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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평균율 Jul 03. 2018

블랙홀

블랙홀 전쟁 (1)


현대 물리학에서 발견된 수많은 현상 중에 블랙홀만큼 일반 독자들에게 널리 알려져 있으면서도 과학자들에게 조차 많은 미스터리를 안겨주는 물체는 아마도 찾기 힘들 것입니다. 특히 Leonard Susskind가 "블랙홀 전쟁"이라고 명명한 20세기 말의 양자 원리와 중력의 충돌에 대한 이야기는 이제 과학잡지의 소재가 될 정도로 잘 알려져 있으나, 그 과학적 결말은 아직 완벽히 정리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한 동안 이 이야기를 풀어가 볼까 하는데, 그러자면 일단 블랙홀에 대한 기본적인 지식이 필요합니다. 여기서는 일상의 언어로 할 수 있는 만큼이라도 전달해 보고자 합니다. (제목의 사진은 영화 Interstellar의 한 장면입니다. 가운데 있는 완벽히 검은 블랙홀 주변으로, 빨려 들어가는 주변 물질이 에너지 일부를 빛으로 발산하는 모습이 보입니다. )




블랙홀의 존재는, 아인슈타인이 일반상대성 이론을 완성한 1915년에 이로부터 나오는 시공간의 첫 번째 예로서 발견되었는데, 이를 발견한 사람 역시 상당히 인상 깊은 사람이다.


Karl Schwarzschild라는 인물인데, 그는 당시 제1차 세계대전 중 프러시아 군대의 장교이기도 했다. 1901년 이후 이미 괴팅겐에서 교수 생활을 하고 있었으나, 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마흔이 넘는 나이임에도 참전하여 포병부대의 소위까지 진급했다고 한다. 러시아와 대치한 동부전선에 배치되어 전쟁의 포화 한가운데에 있으면서, 일반 상대성이론의 출현하자마자 이를 이해했고, 그해 12월에 Schwarzschild 블랙홀로 후세에 알려지게 되는 시공간을 발견하였다. 이는 가장 간단한 형태의 블랙홀이면서, 앞으로 이야기할 블랙홀들의 미스터리를 다 가지고 있는 상대성이론에서 가장 중요한 시공간이다. 그는 불행히도 이듬해인 1916년 희귀한 자가 면역 질병을 앓다가 사망하였다.


Karl Schwarzschild (1873-1916)


여기서 "시공간"이란 시간+공간의 합성어로 상대성이론에서는 공간과 시간을 따로 떼어 놓을 수 없는 관계로, 천체나 우주의 모습을 먼 과거부터 미래까지 한꺼번에 말할 때 쓰는 단어이다. 익숙해지는데 약간의 상상력이 필요하겠으나 블랙홀을 이해하지면 건너뛸 수 없는 개념이니, 노력을 기울여보자.


예를 들어 태양계에 해당하는 시공간을 일반 상대성 이론에서 찾는다는 말은, 태양을 비롯한 천체들이 만들어지고, 움직여가는 방식, 이로부터 나오는 중력파, 태양이 적색거성이 되었다가 신성을 거쳐 백색왜성이 되는 과정 등 그 전체 역사를 찾는다는 말이다.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다. 그러나 시간을 조각내어, 예를 들어 지금부터 100만 년 전부터 이후 100만 년 후까지로 제한한다면, 매우 좋은 성능의 컴퓨터를 사용하여 이 기간 동안에 해당하는 상당히 정확한 시공간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종이와 연필만 사용하는 이론가가 찾아낼 수 있는 경우란, 따라서 아주 단순한 경우인데 예를 들어 태양처럼 무거운 천체가 딱 하나 있으되, 그 크기가 무한히 작고 그 위치나 성질이 시간이 지남에 따라 변하지 않는다는 매우 이상적인 가정을 가지고 시작하면 된다. 뉴턴의 만유인력에서도, 태양에 의한 중력을 이렇게 이상화하여 알아내는 것으로부터 시작하니, 일반상대론에서도 자연스러운 첫 시도였을 것이다.


그런데, 이미 이런 가장 간단한 시도에서 예상치 못한 일이 일어났는데, 소위 Schwarzschild 반경에 위치하는 사건의 지평(Event Horizon)의 출현이었다.



 

블랙홀이란 무엇일까? 블랙홀은 질량이 많이 나가는 별이 그 핵융합 연료를 상당 부분 소진하고 난 이후 진화의 마지막 단계에 나타나는 물체이다. 핵융합이 하는 일 중에 하나는 별의 크기를 유지시켜주는 역할인데, 즉 핵융합의 결과로 온도가 높아지고, 이에 따라, 고온의 가스가 팽창하듯, 별 안의 압력도 높아진다. 이런 높은 온도와 압력은 거꾸로 핵융합을 유지시켜주는 필요조건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렇게 높은 압력에도 불구하고 별이 폭발해버리지 않는 이유는 중력 때문인데, 중력은 모든 물질이 서로 끌어당기는 힘을 주기 때문이다. 만유인력이라는 말 자체가 그런 의미이다. 중력이 끌어당기고, 핵융합이 밀쳐내는 두 힘의 균형으로 유지되는 것이 태양과 같은 별이다. 이러다가 핵융합 쪽이 고장 나기 시작하면 별은 그 진화의 마지막 단계에 들어간다.


그러나 눈치 빠른 독자라면, 지구와 같은 행성들은 핵융합이 없이도 제 크기를 유지한다는 것을 상기할 것이다. 근본적인 이유는 물질 사이에 존재하는 압력 때문인데, 지구의 경우 원자들이 서로를 밀어내는 성질에 기인한다. 이는 Pauli Exclusion 원리라는 양자 역학의 기본원리에 의한 것인데, 다른 소립자들에도 적용된다.


따라서 별의 진화 마지막 단계가 풍선에서 바람이 빠지듯 그렇게 간단한 것은 아닐 것이다. 실제로 꽤 복잡한데, 먼저 핵융합의 밀쳐내는 힘이 중력을 이기지 못하게 되면 수축을 시작하는데, 이 과정이 다시 압력을 높이면서 보통 별의 핵융합보다 더 무지막지한 새로운 핵반응을 거치면서 한차례 대폭발을 거친다. 이때의 별을 신성 혹은 초신성이라고 하는데, 둘의 차이는 얼마나 큰 별의 폭발에 기인하느냐는 것이다. 보통 별이 몇 억년에 걸쳐 핵융합 연료를 소진한다면, 초신성의 폭발은 기껏해야 몇 달 안에 끝난다고 한다.


우주에 존재하는 원소 중에 수소와 헬륨과 같은 아주 가벼운 것들이 주로 빅뱅 당시 만들어지고, 산소나 탄소와 같은 중간 단계의 원소들은 별에서의 핵융합 과정의 부산물로 만들어지는데 반하여, 중금속들처럼 매우 무거운 원소들은 이러한 초신성 폭발에서 주로 생성된다.


별이 이렇게 (초)신성 폭발에 사용하는 연료를 다 소진하면 또다시 중력을 이기지 못하고 수축을 시작하는데, 이때 남은 질량에 따라, 중력의 당기는 힘을 어떤 종류의 밀어내는 힘이 균형을 잡느냐 혹은 못하느냐가 결정되고, 백색왜성, 중성자성, 블랙홀 등의 마지막 형태 중 하나로 남는다.


백색왜성과 중성자별의 경우 매우 밀도가 높은 덩어리라고 생각하면 되는데, 지구가 그러하듯 물질의 밀도가 높아지면 생기는 압력에 의하여 그 크기가 유지된다. 보통 우리가 생각하는 물질의 근원인 원자는 핵과 전자로 만들어져 있는데, 백색왜성은 전자들 사이의 압력으로, 그리고 중성자성은 핵을 구성하는 중성자들 사이의 압력으로 유지되는 게 다를 뿐이다. 이들의 밀도는 무척 큰 데, 백색왜성은 지구의 밀도의 10만 배 전후, 중성자성은 지구 밀도의 100조 배 가량이다.


백색왜성은 매우 높은 온도로 만들어지지만, 보통의 별과 달리 에너지를 더 이상 만들어내지 못하므로 천천히 식고 있으며, 따라서 언젠가는 검은 색으로 바뀔 것이다. 그러나 식는데 걸리는 시간이 워낙 길어 현재 우주의 나이에 못지 않다고 한다. 중성자성의 경우 원자핵에 있던 양성자들이 높은 압력 때문에 전자와 결합하여 중성자로 모습을 바꾸고 원래 있던 중성자들과 함께 서로를 밀쳐내면서 수축하는 것을 막아주는데, 따라서 그 밀도는 원자들 안에 있는 핵의 그것과 유사하다.


이에 반하여 블랙홀은 이러한 물질 사이의 압력으로도 중력을 이기지 못할 때 생기는데, 따라서 수축이 한없이 진행되는 경우에 해당한다. 과연 무한한 밀도를 가진 이런 물체가 정말로 가능할까? 일반 상대론은 무한한 밀도라는 이 이상한 상황을 한층 더 황당무계한 방법으로 피해 간다.


Schwarzschild가 발견한 시공간의 형태를 살펴보면, 위에 언급한 사건의 지평(event horizon)이라는 이름의 구면이 Schwarzschild 반경에 위치하고 있다. 그런데, 이 블랙홀 시공간의 모양을 그대로 받아들이면 이 구면 안쪽으로 수축해 버린 물질은 다시는 볼 수 없게 된다는 아리송한 결론은 얻게 된다.


다들 알다시피 원래 지평선(horizon)이란 것은 지구 표면이 휘어져 있고 빛은 직진하는 성질로 인하여 지구 표면상에서 어느 거리 이상의 물체는 직접 볼 수 없어서 생기는 현상이다. 당연히, 지평선이란 것은 보는 사람의 지구 표면상의 위치와 지표면에서의 높이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다. 해운대 해변에 서있는 사람의 지평선과 그곳에 있다는 200미터 높이의 고층아파트에서 보는 지평선은 같을 리가 없지 않은가.


그러나, 블랙홀의 사건의 지평(event horizon)은 이와 달리 블랙홀에서 빨려 들어가지 않은 그 누가 보더라고 같은 장소에 나타난다는 점이 다르다. 그러나, 그 너머 혹은 안쪽에 있는 어떠한 것도 볼 수 없다는 점에서는 다르지 않다. 심지어 누군가가 그 안쪽에서 밖을 향해 레이저 광선을 쏘아도 빛은 밖으로 빠져나오지 못한다. 이 사건의 지평이 있는 곳을 흔히 블랙홀 크기의 기준으로 삼는데, 이 크기는 그 안으로 사라진 물질들의 총질량에 비례한다. 예를 들어 태양만큼의 질량이 수축해 사라졌다면 3킬로미터 정도이다.


블랙홀이 이와 같이 일방 통행적인 이유는, 그 표면이라고 할 수 있는 ‘사건의 지평’이 단순히 이상한 곳일 뿐만아니라 이상한 ‘때’라는 사실에 기인한다. 조금 더 정확히 말하자면, 사건의 지평은 블랙홀의 중심으로부터 Schwarzschild 반경 만큼 떨어져있는 구체이지만 동시에 무한히 먼 미래라는 시점에 있기도 하다. 실제로 이는 블랙홀 안쪽으로 떨어지는 물체를 관찰하면 알 수 있는데, 외부에서 보기에는 마치 이 물체들이 Schwarzschild 반경을 건너지 못하고 그 곳에 쌓이는 것처럼 보인다고 한다.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레 미래로 갈 수 있지만, 미래에서 현재로 거꾸로 돌아올 수 없는 것과 정확히 같은 이유로, 블랙홀 표면 너머의 안쪽은 들어갈 수는 있지만 그 곳, 혹은 그 무한히 먼 미래에서 돌아올 수도 없고, 따라서 그 안에 들어간 누군가로부터 어떤 신호도 받을 수도 없다는 말이다. 다만, 시간의 개념이 비상식적인 상대론에 걸맞게, 막상 떨어지고 있는 물체는 이 사건의 지평을 전혀 인지하지 못하고 블랙홀 안으로 순식간에 들어간다. 이러한 블랙홀 표면의 이상한 모습을 이해하면 “사건의 지평”이라는 이상한 표현을 조금은 이해할 수도 있겠다.


영화나 공상과학소설에서와는 달리, 일반상대성이론 역시 시간을 거슬러 가는 것을, 즉 타임머신을, 허락하지 않는다. 이는 단순히 한 이론의 한계라기보다는 물리법칙의 일반적인 모습에 가까운데, 타임머신이 가능하다면 일어날 온갖 패러독스를 해결할 방법은 아직 없어 보인다. 사실 온갖 공상과학 소설과 영화에서는 블랙홀, 사건의 지평, 웜홀 등 상대론에서 출현하는 시공간을 사용하여 시간 여행도 하고, 순식간에 다른 은하로 이동하기도 한다. 그러나 소설은 소설일 뿐, 그리고 영화는 영화일 뿐, 과학적인 사실과 혼동하지 말도록 하자. 이런 상상들이 왜 실현 불가능한지, 혹은 최소한 어떤 상대론적인 문제가 있는지에 대한 이야기는 할 기회는 나중에 찾아보도록 하자.




이런 이해하기 힘든 상황을 사실로 받아들이는 것은 물리학자들에게도 쉽지 않은 일이었을 것이다. 예를 들어 아인슈타인의 일반 상대론을 본격적으로 검증하기 시작한 것은 20세기 후반에 들어서 이었으니, 원래 의심이 많은 물리학자들의 속성을 생각하면 당연한 일이다. 아인슈타인이 받은 노벨상의 명목에 일반상대성이론은 물론 특수상대성이론도 없는 것이 단지 수상자를 정하는 노벨위원회가 보수적이었던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이제는 블랙홀의 존재를 이론뿐만 아니라 천문 관측에 의하여도 확인을 하는 시대가 되었는데, 예를 들어 대부분의 은하 중심에는 태양 질량의 백만 배에서 10억 배정도의 질량을 가지는 초대형 블랙홀이 있다는 것이 이제는 천문학자들 사이에서 일반화된 공론이다.


일반 상대론을 잘 모르면 이해하기 힘들다 하더라도, 관측에 의해 그 존재가 발견되었다면, 엄연한 과학적 사실인데, 더 이상 무슨 미스터리가 있을까? 흔히 특수 상대성이론이 틀렸다고 주장하는 분들이 언급하던 쌍둥이 패러독스의 경우 서로 다른 두 가지의 시간 개념에 대한 간단한 혼동에서 비롯된 것 일뿐 사실 패러독스가 아니다. 마찬가지로 일반 상대성이론을 제대로 이해하고 나면 블랙홀의 이상한 부분도 다 사라지는 것 아닐까?


현대 물리학의 또 하나의 축은 양자역학인데, 실험적 검증으로 말하자면 상대성이론과는 비교할 수 없게 일찍부터, 그리고 수많은 실험을 통해 검증되고 받아들여진 물리학의 기본체계이다. 대개 양자역학의 현상은 작고 가벼운 물체들에서 주로 나타나지만, 그렇다고 그런 물체에만 양자 역학이 설립하는 것을 아닐 것이다. 실제로 우리 눈으로 볼 수 있는 큰 물체 중에도 경우에 따라 양자 역학적인 설명이 반드시 필요한 경우들이 있는데, 가장 보기 쉬운 경우가 레이저이고, 대학 실험실에서 쉽게 볼 수 있고 중국에서는 자기 부상 열차에 사용하고 있는 초전도 현상 역시 그러한 일례이다.


하여튼 이 세상의 근본 물리 법칙이 양자역학적인 것 역시 의심의 여지가 없어 보인다. 그런데 일반 상대론의 형태가 양자 역학의 체계와는 태생적으로 다르고, 뿐만 아니라 일반 상대론은 양자 역학적으로 재구성하는 데 너무나도 많은 문제가 있다는 데 있다고 한다. 이런 문제를 가장 명확히 들어내는 것이 블랙홀이 있는 시공간인데, 소위 양자정보 퍼즐이라는 문제를 일으킨다고 알려져 있다. 다음 글에서는 본론으로 들어가 이 문제를 이야기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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