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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평균율 Jun 23. 2019

Piazzolla의 사계

So Young Yoon & KCO

(사진 출처: https://www.globeguide.ca/la-boca-buenos-aires/)


클래식 음반이라는 부제를 달고 있는 이 시리즈이지만, 오늘은 음반으로는 찾을 수 없는, youtube에 올라와 있는 연주 실황 이야기이다. 사실, 고전음악 음반시장의 현 상황으로 볼 때 앞으로 이런 경우가 점점 더 많아질 것 같아 걱정이다. 에브게니 코롤리오프나 힐러리 한 정도의 명성을 가진 연주자들의 경우 비교적 다양한 음반을 찾을 수 있지만, 그만한 전 세계적 명성을 기대하기 힘든,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쩌면 이런 유명 연주자에 못지않은 젊은 연주자들에게 주어지는 기회는 점점 줄어들고 있는 듯하다.


그래서인지, youtube에 자신의 영상을 스스로 올리는 연주자들을 점점 더 찾아볼 수 있는데, 그나마 감사하기 이를 데 없다. 물론 한 가지 문제는 CD 수준의 음질을 확보하려면 그리고 이를 하이엔드 오디오까지 연결하려면 여러 단계를 더 거쳐야 하거나, 혹은 아예 불가능할 수도 있다는 것인데, 5G 시대가 도래했다니 이런 문제까지 곧 해결되지 않을까 기대해 보자.

 



사계 하면 흔히 비발디를 떠올리겠으나, 이미 바렌보임의 탱고 앨범 이야기 중에 언급했던 피아소야(Piazzolla)에게도 사계라고 불리는 모음곡이 있다. 흔히 부에노스 아이레스의 사계라는 이름으로 알려져 있는 곡들이나, 제목들에는 막상 Buenos Aires라는 말 대신 Porteno(Portena)라는 말이 사용된다. 원래 항구도시 출신을 의미하는 말이라는데, 이에 걸맞은 가장 큰 항구도시인 부에노스 아이레스를 흔히 의미하기도 한다고... 1965년부터 1970년에 걸쳐 개별적으로 작곡된 여름, 겨울, 봄, 가을의 제목을 가진 짧은 곡들이고, 피아소야 본인이 조직한 퀸텟에서 하나의 연작처럼 연주하기도 했다. 물론 탱고 음악의 화신과도 같은 반도네온이 그 중심에 있는 곡들이다.


이것을 1990년대에 Desyatnikov라는 러시아 작곡가가 현악기 중심으로, 하나의 Suite으로 편곡했다. 비발디 사계처럼 각각의 곡을 세 파트로 나누고 중간중간에 비발디 사계의 테마가 끼어들기도 하여 사실 원곡의 느낌과는 완전 이질적인 부분이 들려 때론 불편하기도 하다. 남반구의 계절과 북반구의 계절이 시기적으로 반대인 것을 굳이 감안하여 비발디의 겨울을 피아소야의 여름에 섞어 넣는 식의 조금 묘한 방식을 쓴 것도 희한하다. 반도네온이 아닌 고전악기에 적합한 편곡이라 음악당에서 흔히 사용하는 모양이다. 비발디 사계와 함께 한자리에서 연주되는 경우도 없지 않다.


20세기에 후반에 들어선 고전음악은 창작이라는 면에서는, 좋게 말해 실험적이고, 좀 심하게 말해 자기들만의 놀이가 아닌가 하는 의심을 가지게 한다. 물론 20세기 후반의 대중음악이라는 거대한 쓰나미 앞에서는 당연한 일일지도 모르겠다. 유독 피아소야나 빌라로보스 같은 남미 작곡가들이 돋보이는 것은 아마도 탱고라는 새로운 문화의 수혈 덕분일 것이다. 19세기 말, 20세기 초에 드보르작, 차이콥스키, 라흐마니노프, 스메타나 등 슬라브권의 향기가 유독 도드라졌던 것도 같은 이유가 아니었을까 추측해 볼 수 있다.

 



반도네온의 소리를 바이올린이 대치하는 이 편곡에서 솔로 바이올린의 역할은 상당해 보인다. youtube에서 이 곡의 연주를 찾아보니 두 명의 한국인 바이올리니스트가 리스트 위쪽에 보인다. 강주미, 그리고 윤소영이다. 각기, Sejong Soloists, 그리고 Korea Chamber Orchestra (KCO)와의 협연이며, 모스크바와 베를린에서의 실황이었다.


고전 음악계에서 1980년대생 한국인 여성 연주자들의 활약이 눈부신데, 이중에도 피아니스트 손열음, 임현정, 그리고 바이올리니스트 강주미, 윤소영 등이 유럽에서 활동하고 있는 대표적인 인물들이다. 이중 윤소영 바이올리니스트는 작가에게 조금 새롭다. 그의 이력이 특이한데, 이제 겨우 30대 중반의 나이에, 2012년부터 스위스 바젤 심포니의 악장을 하고 있단다. 한국의 대부분의 오케스트라는 단원들의 나이가 어리고, 여성이 압도적으로 많은 게 특징이지만, 유럽이나 미국의 경우 나이 지긋한 남성이 대세이다. 이런 틈에서, "변방"의 나라에서 온 젊은 여성이 악장을 한다는 것은 사실 상상하기 쉽지 않다. 내공이 만만하지 않음을 엿볼 수 있는 이야기이다.


인터뷰 영상도 몇 보이는데, 청각이 좋아야만 하는 음악가들이 흔히 그러하듯 편안하고 정확한 영어를 구사한다. 특히, 자연스럽게 뿜어져 나오는 자신감이 매우 인상적이다. 바이올린 케이스에 들어있는 커다란 오토바이 사진을 보여주며, 한대 사고 싶었는데 주변에서 말려서 못한다고 해맑게 말하는 그 모습이 신선하다. 언젠가는 콘서트에 가서 꼭 이 사람을 한번 보고 싶다.


윤소영의 이 베를린 연주는 서울 바로크 합주단이라고도 불리던 KCO와의 협연인데, 굳이 “가을”에서 시작한다. 그 도입부 때문일까? 솔로 바이올린이, 브리지 아래, 줄이 고정된 짧은 부분을 활로 긁어서 반복적인  리듬을 만들어 낸다. 엄숙한 음악당의 분위기를 생각해 보면, "이게 뭐지?" 하는 청중의 반응 속에 그들의 주의를 100% 끌어내는데 매우 효과적일 듯하다. 마치 바이올린이라는 악기가 얼마나 다양한 소리를 낼 수 있는지 보여주는 게 목적인 듯, 평소 듣지 못하던 다양한 주법들이 윤소영의 연주에서 특히 자신감 있게,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강주미의 경우 사실 이보다는 Dresdner Kapellsolisten과의 비발디 사계 연주가 조금 더 인상적이다. 철저하고 깔끔한 모범생 같은 그의 모습이다. 이에 비해 윤소영의 연주에서 느껴지는 리듬감은, 다른 이들의 연주와 비교가 어려운, 어깨가 들썩거리게 하는 흥겨움을 담고 있다. 이게 원래 탱고였지, 하고 매 순간 기억하게 하는 그런 연주이다.


일정 부분 KCO의 힘이겠지만, 그들과 주고받는 윤소영의 반짝거리는 눈빛이 그의 지분이 적지 않음을 시사한다. 아마도 그의 주 레퍼토리가 된 듯 다른 오케스트라와의 협연도 몇 보이는데, 이 음악의 현대적인 느낌을 전달하는 능력이 워낙 탁월하다. 자유자재의 템포와 강약 안에서 그 만의 뜨거운 피를 느끼게 한다.


윤소영의 자유스러움 그리고 특히 그 비범한 리듬감을 또 잘 보여주는 영상으로 Igudesman의 funk the string 연주가 있다. 2018년 브라질 공연에서의 앙코르인  모양인데, 협연을 한 후 뒤에서 듣고 있는 챔버 오케스트라 여러 단원들의 얼굴에 자연스레 미소가 배어 나오는 것을 볼 수 있다. 후반부에 몰아치는 절정 보다도, 짧게 끊어 치는 초반부의 여백이 도발적이고 인상적이다. 청중을 끌고 당기는 타고난 감각을 느낄 수 있다.




강주미, 손열음 편에서 이미 투덜거렸듯이, 이 젊고 매력적인 연주자들의 신보들이 나오지 않아 아쉽다. 윤소영은 특히 심해서 사실상 오래된 시벨리우스와 차이콥스키 협주곡 합본 cd 달랑 하나이고 그나마 국내에는 재고도 없는 모양이다. 본격적인 솔로 활동과 악장으로서의 임무 사이에 밸런스를 찾다 보니 그런 것일까?


이런 고급 연주자들이 넘쳐나는 이 나라에 제대로 된 음반 레이블 하나 없다는 게 슬프다. BTS가 미국 빌보드 진출했다는 이야기, kpop이 어떻게 해외 팬들을 그러모으고 있다는 이야기들 열심히 하지만, 기성세대가 이들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지에 대한 화두는 전무하다. 무언가 다들 각개전투 중이라는 느낌이다. 최소한, 국제적으로 경쟁력 있는 음반사 혹은 이의 21세기 버전이 하나쯤 만들어질 때가 되지 않았을까? 젊고 신박한 예술가들로 가득 찬 이 사회에 이들이 마음껏 뛰어놀 수 있는 토양이 머지않아 생겨나길 기대해보자. 윤소영의 피아소야를 제대로 만들어진 스튜디오 녹음으로 만날 날을 기대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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