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의 글에서, 왜 거시적인 물체의 움직임에서 양자역학의 특징이 잘 보이지 않고, 고전 역학을 따르는 것으로만 보이는지 정확히는 이해하지 못한다는 이야기를 했었는데, 지금은 이보다 한 발 물러서서, 흔히 주변에서 발견하는 물체들의 존재 자체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있습니다. 앞글에서는 물질 혹은 물체들의 일상적인 모습, 즉 물체의 부피가 해당 물질의 양에 비례한다는 당연한 성질을 이해하는 것조차 그리 단순한 것이 아니라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고전 물리학에서는 물질, 물체는 고사하고 그 기본 구성체인 원자 하나조차 설명할 수 없으니, 위 질문에 대한 대답을 하려면, 입자가 모두 파동이라는 Schroedinger 방정식과 이로부터 나오는 양자 파동 함수를 사용하여야 할 것 같습니다. 그러나 입자들이 실은 파동 함수라는 모습으로 구현된다는 이야기는 수소 원자를 만드는 데에는 충분했으나, 앞글 말미에 언급했듯이, 많은 수의 전자와 핵이 관련되는 거시적인 물체도 만들 수 있는지에 대한 의문이 양자 역학의 도래 이후 수십년간 해소되지 않았었습니다.
전자기의 인력과 척력, 그리고 입자가 파동이라는 이야기가 절묘하게 밸런스를 마추어야만 가능한 것일텐데, 이를 계산으로 구현하지 못하고 있던 상황이 계산 능력의 한계에 의한 것인지 아니면 무언가 중요한 것을 빠뜨려서인지 조차 불분명했던 모양입니다. 이번 글에서는 궁극적으로 이 문제를 해소한 Dyson과 Lenard라는 두 학자의 50년전 이야기를 할 것인데, 이를 핑계로 우리가 아는 세상을 만드는 데 있어서 가장 근원적인 양자 물리학적 사실 하나를 설명하려고 합니다.
그런데 상황이 참으로 묘합니다. 우리 주변의 흔한 물체를 만드는 데는 양자 원리가 필수적이라는 결론을 아래 이야기할 터인데, 막상 양자 원리에 의하며 만들어지는 이런 물체들의 움직임은 양자 원리에서 흔히 기대할 만한 모습은 전혀 아니니 말입니다.
(이 글은 최근 카오스 재단에서의 초청 강연의 일부로 재구성되었습니다. 강연 동영상은 여기에서 볼 수 있습니다: https://m.youtube.com/watch?v=FxkItBFv8HE )
우리가 일상에서 접하는 물질은 모두 전자들과 핵들로 만들어져 있다. 핵은 수백여 가지가 있는데, 그래서 일상의 물질은 백가지를 넘지 않는 양자역학적 소립자들로 구성되어 있다. 물론 핵들 역시 앙성자와 중성자의 복합체에 불과하다고 생각할 수 있으니, 물질을 만드는 입자의 종류는 실제로는 훨씬 더 작을 것이다.
이전 글에서 상대론적 지평에서의 양자 원리에 대하여 이야기할 때 언급한 그 양자장론이라는 더 근본적인 이론 체계를 기억하는 분도 있겠지만, 이런 소립자들 자체를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지 말해주는 이 양자 장론에서는 동일한 양자장에서 만들어진 두 소립자에 대하여, 1번 입자, 2번 입자 하는 식으로 구별할 수 없게 된다고 한다.
소립자와 양자장의 가장 단순한 모델은 광자와 전자기장이다. 즉 광자와 빛이다. 흔히 보는 레이저가 빛이라면, 그 레이저를 매우 짧은 순간만 켜고 끌 수 있다면 많지 않은(?) 수의 광자의 모임이 펄스의 형태로 나온다고 할 수 있겠다. 예를 들어 잘 조절을 해서 정확기 두 개의 광자를 쏘아 내었다고 하자. 이 두 광자에 이름을 주고, 똑같이 생겼지만 실제로는 각각이 독립적인 일란성 쌍둥이 이야기 하 듯 말할 수 있는 것이냐의 문제이다.
당구대에서 속도 v1으로 움직이는 당구공과 다른 속도 v2로 움직이는 당구공은, 아무리 비슷하게 생겨도 서로 구별이 가능할 게다. 예를 들어 3구나 4구게임에서는 편의를 위해 다른 색을 칠해서 사용하기는 하지만, 설혹 모두 흰색으로 했다고 해도, 눈을 떼지 않고 게임 내내 주의를 기울이면 충분히 개개의 당구공을 구별할 수 있다.
우리가 여기서 배우고 넘어가야 하는 것은, 위의 두 광자들에게는 이렇게 각각의 광자를 구별하려는 시도가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것이며, 이는 한가지 양자장으로부터 만들어내는 소립자들 모두에 해당되는 이야기이다. 심지어는 각 광자들이 각기 어떤 에너지나 운동량을 가지고 있느냐 하는 것과도 상관없이 이들을 구별을 할 수 없다는 이상한 이야기이다. 그리고, 이 사실을 양자 역학의 수준으로 끌고 내려오면, 양자 함수를 만드는 방식에 대한 근본적인 제한을 주게 된다.
예를 들어 Schroedinger 방정식을 풀어서 입자 1이 f의 양자상태에 있고, 입자 2는 g의 양자상태에 있는 파동 함수를 얻었다고 치자. 그리고, 이 상황을 도식적으로
f(1)xg(2)
라고 표시하자. 그런데, 우리가1과 2라고 부르고 있는 이 두 입자가 동일한 종류의 소립자들이라면, 양자 원리는 이렇게 각각의 양자 함수를 쓰는 것으로는 아직 이 두 입자를 옳게 설명하는 게 아니라고 한다. 입자 1과 입자 2가 정말로 구별할 수 없다면, 2가 g상태에 1이 f상태에 있는, 그렇게 1과 2가 서로 뒤바뀐 파동 함수
g(1)xf(2)
역시 고려해야 하는데, 실제로는 이 두 가지의 파동 함수의 중첩 만이 물리적으로 허용되는 양자상태라고 주장한다.
쌍둥이가 서로 자리를 바꾸어 사는 이야기는 흔하디 흔한 영화나 드라마의 소재이지만, 여기서 이야기하는 것은, 어느 특정한 아이가 하나의 자리에 있고 다른 아이는 다른 자리에 있는 말 조차 옳지 않다는 이야기이다. Schroedinger 고양이의 중첩상태처럼, 위 두가지 양자상태의 중첩으로 구현되어야만 하는데, 이런 말들을 열심히 하고 나면 가능한 중첩은 다음의 두 가지가 있음을 알 수 있다. 대략적으로,
f(1)xg(2) + g(1)xf(2)
f(1)xg(2) - g(1)xf(2)
인데, 왜나하면, 조금 더 일반적으로 만일 어떤 (복소)수 A, B에 대하여 조금 다른 중첩을 할 경우,
A*f(1)xg(2) + B*g(1)xf(2)
1과 2를 바꾸어도 양자 상태가 바뀌지 않아야 한다는 말은, 이 상태와
B*f(1)xg(2) + A*g(1)xf(2)
를 구별할 수 없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A = B 이면 당연히 바뀌는 것이 없지만, 사실은 A = -B이어도 상관이 없는데, 양자 함수 전체에 곱해진 부호는 (혹은 조금 더 일반적으로 위상각은) 아무런 물리학적 효과를 가지고 있지 않다는 사실에 근거한다. 두개의 동일한 입자가 있을 때, 실제로는 |A| = |B| = 1/2^{1/2}가 옳은데, 위에서는 편의를 위해 이를 생략한 것이다.
사실 이 말이 이상하게 들리는 여러 이유 중 하나는 일상적인 역학(혹은 양자 역학)이라는 체계에서는 무언가 입자가 사라지거나 생기는, 조금 더 정확히는 다른 입자로 변환되는 일이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아무리 같은 종류의 입자라도, 그 각각에 이름을 붙이고 따라다니지 못할 게 없을 것 같다. 그러나 실제 세상의 소립자들은 생겼다가 없어지는 것을 밥 먹듯 쉽게 한다. 전자와 양전자가 있었다고 하자. 이들이 쌍소멸해서 만든 다른 입자가 생겼는데, 이 입자가 다시 붕괴하여 전자와 양전자 쌍을 만들었다고 치자. 새로 생긴 입자들은 소멸하기 전의 그 전자와 양전자 일까? 물론 그런 말은 할 수 없다.
이런 이야기들의 근원에는, 특히 같은 종류의 소립자들은 서로 구별하는게 불가능하고 위와 같은 중첩을 생각해야 한다는 말의 기저에는, 소립자가 파동이라는 이야기가 단순히 각각의 입자가 그런다기보다는 개개의 입자가 양자장이라는 파동의 조각에 불과하다는 사실이 있다. 그래서 소립자들을 만들고 없애는 일을 자유자재로 하도록 고안한 양자 장론에서는, 같은 종류의 입자들은 원천적으로 구별이 불가능하게 된다.
한편, 양자 장론에 비하여서는 제한적인 체계인 양자 역학에서도, 동일한 종류의 소립자들을 개체별로 "구별할 수 없다"는 근원적인 성질을 구현해야 한다. 역학이라는 한계로 인하여, 소립자들의 이런 성질들을 당위적으로 양자 역학 체계가 요구하지는 못하지만, 2개 이상의 동일한 입자들이 있는 경우 위와 같은 중첩을 사용하여 강제로 구현하는 것까지는 가능하다.
물론 초기 양자 역학에서도 이러한 동일 입자들 사이에서의 중첩이 필요하다는 것이 윈자 주기율표, 그리고 광자의 양자 현상을 설명하기 위해서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이 이미 이해되고 있었다. 양자 장론을 통한 이해는 나중에 나타난 것이며 거꾸로 생각하면 양자 역학을 넘어서 양자 장론이 필요하다는 것을 자연의 현상들이 이미 말해주고 있었던 셈이다. 거꾸로 말하면 위와 같은 두 중첩을 하지 않기로 하고 양자 역학을 전개했다면, 이 양자 역학은 양자 장론으로부터 만들어질 수 없음을 의미한다
개체별로의 구별이 불가능 하다는 사실은 양자 장론의 수준에서야 나오는 이야기이므로, 이를 양자 역학에서 반영할 때 "+" 와 "-"중 어느 쪽이 옳은 선택인지 역시 양자 장론 자체가 이야기해 주어야 한다. "+"를 선택하는 종류의 양자장과 "-"를 선택해야하는 양자장, 이 두 가지는 처음부터 전혀 다른 수학적인 체계에서 시작하는데, "+"를 선택하는 양자장의 경우 중/고등학교에서 다루는 일반적인 수와 함수들에서 시작하는데 비하여, "-"의 경우 그라스만 숫자라고 하는 매우 다른 곳에서 출발을 한다. 그리고, 이 두가지 선택이 만들어내는 소립자의 스핀이 0, 1, 2 등이냐 1/2, 3/2 등이냐와 또다시 연결된다.
이 복잡한 이야기 건너뛰고 결론만 말하자면, 이 세상에는 크게 두 가지 종류의 입자들이 공존하는데, 앞의 "+" 선택이 적절한 소립자를 Boson이라고 하면 이들은 스핀양이 0,1,2 등으로 나오지만, 후자의 "-"를 선택해야 하는 소립자인 Fermion의 경우 스핀이 1/2, 3/2등을 가지고 나타나며, 이 관계들은 양자장론 자체의 내부적인 정합성에 의하여, 즉 수학적인 의미에서 피할 수 없게 되어있다.
보통 잘 알려진 소립자 중, 전자, 중성미자, 그리고 핵을 구성하는 양성자, 중성자, 혹은 이들을 만드는 데 사용되는 쿼크 등이 대표적인 Fermion이라면, 힘을 매개하는 모든 소립자, 즉 광자, 중력자 등과 최근 발견된 힉스 입자가 대표적인 Boson이다. 그리고 Boson의 경우 힉스를 제외하면, 자연의 근원적인 네 가지 힘의 매개체 역할을 하는데 소립자와 힘이 어떻게 연결되는지는 다른 기회에 이야기해보자.
여기서 기억해야 할 것은, 우리가 아는 모든 물질을 만드는, 혹은 최소한 그 골격을 만들어주는 소립자들은 항상 Fermion이라는 점이다. 혹은, Fermion 들 만이 물질과 물체를 만드는 골격으로 사용될 수 있다는 것이 어쩌면 더 옳은 말이겠다. 그리고 그 이유가 위의 “-“ 에 있다. 무슨 이야기일까?
Fermion에서의 위 중첩은 상당히 명확하고 즉각적인 효과를 주는데, 두 입자 1, 2가 동일한 양자 함수에 들어가 있을 수 없다는 것을 말해준다. 왜냐하면, f = g 인 경우, 위 중첩은 f(1)xf(2) - f(1)xf(2) 이 되고, 이 양자 함수 f의 정체가 무엇이건, 그리고 "x"라는 "곱셈"의 진짜 의미가 무엇이건 간에 같은 것을 한번 더하고 다시 뺀 경우이므로, 남는 것은 0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는 그러한 양자 상태가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는다는 말이 된다.
따라서 두 개의 전자는, 두 개의 중성자, 혹은 두 개의 양성자는 전자기력을 포함한 그 어떤 상호작용과 아무런 상관없는, 양자장론이라는 개념 때문에 생기는 효과로 인하여 서로를 배척하게 되는데, 이를 처음 양자 역학에서 제안한 사람의 이름을 따서 Pauli Exclusion원리라고 부른다. 양자 장론이라는 것이 이해되기 한참 전이었기 때문에, Pauli의 입장에서는 하나의 가능성으로만 처음에는 생각했을 것인데, 결정적으로는 원소의 주기율표가 이 효과 없이는 설명이 불가능하였으므로 양자 역학 안에서도 자연스레 받아들여진 일종의 가설이었다.
이제 이전 글에서 하던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N개의 전자와 적당한 수의 핵자들이 뒤섞여 있는, 전자들의 전체 전하 -N이 핵자들의 양전하의 총합에 의하여 상쇄되어 있는 그런 상황을 생각해 보고 있었다. 특히 거시적인 물체들을 생각하고 있으므로, N은 매우 큰, 최소한 아보가드로의 수 ~ 10^{23} 전후라고 생각하면 되겠다. 전체 입자의 개수는 N보다는 크고 2N보다는 작을 것이다. 이들을 이미 알려진 원자들의 합으로 생각해도 된다면, 그 기저 에너지는 -N에 비례할 것이고 흔히 마주치는 물질처럼 보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
여기서 기저 에너지는, 모든 입자들이 서로 무한이 멀리 있는, 즉 쿨롱 인력과 척력이 모두 없는 상황을 에너지의 영점 상태로 정의하는 상대적인 개념이다. 즉, 전체의 기저 에너지가 - E(N) 라면 이 입자 들을 모두 무한히 멀리 흩어 놓는데 E(N) 만큼의 에너지가 필요하다는 말이기도 하다. 또한 물체 하나를 둘로, 즉 N을 N1과 N2로 나누었다고 하자. 나눈 후의 각각 덩어리의 기저 에너지의 합 "- E(N1) - E(N2)" 이 만일 "- E(N)"과 크게 차이가 있다면, 그 차이만큼의 에너지를 투입하거나 꺼내야 하는 이상한 일이 발생할 것이다.
특히, 전자 하나당의 기저 에너지인 - E(N)/N이 N이 변할 때 거의 변하지 않아야만 이런 이상한 일들이 생기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우리가 아는 물질과 물체가 양자 역학으로 잘 설명되려면 최소한 N이 매우 큰 숫자일 때, 즉 아보가드로 숫자만큼이나 클 때, 가장 안정된 양자 상태의 기저 에너지 -E(N)이 N에 비례해야만 한다. 그러나, 지난 글에서 이미 이야기했듯이, 이 문제에 대하여 1967년까지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회자되고 있었다.
기저 에너지 -E(N)의 직접적이고 엄밀한 계산은 매우 어렵지만, 어떤 양의 상수 c에 대하여 다음과 같은 부등식은 성립한다는 증명들이 있었다고 한다;
E(N) < c * N^2
일단 수학기호 N^2은 N의 제곱을 의미한다. 예를 들여 N^1은 N을 한번만 겁한 것이므로 N 자신이면 N^3은 N 을 세번 곱했다는 말이다. 이미 이야기했듯이 만일 E(N)이 실제로 N^2처럼 커지면,
E(N)/N < c * N
이 되며, N개의 입자로 구성된 물 한 그릇은 두 그릇으로 나누는데 E(N) -2*E(N/2) 만큼의 에너지, 즉
N^2 - 2*(N/2)^2 = N^2/2
에 비례하는 매우 큰 에너지가 필요할 수 도 있다는 결과이다. 그러나 물론 실제 자연의 법칙들이 이래서는 곤란하다.
이 계산을 1960년대 말에 조금 더 엄밀하게 다시 시도한 것이 Freeman J. Dyson과 A. Lenard인데 그들의 결과는 어떤 다른 상수 c'에 대하여
E(N) < c' * N^{5/3}
임을 보여 주었다. 역시 E(N)이 실제로 N^{5/3}처럼 커지면,
E(N)/N ~ c' * N^{2/3}
이므로, 역시 물 한 그릇은 두 그릇으로 나누는데 위보다는 작지만 역시 어마어마한 에너지가 필요해진다.
물론 위 결과들은 부등식에 불과하므로 E(N) 이 반드시 N^2 혹은 N^{5/3}에 비례한다는 말은 아니었다. 그러나, 이런 실제 세상과 많은 괴리가 있는 부등식이 나온 것이, 계산을 충분히 잘하지 못하여서인지, 아니면 무언가 중요한 것을 빠뜨려서인지 고민을 해보아야 한다. 만일 후자의 상황이라면 그 빠뜨린 것이 이론 체계 안에는 있는데 잊거나 무시한 것 인지, 아니면 이론 자체가 잘못된 것인지 고민을 해보아야 할 것이다.
그런데, 알고 보니, 이 여기까지의 이야기는 소립자, 특히 전자들이 Fermion이며 따라서 위에 이야기한 Pauli Exclusion 원리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간과한 계산이었다. 아마도, 전자기력과 소립자가 파동이라는 사실 만으로도 물질을 제대로 만들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 때문이었을 것이다.
Fermion이기 때문에 반드시 사용되어야 하는 Pauli Exclusion 원리는, 가능한 양자 상태를 현저히 줄인다. 따라서, 기저 에너지 - E(N)의 실제 값은 위에서 이야기한 부등식이 시사하는 것보다 한참 위에 있을 가능성이 생긴다. 예를 들어 N개의 입자를 k가지 양자 함수에 나누어 주려고 할 때, 이 원리를 사용하지 않으면 단순히 k^N개의 가능성이 있지만, 이 원리를 사용하면 그 가능한 숫자는 C(k,N) 즉 k(k-1)(k-2)...(k-N+1)/N!로 현저히 줄어들게 된다.
따라서 가능한 최저 에너지 값은 상당히 달라질 수 있는데, 문제는 그 효과가 얼마나 되느냐일 것이다. Dyson과 Lenard는 위의 계산에 이 Pauli 효과를 추가하여
E(N) < c" * N
라는 새로운 부등식을 얻게 되는데, 이는 전자 하나당의 기저 에너지가 최소한 -c" 정도로서 N과 상관없이 일정할 수 있다는 말이 된다. 한편, 실제로 밀도가 충분히 낮으면 원자들의 합이 될 것이고, 예를 들어 수소들이었다면, 이 경우 실제 에너지가 -13.6*N eV 임을 이미 알고 있다. 기저에너지는 이보다 클 수 없으니, 예를 들어 수소의 경우
13.6*N eV < E(N)
이며, 이와 유사한 부등식이 다른 물질에 대해서도 성립할 것이다. 따라서, 이 두 가지의 부등식은 실제로 등식
E(N) = a * N
이 성립함을 의미하며, 물질의 종류와 온도 등의 환경은 전자 하나 당의 기저에너지 -a를 정하는 역할을 할 것이다. 이는 또한 전자와 가장 가까운 핵사이의 평균적인 거리가 N에 상관없이 일정함을 의미하는데, 이는 곧 핵 사이의 거리 역시 일정하며, 따라서 밀도 역시 N의 영향을 받지 않음을 의미한다.
따라서, 두 물체를 합친다고 많은 에너지가 발산하거나, 한 물체를 둘로 갈라놓기 위하여 많은 에너지를 투입하여야 한다거나 하는 비상식적인 일은 양자역학이 만들어낸 물질에서는 일어나지 않는다. 물체의 밀도가 물질의 종류와 그 이외의 환경적인 변수들에 따라 다를 수는 있으나, 물질의 양을 바꾼다고 해서 급격히 바뀌지는 않는다는, 보편적이고 직관적인 모습이 사실은 양자 물리의 결과임을 말해주고 있다.
다만, Dyson과 Lenard가 계산한 부등식의 경우 당시 계산된 c"의 값 매우 커서 실제 물질들에서의 기저 에너지에 가까운 결과를 예측하지는 못하였다. 중요한 것은 물론 오른편이 N에 비례하는 부등식이 성립한다는 사실 자체이긴 하지만, 기저 에너지의 계산으로는 충분히 정교하지는 못하였다는 말이다. 이는 1970년대에 들어와 Eliott H. Lieb에 의하여 매우 정교하게 보완이 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흔히 양자 물리는 매우 이상하고, 낯선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알고 보면 그 양자적인 원리들 없이는, 이 세계를 만드는 그 어떤 물질과 물체도 가능하지 않았다는 이야기이다. 지구나 태양 같은 천문학적인 물체도 예외가 아니며, 지구 상의 동식물도 그러하다. 양자 물리학은, 흔히 원자와 그보다 작은 미시적인 세계에 대한 물리학자들만의 관심사라고, 나와는 별 상관없는 이야기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일상에서 보는 물질과 물체들의 모습이 양자 물리학이 아니고는 설명이 되지 않는다는 말이기도 하다.
물론 남은 질문은 온전히 양자 물리학으로 만들어낸 거시적 물체들이 막상 양자적으로 행동하지 않느냐는 것인데, 이에 대한 정답은 아직 명확히 알려지지 않았다. 양자 역학의 도래 후 100년이 다 된 지금까지도 난제 중의 난제로 남아있으나, 한 가지 분명한 것이 있다면, 만일 양자 역학이 실제 이 자연의 원리를 온전히 담고 있다면 이 질문 역시, “양자”라는 개념의 범주 안에서 해결되어야 할 문제라는 사실이다. 전에도 이야기 하였듯 이 문제는 양자 물리학의 가장 오래된 문제이다. 다음 글에서는 이에 대한 한가지 이야기를 덧붙일까 한다.
한편 이런 오래되고 어려운 문제 말고도 양자 현상으로 이해해야 할 거시적인 현상은 더 있다. 예를 들어 Boson들의 "+" 역시 거시적으로 여러 신기한 현상을 만들어내는데, 이 이야기는 조금 나중에 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