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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tory of
Future Writers

by 평균율 Jun 06. 2018

소리와 모양의 우화

현대 과학을 위한 변명


현대 과학은 어렵습니다. “올해 수능시험이 어려웠다”라고 말할 때와는 질적으로 다른 의미에서 어려운데, 그 이유 중 하나는 들여다보아야 하는 현상들이나 그 현상에 대한 설명들이, 직관적으로 소화될 수 있는 범주를 벗어나기 시작한지가 한참 되었기 때문입니다. 특히 자연과학의 가장 근본에 자리잡고 있는 물리학이 그러하며, 그 중에서도 양자 물리학은 더욱 그러합니다. 그래서 이에 대한 본론에 들어가기 전에, 과학자들이 자연을 인식하고 해석하는 방식에 대한 이야기를 먼저 해 볼까 합니다.


이 글은 원래 "체계와 예술"이라는 도서에 실린 것으로, 수학자, 물리학자, 철학자, 그리고 예술가들의 협업 가능성을 타진하는 초학제 과제의 일부로서 2017년도에 이학사에서 출판되었습니다. 브런치에 옮기는 과정에서 약간의 수정을 거쳤습니다. 수식을 최소화하려 노력하였으나 남아있는 부분이 없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 수식들을 다 이해하지 않아도 대세에는 영향이 없으니, 직업병이려니 하고 너그럽게 넘어가시기를 기대합니다.




< 소리와 모양의 우화 > 


20세기 기하학의 유명한 문제 하나로 이야기를 시작해보자. “Can you hear the shape of a drum?” 즉 북의 모양을 들을 수 있는가? 하는 질문이다. 모양은 시각의 개념이고, 소리는 귀로 듣는 것인데 이게 무슨 뜬금없는 물음일까?  


악기의 가장 기본적인 특성은 어떤 주파수의 소리를 낼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악기마다 소리가 다른 것은, 그리고 같은 악기도 여러 가지 음을 내는 것은 어떤 주파수들이 어떻게 섞여 있는지에 의하여 결정되는 것이다. 이 중 특히 악기의 떨리는 모습이 시간에 따라 변하지 않는, 소위 정상파라는 특별한 파동들이 있는데,  비교적 간단한 물리문제를 풀고 나면 알아낼 수 있는 이 정상파들의 주파수들을 고유주파수(Eigenfrequency)라고 부른다.   


예를 들어, 줄 하나를 팽팽하게 당겨 묶은, 매우 원시적인 악기를 생각해보자. "간단한" 미분방정식을 풀면, 이 줄에서 나올 수 있는 고유주파수들이 항상 어떤 최소의 기본 주파수 f 에 자연수 N을 곱한 것으로 주어진다는 걸 알 수 있다. 즉 N 번째 주파수의 크기가


f(N) = N*f


인데, 이때 f는 줄의 장력과 길이에 의하여 온전히 결정된다.


이 각각의  해당하는 정상파의 모습은 간단한 삼각함수로 주어지는데 줄이 원래의 팽팽하게 당겨진 자리에서 좌우로 비껴 난 거리를 g라고 부르고, 줄의 한쪽 끝에서부터 길이를 따라 표시하는 위치를 x라고 하면, 시간 t에 대하여


g(x,t;N) = sin(2*Pi*N*f*t) * sin(N*x*Pi/L)


의 모습으로 떨린다. L은 줄의 길이이고 Pi=3.141592.... 는 원주율이다.  여기에 표현하지는 않았으나 기본 주파수 f는 길이 L에 반비례한다.


바이올린이나, 가야금과 같은 현악기들을 보면, 줄의 중간 부분을 잡아서 음정을 바꾸는데, 이는 길이 L을 줄이거나 장력을 크게 하여 f을 키우는 것이다. 연주 시작 전에 조율을 하는 것 역시 줄의 장력을 조정하여 가능한 f값을 일정하게 만드는 것에 해당한다.


삼각 함수를 조금이라도 기억하는 독자들이 있다면, 함수 g의 값이 x=0과 x=L에서 0 임을 알 수 있는데, 이는 줄의 양끝이 매여 있기 때문이다. 그 이외에도 x가 L/N의 배수인 장소에서 역시 g값은 0을 유지하는데, 이렇게 특정한 장소에서 파동의 크기가 0이 되는 것은 정상파들이 가지는 특징적인 모습이다. 아래에 이야기할 북과 같은 악기에서의 경우, 정상파들은 특정한 선을 따라서, 진동하지 않는 장소들이 생기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비교적 낮은 고유 주파수 간의 비율이 간단한 유리수가 되는 이 현상은 우리가 이미 잘 알고 있는 음계의 기초와 연결된다. 한 옥타브의 "솔"과 그다음 옥타브의 "솔" 사이에는 항상 정확히 2배의 주파수 차이가 있는데, 여기서 시작하여 이런 한 옥타브를 여러 단계로 나누는 방법에는 순정률과 평균율의 두 가지 방법이 있다. 주파수들의 비율이 분수가 되도록 구현하는 순정률이 더 오래된 방식인데, 이는 피타고라스(Pythagoras)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한편, 현대의 악기는 대부분 평균율로 조율하는데, 한 옥타브 안의 12개의 주파수들을 단계적으로 2^(1/12) 배만큼 씩의 되도록 조율하는 것을 말한다.


위와 같이 줄 하나로 만드는 단순한 악기에서는 두 가지의 고유주파수 사이의 비율이 항상 두 정수의 비율인 것을 볼 수 있는데, 이런 의미에서 순정률이 훨씬 자연스러우며, 실제로 더 완벽한 하모니를 준다. 평균율의 경우 음과 음 사이의 하모니가 완벽하지는 않으나, 조의 선택과 상관없이 악기를 조율할 수 있는 장점이 있어, 바흐(John Sebastian Bach)의 시대 이후에는 대부분의 악기를 이렇게 조율한다고 한다. 바흐의 너무나도 유명한 "Well-Tempered Clavier" 96곡은 이 새로운 음계에 대한 일종의 실험서였던 것이다. 하지만, 요즘처럼 음악이 컴퓨터를 통해 만들어지는 경우에는 평균율의 장점이, 조금은 희석되지 않을까 생각된다.


원래 이야기로 돌아와서, 절대음감을 가지고 있고, 들을 수 있는 주파수에 제한이 없는 인공지능(Artificial Intelligence)이 있다고 치자. 다만 시각이나 촉각에 해당하는 센서는 장착하지 않았다. 서로 다른 두 사람이, 서로 다른 재료의 줄을 가지고, 각자 위와 같은 원시적인 현악기를 만들어 그 소리를 인공지능에게 들려주고 어떤 종류의 악기에서 나는 소리인지 알아맞히라고 했다고 하자. 가장 간단한 방법은 각 악기의 소리에 어떤 고유주파수들이 섞여 있는지 측정하고, 이를 바탕으로 이 두 가지 악기들의 형태를 유추하는 것일 것이다.


인공지능은 오래지 않아 두 가지 악기에 각자의 가장 낮은 음의 고유주파수 주파수 f(1)= 1*f 들이 있고, 두 악기의 고유주파수들이 이 f에 자연수 N을 곱한 값들이 나온다는 것을 눈치챌 것이다. 간단한 물리학을 배웠다면, 두 악기 모두 양쪽 끝을 매어 놓은 줄의 진동을 사용한다는 것을 유추해낼 것이고, 사용한 각각의 장력을 알려주면 두 줄의 길이 L까지도 알아낼 것이다.  


물론 위의 이야기가 바이올린과 가야금과 같은 실제 현악기에는 이렇게 단순하게 적용되지는 않는다. 대부분의 현대적인 현악기들의 경우, 소리가 줄에서 시작되기는 하지만, 실제로는 이 소리가 증폭되고 공명되는, 나무로 만든 울림통의 소리를 듣는 것이기 때문이다. 300년 된 Guarneri가 10억 원에 거래되는 이유는 그만큼 울림통의 역할이 절대적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글의 제목에서 보이듯이, 필자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일종의 우화이므로, 독자들은 일단 계속 읽어보시기를 권한다. 적어도, 이솝 우화에 나오는 동물들은 왜 말을 하냐고 투덜거릴 생각이 아니라면 말이다.  


줄을 사용하는 현악기 이야기를 했으므로, 이젠 팽팽히 잡아당긴 가죽을 울려서 소리를 내는 북 이야기로 넘어가 보자. 예를 들어 모서리 길이가 a와 b인 직사각형 면을 두들겨 소리를 내는 북을 생각해 보자. 위 바이올린의 경우처럼 실제로 북의 소리를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 중 하나는 소리가 공명되는 울림통이지만, 그런 것 없는, 탬버린에 가까운 북을 생각해 보자는 말이다. 이 경우, 고유주파수는 역시, 어떤 기본 주파수 f에 특정한 숫자들이 곱해지는 모양으로 나타나는데, 두 자연수 N, K에 대해


f(N, K) = (N^2+ K^2*(a/b)^2)^(1/2) * f


의 모양을 가진다. 가장 낮은 주파수는 N=1, K=1에 해당하여 f(1,1)=(1+(a/b)^2)^(1/2) * f의 값을 가지며 높은 주파수들은 N, K를 순차적으로 늘리면 나타나게 된다.


앞서 현악기를 경험한 인공지능이 이 악기가 북의 모양을 가진다는 것을 알아내는 것은, 이제 매우 쉬운 일이다. 특히 이 악기가 직사각형 평면이며, 두 모서리 길이의 비가 a/b라는 것을 곧 알아낼 것이다.  

위 두 그림은, b=2a와 b=a 두 가지 경우에 대하여 (N^2+ K^2*(a/b)^2)^(1/2)라는 숫자들을 표시한 것인데, 이로부터 북의 모습과 그래프에 표시된 고유주파수의 분포 사이에 매우 밀접한 관계가 있음을 알 수 있다. 특히 정사각형이면 a=b 이므로

 

f(N, K) = (N^2+ K^2)^(1/2) * f


가 된다.


이쯤 되면 대부분의 독자들은 “Can you hear the shape of a drum?”이라는 말이 도대체 무슨 질문인지 이미 알아챘을 것이다. 북의 모양을 알면 간단한 미분 방정식을 통하여 고유주파수들을 모두 결정할 수 있는데, 거꾸로 그 모양을 알려주지 않고 대신 무한히 많은 이 고유주파수들을 모두 알려주면, 북의 모양을 유추해내는 것이 원론적으로 가능한가 하는 것이 이 질문의 수학적인 내용이다.


이 문제를 처음 제기한 것은 헤르만 바일(Herman Weyl)이라고 알려져 있으나, 수학계에 널리 알려진 것은 마크 캑 (Marc Kac)의 1966년 저술을 통해서 이고, 그 질문을 위와 같은 형태로 표현한 것은 것은 립만 버스 (Lipman Bers)라고 한다. 처음 이 수학 문제를 수면 위로 올려놓은 이 사람들은 아마도 “항상 그러하다”라는 증명이 금방 나올 것을 기대하지 않았을까? 당시에 이미 일부 증명이 있었는데, 즉 북의 모서리 모양이 볼록하다고 가정하면 항상 가능하다는 증명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비교적 쉬어 보이던 이 질문에 대한 답이 "아니오"라는 사실이 거의 30년이 지난 후에야 밝혀졌다. 1992년에 들어서 모서리 모양이 볼록하지 않은, 그리고 서로 다른 모양의 두 가지 북이 동일한 고유주파수를 가질 수 있다는 것이 알려지게 된다. 아래 두 그림은 전혀 다른 모양의 북에서의 어떤 동일한 주파수의 정상파들을 각기 그린 그림이다. 검은색 선은 북의 면이 움직이지 않고 있는 위치를 나타내는 것이다.  




위 이야기를 듣고 나서 대부분의 사람들의 반응은 “참 할 일 없는 사람들이네” 이겠다. 그러나, 개중에는 “신기하네”도 있을 것이고, 간혹 “고유주파수는 도대체 어떻게 계산하는 거야”는 질문을 하는 경우도 있을 텐데, 만일 독자 주변에 이런 반응을 보이는 학생이 있다면, 수학이나 과학을 전공하라고 적극 독려해 보아도 좋다.


< 과학과 지각(知覺) >


수학이나 물리학을 전공하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위에서 “소리”와 “모양”을 연결 짓는 과정이 전혀 투명하지 않을 것이다. 특히 고유주파수라는 말조차 선명하게 이해되지 않는 독자들이 꽤 있을 것이다. 설혹 정상파와 고유 주파수라는 두 가지 개념을 이해하더라도 기술적인 어려움이 남는데, 이는 초중고 시절에 배운 수학을 많이 넘어선, 미분방정식을 풀 수 있는 수학을 알아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기서는, 이런 실질적인 어려움을 잠시 잊고 이 이야기가 내포한  한가지 중요한 본질을 이해해 보고자 한다. 이 우화 안에는 현대에서의 과학이 무엇을 하는가에 대한 중요한 힌트가 담겨져 있다.


지극히 수학적인 이 질문과 해답에서, 우리는 무엇을 배워야 할까? “모양”이 “소리”를 결정하지만 “소리”가 “모양”을 100% 결정하지 못한다는 것이 이 이야기의 결론이다. 만일 우리가 “소리”는 완벽하게 듣지만 “모양”은 직접 인지할 수 없는 존재라면 “모양”에 대한 무슨 이야기를 할 수 있을까 하는 질문을 해보자. 소리만으로 모양을 100% 확실하게 정하지 못한다면 우리는 모양에 대하여 이야기하는 것을 포기해야 할까? 물론 아니다.


어쩌면 이 이야기에서 배워야 할 가장 중요한 것은 “소리”의 정보가 ‘얼마나 불완전한가’가 아니고, 반대로 ‘얼마나 많은 정보를 가지고 있는가’ 이다. 고유 주파수들의 패턴을 보면 현악기와 북이라는 두 가지 종류의 악기가 쉽게 구별됨을 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누군가가 내게 북의 모양이 직사각형이라는 것을 미리 알려주면, “소리”는 이 직사각형이 얼마나 길쭉한가에 대한 정확한 답을 줄 것이다. “소리” 만 가지고 모양을 100% 확실하게 알아내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안에는 상당히 많은 정보가 들어 있다는 말이다.


학교에서 과학을 배우기 시작할 때에는, 물체의 속도, 힘, 마찰력 같이 경험적으로는 무슨 의미인지 이해되는 개념에서 시작한다. 예를 들어  


F = ma  


라는, 힘이 어떻게 물체를 가속시키는지를 말해주는 뉴턴의 방정식을 보자. 여기서 “힘”이나, “가속도”라는 개념들은 통상적으로 이해하기 어렵지 않고, 조금만 주의를 기울이면 그 측정도 그다지 어렵지 않은 물리량 들이다. 물론 이 법칙을 제대로 사용하자면 수학적으로 엄밀하게 하는 과정이 필요하므로, 미적분이라는 수학을 사용해야 한다는 것은 피할 수 없기 때문에,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어렵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F = ma 의 결과로 나타나는 물리 현상들이 사람이 인지하기 힘든 것은 아니다.  


이에 반하여, 21세기 현재 연구되고 있는 자연과학은 이와 달리 전혀 직관적이지 않다. 예를 들어 분자생물학을 보자. 분자생물학은 흔히 유전자 검사를 한다고 할 때 그 근거가 되는 생물학의 일종이다. 가끔은 개인적인 이유로 병원에서 접하기도 하고, 범죄영화나 막장드라마에서 자주 언급되는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이미 다양하게 응용되고 있는, 굳건한 토대가 만들어져 있는 과학이다.


유전자 이야기를 하면 흔히 보게 되는 이미지가 있는데, 아래 그림 중 왼쪽과 같은 사진들이다. 이런 실험에서는 일단 DNA나 RNA를 잘게 자르는데, 그 토막들에 들어있는 유전자 종류에 따라 다른 성질을 가지게 되고 이를 이용하여 왼쪽과 같은 일종의 크로마토그래피 이미지를 얻게 된다. 이런 이미지에는 유전자 정보, 즉 오른쪽 그림과 같이 네 가지 종류의 핵산 ACGT 등의 순서에 대한 정보가 들어가 있다.


  



조금 더 정확하게 이야기하자면, 오른쪽의 유전자 구조는 왼쪽의 실험 결과에 대한 예측을 주는데, 이는 수십 년에 걸친 실험과 이론이 축적되어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매우 긴 분자인 DNA/RNA를 어느 자리에서 어떻게 자를 수 있고, 이 조각들에 어떤 조작을 가해야 하며, 어떤 종류 젤에 얼마만큼의 양을 찔러 넣은 후, 몇 볼트의 전압을 얼마나 긴 시간 동안 가하면, 위 사진은 어떻게 찍어야 하는지, 등등, 어느 하나 배우지 않고도 알 수 있는 과정은 없다.  


사실 분자 생물학만 해도, 일상적인 인지능력의 한계 지점에 가 있기는 하지만 그래도 아직은 인류가 가진 상상력의 범주를 많이 벗어나지 않는다. 그러나 필자의 전공분야라고 할 수 있는 일반 상대론, 소립자 물리, 그리고 더구나 양자 장론과 초끈 이론쯤 되면, 개개인의 상상력과 과학 사이의 괴리는 극복하기 어려워 보일 수밖에 없다.


아래의 그림을 보고, 이것이 그 안에 신의 입자라고 불리는 힉스 입자가 잠시 생겼다 사라진 실험을 보여주고 있다고, 그래서 이 실험을 통해서 입자물리학자들이 50년 전에 만들어 놓은 소위 소립자 표준모형이 옳았음을 드디어 알게 되었다고 누군가 이야기했다면 과연 이 말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위 그림은 한가운데에서 빛의 속도에 근접한 두 개의 양성자가 이 페이지 면의 수직 방향으로 충돌한 직후의 상황이며, 중간 부분의 곡선들은, 이로부터 생겨나는 엄청나게 많은 수의 입자들이 지나간 궤적을 측정한 것이다.


E=mc^2


라는 아인슈타인의 유명한 방정식은 에너지가 입자로 전환될 수 있음을 의미하고, 입자가속기에서의 충돌 실험은 이것이 현실화되는 대표적인 경우이다.


중간 부분은 전하를 가지는, 예를 들어 전자와 같은 입자를 추적할 수 있는 장치이다. 이곳에는 매우 센 자기장이 걸려있어 전자 등의 궤적이 휘게 되는데, 그 휘는 정도에 따라 그 입자의 속도와 질량에 대한 정보를 얻게 된다. 대부분의 입자들은 이 중간 부분을 지나 외부에 있는 열량계(Calorimeter)로 통칭되는 여러 장치에 의하여 그 에너지가 측정되는데, 이로부터도 이 입자에 대한 많은 정보를 얻게 된다. 특히 전하를 가지고 있지 않는 입자들의 경우 중간 부분에서 속도에 대한 정보를 읽어낼 수 없기 때문에 이 후반부 측정이 매우 중요하다.   


그런데, 위에서 힉스 입자가 하나 잠시 생성되었다가 다른 입자들로 붕괴되었다는 것을 알아내기 위해서는 이렇게 다양한 입자들의 정체를 일일이 알아내는 것이 필요하다. 단순히 힉스 입자가 어느 부분에 어떻게 숨어 있는지를 직접 알아내는 것이 절대 아니고, 위와 같은 상황에서 궤적을 그리고 지나간 그 이외 모든 입자들까지, 그리고 심지어 이 그림에 아무런 자취를 남기지 않은, 예를 들어 중성미자와 같은 소립자들까지 빠짐없이 다 알아내야 하는 것이다. 이에 비하면, 북의 소리와 모양을 연결시키기 위한 미적분이 구구단 정도로 보일 수도 있다.  


이러한 일례 하나하나는 과학이 더 이상 한 두 사람의 천재에 의하여 만들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말해준다. 몇가지의 실험과 이로부터 유추되는 한 두 가지의 과학적인 사실이 추상적인 논리만으로 연결된 과거의 단순한 모습일 수 없다는 말이다.


물론 캑(Marc Kac)이나 그 이전의 바일(Herman Weyl)처럼 가장 중요한 질문이 무엇인지를 알려주는 천재들, 그리고 표준 모형을 처음 제안한 와인버그(Steven Weinberg)나 양자 장론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지를 알려준 윌슨(Kenneth Wilson)과 같은 거목들은 물론 중요하지만, 이로부터 새로운 패러다임을 만들어가는 데에는 동시대 과학자들의 공동체가 필수적이라는 말이다. 아인슈타인이나 뉴턴과 같은 한 과학자의 지각(知覺)에만 의존할 수 없는, 어떤 거대한 것이 된 지 오래이다.  


< 현대 과학을 대하는 우리의 태도 > 


간혹 아인슈타인의 상대론이 옳지 않다고 말하는, 이를 대체할 새로운 이론을 주창하는 “재야의 고수”들이 있다. 과학에 대한 깊은 관심과 애정을 가진 분들인데, 이분들과 이야기를 해보면 거의 예외 없이 기존의 과학을 “논리적으로” 반박하려고 한다. 상대론이 관여되는 수많은 실험과 이론들은 거의 알지 못한 채로, 상대론이 주장하는 현실과 자신이 평소 인지(認知)하는 현실 사이의 간극에 의지하여, 단지 약간의 수학을 가미한 논리적, 그리고 철학적인 고찰을 통하여 부정하려고 한다.


그러나 과학은 논리나 철학이 아니다. 논리는 과학에 필수적인 윤활유이지만, 그 윤활유만으로 과학이라는 자동차를 만들 수는 없다. 그리고 모든 자동차가 그러하듯이 한 분야의 과학 안에는 수많은 경험치가 녹아들어가 있고 정제되어 있다. 그렇다면 이렇게 한 개인이 100% 소화하는 것이 점점 어려워지고 있는 현대 과학은 전문가 집단들의 전유물이어야 할까? 현대 과학은 과연 어떻게 만들어지고 있으며, 어떻게 일반 대중에게 소화되어야 할까?


지금까지 “소리”와 “모양”이 어떻게 연결되는지에 대하여 생각해 보았다면, 이제는 이 우화의 결론이었던, 즉 “소리” 만으로 “모양”을 100% 재구성하지 못한다는 결과를 기억해보자. 과학에서 실제로 실험을 통해 측정하는 것들을 “소리” 그리고 그 측정의 대상인 사물 혹은 현상의 실체를 “모양”에 대입해 보면, 무언가가 모자란다는 생각을 할 수밖에 없다.


위에 예시로 들었던 분자생물학 실험에서 왼쪽의 이미지 하나에는 절대로 오른쪽과 같은 엄청난 양의 정보가 들어있을 리가 없다. 왼쪽과 같은, 혹은 이에 관련된 모든 실험을 다 모아 놓는다고 해도, 어쩌면 이들로부터 오른쪽을 재구성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해 보이기도 한다. 미래의 인공지능에게 지난 50년간의 모든 실험 데이터를 주고, 분자 생물학을 재구성하기를 기대할 수 있을까?

 

여기에는 하나의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 알려진 “모양”에서 “소리”를 예측하는 과정, 알려진 유전자 조합에서 크로마토그래피를 예측하는 과정, 혹은 알려진 소립자들의 종류와 상호작용에서 가속기 실험의 결과를 예측하는 과정은 기술적으로 복잡하지만, 충분한 지식과 경험 축적해낸 전문가 혹은 전문가 집단에게는 일상적인 일이다.


그러나 그 반대 방향, “소리”에서 “모양”을 유추하는, 즉 실험과 측정으로부터 대상의 실체를 뽑아내는 과정은 전혀 다른 문제인 것이다. 이는 “모양”에 대한, 즉 “실체”에 대한 일정 부분의 가설이 없이는 원론적으로 불가능한 작업이다. 소리와 모양의 우화에서 북의 모서리가 볼록하다는 조건이 있어야만 소리로부터 모양을 100% 유추할 수 있었듯이, 실험의 대상이 되는 실체에 대한 가설이 없이는 시작할 수 없다.  


따라서, 과학은 “소리(~측정)”와 “모양(~실체)”으로 구성되는 것이 아니고, “소리(~측정)”와 “모양(~실체)에 대한 가설”로 구성되는 것이다. 이러한 가설들의 집합체, 혹은 그 결정체를 흔히 “이론”이라고 부른다. 현대 과학은 가설에서 시작하여 실험을 고안하고, 측정을 통하여 가설을 세우고, 그 가설이 옳은지, 옳지 않은지를 확인할 수 있는 새로운 측정을 고안하며, 옳지 않은 가설은 버리고 옳은 것들을 모아 체계적인 이론을 세우는, 끊임없는 동적 과정이다. 그리고 학교에서 배우는 과학의 대부분은 결국, 현재 수많은 실험을 통하여 “정설”이 된 가설들인 것이다.


과학은 “절대적”인 것이 아니다. 가설은 아무리 신빙성이 있어도 결국은 가설인 것이고, 다만 얼마나 믿을 만 한지에 대한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인 것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대 과학에 대한 의구심을 버려도 좋은 이유는, 과학자들이 일하는 방식 때문이다. 어떤 이론이나 모델이 주어졌을 때, 이를 가장 먼저 가장 깊게 의심하고 확인하는 일을 하는 사람들이 과학자들이다. 확인의 과정을 아무리 오래 여러 번 거쳐도 어디엔가는 의구심을 가지고 새롭게 접근하는 과학자가 있게 마련이고, 이들 각자의 확인 과정이 쌓이고 쌓인 것이 과학이다. 따라서, 위의 "절대적"이 아니라는 말은 어느 절대자의 선언에 의하여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의미에 가깝다.


그런데 이 무한히 복잡한 과정에서도, 상당히 자주, 논리적으로 쉽게 연결되지 않는 도약이 필요한 순간들이 찾아온다. 이중 나선이면 설명이 된다라던가, 시간과 공간이 섞일 수 밖에 없다던가, 빛이 그냥 파동이 아니고 때로는 알갱이처럼 행동한다면 이라거나, 이런 과학 자체의 패러다임을 바꾸어 놓은 도약 뿐만이 아니다. 논문 하나 하나에도 있을 수 있는 그런 영감들은 간혹 실험과 계산이 끝난 후 도출되는 불가피한 결론이 아닌 인식의 저 깊숙한 곳에서 갑자기 튀어나오는 그런 것일 때도 적지 않다. 이런 경우 실험과 계산이 그 이후 확인을 위해 전개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리고 이런 도약은 과학자 개개인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현대 과학은 인간 개개인이 가진 지각(知覺)의 범주를 넘어선 지 오래되었지만, 그럼에도 일개 과학자 개인의 직관(直觀)이 없이는 진행하지 못한다는 말이다. 그리고 직관이 필요하다는 말은, 이렇게 비대해진 현대 과학 안에도 개개인의 상상력 안에 담을 수 있는 부분이 상당히 있다는 이야기일 것이다. 과학이 “절대적”이지 않은 것처럼 과학자들 역시, 그가 아무리 유명한 아인슈타인이나 위튼(Edward Witten) 같은 인물일지라도, 우리와 크게 다르지 않은 사람들이다.


과학의 본질은 이야기이다. 말이 되는 이야기가 있고, 말이 안 될 것 같은 이야기도 있으며, 아직은 애매모호한 이야기도 있다. 과학은 논리와 수학과 실험을 통하여 말이 안 되는 것을 차례차례 없애 버리고, 말이 되는 녀석들을 남겨 축적하는 과정이다. 물론 언젠가 이들 역시 전혀 새로운 이유로 말이 안 되는 것으로 판명될 수 있겠지만 말이다.


당연히, 이 안에는 복잡하고 재미없는 이야기도 많이 있지만, 눈이 번쩍 뜨일 정도로 직관적이고 흥미로운 이야기들 역시 넘쳐난다. 현대의 대중이 소화하기에 전혀 어렵지 않은 그런 이야기들 말이다. 다만, 반드시 기억해야 하는 것은 이런 흥미로운 이야기들 뒤에는, 흥미로운 이야기가 흥미로움에서 끝나지 않도록 해주는 수백만 개의 복잡하고 재미없는 이야기가 함께 숨겨져 있다는 사실이다.


필자처럼 오디오 좀 한다는 사람들은, 재생되는 음악에서 각각의 악기 소리가 얼마나 서로 잘 분해되어 각각의 소리로 들리는지가 첨예한 관심사이다. 그래서 "음악을 안 듣고, 기계를 듣는다"는 의미심장한 농담이 회자된다. 그러나 이들 조차 각 악기의 고유주파수를 따져가며 음악을 듣지는 않을 게다. 음악이 주는 감동은 그런 것에 있지 않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현대 과학이 줄 수 있는 감동은 어떻게 “소리”를 듣고 “모양”을 알아냈느냐 보다는 어떤 신기한 “모양”이 보이느냐에 가깝지 않을까 생각된다. 그 과정의 기술적이고 복잡한 실제 내용은 학자들에게 믿고 맡기고, 그냥 결과물을 즐긴다고 생각하면 신기하고 재미있는 이야기를 많이 발견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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