서 2류란 아마도 바흐, 베토벤, 혹은 브람스 급이 아니라는 말로 해석되는데, 어쩌면 음악의 구조와 균형보다는 감정을 자극하는 선율에 치중할 기회가 더 많은 그 장르의 특성을 이야기하려다 보니 조금 과한 표현을 쓴 게 아닐까? 2류이건 아니건, 가깝게는 드보르작, 라흐마니노프, 그리고 멀리 바로크 시대의 비발디까지, 수많은 불멸의 작품들이 이 한 장르에 포진해 있다.




그 누구도, 어떤 기준으로도 2급이라고 부를 수 없는 베토벤도 바이올린 협주곡을 하나 남겼는데, 많은 바이올린 협주곡들이 그러하듯 D장조이다. 이 협주곡은 피아노 협주곡을 다섯 곡이나 쓴 시점에 만들어졌는데, 솔로와 악단의 상생이 특히 절묘하다.

 

둥~둥~둥~둥~ 하는 팀파니의 작은 소리로 시작하는데, 25분가량이나 지속되는 첫 악장에서 이 리듬은 여러 형태로 변주되어 반복된다. 과연 이것도 테마라고 부를 수 있을까? 처음에는 현이 이 모노톤의 분절음을 흉내 내는가 싶은데, 이내 확장되고 변형되어 각 섹션들이 주고받으며 계속 나타난다. 첫 악장을 들을 때마다, 이 단순한 리듬을 이렇게 다양하게 변주하는 게 가능하구나 하고 새삼 놀라게 된다.


묘하게도 이 협주곡은 솔로보다는 이 리드미컬할 변주가 항상 기억에 남는다. 이렇게 교향악단의 소리에 더 끌리는 협주곡이 몇 더 있는데, 또 다른 예로는 브람스의 피아노 협주곡 2번이 있다. 그 3악장의 시작은 첼로의 연주로 시작하는데, 마치 피아노-첼로 더블 콘체르토이었나 하는 착각을 주기도 한다. 특히 이 브람스 협주곡의 솔로 피아노 파트는 듣다 보면 그 난이도나 작품성이 엄청나다는 것을 느낄 수 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향악단과의 조화가 경이롭다.


이런 작품들은, 어쩌면 중요한 악기를 하나 추가한 교향곡과도 같은 곡들이다. 20세기 교향곡 중에는 보컬 솔로가 더해진 경우들이 여럿 있으니, 그리 이상한 생각이 아닐 수도 있겠다. 아래 이야기하는 시벨리우스 협주곡의 경우에도, 솔로가 더 현란하고 매력적이긴 하지만, 전체적으로 교향악단이 이끌고 가는 경우에 가깝다.


Zino Francescatti (1902-1991)

바이올린을 연주한 Zino Francescatti는 프랑스 출신의 바이올리니스트이다. 역시 바이올린 연주자들인 부모님의 교육으로만 음악을 배웠다고 전해지는데, 법학 공부를 하다가 22세가 되어서야 음악에 투신했다. 그것도 아버지의 죽음을 계기로 말이다. 생계를 위해 오케스트라 섹션에 들어가기도 했고, Casals와 같은 음악학교에서 가르치기도 했다. 1930년대 말부터 솔로 연주자로서 명성을 얻게 되었다고 하는데, Heifetz, Menuhin과 Oistrakh에 못지않은 솔로이스트이지만, 지금은 상대적으로 잊혀가는 게 아쉬운 20세기의 거장이다.




이 앨범의 두 번째 곡은 Heifetz와 함께 20세기 바이올린의 양대 산맥인 David Oistrakh가 Ormandy의 Philadelphia Orchestra와의 협연으로 연주한 시벨리우스 D단조 협주곡이다. 이 협주곡은 상당수의 교향곡을 남긴 시벨리우스의 유일한 협주곡이기도 한데, 그는 주로 20세기에 활동한 인물이기는 하지만, 19세기의 향기가 물씬 풍기는, 그리고 어쩌면 브람스의 뒤를 잇는 가장 고전적인 작곡가이다.  


작가는 사실, 1949년에 30세의 젊은 나이에 비행기 사고로 남미에서 요절한 Ginette Neveu의 음반으로 처음 접했다. 종전 직후 런던에서 만들어진 Philharmonia Orchestra와 협연한 1946년의 모노 녹음이지만, 곡의 분위기가 워낙 추워서인지 멀리서 몰아치는 눈보라가 희미하게 들리는 듯 그 소리가 자연스럽게 다가왔다. 같은 시기에 녹음한 브람스 협주곡이 늦가을이라면, 시벨리우스의 그것은 북유럽 한겨울의 어두운 밤이다.

Ginette Neveu (1919-1949)

음반을 찾아다니다 보면서 알게 된, 세계적인 바이올린 주자 중에는 Neveu처럼 20세기 초에 탄생한 여성들이 여럿 눈에 띄는데, 1차 대전 직후에 태어난 Johanna Martzy와 Ginette Neveu는 서로 다른 이유로 커리어가 중단된 경우이다. 조금 아래인 Ida Haendel 역시 국제적인 커리어는 그다지 순탄하지 못했던 듯한데, 그러나 90이 다 돼가는 지금도 꾸준히 활동을 하고 있다. 특히, Haendel 경우 Sibelius바이올린 협주곡으로 명성을 얻은 인물이기도 하다.이 세 여류 바이올리니스트들은 많지 않은 음반을 남겼지만, 이제는 각자의 팬층이 매우 두텁게 만들어져 있다. 한편 일반 대중에게도 어느 정도 알려진 Menuhin, Heifetz, 그리고 Oistrakh가 이들보다 20년가량 정도 앞 세대에 해당하는데, 불운으로 점철된 여류 바이올리니스트들과의 대비가 흥미롭다.


마치 소리 없이 내리는 눈발처럼, 혹은 그렇게 쌓여 그 위의 모든 것이 감추어진 대지를 보여주는 듯, 활들이 짧게 반복하며 만들어내는 배경 위에서 1악장을 여는 솔로 바이올린은 그 어떤 협주곡보다도 매력적이다. 현 섹션이 만들어내는 조용하고 어두운 빈 공간에서 갑자기 오색찬란한 오로라가 떠오르는 듯 청중을 순식간에 끌어안는다. 시벨리우스 협주곡은 베토벤의 경우에 비하여는 솔로 악기가 더욱 빛나는 곡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교향악단의 역할이 바이올린을 받혀주는데 그치지는 않는다. 현란한 솔로와 리듬 가득한 현의 대화는, 어쩌면 모든 바이올린 협주곡의 왕이라고 할 만한 이 협주곡의 가장 아름다운 특징이기도 하다. 특히 3악장 초입, 마치 전쟁을 맞으러 가는 군대처럼, 현들이 활을 튕기며 리듬을 만들고 이끌어가는 장면은, 들을 때마다 온몸에 전율을 일으킨다.


David Oistrakh (1908-1974)

작가에게는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3번만큼이나 여러 연주를 찾아 헤매는 곡인데, 한동안은  Oistrakh이나 Neveu가 아닌 Cho-Liang Lin과 Esa-Pekka Salonen의 협연을 즐겨 듣고 있었다. 역시 좋은 음반이고, 특히 Lin의 절제된 연주와 오케스트라의 조화가 잘 어울리는 연주이다. 최근에 Elizabeth Batiashvili라는 그루지아 출신 바이올리니스트의 음반을 발견하여 youtube에서 듣고 있는데, 상당히 매력적이다. 익명의 개인에게서 대여받은 Guarneri del Gesu를 사용한다고 하는데, 그 음색이 특히 아름답다. Tchaikovsky의 협주곡과 함께, Barenboim의 지휘로 만들어진 음반인데, 현대적인 음반을 원한다면 역시 좋은 선택지가 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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