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래식"이라는 외래어는 흔히 두 가지 다른 의미로 쓰이곤 한다. 영어로는 "Classic"과 "Classical"의 차이일 텐데, 보통 클래식 음악이라고 할 때는 Classical Music이니, 이는 곧 서구의 종교적인 전통에서부터 시작되어 18-19세기에 꽃을 피운 한 장르의 음악을 말하는 말이다. 한편 Classic이라는 말은, 긴 기간에 걸쳐 인정을 받아 시간에 따라 그 가치가 사라질 것 같지 않다는 일반적인 형용사인데, 예를 들어 Queen의 보헤미안 랩소디는 이미 Classic이라 할 수 있겠으나 Classical은 아닐 것이다. 백 년을 너머 지금까지 연주되는 클래식 음악들이 이미 Classic이 되었음은 물론이다.
서구의 이 오랜 음악 전통이 20세기에 계속되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는데, 신대륙에 넘어간 사람들에 의하여 새로이 창조된 재즈와 탱고도 그중 일부이다. 북미에서 시작하여 대중적으로 그리고 국제적으로 널리 퍼진 재즈에 비하여, 남미에 뿌리를 두고 있는 탱고의 경우 우리에게는 음악보다는 춤으로서 다가오지만, 그 음악적인 깊이가 상당하다. "고전 음악"에서 차용을 하는 경우도 볼 수 있는데, Four Seasons of Buenos Aires의 Astor Piazolla와 Brazillian Bach로 널리 알려진 Heitor Villa-Lobos처럼 남미의 감수성을 고전 음악의 틀 안에 성공적으로 녹여낸 작곡가들이 대표적이다.
더구나, 고전음악 연주자들이 적극적으로 탱고를 연주하는 경우도 없지 않다. Yo-Yo Ma가 Libertango를 비롯한 10여 곡을 연주한 음반 “Soul of the Tango: Music of Astor Piazzolla”가 상당히 매력적이고, 여기서 소개하는 Daniel Barenboim의 “Mi Buenos Aires Querido,” 즉 “나의 사랑하는 부에노스 아이레스”라는 제목의 음반은, 음반에도 Classic이라는 수사를 사용해도 된다면 반드시 그 안에 포함되어야 할 그런 음반이다.
피아니스트이기도 한 Barenboim은 Georg Solti의 사후 20년 가까이 Chicago Symphony의 음악감독이기도 했고, 2006년 이후 이태리 La Scala를 이끌고 있으며, 미국에 돌아가는 것이 싫어 뉴욕필의 음악감독 자리를 고사했다는, 어쩌면 현재 생존하고 있는 어느 지휘자보다 빛나는 커리어를 가진 인물이다. 이런 그가 탱고 앨범을 만들었다는 것 자체가 파격일 수도 있겠지만, 그가 아르헨티나 출신이라는 것을 알고 나면, 아~~ 하고 수긍할 수 있을지도....
탱고 하면 흔히 떠오르는 악기가 있다. 반도네온이라고 하는, 기본적인 작동방식은 아코디언과 유사하지만 그보다는 작고, 펼쳐지는 길이가 길며, 키보드가 없는 모습을 하고 있다. 원래 독일에서 들고 다니는 오르간으로 사용된 종교적 목적의 악기였는데, 남미에 수출되면서 탱고 음악의 대표적인 소리가 되었다. 조금 희한한 일은 2차 대전으로 인해 독일에서 이 악기를 더 이상 만들지 않는다는데, 막상 국민 악기처럼 사용되는 아르헨티나에서는 딱히 만드는 회사가 없었던 모양이다. 최근에야 이를 되살리려는 운동이 일고 있다고 한다.
탱고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Piazzolla는 이 반도네온의 전설적인 연주가이기도 했다. 그리고 그의 사후 가장 대표적인 연주가는 Rodolfo Mederos이다. Barenboim 탱고 앨범은 그와 Mederos의 협업으로 만들어진 것인데, 여기에 Piazzolla와 오랜 음악적 파트너인 베이스 연주자 Hector Console이 함께 하였다. 아르헨티나에서의 Barenboim의 명성은 최소한 한국에서의 김연아쯤이 아닐까? 아르헨티나 최고의 음악가들이 모여들었을 것이 당연하다.
작가는 고전 음악 덕후를 자처하지만, 요즘에 와서는 종종, 사람의 마음을 너무 많이 움직이려고 하는 그 소리에 지치곤 한다. 새로운 것을 찾아 소위 현대음악으로 가자니 두통이 앞서고, 뉴에이지는 심심하다. Arvo Pärt의 조용하고 심신을 안정시켜 주는 곡들이 신선하면서도 편안하긴 한데, 조금은 피상적으로 다가온다. 대중음악은 때론 매력적이기도 하지만 역시 사람을 지치게 한다. 어쩌면, 단순히, 무언가 새로운 것을 원한다는 투정일 수도 있겠으나, 그 와중에 작가의 눈에 들어온 것이 이 Barenboim의 탱고 앨범이다.
그런데, 편안한 음악을 찾으면서 탱고라니... 탱고는 열정의 대명사 같은 단어 아닌가? 사실, 이 음반이 주는 느낌은 편안함보다는 따뜻함에 가깝다. 음반의 대부분을 끌고 가는 것은 마치 소프라노 같은 반도네온, 그리고 때로는 알토이고 때로는 메조이기도 한 바렌보임의 피아노와의 대화인데, 특히 그 모든 소리를 따듯하게 감싸안는 피아노 왼손의 온화함에 온몸의 긴장이 일순 풀려버린다.
피아노는 때로 리듬악기처럼 사용되기도 하는데, 그 소리는 “탱고는 이런 거야”라고 말하는 듯하다. 그러나 춤으로서의 탱고를 먼저 아는 대부분의 사람에게, 어쩌면 이 피아노는 전혀 낯설지도 모르겠다. 마초스러운 춤곡이 아니고 근사한 저녁의 배경음악처럼 탈색되었다고 투덜거릴 수도 있겠다. 하지만, 자신을 자주 드러내지 않는 그러나 스텝 하나하나가 정확히 그 자리를 아는 듯한 피아노의 생동감이 넘치면서도 온화한 리듬을 타고, 반도네온이 악보를 오르내리는 춤사위가 신비롭다.
열세 번째 트랙은 베이스가 주인공인 Contrabajeando라는 곡이다. “콘트라베이스를 연주하면서”라는 의미의 단순한 제목이라는데, 역시 Piazzolla의 작품이다. 흔히 찾기 힘든, 베이스를 전면에 세우는 곡인데, Youtube에 상당히 여러 형태의 편곡으로 연주된 것들을 찾을 수 있다. 이 중에는 특히 Jeff Bradetich와 Odysseus Chamber Orchestra와의 협연이 매우 인상적이고, 이 곡의 확장성을 잘 보여주는 편곡이다. 이 음반에서는 조금 더 친절하고 조금 더 따뜻하지만, 그래도 길거리에서 흔히 들릴 것 같지 않은, 범상치 않은 작품이라는 것이 쉽게 드러난다. 1954년 장학금을 받아 파리로 고전음악을 공부하러 간 Piazolla는 자신의 탱고 음악을 감추려고 했다고 한다. Nadia Boulanger에게 어쩌다 들려준 그 음악과 이를 듣고 그 원류를 떠나지 말라는 그녀의 조언 덕분에 탱고를 고전음악의 틀 안에 녹여낸 그의 이후 작품들이 가능했다는데, 이 작품 역시 이 시기의 작품이다.
역시, 풍월당 추천 음반이었다. 풍월당에서 발견한 음반 중에는, 예상 밖으로 너무 신기하고 좋아서 음악을 즐기는 지인들에게 선물한 것들이 몇 있는데, 앞서 소개한 Koroliov의 헨델 키보드 조곡과 이 음반이 그런 경우이다. 새로운 소리에의 갈증을 느끼는 독자들에게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