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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평균율 Jul 19. 2018

정말, 초끈이론이어야 할까?

블랙홀 전쟁 (4): 특별한 블랙홀의 특별한 양자상태

앞 글에서는, (초)끈의 움직임을  양자 역학으로 풀다 보니, 그 전제 조건으로 (초)끈이 살고 있는 시공간이 일반상대론의 중력방정식을 만족해야만 하더라는 매우 이상한 이야기를 했습니다. 모든 (초)끈 이론 모델에는 그 종류에 관계없이 반드시 중력자가 살고 있다는 이야기도 했습니다. 이 두 가지를 종합하면, 양자 중력이 초끈이론 안에 살고 있다는 이야기인데, 그렇다면 이 체계 안에서 호킹이 제안한 블랙홀 문제의 해답이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물론 "해답이 있어야 한다"와 "어떻게 해결되는지 안다"는 천양지차입니다.


그래서, 혹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1990년대 중반이 되면 거의 대부분의 학자들이, 초끈이론으로 블랙홀 문제를 재구성할 수 있고, 그러고 나면 블랙홀이 양자정보를 지워버린다는 원래의 걱정은 결국 사라질 것으로 믿게 되었습니다. 여기서는 이 이야기를 조금 해볼까 합니다. 그러나 다음 글에서 조금 더 이야기하겠지만, 이 긍정적인 믿음은 이로부터 20년 후인 2012년 경에 새로운 위기를 맞게 되었는데, 따라서 초끈이론이 블랙홀과 양자원리의 충돌을 해결했다는 말은 아직은 할 수 없습니다.

  



일단 끈이론의 특별한 경우인 초끈이론에 대한 이야기부터 하는 게 좋겠다. 그냥 끈과 초끈의 차이를 이해하기 위한 간단한 비유로 단면이 동그란 스파게티 면과 납작한 링귀니 면을 비교해 보자. 스파게티와 링귀니를 한가닥씩 나란히 식탁 위에 직선으로 놓았다고 하자. 그 모습을 보고 있지 않은 누군가에게 말로 설명하려면, 링귀니의 경우 약간 더 할 이야기가 있는데, 이 납작한 면이 바닥에 놓여있는지, 수직으로 놓여있는지, 혹은 얼마나 배배 꼬여서 놓여있는지 등등을 말해야 한다.


초끈이 그냥 끈과 다른 점은, 이와 마찬가지로, 끈이 움직이는 위치 이외에도 무언가 더 이야기를 해야 한다는 부분이다. 이는 끈의 위치 이외에도, 링귀니의 납작한 면과 식탁 사이의 각도에 해당하는 추가적인 자유도가 있다는 이야기이고, 이 자유도 역시 양자 역학으로 풀어내야 한다는 말이다. 주로 초끈이론이라는 말이 많이 들리고 끈이론이라고는 하지 않는 이유는, 초끈이론의 경우, 끈이론에서 흔히 나타나는 한 가지 중요한 문제점이 자동적으로 사라진다는 것인데, 끈이론 안에 중력이 있다는 것을 발견한 1975년과 초끈이론이 본격적으로 연구되기 시작한 1983년 사이에 8년간의 간극이 있는 것도 이와 관련되어 있다.


(자세히 설명하지는 않지만 이 문제점이 말해주고 있는 것은 현재와 같은 형태의 끈이론을 있는 그대로 믿을 수 없다는, 어딘가 이와 연결된 다른 형태의 제대로된 이론이 있음을 시사한다. 이 다른 이론이 알려진 초끈이론 중 하나일 가능성도 열려있다. 어쨌든,  초끈이 아닌 그냥 끈이론에서 시작하는 것이 매우 불안정한 선택임을 의미한다.)


10차원의 초끈이론 다섯가지와 11차원의 초중력은 모두 M이론이라는 하나의 근원을 가지고 있다고 알려져 있다. (그림 출처: wikipedia)


한편, 초끈이론은 앞서 이야기한대로 시공간의 모습이 일반상대론의 중력 방정식을 따라야 한다는 것을 전제조건으로 요구할 뿐만 아니라, 그 시공간의 차원까지 정해준다. 이것은 나름 널리 알려진 사실인데, 역시 초끈이 양자역학적인 행동을 잘 할 수 있게하는 필요 조건이다. 초끈의 경우엔 시간 포함 10차원이다. 그리고  10차원에서 쓸 수 있는 초끈이론의 종류는 정확히 다섯 가지인데, 이들 모두 사실은 11차원의 M이론에서 나온다는 여러 정황증거가 있기도 하다.


하여튼, 초끈이론에서는 우리가 인지하는 4차원을 뺀 나머지 6차원에 대한 이해가 필수적인데, 초끈이론이 그 동안 해온 놀라운 일들, 그리고 초끈이론을 실험적으로 검증하는 것을 어렵게 하는 이유들의 일부는이 6차원과 밀접한 관계를 가진다. 이전 글에서 던져놓은 "우주상수의 문제"에 대한 한 가지 답 역시 여기에서 찾을 수 있는데, 이는 잠시 뒤로 미루어 두자.




초끈이론이 올바른 양자 중력이라는 것을 대부분의 학자들이 믿고 있는 지금에 와서도 실제 블랙홀로 들어간 양자 정보가 어떻게 환수되는지 아직 아무도 모른다. 지금까지의 초끈이론이 대답해준 것은 조금 다른 질문에 대한 답이다: 양자 정보가 사라지지 않고 다시 복구되려면 블랙홀에 저장이 되어야 할텐데, 도대체 이것이 가능한가?


블랙홀에 과연 얼마만큼을 정보를 담을 수 있어야 할까? 여기에 대하여는 호킹 복사가 발견되기 직전에 조금 다른 입장에서, Princeton 대학의 대학원생이었던 Bekenstein이 답을 주었다. 블랙홀에 담겨야 할 정보의 양을 이야기하는데 있어 흔히 엔트로피를 이야기 하는데, 블랙홀의 표면적을 플랑크 길이의 제곱으로 나누고, 4로 더 나눈 만큼이 블랙홀이 가진 엔트로피 S이라고 한다. 플랑크 길이는 매우 작아 약 1.616x 10^{-33} cm이고 관측된 블랙홀들의 크기는 최소 수 km 이니, S의 어마어마한 크기를 짐작할 수 있다.


사실 블랙홀 만큼이나 이해하기  어려운것이 엔트로피라는 물리량의 정체인데, 에너지가 동일한 양자 역학적인 상태에 여럿 가능성이 있을 경우, 예를 들어 N가지 있을 경우, 그 시스템의 엔트로피는



이라고 한다. 이는 엔트로피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여러 물리량 중에 가장 근원적인 것이다. 이런 상황에 있는 물리시스템을 microcanonical ensemble이라고 부르며, 통계역학의 기본이 여기에서 출발한다. 한편 이 식을 거꾸로 해석하면 엔트로피가 S만큼 있다는 이야기는 대략 오일러 수 e의 S승, 즉 e^S 만큼의 양자 상태가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한편, 블랙홀의 경우 그 안으로 들어가 버린 물체의 양자정보를 블랙홀의 외부, 즉 Schwarzschild 반경 밖에, 남겨둘 방법이 없다고 알려져 있다. 질량, 각운동량, 전하의 양이라는 세 가지 정보 이외에 어떤 정보도 블랙홀 외부에 남아 있을 못한다고 하는데, 이를 흔이 "No Hair Theorem"이라고 한다. 모든 정보는 블랙홀 안으로 들어가 버린 것인데, 따라서 블랙홀에 들어간 물질의 양자 정보를캐내려면, 그 전제 조건이 주어진 질량, 전하, 각운동량을 가진 블랙홀이 취할 수 있는 양자 상태의 수가 e^S 이어야만 한다.  블랙홀의 경우, S자체가 천문학적이니 이 두 번째 숫자의 크기는 실로 가늠하기 조차 어렵다.  


전에도 이야기하였으나, 대답이 불가능한 질문을 던지는 것이 과학의 덕목은 아니다. 놀라운 대답이 숨어 있는 쉬운 질문들로부터 중요한 발전이 이루어진다. 초끈 이론가들이 25년 전에 새로 질문한 것은 블랙홀의 엔트로피 S를, 혹은 e^S 라는 어마어마한 수의 양자 상태를 초끈 이론의 블랙홀에서는 구현할 수 있느냐 하는 것이었다. 만일 이것이 불가능하다면, 구체적으로 양자 정보를 끄집어낼 방법이 있다 하여도, 문제가 해결될 수 없다. 있지도 않은 정보를 캐낼 수는 없으니.... 거짓 정보라도 내놓으라고 블랙홀을 고문할 수 있는 것도 아니지 않은가?




초끈이론이 끈이론에 비하여 다루기 좋은 이유는 한 가지 더 있는데, 소위 BPS상태라는 특별한 종류의 양자 상태들을 가지고 있고, 이들은 이론을 조금씩 바꾸면 구체적인 모습은 변할지언정 특별한 이유 없이 사라지거나 새로 생기는 일이 없다. BPS라는 말은 어떤 양자 상태가 이런 성질을 가지는지에 대한 연구를 처음 한 Bogomol'nyi, Prasad. 그리고 Sommerfield라는 세 사람의 이름에서 따온 것인데, 그 조건이라는 게 크게 대단한 것은 아니고, 예를 들어 질량과 전하의 비가 특정한 비례 상수에 의하여 결정되는 정도이다.


따라서 다음과 같은 질문을 해볼 수 있다.  BPS가 내건 조건을 만족하도록 질량과 전하를 정해 놓고, 이런 성질을 가지면서 초끈이론에서 구현되는 블랙홀을 생각해 보자. 이 블랙홀의 엔트로피를 전과 같이 S라고 하자. 그런데, 뉴튼 중력 상수를 인위적으로 점점 작게 만들다 보면, 블랙홀을 만들었을 양자 상태의 퍼진 크기가 Schwarzschild 반경보다 커지는 일이 생기는데, 이는 곧 이 물체가 더 이상 블랙홀처럼 보이지 않을 것을 시사한다.


이렇게 이론을 내 맘대로 주물러 놓고 도대체 몇 가지 종류의 양자 상태가, 처음 시작한 블랙홀의 질량과 전하에 해당하는지를 세어 보자. BPS조건이 여기서 해주는 일은 양자 상태의 수가, 중력상수를 바꾸는 과정에서 변하지 않도록 해 주는 것이므로, 중력상수가 매우 작은 이론으로 옮겨가서 세어보자는 이야기이다.


만일 블랙홀 안에 e^S 만큼의 양자 상태가 원래 있었다면, 중력상수를 매우 낮추어 놓은, 그리고 이제는 양자 상태 하나하나가 구별이 되는 상황이 되어도 동일한 질량과 전하를 가지면서 서로 다른 양자상태가 e^S 만큼의 있어야 한다. 만일 그렇지 않다면, 특히 양자상태의 종류가 이보다 현저히 적다면, 블랙홀에 들어간 양자 정보는 사라진다는 호킹의 주장이 옳을 수 밖에 없으므로, 초끈이론이 양자 중력을 만들어 준다는 이야기는 오해에 불과할 것이다. 물론 답은, "실제로 e^S 만큼의 양자 상태가 있음을 확인하였다"이다.


No Hair Theorem이 이야기하는, 즉 블랙홀에는 별다른 구조가 있을 수 없다는 이야기와 정면으로 배치되는 결과인데, 어째서 초끈에서는 가능한 것일까? 그 비밀은, 초끈이론을 우리 우주와 맞추려면 숨겨야 하는 나머지 6차원에 있다. 질량과 전하는 4차원을 기준으로 측정하는 것인데, 이 질량과 전하를 만들어 내는 것들은 숨겨진 6차원 공간에 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즉 4차원만 보면 분명히 질량과 전하의 두 가지 정보 이외는 보이지 않느데 (각 운동량은 BPS조건에 의하여 흔히 0이 되어야 한다), 나머지 6차원 안에서는 엄청나게 많은 가능성이 있다는 말이다.


조금 더 정량적으로 이야기하기 위해, 다음과 같은 수학 문제를 생각해 보자. 질량이 1그램, 2그램, 3그램, 등등의 구슬이 있다고 하자. 이들을 모아서 총질량이 N그램인 구슬 주머니를 만들어 보자. 방법은 다양하다. 1그램짜리 N개들만 모아도 해도 되고, 1그램짜리 N-2개와 2그램짜리 한 개도 좋다. 그러면 과연 얼마나 많은 가짓수의 구슬 주머니가 가능할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은 물리학자 Cardy가 오래전에 알아냈는데, 그 가짓 수가 대략

 


이라고 한다. 물론 정확한 숫자가 아니고 N이 매우 큰 경우에 근사적으로 잘 맞는 식이다. 물론 여기서 이야기하는 "구슬"의 정체는 숨겨진 6차원을 들여다보아야 그 실체를 정확히 알 수 있다.


1994년부터 약 4~5년간 온갖 종류의 BPS 블랙홀에 대하여 이 계산이 이루어졌고, 요즘도 조금씩 더 복잡한 초끈이론과 BPS 블랙홀에 대하여 확인을 하고 있는데, 아직까지 예외는 전혀 없다. 대부분의 BPS 블랙홀 양자 상태는 이러한 계산을 거쳐서 그 개수를 알 수 있는데, 그 종류에 따라 블랙홀의 질량이 N^(1/2) N^(1/3)  N^(1/4) 등에 비례하게 되며, 특히 엔트로피는 정확히 위 숫자의 자연로그, 즉   


 

이 된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위의 결과는 중력상수가 매우 작은 극한에서의 계산이다.  중력상수를 다시 되살려내면서 초끈 이론을 따라가 보면, BPS조건 때문에 양자 상태의 갯수는 변하지 않는다고 유추할 수 있고, 따라서 BPS블랙홀, 즉 사건의 지평이 나타나는 중력상수에 가서도 이만큼의 양자 상태가 존재한다고 믿을 수 있다. 그러나 이 많은 양자 상태가 블랙홀의 어디에 어떻게 구현되는지는 아직도 알 수 없다. 여기에 대하여 조금 특이한 가설이 한 가지 있는데, 소위 퍼즈볼 모델이라고 한다. 이에 대하여는 이 시리즈의 마지막 글에서 자연스레 이야기할 기회가 있을 것이다.




이미 언급한 대로, 지금까지 초끈이론으로부터 발견된 것은, 최소한 BPS블랙홀들의 경우에는 양자정보를 담을 수 있는 최소한의 필요조건을 만족한다는 것이다. 또한 여기에서는 자세하게 이야기 하지 않을 것이나, BPS조건 보다 조금 더 무거운 블랙홀의 경우 예상되는 호킹 복사를, 위와 같이 중력상수가 매우 작은 곳에서 정확히 재현하기도 하였다. 이런 조건들을 만족하면서, 동시에 다른 자연의 힘과 소립자도 담을 수 있는 체계는 초끈이론 이외에는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학자들은 이런 결과에 더욱 깊은 의미를 부여한 것이다. 충분조건이 아니라 필요조건을 만족한 것에 불과하다고 치부할 수도 있으나, 그냥 그러기에는 너무나도 완벽한 결과들이다.


호킹의 원래 문제, 즉 양자 정보가 어떤 식으로 되살아나는가를 4차원 입장에서 이해하는 것은 아직도 요원하다. 한동안 이에 대한 해결책으로 Susskind가 제안한  블랙홀 상보성이라는 화두가 있었는데, 이는 2013년에 Polchinski 등이 제기한 불의 장막이라는 새로운 문제 앞에서 그 존폐의 위기를 겪고 있다. 이 시리즈의 마지막인 다음 글에서는 이 이야기를 조금 해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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