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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평균율 Jul 08. 2018

블랙홀의 소멸

블랙홀 전쟁 (2)


아인슈타인 이후 가장 대중적인 물리학자였던 스티븐 호킹이 지난봄에 향년 76년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루게릭병을 극복한 이론물리의 석학으로, 그리고 책 좀 읽었다고 하는 독자들에게는 A brief history of time이라는 베스트셀러의 저자로 잘 알려진 인물입니다. 과학자이기에 앞서 “셀럽”의 이미지가 강했던 것도 사실이지만, 물리학자로서 남긴 유산 역시 적지 않습니다.


이전 글을 시작으로 블랙홀 전쟁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호킹 가장 중요하고 오래 지속될  유산은 바로 이 전쟁을 일으킨 것인데, 어떤 이유에서 시작되었는지 설명해 보려고 합니다. 생전의 호킹과 같은 분야에서 연구를 했었던 이유로, 여러 차례 대중적인 잡지에 글을 보내준 적이 있는데, 아래 글은 호킹의 별세 직후 그를 기억하는 특집의 일부로 동아사이언스에서 발간되었던 글이며, 여기에 약간의 내용을 추가했음을 밝힙니다.


(제목의 사진은 2004년 제작된 Hawking이라는 제목의 TV용 영화의 포스터 사진 일부입니다. 최근 전 세계적으로 유명해진 Benedict Cumberbatch가 호킹의 역할을 하였는데, 이 포스터에서는 약간 광기 어린 눈빛을 보여주고 있군요.)

 



호킹 열복사라는 이름으로 알려진 양자 현상의 발견은, 상대론과 양자역학이라는 20세기 물리학의 양대 축을 이어주는, 그리고 동시에 이 두 가지 패러다임 사이에 이을 수 없는 간극이 있음을 알게 한 20세기 후반 이론물리학의 대 사건이었다.


20세기 초에 출현하여 우리가 사는 우주에 대한 시각을 송두리째 바꾸어 놓은 상대성이론이, 17세기 뉴턴 역학과 19세기 맥스웰의 전자기학 사이의 수학적인 충돌을 해소하는 과정에서 만들어진 것임을 아는 독자들은 (이 말이 궁금하면 https://brunch.co.kr/@superstrings/6 혹은 https://tv.naver.com/v/1942426 을 참고하자), 호킹 열복사로 인하여 촉발된 이론물리학의 위기가 학자들에게 얼마나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었는지 쉽게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흔히 양자적 물리학은 미시세계에서, 그리고 고전적 물리학은 거시 세계에서 잘 맞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이 두 가지의 체계가 각자 독립적으로 존재한다고 믿는 학자는 없다. 근본적으로는 양자적인 물리법칙이 근저에 있으나, 다만 같은 양자 원리를 따름에도 불구하고 거시적인 물체들은 근사적인 의미에서, 고전적인 모습을 보인다는 것이 대부분 학자들의 관점이다. 그렇다면, 고전적인 일반상대론 역시 미시적으로는 같은 양자적인 원리에 근거해야 하지 않을까?


일반 상대론을 앞서 상대성 원리가 필요함을 알린 첫 이론 체계는 맥스웰의 전자기 이론인데, 이를 포함하여 자연계의 근원적인 힘들 중 소립자들 간의 힘을 기술하는 세 가지 힘에 대하여는 양자 원리 안에 어떻게 녹아들어 가는지에 대한, 이해가 많이 이루어진 상태이다. 이들은 소위 게이지 양자장론이라는 체계 안에서 모두 완벽히 소화되고 있다.


그런데 유독 중력의 경우, 즉 일반 상대론의 경우, 같은 체계 안에서 소화되지 않는다는 것이 1960년대 초부터 알려지기 시작하였다. 어쩌면, 앞서 양자 역학을 부정했던 아인슈타인은 이미 이러한 문제를 예견하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이 문제는 당시에는 기술적인 어려움으로 주로 인식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이는데, 그도 그럴 것이 양자 장론이라는 체계 자체에 대한 근원적인 이해가 1970년대 초가 되어야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이때까지만 해도 과연 중력 자체의 문제인지 혹은 양자 장론에 대한 부족한 이해 때문인지 조차 불분명했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다가, 1975년 블랙홀에서의 호킹 복사의 발견은 이 혼란에 종지부를 찍고, 학계가 중력과 양자 원리의 공존에 대한 심대한 의구심을 갖게 되는 계기가 된다.




일반상대론의 예측으로 발견된 물체 중에 그 구조가 가장 단순한 물체가 블랙홀인데, 아마도 궁극적인 질문 중 하나는 “이 고전적인 물체의 양자적 실체가 무엇인가?” 일 것이다. 그러나 좋은 물리학자의 가장 기본적인 소양은 대답이 가능한 새로운 질문을 할 줄 안다는 것이다. 호킹은 당시로서는 대답이 불가능했던 위의 질문을 하는 대신, “블랙홀 부근에서 빛이나 전자와 같은 소립자들이 어떤 양자적인 현상을 보이는가?”라는 비교적 “쉬운” 질문을 하였고, 블랙홀은 일정한 온도로 열복사를 하는 것처럼 보인다는 놀라운 발견을 하게 되었다. 1970년대 중반의 일이었다.


특히 이는, 블랙홀이 내부의 에너지를 모두 열복사로 소비하고 소멸하는 게 가능하다는 이야기 이기도 하다. 사실 실제 우주에서 관측되는 블랙홀들의 경우 위에 호킹이 말하는 “온도”가 워낙 작은 것이라 관측을 하는 천문학자들 입장에서는 큰 의미가 없다. 그보다는 중력이론의 양자적인 구조에 관한 한 가지 심오한 문제를 시사하는데, 이는 호킹의 열복사가, 양자역학적인 계산에서 유도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전혀 양자역학적인 모습이 아니라는 사실에서 출발한다.


양자 역학의 비상식적인 모습을 말할 때 흔히 회자되는 “슈뢰딩어의 고양이”라는 것이 있다. 양자 역학적으로는 한 마리의 고양이가 살아있는 양자 상태와 죽은 양자 상태가 공존하는 소위 “중첩” 상태가 가능하다는, 일종의 우화이다. 이 우화를 차용하여 이 호킹이 지적한 블랙홀의 문제를 재구성해보자. 물론 우화는 우화일 뿐 세세한 부분에 집착하지 말라는 조언을 함께 드린다.


(Cristine Agoe 제공, Wikimedia Commons)


산 것도 죽은 것도 아닌 양자적 중첩 상태에 있는 슈뢰딩어 고양이가 100마리 있었다고 하자. 그런데 어떤 이유로 이들이 중력으로 서로 잡아당기기 시작했고 급기야는 하나의 블랙홀이 되었다고 하자. 중력도 근원적으로는 양자역학적이라면, 이 특이한 고양이들의 양자적 정보는 블랙홀 안에 잘 보호되어 있을 것이다. 블랙홀에서 나오는 호킹 열복사가 있다는 사실을 이 우화에 걸맞게 담아내 보자면, 이 블랙홀이 가끔 고양이를 한 마리씩 뱉어내는데, 그 고양이들을 하나하나 살펴보니 절반의 확률로 살아있거나 죽어있는 보통의 고양이 이더라는 이야기다.


100마리의 양자적인 슈뢰딩어 고양이들이 블랙홀로 변환되어 흡수되었는데, 한참을 지나면서 이 블랙홀이 `호킹 복사’에 의해 소멸되고 나니, 반반의 확률로 죽었거나 살아있는, 전혀 양자역학적이지 않은 100마리 고양이들이 남아 있더라는, 알고 보면 매우 비극적인 우화이다. 그런데, 고양이들의 생사를 도외시하고, 양자 정보에만 관심을 가져보면, 100% 양자적이었던 상태가 100% 고전적인 상태로 바뀌었으니, 중간 과정에 출현한 블랙홀이 `양자 정보를 없애버리는 지우개인 모양이다’라는 생각에 이른다.


더구나 블랙홀은 중력에 의하여서만 만들어질 수 있는 물체이니, 한 발 더 나아가면, 중력과 양자 역학은 근본적으로 양립할 수 없다는 의구심이 생기는데, 이것이 호킹의 블랙홀 양자정보 퍼즐이다. 이에 근거하여 호킹은 중력을 포함하는 순간 양자 원리 자체를 폐기하여야 한다는 주장을 하기에 이른다. 1970년대 중반의 일이다.

 



그런데 앞 글에서 사건의 지평(Event Horizon)이 블랙홀의 크기를 정의한다고 하였고, 특히 그 크기인 Schwrazschild 반경은 블랙홀에 빠져들어간 전체 에너지에 비례한다는 말을 하였다. 더구나 이 장소는 블랙홀의 외부에서 볼 때 무한히 먼 미래인 것처럼 보여서, 외부에서 우리가 지켜볼 때에는 블랙홀에 빠져들어가는 물체가 이 반경을 넘어서지 못하는 것처럼 보이며, 블랙홀 내부에서 아무것도 나오지 못하는 이유 역시, 블랙홀 시공간의  이러한 이상한 성질 때문이라고 말이다.


그런데 조금 깊이 생각해 보면, 말도 안 되는 이야기처럼 보인다. 일단 호킹복사는 잊어버리더라도, 계속해서 물질을 흡수하고 있는 블랙홀의 크기는 점점 커져야 할 텐데, 그 반경이 무한히 먼 미래에 있으면 블랙홀의 무한한 미래에 가서야 만 그 크기에 대한 말을 할 수 있지 않겠는가? 마찬가지로 주변에 더 이상 흡수할 물질이 없는 경우, 호킹복사로 아주 천천히 에너지를 잃어버릴 텐데, 그러면 블랙홀의 크기 역시 천천히 줄어들 것이다. 이 말이 무한히 먼 미래에 있는 사건의 지평이 지금 줄어들고 있다는 말일까?


지금 방금 이야기한 질문에 대하여는 사실 비교적 엄밀한 답이 이미 있다. 블랙홀의 크기가 사건의 지평에 의하여 정의된다는 말을 너무 곧이곧대로 받아들이지 말라는 이야기이다. 시간에 따라 블랙홀의 크기가 변하는 경우에는 Apparent Horizon이라는, 무한한 미래까지 가지 않아도 정의할 수 있는 새로운 장소가 있으며, 사실은 이것의 크기가 지금 이 순간 블랙홀의 크기를 정의한다고 생각하면 된다.


호킹 복사 역시 Event Horizon 보다는 이 장소와 더 직접적으로 연관되어 있으며, 호킹 복사를 통하여 이렇게 정의되는 블랙홀의 크기가 줄어든다는 말이다. 그러나, 호킹이 제안하는 문제는 무한히 먼 미래를 생각하여야만, 즉 블랙홀이 완벽히 사라진 상황을 상정하여야만, 의미가 있는데, 막상 호킹복사 자체는 Apparent Horizon 때문에 생기는 현상이다. 이 두 가지 말이 엮이는 방식에 따라 호킹의 주장이 틀릴 가능성이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또 다른 쟁점은, 멀리서 보는 관찰자가 보는 것과 블랙홀 안으로 떨어지는 관찰자의 전혀 현상을 본다는 사실인데, 이는 호킹 복사의 원천인 동시에 호킹복사를 조금 더 깊게 이해하는데 가장 큰 걸림돌이기도 하다. 위 두 가지 다른 Horizon에 대한 문제와 함께, 이 호킹복사 현상은 이론가들에게 거대한 퍼즐을 만들어 준 셈이다.


그러나 이러한 복잡한 관점들과 문제들을 담아내기에는 호킹의 원래 계산은 매우 단순하고 쉬운 계산이었다. 호킹복사로 잃어버리는 에너지가 너무 작아 블랙홀 자체가 이 때문에 변하는 부분을 무시해도 된다고 생각하고 한 계산이었는데, 따라서 Event Horizon과 Apparent Horizon의 구별이 없는 계산이었다. 이는 곧 호킹복사로 인하여 블랙홀이 소멸되는 현상을 따라가기에는 매우 부족하다는 것을 말해주는데, 문제는 그렇다고 해서 그의 계산을 조금이나마 더 잘할 수 있는 뾰족한 방법이 있는 것도 아닌 묘한 상황이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다.




그의 주장이 옳은가 하는 것은 1990년대 초까지만 해도 이론가들 사이에 가장 뜨거운 논쟁거리였다. 한쪽에는 호킹을 위시한 상대론자들이, 그리고 반대쪽에는 트후프트와 서스킨드라는 두 거목을 필두로 하는 양자론자들이, 두 캠프로 나뉘어 소위 '블랙홀 전쟁'을 일으키게 된다. 2004년에 호킹 본인이 인정하였듯이, 그 결론은 후자의 승리로 끝났다고 알려져 있는데, 이는 1980년대 초에 양자역학적인 중력을 구현한 초끈이론이 출현한 것과 1990년대에 최소한 특정한 종류의 블랙홀들에 해당하는 초끈이론적의 양자상태를 구현한 두 가지 사실에 주로 기인한다.


그리고 이는 초끈이론이 양자 중력을 구현하는 옳은 이론이라는 학계의 여론을 조성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기도 하였다.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를 증명하는 과정에서 전혀 다른 수학분야처럼 보이는 대수기하학이 발전하였듯이, 호킹이 던진 이 화두는, 실험적 검증이 요원한 초끈이론을 이론적으로나마 검증하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요소가 된 셈이다. 이제, 다음 글에서는 자연스럽게 초끈이론 이야기를 하여야 할 차례가 온 것 같다.


호킹의 이 퍼즐은, 그러나 아직 아쉽게도, 혹은 '업계 종사자'인 이론물리학자들의 입장에서는 다행스럽게도, 완전히 해결되지 않았다. 블랙홀 자체가 양자적인 물체라는 데에는 더 이상 큰 반론이 없으나, 양자 정보가 과연 어떤 방식으로 호킹복사 안에 구현되는가에 대한 질문은 아직도 구체적인 답이 없다.


특히 '블랙홀 전쟁'에서 사실상 승리했다고 여겨지던 서스킨드가 써 내려가던 블랙홀의 양자적인 진화 시나리오에 전혀 예상치 못한 제동이 걸린 것이 약 5년 전인데, 최근 타계한 또 다른 초끈이론의 대가 조 폴친스키 등이 '불의 장막'이라는 새로운 화두를 던지면서 이다. 당시 호킹 역시 이 문제에 대한 반응으로, 양자정보 퍼즐 자체가 사실은 오해에 불과했다는, 상당히 급진적이고 당황스러운 이야기를 한 적이 있는데, 이 사건에 대하여는 다른 기회에 다시 이야기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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