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양자 원리가 거시적인 물체들을 어떻게 만들어내는지 조금이나마 이해했으니(?), 이제 이런 물체들의 움직임에 일말의 양자역학적이 모습도 보이지 않는 사실을 다시 생각해볼 때이다. 이미 이 매거진의 초기 글들에서 이야기했듯이 이 질문에 대한 정확한 답은, 혹은 대부분의 학자들이 공감하는 답은 알려져 있지 않다. 다만 여러 학설과 의견이 있을 뿐이다.그러나, 작가의 의견으로는 1980년대에 이해되기 시작한 decoherence라는 현상에 그 실마리가 있다고 생각된다. 여기서는 이 이야기를 살짝하고 넘어가자.
de- 라는 접미사는 무언가를 없앤다는 의미를 가지므로, 일단 decoherence에 대비되는 coherence라는 말을 배워보자. 오디오를 거쳐 스테레오 스피커 혹은 헤드폰에서 재생되는 음악소리를 들을 때, 녹음이 잘 되었고 충분히 좋은 오디오를 사용하면 희한한 경험을 할 수 있는데, 예를 들어 첼로 독주인데 그 첼로 소리가 두 스피커가 아닌, 마치 두 스피커 사이 중간 지점 어딘가에서 나오고 있는 듯한 느낌 말이다. 사실 이런 현상은 헤드폰에서 더 쉽게 느낄 수 있는데, 이렇게 녹음했을 당시의 악기 위치를 잘 구현하는 정도를 음장감 혹은 Soundstage라는 말로 표현한다.
Soundstage가 좋은 오디오/스피커를 사용하면 그래서 오케스트라의 각 섹션의 소리가 다 서로 분리되어 다 다른 자리에서 들리는 듯한 경험을 하게되는데, 예를 들어 대편성의 교향곡의 경우 마치 왼쪽의 바이올린, 오른쪽의 콘트라베이스, 뒤쪽의 금관, 가운데의 목관, 그리고, 왼쪽 후미의 팀파니가 마치 눈앞에 펼쳐진 듯이 음악이 들린다는 말이다.소위 하이엔드 급 오디오 리뷰에서 흔히 보게 되는 용어이고, 오디오 덕후들 사이에선 기기의 성능의 주요 척도로 회자된다.
영화관 등에선 현실감 있는 소리를 위해 곳곳에 스피커를 설치하고 서라운드 시스템 등의 이름으로 채널 수를 늘리는 방식을 사용한다. 그러나, Soundstage가 잘 구현된다면, 현장감 있는 소리를 위해서는 스테레오 2 채널이면 충분하다. 단 두 대의 스피커로 만들어 내는 이 효과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답은 각 스피커에서 나오는 두 음파들 사이의 coherence에 있다.
어떤 소리를 스테레오로 녹음한다는 것은 두 군데 이상의 위치에서 하나의 소리를 잡아내어 그 파동을 시간에 따라 저장하는 과정이다. 마이크 하나가 채취하는 파동은 단지 시간의 함수이므로 소리를 내는 악기의 위치에 대한 정보가 없다. 그러나, 하나의 지점에서 시작된 소리를 두 지점의 마이크 a와 b에서 각기 파동 A와 B로 채집했다면?예를 들어 음원까지의 거리가 정확히 동일했다면, A 파동의 패턴과 B 파동의 패턴은 거의 동일할 뿐만 아니라 동시성을 가질 것이다. 즉 A가 최고치일 때 B 역시 최고치이어야 하는 식으로 말이다. 이를 다르게 표현하는 방법으로 위상각이 일치한다고 하는데, 두 파동의 위상각이 다른다는 말은 최고치인 시점이 조금 어긋난다는 말이기도 하다.
한편, 악기와 두 마이크 a와 b까지의 거리에 1미터의 차이가 있었다고 하자. 소리의 진행 속도는 초속 340미터가량이므로, 이 경우 두 파동은 약 1/340초가량의 시간 차이를 보일 것이므로 이는 주파수 별로 조금씩 다른 위상각의 차이를 만들어 낼 것이다. 이는 곧, 악기의 위치에 대한 정보가 A, B 두 파동의 미세한 위상각들의 차이에 저장된다는 말이다.
파동의 중요한 성질은 모든 곳의 파동이 모든 곳으로 퍼져나간다는 것인데, 매질이 진동하고 있는 모든 장소가 스스로 음원인 것처럼 말이다. 이를 굳이 물리 용어로 이야기하면 호이겐스 원리라고 부른다. 이로 인해 마이크a, b로 채집한 두 파동 A, B를 스피커 a’과 b’로 각기 완벽히 정확하게 재생을 해주면, 듣는 입장에서는 소리가 그 두 스피커에서 시작되어 있는지, 혹은 그 뒤 어느 자리에서의 첼로 소리가 두 스피커 자리까지 온 후 거기서부터 다시 내게 전해져 왔는지 구별이 잘 안 될 수도 있다.
더구나, 대뇌가 소리를 듣는 방식이 기계가 소리를 채집하는 것과는 정성적으로 다른 것을 감안하면, 눈을 감고 들었을 때 마치 두 스피커 사이의 가운데 어딘가에서 첼로 소리가 난다고 상상하게 되는 것은 어쩌면 매우자연스럽다. 특히, 두 마이크까지의 거리의 차이 때문에 서로 조금 어긋난 두 파동 신호를, 오디오를 거쳐서 스피커 a’와 b’가 각기 재생하도록 하면, 이를 듣는 대뇌는 이 위상각들의 차이를 음원의 위치에 대한 정보로 인식할 것이고, 원래 녹음할 때 악기의 위치에 그악기가 지금도 있다는 환상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그러나, 물론 이런 이야기들은 A, B 두 파동의 미세하게 어긋난 상호관계가 정확히 재생되는 것을 전제로 하는 말들이다. 만일 재생과정에 문제가 있거나 혹은 음파의 진행에 무언가가 방해를 하여 A, B 두 파동이 왜곡되었다고 하자. 두 파동의 상호 관계에 숨어 있을 악기들의 위치에 대한 정보가 이로 인해 망가질 것이므로, 악기의 위치를 상상하는 대뇌의 착각이 일어날 수는 없을 것이며, 단순히 두 개의 스피커에서 나오는 두 가지 소리의 합으로 인지할 것이다.
위 이야기에서, A, B 두 소리의 상호관계가 잘 보존된 채로 재생되는 경우, 이 두 파동이 서로 coherent 하다고 말하고, 만일 이런저런 이유로 그 관계가 희미해지면 coherence가 사라졌다고 말할 수 있다. 즉 coherence란 동일한 근원에서 발생하여 각자의 길을 따라 퍼진 파동들이 그 근원을 얼마나 잘 기억하고 있느냐 하는 정도를 의미한다고 생각하면 된다.
모든 것이 파동이라는 작가의 양자 역학 이야기를 읽어온 독자라면, 이런 coherence가 양자 역학에서도 역시 중요할 것임을 간파할 수 있을 것이다. 실은, 블랙홀에서의 양자정보가 사라진다거나 아니라거나 하는 이야기 역시 결국은 양자파동 함수들의 coherence가 유지되는지에 대한 이야기인데, 이는 곧 양자역학의, 소위 선형적인 구조가 유지 가능한지에 대한 화두로 연결된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는 슈뢰딩어의 방정식이라는 것 자체가 이런 선형적 구조를 가지는데, 따라서, coherence의 소멸은 양자 역학 자체의 존립에 영향을 준다. coherence가 양자 원리의 절대적인 필요조건이라는 말이다. 따라서, 그 coherence를 사라지게 하면 양자역학적 특성 역시 사라지게 될 텐데, 따라서 양자적 모습을 전혀 보이지 않는 거시적인 물체에 대한 이야기인 이 글에서 왜 decoherence라는 현상을 이야기하는지 이제 명확해졌을게다.
그러나, 본격적으로 이 이야기를 하기 전에, 잠시 숨을 고를 필요가 있다. 소위 "블랙홀 전쟁"에 대한 후반부의 글들에서 그렇게 긴 이야기로 양자정보의 보존, 즉 coherence의 보존의 중요성을 이야기할 터인데, 거시적인 물체에 대해서는 이를 없애는 이야기를 하겠다고? 알고 보면 블랙홀만큼이나 거시적일 수 있는 물체도 없지 않을까? 거시적 물체에서의 decoherence가 세상을 설명하는데 필요하다면, 그 소란스러웠던 블랙홀 전쟁은 굳이 왜 했는지 의아할 수밖에 없지 않은가?
블랙홀 이야기를 하면서 다시 강조하겠지만, 양자정보의 보존은 양자역학의 주춧돌이며, 사실 양자역학의 정의의 일부로 생각해도 무방하고, 양자역학의 범주에서는 coherence가 실제로 사라지는 상황은 전혀 있을 수 없어야 한다. 알고 보면 위 질문들에 대한 해명 안에 이 글에서의 원래 질문에 답의 대부분이 들어있는데, 이를 통해 블랙홀 전쟁이 왜 정말로 필요했는지에 대한 이야기도 함께 할 수 있을 듯하다.
입자 “1”이 f와 g라는 두 양자상태의 중첩으로 이루어진 양자적 상태
A*f(1) + B*g(1)
에 있다고 생각해보자. 여기에는 양자상태 f와 g 뿐만 아니라 시간의 함수 A와 B가 들어오는데, 이 입자가 f와 g 상태에 있을 각각의 확률인 |A|^2와 |B|^2 그리고 A/B의 위상각이라는 세 가지 양자물리학적인 정보가 들어있다. 위에 이야기하던 스피커에서 각기 재생된 소리에 빗대어 보면, 음원의 위치에 대한 정보가 이 함수들에 녹아들어 있는데, 특히 A/B의 위상각에 담겨 있다고 생각해도 된다. 물론 제대로 이야기하자면, 모든 주파수마다 이런 중첩이 하나씩 있어야 실제 상황에 근접한 이야기가 되겠지만, 여기서는 이런 중요하지만 복잡한 이야기는 최대한 생략해보려 한다.
어떤 거시적인 물체도 하나의 입자로 생각할 수 없으므로 조금 더 복잡한 상황을 생각해보자. 다른 입자 “2”가 주변에 있는데, “1”이 f에 있을 때는 “2”는 항상 F상태에 g에 있을 때는 항상 G상태에 있다고 해보자. 이때의 양자 함수는
A*f(1)xF(2)+ B*g(1)xG(2)
로 표시될 것이다. 입자 “1”과 “2”에 대한 양자 상태를 동시에 말해주는 이런 양자 함수는 물론 시간에 따라 변화하겠지만, 원래 A와 B라는 시간의 복소함수로 대변되는 coherence가 계속 유지되는 범주안을 벗어나지 않는다. 블랙홀 문제와 decoherence현상은 둘 다 이 간단한 두 입자 모델 안에서 이야기해 보자. 물론 단 두 입자로 이야기하는 것은 일종의 비유라고 생각해야한다는 것을 전제로....
블랙홀의 경우, 입자 “1”을 블랙홀 외부 그리고 “2”를 내부라고 생각하면 되는데, 블랙홀의 경우 그 내부를 절대로 볼 수 없다는 말이 문제가 된다. 실제 호킹 등의 계산은, “진공”상태에 해당할 경우 f, g, F, G와 A, B 등을 일부 알려주는데, 일단 |A|^2, |B|^2 등의 크기가 f, g 등의 상태가 어떤 특정한 온도의 열복사에 나타날 확률에 해당한다는 것이 주된 결론이다.
여기서의 양자정보가가장 단순하게 반영되어 있는 곳은 A와 B라는 숫자들의 위상각인데, 문제는 이들 숫자들이 f와 g 뿐만 아니라 블랙홀 내부에 있어서 절대로 측정할 수 없는 F와 G라는 상태 함수에 곱해져 있다는 데 있다. A와 B가 각각 f(1)xF(2) 와 g(1)xG(2) 에 곱해져 있다는 것은 F와G자체의 위상각을 알 방법이 없으면 결국 A와 B라는 복소수의 위상각에 대한 정보가 사라지게 하는 결과를 준다는 것을 의미한다. 남는 것은 |A|^2와 |B|^2라는 열복사에 해당하는 확률적인 정보이다. 따라서, 입자 1의 입장에서는 마치 coherence가 소실된 것으로 보인다.
그러면, 이 상황에서는 coherence가 완전히 소실되었을까? A와 B의 위상각으로 대변되는 그 양자정보를 알 방법이 없는 것과 사라진 것은 다른 말이다. 양자 역학은 계속 작동하고, A와 B가 시간에 따라 어떻게 바뀌는지를 여전히 주재할 것이다.
블랙홀에서의 문제는, 이 열복사 현상으로 인해 블랙홀이 결국 사라질 수 있다는 가능성 때문에 생기는 추가적인 문제이다. 즉 F와 G에 묻혀서 알 수 없으나 여전히 존재하는, A와 B의 위상각이라는 양자 정보를 F와 G에 묻어숨겨놓고 있는 그 블랙홀이 언젠가 사라진다면, 그리고 사라지기 전에 F와 G에 대한 내용을 추적할 방법이 생기지 않는다면, 정보 자체가 사라지는 셈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현재 남아 있는 블랙홀 정보 문제는 과연 F와 G에 대한 것을 블랙홀 소멸 이전에 되살려낼 방법이 있느냐에 대한 것들이다.
과거 호킹은 이것이 불가능하다고 주장했을 뿐만 아니라, 그 근본적인 이유로 블랙홀 자체가 완전히 고전적이라는 주장까지 한 것인데, 즉 그 소멸 여부와 상관없이 F라거나 G라는 말 자체를 블랙홀 내부에 대하여 할 수 없다고 한 것이다. 이, 조금 더 과격한 주장은 지금은 대부분 학자들에 의하여 그리고 초끈이론에서의 실제 계산에 의하여 부정되고 있는데, F나 G의 속성을 가진 양자적인 블랙홀이 개별적으로 존재하는 것을 실제로 보였기 때문이다. 이는 블랙홀 자체가 흡수한 양자 정보가 최소한 상당기간 유지될 수 있다는 말이다.
(이 블랙홀 내부에 숨겨진 정보가 블랙홀 소멸 이전에 어떻게 외부에 전해 지는지에 대한 일종의 예상 시나리오까지 있었으나, 최근의 연구에서는 이 시나리오 자체에 있는 새로운 모순이 발견되어 문제가 원점까지는 아니더라도 상당히 후퇴한 양상이다.)
위 블랙홀 이야기에서 배울 수있는 한가지 중요한 사실은, 양자정보 즉 coherence의 소실을 이야기할 때 두 가지 다른 방식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한 가지 방식은 호킹의 주장처럼 “2”에 해당하는 부분이 원천적으로 사라지는 경우이고, 또 다른 하나는 단지 알아내는 것이 거의 불가능해 보이는 경우이다. 두 경우 모두 외부에서 보이는 부분 즉, “1”에해당하는 부분에는 coherence가 사라지는 것처럼 보이지만, 후자의 경우에는 양자 역학이, 특히 슈뢰딩어 방정식이 여전히 유효하며, 단지 일부만 볼 수 있다는 것 때문에 그 양자적인 모습이 잘 드러나지 않을 뿐이다.위에서 decoherence라고 말한 현상은 후자에 해당한다.
고전 역학에서 다루는 거시적인 물체에 대한 정보는 대단히 단순한데, 그 위치, 속도, 그리고 회전하고 있는 경우 그 각 운동량 정도의 외형적인 것들에 불과하다. 그러나 거시적인 물체에는 아보가드로 수만큼의 전자와 핵자들이 들어 있을 터인데, 이들 각각에는 여러 개의 양자 역학적인 변수가 따라다닐 것이다. 거시적인 물체의 외형적인 변수를 “1”이라고 부르고, 그 이외 아보가드로수만큼이나 많은 다른 변수들을 “2”라고 통칭해보자.
블랙홀의 경우와는 조금 이유가 다르지만, 이 수많은 변수들의 상태 함수를 일일이 열거하고 이해하고 측정하는 것이 불가능함은 확실하다. 이는 곧 F와 G로 대변되는 측정이 어려운 내부, 즉 “2”의 상태 함수에 대한 것을 알 수 없음을 의미하고, 이는 곧 A, B의 위상각들이 실질적으로 그 효과를 잃어버림을 의미한다. 개개의 전자나 핵자에 대한 정보를 볼 방법도 없고 볼 이유도 없는 상황에서 이 거시적인 물체의 위치와 속도만 고려한다고 하면, 블랙홀에서와 유사하게 |A|^2와 |B|^2에 대한 정보만 남을 것임을 시사한다.
여기에서 잘못 이해하면 coherence가 사라졌다고 생각할 수 있는데, 실은 “1”로 대변되는 거시적으로 중요한 변수와 “2”로 대변되는 그 나머지 환경 변수들 혹은 그 같은 물체 안에 있으나 거시적으로 측정이 어려운 나머지 변수들 사이의 관계에 숨어 들어갔다고 생각해야 한다. 따라서 이 “1”과 “2”를 모두 들여다보는 양자역학은 그대로 유효하지만, “1”만 들여다보는 입장에서는 마치 coherence를 잃어버린 듯 보인다는 말이다. 이런 현상을 온전히 양자역학적 계산을 통해 정량화한 내용을 decoherence라고 부르며, 이 현상은 1980년대에 들어서야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사실 decoherence는 소위 wavefunction collapse라는, 양자역학과 실험을 연결 짓는, 양자물리학을 처음 배울 때 가장 비과학적이라고 생각할 수 밖에 없는 가설을 이해하는데 직접적으로 사용된다. “1”을 측정의 대상으로 “2”를 측정을 위하여 만든 장비 혹은 조금 더 넓게는 그 주변환경 전체를 의미한다고 보면 된다. 그러나, decoherence 그 자체로 물체들의 고전적인 모습을 설명하지는 않는다. |A|^2과 |B|^2가 의미하는 확률적인 요소가 아직 남아있기 때문이다.
실제로는, 아마도, 이 decoherence 현상과 이전 글 “빛은 내비가 아닌데...”에서 언급한 양자파동의 간섭효과에 의해 궤적이 만들어지는 현상의 적절한 조합에 의해 거시적인 물체들의 비 양자적 모습이 만들어지는 게 아닐까 하는 것이 작가의 생각이다.
사실 요즘에도 양자역학을 재구성하거나 대치하려는 시도는 계속되고 있다. 간혹은 노벨상급 대가들에 의하여... 이런 상황은 양자역학에 대한 불만이 학자들 사이에도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음을 말해주는데, 이는 소위 코펜하겐 학파의 실용적이었지만 근원적인 이해가 결여된, 20세기 초반의 주장들에 많은 부분 기인한다.
그럼에도 양자 물리학 자체 안에, 가깝게는 양자 실험의 결과들에서 멀리는 인간이 경험하는 고전적이고 거시적인 세상까지 설명할 만큼의 구조가 이미 다 들어있다고 믿는 것이 대부분 학자들의 입장이다. 하지만, 물론 입장과 과학은 다른 것이다. 인류가 발견한 가장 중요한 과학 체계인 양자물리학을 과연 어디까지 끌고 갈 수 있을지는 아직은 미지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