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J Lim
아침에 출근하는 길에 TBS 라디오 인터뷰에 나온 피아니스트 임현정의 목소리를 들었다. 간혹 유튜브에서 보이는, 조금 빠른 템포의 피아니스트라는 것까지는 알고 있었으나, 제대로 연주를 들어본 적이 거의 없었다. 다만, 강렬한 인상과, 드레스인지 정장인지 알아보기 힘든 단색 연주복이 특이하여 기억에 남아있었던... 라디오에서 들리는 소탈한 웃음소리가 의외였다.
그리고 저녁이 되어 다시 유튜브서 그를 찾다가, 바흐 평균율 1권 실황을 발견했다... 글렌 굴드가 골드베르크 변주곡 연주를 처음 선 보였을 때의 충격이 이보다 더 했을까? 내 첫 반응이었다. 조금 과장하면 C장조 prelude에서 쇼팽과 드뷔시의 향기가.... 그런데, 끌린다. 어떤 거장은 2시간을 써서야 소화하는 1권을 곡과 곡 사이에 잠시 잠시 쉬는 것 포함 80분 만에 완주하는 말이 안 되는 템포인데도 말이다.
그의 타건과 특히 페달을 사용하는 방식이 근본적으로 다른 것 같다. 한음 한음에 깊은 의미를 부여하기보다는, 빠르게 지나가는 가벼운 터치들이 모여서 만드는 전체적인 느낌이 음악이 된다. 이는 특히 prelude들에서 두드러지는데, fugue들의 경우 조금 빠른 템포에도 불구하고 전혀 다른 종류의 음악으로까지는 다가오지 않지만, 대표적으로 첫 C 장조를 포함한 많은 prelude의 경우 그 변신은 가히 충격적이다.
그리고, 어마어마한 템포에도 불구하고 그 어렵다는 A단조 푸가는 여전히 비할 데 없이 아름답고 정교하다. 한음 한음이 무거운 리흐터, 그보다는 가벼운 터치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장중한 굴드, 이 거장들에게 “그 다음엔 이렇게 해야” 한다고 이야기하듯 손가락이 날아다니지만 전혀 불안하지 않다.
굴드는 1955년 그리고 1981년에 각기 골드베르크 변주곡을 두 차례 녹음하였는데, 대개 1955년 버전이 좀 더 알려져 있는 편이다. 누군가의 수면을 위한 작품이었다는 전설에 걸맞지 않은 공격적이고 빠른 템포의 변주들을 선 보여 고전 음악계를 뒤집어 놓은 그 버전이다. 그런데, 사망 수개월 전에 녹음한 1981년 음반 역시 명반이다. (악명 높은 그의 흥얼거리는 목소리가 섞여 있긴 하지만, 평균율 음반에 비하면 애교로 봐줄 만한 수준이다.) 1955년에 비해 변주곡들의 템포가 훨씬 느려져 있는데, 그래서 깔끔하고 정교한 타건은 더욱 도드라지고, 어쩌면 전체적인 조화는 오히려 더 아름답다. 이 두 음반을 비교해 듣고 임현정의 평균율을 듣고 있다 보면, 10 년 후 그녀의 평균율은 또 어떻게 달라질까 하는 기대를 하게 된다.
그의 많지 않은 음반 중에 베토벤 소나타 32곡 중 30곡을 연주한 “전집”이 있다. 나머지 두 곡은 베토벤이 출판하지 말라고 했었다는 게 빼놓은 이유이다. "전집(Complete)"이라는 말이 구실이 되어 비난받을 것 뻔히 알고도 그렇게 한 모양이다. 그런데, 그 나이에 베토벤 전집이라니, 아마도 말리는 사람들이 꽤나 있었을 텐데... 한때 빌보드 차트에 1위로 올랐다고 유명세를 탔던 그 음반이다.
평소에 즐겨 듣지 않는 “월광” 첫 악장을 들어보았다. 이 너무나도 흔한 곡이 처음으로 가슴에 와 닿는다. 내겐 다른 연주들이 느려도 너무 느렸던 게다. 연주도 어렵겠지만, 웬일인지 듣는 입장에서도 항상 긴장을 하게 되는 29번 Hammerclavier는 전혀 무너지지 않는다. 물론 30곡의 소나타가 모두 만족스럽게 다가오는 것은 아니지만, 이는 어느 피아니스트라도 그리고 어느 청중이라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
Rudolf Serkin을 알게 된 30년 전 이후로 내게는 가장 아름다운 피아노 곡들이 베토벤 30번, 31번, 32번이다. 임현정의 연주에서 느껴지는 깊이가 Serkin 못지않다면 조금 심한 과장일까? 역시 곳곳에서 몰아치는 빠른 템포에도 불구하고, 전혀 조급하지 않다. Kleiber의 베토벤 교향곡 5번을 접했을 때의 그 신선함과 다르지 않다. "머지않아, Gould의 바흐와 Serkin의 베토벤에 30년을 넘게 매여 살아온 나를 그들에게서 해방시켜 줄지도 모르겠다," 라고 말하면 아마도 너무 과도한 기대이겠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심으로 응원하고 긴 시간 지켜보고 싶은 피아니스트 임에는 분명하다.
특히 최근에 발견한 브람스 Piano Concerto 2번 영상은, 어쩌면 이 기대가 현실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했다. 군포시에 자리 잡은 Prime Phil Orchestra와의 연주인데, 관현악단이 그의 전혀 다른 스타일에 더 세심하게 맞추어 주어서인지, 신선할 뿐 아니라 완성도 역시 매우 높다. 작가에게 브람스 2번은 다른 흔한 협주곡들에 비하여, 피아노가 추가된 교향곡의 느낌이 더 강했는데, 임현정은 그 안에서 피아노를 완벽히 되살려내었다. 최소한 이 작품에 관한 한, 작가의 오랜 벗인 Serkin+Szell을 완전히 대체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Amazon리뷰나 유튜브 댓글 중에 그를 비난하는 말들이 여럿 보인다. 20세기 거장들의, 대중에게 익숙해진 연주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매우 빠른 템포의, 전혀 들어본 적이 없는 희한한 연주라는 말을 온갖 방식의 비난에 얹는다. 천재적인 손가락 능력을 가진 어린아이처럼 취급하기도 하고, 자아도취에 빠진 젊은이라 하기도 한다. 깊이가 없단다. 심지어는, 아시아권 출신 연주자들은 모두 다 테크닉만 앞세우고 깊이가 없다는, 근거도 없고 생각도 없는 비난을 쏟아내는 한심한 인종주의자들도 일부 보인다.
과연 그가 속도에 매몰된 테크니션일까? 베토벤이 Hammerclavier를 어떤 빠르기로 연주하라고 했다거나, 다른 소나타에는 템포에 대한 그런 표시가 아예 없다는, 그래서 작곡가의 의도가 무엇이라거나, 아니라거나 하는 이야기는 사실 큰 의미가 없다. 연주자들을 Artist라고 부르는 이유는 그들 자신의 해석에 따라 음악은 변할 수 있고, 그렇게 변해야 그 음악이 계속 생명력을 유지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호불호가 있을지언정 옳고 그름을 이야기할 수 없을 것이다. 지금까지 들어본 그의 연주들은 본인의 철학에 근거한 해석인 듯하다. 작가는 Bach/Beethoven/Brahms의 경우 그의 선택에 100% 공감을 하지만, 그의 Rachmaninov 들에 관하여서는 아쉬운 면이 없지 않다. 누군가에겐, 그리고 경우에 따라서는 그의 해석이 부담스럽고 싫을 수도 있겠지만, 이것이 비난의 대상일 수는 없다. 그에게 대형 콩쿠르 수상 경력이 있었다면, 아마 이들 중 상당수가 그의 새로움에 대한 미사여구를 늘어놓았을게다.
30대 초반, 손열음과 동갑이다. 대단한 사람들이다. 이들을 동시대에 그리고 전혀 다른 방식으로 배출한 이 작은 나라가 신기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