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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평균율 Jul 12. 2019

베토벤 Op. 130~133

Guarneri Quartet


베토벤의 작품세계 안에서 현악사중주가, 특히 그 후기 사중주가 차지하는 비중은, 작가에게는 대단히 크다. 그중에서도 작품번호 130, 131, 132, 그리고 원래 130의 마지막 악장이었던 133번 Grosse Fuge 등이다. 보통은 4악장으로 구성되는 사중주들이지만, 이 후기 작품들에서는 이 형식을 깨고 있으며, 실제 작곡된 순서인 132, 130, 131이 각기 5, 6, 7 악장으로 구성된 것도 특이하다.


사중주는 단 4개의 현악기로 구성되어 있지만, 그래서 관현악과는 비교할 수 없는 작은 규모이지만, 그 깊은 몰입도에서는 못지않은데, 이들 후기 사중주가 그렇고 특히 Grosse Fuge가 그렇다. Grosse Fuge를 처음 들어본 사람의 반응은 아마도 열에 아홉은 “이게 정말 19세기 음악이라고?”일 것이다. Stravinsky가 했다는 말, “[it is] an absolutely contemporary piece of music that will be contemporary forever,” 가 아직 유효하다. 출판사 측에서 130번의 마지막 악장을 다시 써달라고 한 이야기에 순순히 따라줬다는 베토벤도 본인 생각에 좀 무리하다고 생각했었기 때문일까? 그 답지 않은 이 반응은 아직도 음악사의 미스터리 중 하나란다.


현대에는 Grosse Fuge를 마지막 악장으로 되돌려 놓고 연주하는 경우와 그렇지 않은 경우가 있는데, 이 두 가지 경우 청중에게 남는 인상은 전혀 다를 수밖에 없다. 원래대로의 이 작품의 백미는 서곡의 역할을 하는 5악장 Cavatina와 6악장 Grosse Fuge이다. 바흐의 평균율 덕후들에게는 익숙할 Prelude+Fuga의 형식을 이 두 악장이 따르고 있는 것이다. 바흐에 의하여 극강의 형식으로 발전된 푸가는 두 개 이상의 “목소리”가 각자의 독립성을 유지하면서 공존하는 것인데, 하모니와 반대의 개념이다. 이질적일 수 있는 소리를 섞어 아름다움을 만들어내는 방식이니 그 어려움은 작가와 같은 문외한에게는 이루 상상하기조차 어렵다.


이 세상의  음악이 아닌 듯 한 Cavatina의 아름다운 선율은 지금 태양계 밖으로 날아가고 있다, 말 그대로... 몇 년 전 명왕성 바깥까지 날아간 Voyager우주선들 외벽에는 금도금된 구리 음반이 하나씩 실려 있다. 그 표면에는 이 LP를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지에 대한 기본적인 그림들이 있어, 혹시나 이 우주선을 어떤 외계 문명이 찾아낸다면, 이 음반에 들어있는 지구의 소리들을 들을 수 있도록 하였다. 음반에는 다양한 문화권의 음악들도 담겨있는데 그중 마지막이 Budapest Quartet이 연주한 Cavatina이다. 다른 고전음악으론 Glenn Gould가 연주한 바흐 평균율 2권 C장조 서곡과 푸가, 그리고 Klemperer기 지휘한 베토벤 교향곡 5번 1악장 등이 있는데, 6분 남짓한 이 작은 Cavatina 악장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였는지 알 수 있는 이야기이다.




이중 Op. 132는 작가에게 오랜 친구와 같은 작품이다. 사실 작가가 고전 음악에, 특히 실내악에 빠지는 결정적인 계기였다고 할 수 있다.


혼란스럽고 부조리했던 사회에 자신만의 절망이 더해져서 절대 빠져나올 수 없을 것 같던 대학 시절, 주중이면 매일 최소한 두세 시간을 보낸 곳이 도서관의 음악감상실이었다. 학교 이외에는 갈 곳이 많지 않았던 시절과 환경 속에서, 내게 학교 도서관만큼 시간을 보내기 좋은 곳은 없었다. 시험기간이 되면 도서관에 한자리 차지하는 게 그리도 어려웠는데, 본부 건물 뒤, 도서관 3층 한 구석에 있던, 스무 남짓 자리의 책상들 밖에 없는 이 작은 방은, 계속 흘러나오는 음악 때문에 학생들이 오래 버티지 못하였는지, 항상 몇 자리씩 비어있다는 걸 알아챈 게 계기였다.


아마도 고전음악에 대해 거의 완벽히 문외한이었기에, 이 방에서 그렇게 잘 버티지 않았을까? 사실 요즘은 사무실에서 음악을 틀어놓으면 집중해서 일을 하는 게 조금 어렵다. 그렇게 어쩔 수 없이 들어갔지만 끊임없이 피아노와 현악기들, 실내악과, 콘체르토와, 교향곡에 묻혀 있다 보니 하나 둘 그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고, 머지않아 듣기 위해 감상실에 가기 시작했다. 사실 음악만큼이나 현실을 잊게 잘 도와주는 것은 없지 않을까? 그리고 그렇게 얻은 마음의 안정은 상처가 스스로 아물 여유를 주었고, 그렇게 젊은 마음을 매일 치유해준 레퍼토리 중 하나가 베토벤의 15번째 사중주인 Op. 132였다.


다섯 악장으로 이루어졌는데, 속삭이듯 시작하여, 마치 무언가를 토로하는 듯 간결하지만 호소력 있는 리듬으로 첫 악장이 끝나면, 2악장의 미뉴엣 스타일의 춤곡으로 넘어간다. 그리고 모든 의미에서 중심적인 3악장이 시작되는데, 각각의 현들이 돌아가면서 첫 악장에서의 테마와 비슷한 목소리를 내는 3악장의 도입부가 지속되다가, 마치 잠에서 깨어난 듯 활력을 되찾고, 그리고는 다시 나른한 오후와도 같은 조심스러운 목소리들이 들린다. 이렇게 몇 차례 정도 반복하면서 20분가량 가까이 썰물과밀물을 반복하는 이 세 번째 악장은 그 흡인력에 있어서는 어쩌면 Grosse Fuge에 비교될 만하다.


이 세 번째 악장 악보에는 다음과 같이 쓰여있다: Heiliger Dankgesang eines Genesenen an die Gottheit, in der Lydischen Tonart, Molto adagio – Andante. 몰토 아다지오와 안단테는 물론 연주를 어떻게 하라는 지시사항일 것이고 in der Lydischen Tonart는 음악 형식에 대한 이야기이다. 그 앞의 낯선 문구 “Heiliger Dankgesang eines Genesenen an die Gottheit”는 번역하면 “병상에서 일어난 것을 신에게 감사하며 바치는 노래” 쯤 된다고 하는데, 당시 2악장까지 쓰고 상당기간으로 병상에 누워있다가 회복하고 3악장을 시작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가벼운 것과는 거리가 먼 이 후기 사중주들 중에서도 특히 비장하다.


짧고 활달한 4악장을 2분 만에 마치고, 1악장의 끝은 건네받은 듯 리드미컬한 5악장이 시작되면서 절정을 향해 달려간다. Op. 132는 후기 사중주 중에 가장 대중에게 사랑받는 곡이라는데, 역시나 청중의 마음을 밀고 당기는 매력이 넘친다.   




Op. 131은 비교적 소규모의 마지막 사중주인 Op. 135와 Op. 130의 새로운 6악장을 제외하고는 가장 늦게 작곡된 사중주곡으로, 일곱 악장으로 구성된 대작이다. 베토벤 자신이 가장 만족스러워한 사중주라고 전해진다.


그 장대한 규모에 걸맞게 오케스트라용으로도 편곡이 되었다. 20세기 중반에 활동하던 작곡가, 지휘자, 그리고 피아니스트 Dmitri Mitropoulos가 하였는데, 사실 편곡이라기보다는 네 파트를 더 많은 현들에게 나누어 주었다는 게 옳다. 예를 들어 첼로 파트를 콘트라베이스가 함께하는 식이다. 그 소리의 깊이가 한층 짙어질 것은 당연하다. 또 다른 점은 7개의 악장으로 끊어서 하는 연주가 아니라 연속으로 한다. 가장 짧게는 50여 초에 불과한 3악장, 그리고 흔히 3분에서 7분 사이의 악장들이 여럿 있어, 관현악 홀에서 각 악장의 연주 후 잠시 쉬는 것이 상상이 안 가긴 하다.


문제는 사중주의 정확한 호흡을 유지할 수 있느냐이겠는데, 그래서인지 자주 듣기는 힘들다. 이 오케스트라 버전은 Bernstein이 빈 필하모닉과 연주한 음반이 유명한데, Bernstein 본인은 이 연주를 본인의 커리어의 절정으로 여겼다는 이야기도 있지만 작가에게는 너무 무겁게 느껴진다. 같은 빈 필하모닉이 20년 후에 Andre Previn의 지휘로 연주한 음반을 더 쉽게 구할 수 있는데, 작가는 오히려 이 녹음을 선호한다. 소리의 질감도 이 최근 연주가 조금 우위를 차지하는데, 전에도 이야기했듯이 음반에 관한 한 녹음의 기술이 연주만큼이나 중요한 그런 상황이 아닌가 한다.




물론, 현악 사중주단 음반을 먼저 들어보는 것이 순서이겠다. 20세기 중후반 실내악의 중흥 이후 세계에는 수많은 현악 사중주단이 활동해 왔는데, 베토벤의 후기 현악사중주들에는 과연 어느 Quartet의 연주를 추천해야 할까? 베토벤의 이 후기 작품들은, 연주자들에게 퓨터 게임들의 최종 보스 비슷한 느낌이 아닐까 한다. 웬만한 명성을 가진 팀이라면 한 번쯤은 녹음을 한 적이 있을 텐데, 그래서 대단히 많은 음반이 있다. 대중적으로 널리 알려진 Juilliard, Amadeus, Budapest의 연주들도 당연히 찾을 수 있고, 조금 더 아는 사람들에게 물어보면 Alban Berg, Italiano, Emerson 이야기도 할 것이다.

 

하지만 작가는, 아마도, Guarneri Quartet을 꼽을 것 같다. 물론 Guarneri는 원래 Stradivari에 필적하는 17세기의 현악기 제작 가문의 이름이다. Stradivari와 질감이 조금 다른 소리를 기대할 수 있는데, 개인적으로는 더 선호하는 깊이 있는 소리를 내는 악기들을 만들어 내었다. 그런데, 막상 그 이름을 빌려온 이 Quartet 단원들이 오랜 기간 사용한 Guarneri 악기는 첼리스트 David Soyer의 첼로뿐이었다고 한다. 1970-1980년대에 특히 활발한 활동을 했고, 지금 환경에서는 상상하기 힘든 수의 음반을 출판했으며, 특히 베토벤 현악사중주 전곡을 두 차례나 녹음했다. 당대 미국 음악계에서의 영향력은 대단했고 특히 실내악의 부흥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한다.


딱 한번 그들의 콘서트에 간 적이 있는데, Chicago 대학에서 보낸 대학원 첫 해였다. 학교에서 열린 콘서트라서 부담스럽지 않은 가격의 입장권을 살 수 있었다. 사실 그 해에, 이렇게 학교에서 혹은 시내의 시카고 심포니 홀에서 새로 알게 된 음악가들이 여럿인데, 여러 문제로 지금은 무대에서 볼 기회가 많지 않은, 그러나 음색 하나 만은 전무후무한 소프라노 Kathleen Battle, 19세기 초에 만들어진, 현대의 피아노와는 그 소리가 상당히 다른 옛 피아노로 한 연주들이 특히 유명한 20세기 피아노의 거장 Paul Badura-Skoda, 그리고 Guarneri Quartet이 그들이다. 


Battle이 참여하고 Georg Solti가 지휘한 시카고 심포니 연주로 독일 레퀴엠, Badura-Skoda가 연주한 베토벤, 슈베르트, 브람스의 마지막 피아노 작품들과 함께 Guarneri의 베토벤 사중주를 당시 들을 수 있던 것은, 변방에서 온 나를 받아주고 게다가 굶지 않게 배려해준 그 고마운 대학에는 조금 미안한 이야기이지만, 시카고에서의 그 한 해가 남긴 많지 않은 자산 중 하나이다.


이 Guarneri Quartet와 마찬가지로 Alban Berg Quartet 역시 두 차례 베토벤 사중주 전곡을 녹음 했는데, 작가가 보유한 음반들은 이 두 Quartet들의, 각기 80년대에 만들어진 두 번째 녹음들이다. 둘다 흔히 베토벤 사중주들의 20세기 가장 중요한 녹음으로 여겨진다. 이 둘은 그러나 그 스타일에서 크게 대비되는데, 굳이 비교하자면 Alban Berg가 조금 더 감성적이라고 할까? 강약 혹은 완급 조절이 조금 인위적으로 들린다고 할까? Guarneri의 절제된 연주는 그럼에도 묘하게 더 마음을 긁어댄다.


특히 이 차이에는 비올라와 첼로가 내는 저음의 질감이 중요한 역할을 하는데, Guarneri의 원년 멤버 첼리스트인 Soyer라는 사람 자체가 불같은 인물이었다고 전해진다. 일반적인 관행과 달리 제1 바이올리니스트가 리더의 역할을 하지 않았고, 대신 연주를 준비하는 단계에서 단원들 간에 좋게 말해 강한 의견들이 많이 교환되었다는데, 아마도 이 과정에서도 Soyer가 한몫을 한 모양이다. 나머지 멤버에 비해 최소한 10살 이상 더 많은 1923년생이다 보니 2001년 경에 먼저 은퇴를 하였고, 그 제자가 8년간 그 자리를 채웠다가, 나머지 원래 단원들이 모두 70대 중반에 들어선 2009년에 Quartet자체가 해산을 하게 되었다.  


작가가 이들의 연주를 들은 것이 벌써 30년 전이고 당시 이미 다들 50대를 훌쩍 넘었었으니, 마냥 아쉬워할 일은 아니다. 이들에 비견될 만한 젊은 사중주단이 어디엔가는 나타나겠지 생각하고 기다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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