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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평균율 Jul 13. 2018

정말, 끈이론이어야 할까?

블랙홀 전쟁 (3): 중력은 양자역학이 필요하다 !


그 탄생부터 (초)끈이론만큼이나 곡절이 많은 물리학 이론은 없을 듯합니다. 원래는 핵자들 사이의 힘을 기술하는 모델로서 시작하였으나, 양자색역학이라고 하는 게이지 양자 장론에 의하여 밀려났습니다. 그러다가 양자 중력을 내포할 가능성 때문에 다시 부활을 하였는데, 처음에는 주로 소위 대 통일장이론, 즉 우주에서 관측되는 4가지의 근원적인 힘을 하나의, 그리고 유일한 모델을 구현할 것으로 기대하였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초)끈이론의 실제 모습이 드러나기 시작하자 이론이라기보다는 새로운 패러다임에 가깝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모든 (초)끈이론 들은 그 구체적인 모습에 상관없이 양자 중력을 내포하고 있는데, 이 중력은 나머지 힘들에 비하여 무언가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것도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여기서는 블랙홀 전쟁에 초점을 맞추고 있으니, 이와 관련된 이야기를 중심으로 두 편의 글을 통해 최소한의 소개를 해 볼까 합니다.




"Not Even Wrong"이라는 제목의 초끈이론 비판서를 저술하여 유명해진 Peter Woit라는 사람이 있다. 원래는 입자물리학을 공부했으나 지금은 뉴욕에서 수학을 가르치고 있으며, 위와 동일한 이름을 가진 영향력 있는 블로그를 운영하고 있는데, 나름 충실한 과학 비평가의 역할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어떤 과학이론이 실제 자연현상을 제대로 설명하는지 아닌지는 당연히, 실험 혹은 관측을 통한 검증이 필요한데, 현재 그 실험적 검증이 불가능해 보이는 초끈이론은 과학으로서 가치가 없다는 의미로 "Not Even Wrong"이라는 과도한 표현을 한 것이다. 과도하지만, 홍보라는 측면에서는 상당히 잘 만든 제목이라고 할 만하다. (사실 이 표현 자체는 Woit 본인의 것이 아니고 까칠하기로 유명했던 20세기 양자 역학의 거목인 Wolfgang Pauli의 말이라고 전해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비판은 (초)끈이론가들에게 그다지 공감되지 않고 있는데, 이것을 단지 학문적 이기심에 치부하는 것은 정당하지 않은 것 같다. 그들의 이런 자신감이 어디에서 나오는가를 찾아보려면 초끈이론에서 중력이 구현되는 이야기를 할 필요가 있다. 조금 장황한 이야기를 하게 될 것 같아, 너그럽게 보아주시기를 미리 부탁드린다.


어떤 과학을 약간 이해하게 되었을 때, 굳이 이를 근거로 강한 주장을 하다보면 흔히 잘못된 결과물이 나타나곤 한다. (출처: nige.wordpress.com)


앞서 글에서도 여러 차례 이야기하였듯이, 현대 과학의 작동 방식은 수 세기 전의 그것과는 여러 가지 면에서 다른데, 탐구하는 자연현상이 일상의 경험을 많이 넘어서고 있다는 면에서 특히 그러하다. "속도"처럼 직관적으로 이해하기 쉬운 개념을 정량화하면서 뉴턴의 역학이 시작되었지만, 물질과 우주의 근원을 파고들면 들수록 일상에 익숙해진 개개인의 인지능력 안에서 소화하기에는 무리한 면이 많다. 어쩌면, 인류 문명이 만들어낸 수학이라는 학문 안에 자연 과학의 일부라도 잘 담긴다는 것 자체가 놀라운 일이다.


뿐만 아니라 연구 분야별로 직접적인 실험과 관측이 차지하는 비중은 조금씩 다르게 마련이다. 비교적 소규모의 "Table Top"실험들에 의하여 주로 구동되는 생물학이 있다면, 중력이나 입자물리학처럼 실험장비 하나에 작게는 수백억 원, 크게는 수십조 원 단위의 비용이 들어가는, 그래서 실험 하나를 디자인하기 위해 선행되어야 하는 이론 논문 만도 수천수만 편이 되는 그런 분야도 있다.


그때그때의 가설을 몇 달 혹은 몇 해의 시간에 검증할 수 있는 생물학자들과, 100년의 세월을 기다려서 중력파를 관측하게 되는 물리학자들 사이에는 연구하는 방식이, 그리고 어쩌면 학자 개개인의 심리적인 부분에서도 많이 다를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이다. 특히나 자연의 가장 근본적인 법칙을 알고 싶어 하는 이론물리 학자들의 경우에는 더더욱 특이한 방법론이 필요하고, 실은 연구의 모티브를 얻는 방식부터 매우 다른 것이 사실이다.




한편, 실험이라는 것 자체가 없는 수학은 더욱 다를 것인데, 수학이 과학의 언이기는 하지만 수학 자체는 흔히 말하는 "자연과학"과는 전혀 다른 종류의 학문이라고도 할 수 있다. 인간의 경험치들에서 시작하였지만, 특정한 자현 현상을 설명하려는 학문이 아니기 때문이다. 자연현상은 오히려 동기부여에 가까운 역할을 할 뿐이다. 사과 1개 옆에 1개를 더 놓으면 2개가 된다는 당연한 사실에서 산수가 시작되듯이 말이다.


수학자들은 근본적으로 건축가들이다. 좋은 건축물이 되려면, 일단 무엇보다도 내부적으로 하중을 어떻게 받쳐주는지, 그리고 비바람이나 지진 같은 자연의 폭력을 잘 견디는지 등의 최소한의 조건이 만족되어야 한다. 그러고 나면, 공간의 사용 목적과 건축가의 미적 감각이 어떻게 조화를 이루는지에 대한 가치 판단이 필요할 것이다. 그러나 목적이 주어졌다고 하여 정답이 있을 수 없으며, 미적인 영역 역시 호불호는 있을지언정 옳고 그름이 있지는 않을 것이다.


수학자들의 역할 역시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자연에서의 경험이 초석이 되기는 하겠으나, 그 학문을 전개하는 과정은 내부적인 일관성이 무엇보다도 중요하고, 그 결과물로 나온 체계의 학문적인 심오함에 의하여 그 가치를 판단하게 된다. 물론, 다른 곳에 쓸모도 없고 내부적인 깊이도 없는 체계가 만들어졌다면, 금방 사장되고 폐기될 것 임은 명백하다. 현재 21세기 초반의 초끈이론은 어떤 면에서 이러한 수학과 매우 닮은 모습을 가지고 있다.




20세기 초 아인슈타인은, 리만(Bernhard Riemann)이라는 걸출한 수학자가 만들어 놓은 새로운 기하학을 그로스만(Marcel Grossmann)이라는 친구 덕에 배우게 되었고, 상대론적인 중력을 이 새로운 수학 안에 고스란히 담을 수 있었다. 그러나, 20세기 후반 이후의 이론 물리에서는, 오히려 기존의 수학을 뛰어넘는 새로운 종류의 체계들을 만들어야만 했는데, 이 과정에서 생겨난 것이 양자 장론이라는 전혀 새로운 학문이다. 이 역시 미적분이라는 수학적인 언어를 사용하여 그 표현을 시작하기는 하기는 하지만, 그 안에서 온전히 이해되기에는 어려운 점이 매우 많다. 특히 양자 장론에 빠질 수 없는 소위 "재규격화"라는 구조를 수학적으로 엄밀하게 소화하는 것은 현재로서는 매우 어려운 일처럼 보인다.


이러한 양자 장론 조차 양자 중력을 담기에는 모자란 것으로 판명이 되어 생겨난 것이 초끈 이론인데, 현재까지의, 사실상 미완성의 모습인 초끈이론에서도 역시 양자 장론의 구조는 매우 중요한 일부이다. 기존의 양자 장론들과 다른 점이 있다면, 소립자 이론의 경우 양자장 하나가 한 가지 종류의 입자를 만들어내는데 비하여 초끈을 위한 양자장은 무한히 많은 종류의 소립자들을 한꺼번에 만들어내고 다룬다는 점이다. 


최초의 끈이론은 위에 언급하였듯이 양자색역학에 밀려서 사실상 폐기되었다. 그런데, 1975년 경에 부활하게 되는데, 모든 끈이론 모델이 “중력자”라고 생각되는 소립자를 항상 만들어낸다는 놀라운 사실이 밝혀지면서이다. "중력자"라 함은, 전자기파의 양자 형태를 광자라고 부르는 것과 유사하게, 중력파의 양자 형태를 말하는데, 이는 그 이름이 말해 주듯이 양자 중력이 존재하기 위한 최소한의 필요조건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매우 이상한 점은 끈이론이 수학적 모순 없이 정의된다는, 양자 중력과는 전혀 상관없어 보이는 그러나 당연히 요구되어야 할 조건을 주면, 반드시 이런 중력자가 나타난다는 점이다.




사실 (초)끈이론은 아직은 미완성인 이론이라서, 정확히 왜 이런 일이 생기는지 이해하기는 쉽지 않은데, 한 가지 중요한 이유가 있다면, 중력이 시공간의 기하학적 구조에 의하여 결정된다는 일반 상대성 이론의 기본적인 생각에서 시작하여야 하지 않을까 싶다.


현재 수준에서의 끈이론 혹은 초끈이론이라는 것이 사실은 생각보다는 간단한 것인데, 주로 주어진 시공간 위에서 (초)끈이 어떻게 움직이느냐 하는 문제를 던져 놓고, 이를 양자 역학의 입장에서 풀어내는 것으로 시작한다. 한편 (초)끈의 양자 역학과 소립자의 양자 역학은 비슷해 보이면서 한 가지 점에서 근본적으로 다른데, (초)끈의 경우 자신 주변의 시공간에 대하여 대단히 잔소리가 많다는 점이다. 시공간의 모습이 조금이라도 마음에 들지 않으면, "나는 모순 덩어리입니다" 말하고 죽어버린다고나 할까?


입자와 달리 (초)끈은 길게 늘어지는 것이므로 어느 특정한 점에만 있는 게 아니며 주변 공간을 어느 정도 차지할 것인데, 이 때문인지 그 주변 시공간의 각 점이 특정한 관계로 이어져 있지 않으면 (초)끈의 양자 역학 자체가 망가진다.


과연, (초)끈이 움직이고 있는 시공간이 어떤 조건을 만족하여야만 (초)끈이 행복하게 양자역학을 따르느냐고 물어보면 시공간에 대한 방정식 하나가 그 전제조건으로 출현하는데, 알고 보니 이 방정식은 놀랍게도 아인슈타인의 일반 상대성 이론에 나오는 중력 방정식과 완전히 동일하다. 1980년대 중반에 발견된 놀라운 사실이다.


일반상대성 이론의 중력 방정식. 오른쪽에 있는 시공간안의 에너지가 왼쪽에 있는 시공간의 기하적 성질, 즉 중력을 정해준다. (출처: Science Blog)


여기서 중요하게 기억해야 할 것은 일반상대성이론을 통해 발견되었던 중력 방정식이, 끈 혹은 초끈을 "양자화"하는 과정에서 덤으로 나왔다는 점이다. 아인슈타인은 생전에 양자역학의 체계와 일반상대론의 그것이 전혀 다르고, 따라서 수학적으로 훨씬 더 완벽해 보이는 일반 상대론에 맞추어 양자 역학을 고쳐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방금 한 이야기는, 오히려 일반 상대론의 중력 방정식이 무언가를 양자화하는 과정에서 필요조건으로 출현한다는 말이다.


그러나, 아마도 물리를 조금이라도 공부한 독자라면 이런 중요한 방정식이 덤으로 나온다는 말이 매우 이상하게 들릴 것이다. 이는 현재의 이 이론체계에는 "Background Independence"가 없다는 말과 연결되며,  지금 이 순간 (초)끈이론의 모습이 아직 불완전하다는 말과도 연관된다. (초)끈 양자장론이라는, 아직은 제대로 이해되지 않은 새로운 그릇에 이 이론을 담을 수 있어야만 이 부분이 더 자연스럽게 해결될 것이라는 것이 대부분 학자들의 생각이다.




사실 (초)끈이론에 대한 설명을 일상의 언어로 한다는 것은 너무나 무모한 시도이다. 일단, 모든 물질과 힘의 단위가 (초)끈이라는 물체에 근거를 두고 있다는 이야기만 해도, 있는 그대로 소화하기에는 거북하기 짝이 없으며, 이론의 구조를 알아가는 방식 역시 어디 하나 쉬운 곳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초)끈이론이 번성하고 연구되며, 심지어는 단 하나의 실험적인 확인 없이도 지금까지 살아남은 이유의 중심에는 바로 위의 놀라운 발견이 있다. 아직까지 그 누구도 일반 상대론을 이렇게 뜬금없이 그러나 동시에 자연스럽게 만들어내는 양자 이론을 제안한 적이 없으며, 이는 그 많은 학자들이 초끈이론에 대한 신뢰를 버릴 수 없는 첫 번째 이유이다.


서로를 반세기 동안 배척해온 "양자 원리"와 "중력"을 한 그릇에 담았을 뿐만 아니라, 한 녀석이 다른 녀석에 의하여 만들어진다는 이 피할 수 없는 사실을 접하는 순간, 양자중력을 고민하던 그 누구도 (초)끈이론에 대하여 "Not even wrong"이라는 막말을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것만으로 (초)이론이 우리가 살고 있는 자연의 근본 원리가 맞느냐 하는 질문에는 명쾌한 답이 될 수는 물론 없겠으나, 연구를 심각하게 해보아야 겠다는 충분한 동기 부여는 되었던 셈이다.


그런데, 원래 하던 이야기로 돌아와 보자. 초끈이론을 지휘하는 양자 원리가 일반 상대론을 요구하고, 그 일반상대론이 블랙홀이 만들고, 다시 초끈에서 나오는 가벼운 소립자들의 양자역학이 블랙홀을 소멸시킨다면, 앞서 이야기한 블랙홀과 양자역학의 충돌 초끈 안에서 어떻게든 사라져야 허지 않을까? 이 질문에 대한 끈이론의 입장은 현재로서는 반쪽짜리 대답만 있다고 하는 것이 옳다. 다음 글에서 그 반쪽에 대하여 이야기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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