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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평균율 Jul 21. 2018

블랙홀, 없~~따~ ???

블랙홀 전쟁 (5): 사건의 지평, 불의 장막, 그리고 호킹의 어깃장


이 글은 2014년 초에 동아사이언스에 초청 기고되었던, 당시에는 동아사이언스의 편집부에 의하여 조금 축약된 모습으로 발간되었던 기사의 원문인데 같은 잡지사가 호킹을 기념하여 2018년에 발행한 별책에 포함되기도 하였습니다. 루게릭 병으로 가눌 수 없게 된 몸을 이끌고도 학계를 50년 넘게 휘젓고 다니던 노장이, 그 학계에 던진 마지막 화두, 혹은 어깃장에 대한 논평입니다.


최근 타계한 호킹의 생전 모습을 기억하며 이 글을 다시 곱씹어 보니, 혹시 학계에 수류탄 하나를 던져 놓고, 황당해하던 학계의 반응을 혼자 조용히 즐기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드는군요. 자타공인하는 천재였으나, 희로애락에 초연하지 않은 보통사람이기도 했던 그의 모습을 기념하기에 모자라지 않은 듯하여 원문의 모습으로 여기 다시 선보입니다.


이 글 자체로서 충분해야 하는 까닭에 앞서 이야기한 블랙홀과 호킹 복사 이야기가 다시 설명되어 있습니다. 앞의 글을 탐독하신 분들은 중간 부분 일부는 건너뛰어도 될 것이나, 다시 읽어 손해 될 것은 없겠습니다. 다만, 이 글은 대체적으로 소화되기 어려운 이야기들로 가득 찬 이 매거진 안에서도 특히 더 그러하다는 것이 작가의 판단입니다. 미리 양해를 구합니다. (제목의 그림은 French National Research Agency 소속인 Alain Riazuelo님의 작품입니다. 블랙홀  모습의 상상도입니다.)




<블랙홀과 사건의 지평, 그리고 호킹의 어깃장>


빛조차 빨아들인다는 블랙홀은 우리 우주에서 실제로 발견된 천체이다. 태양의 10배 이상으로 무거운 별이 핵융합 연료를 다 쓰고 나면, 중력을 이기지 못해 응축되는데, 이때의 높은 압력으로 인해 새로운 종류의 폭발이 일어나면서 그 밝기가 은하 하나와 맞먹는 초신성으로 잠시 현신한다. 이 초신성을 밝히는 연료는 며칠 안에 다 소진되고, 또다시 중력의 힘을 지탱하지 못하게 되면 다시 한번 응축되어 마지막으로 남는 잔해가 블랙홀이다. 이 과정을 물리학자들이 어떻게 알게 되었고 천문학자들이 어떻게 “보이지 않는” 블랙홀을 관측할 수 있었는지는 조금 복잡한 이야기이니, 일단은 그 존재를 믿어보자.


그런데, 일반 상대론의 대가로 알려진 스티븐 호킹이 “블랙홀은 없다”는 요지의 논문을 발표했다고 몇 년 전에 인터넷이 소란스러웠던 적이 있다. 무슨 소리일까? 간단하게 이야기하면, 블랙홀에 해당하는 천체가 없다는 말이 아니라 우리가 이 물체의 중요한 성질 하나를 그동안 오해하고 있었다는 말에 가깝다. 정확히 말하자면 블랙홀의 표면에 있다고 생각되는, 그리고 사실상 블랙홀이라는 천체를 정의하는 특징인 ‘사건의 지평(Event Horizon)’이라는 것의 존재가, 그동안의 오해에 불과했다는, 상당히 파격적인 주장이었다.  


블랙홀의 가장 잘 알려진 성질은 아무것도 빠져나올 수 없다는 점이다. 블랙홀은 주변의 모든 것을 끌어들이지만, 아무것도 그 안에서 나올 수 없다고 한다. 따라서 일반상대성이론의 범주 내에서의 블랙홀은 그 크기와 질량이 늘어날 수는 있어도 줄어들 수는 없다. 블랙홀이 이와 같은 일방 통행적인 이유는, 블랙홀의 표면이 ‘사건의 지평’이라는 이상한 곳, 조금 더 정확히는 이상한 “시점”이라는 사실에 기인한다.  


조금 더 자세히 말해보자. 밖에 있는 블랙홀 안에 살고 있지 않는 우리의 입장에서 블랙홀 안쪽이 안 보이는 이유는, 안쪽이라는 ‘장소’가 실은 무한히 먼 미래라는 ‘시간’의 개념을 동시에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레 미래로 갈 수 있지만, 미래에서 현재로 거꾸로 돌아올 수 없는 것과 정확히 같은 이유로, 블랙홀 표면 너머의 안쪽은 들어갈 수는 있지만 그곳, 혹은 그 미래에서 돌아올 수도 없고, 따라서 그 안에 들어간 누군가로부터 어떤 신호도 받을 수도 없다는 말이다. 이러한 블랙홀 표면의 이상한 모습을 이해하면 “사건의 지평”이라는 이상한 표현을 조금은 이해할 수도 있겠다.


그런데, 애초에 호킹이 유명해진 이유가 바로 “사건의 지평” 부근에서의 양자 현상에 관한 연구 때문이다. 고전적으로는 크기와 질량이 줄어들 수 없는 블랙홀이라도, “사건의 지평” 때문에 양자적으로는 에너지를 발산하며, 따라서 크기가 줄어들 수 있다는, 40년 전의 발견에 상당 부분 기인한다. 이를 호킹의 열복사라고 하는데, 문제는 이 계산 결과가 전적으로 ‘사건의 지평’이 존재한다는 사실에 기초한다는 점이다. 호킹의 이 유명한 발견에서 시작된, 소위 블랙홀 전쟁으로 알려진, 거의 20년 간의 어마어마했던 논쟁을 아는 학자들의 입장에서는 ‘사건의 지평은 원래 없는 것이었다’라는 호킹의 이 새로운 주장은 그저 황당, 그 자체였다. 대부분의 첫 반응은, 요즘 말로 “뭐야?”에 가깝지 않았을까?


<구식 난로, 호킹 열복사, 그리고 블랙홀의 양자정보 퍼즐>


말이 나온 김에 호킹의 이 40년 전 발견이 무슨 의미인지 다시 한번 되새겨 보자. 고전적인 블랙홀이 완벽한 흡수체라면, 양자적인 블랙홀은 70년대 학교 교실에 있던 구식 난로에 가깝다. 빨아드린 물체나 에너지가 완전히 블랙홀 안에 보존되는 게 아니고, 열 에너지의 형태로 다시 조금씩 방출된다는 것이다. 주변에 빨아들일 물체가 없다면, 블랙홀은 먹지는 못하면서 열량을 계속 분출하므로, 자신의 몸을 줄여가는 수밖에 없고, 따라서 언젠가는 사라질 수도 있다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교실에 있던 조개탄 난로 (출처: 경기일보)


특히 에너지와 질량이 다르지 않다는 데에서 시작된 것이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임을 상기해 보면, 이 결론은 피할 수 없을 것 같다. 그런데, 이 놀라운 발견은 이론 물리학자들에게 매우 오랫동안 두통거리가 되어 왔는데, 이는 양자적 블랙홀과 구식 난로 사이엔 한 가지 절대적이고 근본적인 차이가 하나 있기 때문이다.  


구식 난로는 연기 배출구와 산소 흡입구가 달린, 철로 만든 통이다. 그 안에 석탄이나 나무를 넣고 태우면 그 불길이 난로 표면을 데우고, 뜨거워진 표면은 외부로 복사열을 내보낸다. 그런데, 이때 나오는 온기만 느끼면서 난로 안에서 무엇이 타고 있는지 알 수 있을까? 물론 알 수 없다. 뚜껑을 열어보지 않는다면 말이다. 그러나 난로에는 연료를 넣기 위한 뚜껑이 있고, 그 뚜껑만 열고 들여다보면 무엇이 타서 이 온기를 만들어 내는지 알아내는 것이 어느 정도 가능할 것이다.  


그러나, 블랙홀은 열어볼 수 있는 뚜껑이 없다. 앞서 이야기하였듯이 그 표면에 있는 “사건의 지평”은 블랙홀 안의 “미래”로 가는 일방통행만 허락하는 문이다. 그 안쪽으로 무언가를 넣을 수는 있으나, 안쪽에서 바깥으로는 빛 조차 나올 수 없으니, 사건의 지평은 항상 열려 있으나, 절대 들여다볼 수 없는 이상한 ‘뚜껑’이다. 그러므로, 블랙홀은 무슨 연료를 어떻게 쓰고 있는지 근원적으로 알 방법이 없는 난로이다.  


문제는 위의 “근원적으로 알 방법이 없다”는 말과 “블랙홀은 호킹 열복사를 통해 소멸할 수도 있다”라는 두 이야기를 동시에 하는 것이 양자 역학의 기본원리를 위배한다는데 있다. 호킹의 열복사가 영자 역학적 계산을 통해 발견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복사열은 지극히 고전적이라는 역설 때문이다. 블랙홀에 흡수된 물질은 각자의 양자정보를 가지고 있던 것인데, 그 에너지는 호킹 열복사를 통해 외부로 분출되지만, 그 양자정보는 어떻게 되는지 알 수 없는 상황이다.  


블랙홀이 완전히 소멸하지 않는다면, 양자정보가 그 안에 다 남아있다고 주장할 수 있겠으나, 호킹의 열복사로 인해 완전히 소멸한다면, 양자정보의 문제는 매우 첨예해진다.  이로 근거로 호킹은 양자 역학과 블랙홀이, 좀 더 크게는, 양자역학과 일반상대성이론이 서로 양립할 수 없다는 주장을 제기했고, 이는 지난 40년 넘게 이론물리학자들 사이에서의 매우 중요한 화두가 되어 왔다.  


그러나, 양자이론과 일반상대성이론이 양립할 수 없다는 호킹 등의 이런 주장은 1990년대 초에 정점을 찍고 1990년대 중반 이후 많이 힘을 잃게 되는데, 블랙홀의 주요 열역학적인 성질들인 엔트로피와 호킹 온도를, 일부나마 양자 역학적으로 설명해 낸 1990년대 초끈 이론의 개가에 의한 것이다. 호킹 자신이 2004년에 이러한 변화를 공식적으로 인정한 것 역시 유명한 사건이었다.  


블랙홀과 양자 원리는 양립할 수 있으며, 무엇이 블랙홀을 만들었고 그 안으로 빨려 들어가 사라졌는지에 대한 모든 정보를 알고 싶으면, 블랙홀 자체가 완전히 소멸할 때까지의 표면에서의 복사열을 다 모아 한꺼번에 분석하면 된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이 주장은 현재까지 압도적이긴 하나 전문가들 사이의 여론에 가깝고, 그 누구도 이를 이론적으로 입증한 적이 없다는 문제를 가지고 있다. 앞 글에서 이야기한 바와 같이 상당한 양의 많은 간접적인 증거가 있지만, 과학적인 사실과는 아직 거리가 있는, 하나의 추측에 불과한 것이다.


<사건의 지평과 불의 장막>


이러한 지난 20년간의 기조에 경종을 울리는 사건이 2012년에 있었다. 초끈이론의 대가인 조 폴친스키 등이, 위에 이야기한 방식으로 양자 원리와 블랙홀이 공존한다면, 블랙홀 표면, 즉 사건의 지평에 매우 뜨거운 “불의 장막”이 있어야만 함을 보인 것이다. 블랙홀의 표면, 혹은 ‘사건의 지평’이 상식적인 판단에서는 아주 이상한 곳(때) 임에는 분명하지만 일반 상대론의 체계 안에서 잘 설명되는 지극히 고전적이고 평범한 시공간의 일부라고 생각해온 지금까지의 생각에 의구심을 주기 시작했다.  


역설적으로 들리겠지만 블랙홀이 난로와 같이 완벽한 열복사를 뿜어내는 것은 ‘사건의 지평” 주변이 차가운 진공상태이기 때문이다. 이는 마치 난로가 따뜻하려면 난로 표면은 아주 차가워야 한다고 말하는 것과 같이 이상한 말이지만, 사건의 지평이라는 이상한 “곳/때”가 양자장론이라는 난해한 이론이 만나 일어나는, 엄연한 사실이다. 호킹이 40년 전 블랙홀의 열복사를 유도하는 과정에서 사용한 주요 가설 중 하나가 ‘시간의 지평’이 차갑고 텅 빈 “곳/때”라는 것이다.  


사실 블랙홀을 생각하는 방법론 중에는 멤브레인 패러다임 (membrane paradigm)이라는 게 있는데, 여기서는 “사건의 지평”이 뜨거운 표면이라고 말하고 이를, 마치 난로의 경우에 그러하듯, 블랙홀에서의 열복사의 원인인 것처럼 말한다. 그러나, 이 관점에서의 “뜨거운 표면”이라는 것은 블랙홀에서 안전한 거리를 유지하는 사람들에게만 보이는 일종의 수학적인 허상이며, 위에 말한 “불의 장막”과는 전혀 다른 것이다.   


막상 중력에 이끌려 “사건의 지평”을 지나 블랙홀 안으로 들어가는 사람들이 이런 ‘뜨거운 표면’을 전혀 볼 수 없다고 생각해 왔다. 그러나 새로이 발견된 ‘불의 장막’은, 이렇게 “사건의 지평”을 지나가고 있는 사람에게 보이는 것인데, 이는 블랙홀이라는 이 이상한 난로가 더 이상 “차가운” 표면을 가지지 못하고, 그래서 블랙홀에서 나오는 열복사의 형태가 원래 생각과는 상당히 다르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냥 쉽게 생각하면, 블랙홀과 양자 원리와의 문제가 애초부터 블랙홀이 아주 이상하지만 나름 완벽한 난로라는 생각 때문에 생긴 것이니, 그 난로의 모습이 바뀌어야 해결점을 찾을 수 있음은 당연하다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 “불의 장막”을 실제 존재하는 것으로 받아들이려면, “사건의 지평” 부근에서부터 일반 상대론을 수정해야 한다는 결론에 다다르고, 이는 대부분의 학자들에게는 양자 원리가 옳지 않다는 말만큼이나 수긍하기 어려운 것이다.  


이는 또한 양자역학과 일반상대성이론의 상호 공존하는 방식이, 그동안 기대해 온 것처럼 용이하게 이해할 수 있는 것이 아님을 시사한다. 결과적으로, 초끈 학자들이 누리던 양자중력의 ''유일한 제사장''으로서의 자존심은 여지없이 흔들려 버렸고, 오랜 신념을 충분히 논리적인 이유 없이, 조금은 성급하게, 포기한 호킹 자신 역시 아마도 꽤 당혹스러웠을 것이다.


<호킹의 어깃장, 그리고 퍼즈 볼 모델> 


이쯤에서, 이 글을 시작한 이유, 즉 블랙홀은 “사건의 지평”으로 싸여있다는 “상식”을 부정한 호킹의 이야기로 돌아와 보자. 블랙홀 표면과 “사건의 지평”은 블랙홀이 변화하지 않을 때만 동일시되는 것이고, 블랙홀이 먼 미래에 소멸함을 가정하면 후자를 논할 수 도 없으므로 양자적 블랙홀에서는 어차피 없다고 기대하던 것이다. 그렇다면 호킹은 무슨 이야기를 새로이 하고 있는 것일까?  


논문의 내용이나 전개 과정이 상당히 불만족스럽지만, 굳이 정리하자면, 양자 원리를 버릴 수도 없고 “불의 장벽”도 말이 안 되는 것이므로, 남은 가능성은 그동안 사용해온 고전적인 블랙홀의 모습 자체가 잘못된 것일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다.


고전적인 블랙홀의 통상적인 모습이 표면 부근까지는 믿을 만 하지만, 그 바로 아래에서부터는, 마치 초음속 비행기 주변이나 돌개바람 주변의 공기와 유사하게, 중력의 터뷸런스 현상 때문에, 실제로 블랙홀 내부는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모습을 하고 있으며, 이로 인해 그 복잡한 미로와 같은 내부 구조에 물질이 오랜 시간 동안 갇히기는 것일 뿐, 실제로는 일반 상대론 적으로도 “사건의 지평”이 있는 것이 아니었으며 따라서 블랙홀에서 무언가가 나오는 것이 처음부터 불가능하지 않았다는 주장이다. 이는 곧, 블랙홀과 양자 원리와의 충돌이 사실은 원래부터 없었다는 말이므로, 40년 전 본인이 한 이야기가 완전히 무의미한 이야기였다고까지 하는 셈이다.


초끈 이론에는, 사실 이 주장과 매우 유사한, 소위 퍼즈 볼 가설이라는 것이 있다. 초끈 이론에서의 블랙홀 연구에 중요한 역할을 했던, 마수르라는 학자가 제시한 가설이다. 블랙홀의 표면부터 바로 안쪽으로는 일반 상대론의 범주에서 이해할 수 없는 구조의 시공간이 있고, 그 모습은 초끈의 실타래 뭉치와 같은 형태로 꽉 차 있으며, 이로 인하여 ‘사건의 지평”은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다는 이야기이다.  


퍼즈볼 모델을 설명하는 그림입니다. 사건의 지평이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다는 의미에서 호킹의 이야기와 동일합니다. (출처: www.rogerarm.freeuk.com)


블랙홀 표면부터 안쪽의 시공간에 대하여 그동안의 보편적인 생각이 수정되어야 한다는 점에서 유사하나, 퍼즈 볼 가설의 경우 이러한 변화가 일반 상대론의 범주를 벗어나기 때문이라고 하며, 또한 초끈 이론을 사용하여 표면 바깥에서만 블랙홀처럼 보이는 구체적인 시공간들을 제시하고 있다. 호킹의 이번 주장은 아마도 이 퍼즈 볼 가설에 대한 호감에서 시작한 것이 아닐까 생각된다. 퍼즈 볼 가설이 가진 기본적인 생각들을 차용하되, 다만 유사한 현상이 초끈 이론과 상관없이, 본인의 전문 분야인 일반 상대론의 범주에서도 구현된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것 같다.  


다수의 전문가들이 여러 곳에서 언급하였듯이, 두 페이지에 불과한 이 논문 자체에는 이런 주장을 뒷받침하는, 제대로 된 과학적인 근거가 주어지지는 않았다. “불의 장막”은 없어야 할 것 같고, 그렇다고 일반상대성이론이나 양자 원리가 틀릴 수도 없는 것 같으니, 유일하게 남은 가능성은 과학자들이 일반상대성이론을 오해하고 있었던 것이다, 하는 정도의 말을 하고 있다.  


소설 속의 셜록 홈스가 떠오른다. 그가 흔히 하는 말이, 모든 논리적 가능성을 다 하나씩 제외하고 남는 하나의 가능성이 있으면, 그 남은 것이 진실이라는 것인데, 이는 물론 과학자로서는 꽤 위험한 말이다. 탐정소설에서야 이런 추론을 통해 압박하면 범인이 기다렸다는 듯이 자백을 하면서 모든 문제가 해결되지만, 자연은 그리 쉬운 상대가 아닌 것을...... 논문이라기보다는, 새로운 관점이 필요하지 않겠느냐는 호소에 가까워 보인다.   


블랙홀과 양자역학을 둘러싼 이 혼란은 결국 어떻게 해결될까?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이 있다면 지난 40년간의 초끈 이론과 양자 중력의 발전에 가장 큰 공헌을 한 질문이 바로 이 양자역학과 블랙홀에 관한 물음이라는 것이다. 이 문제가 해결되었다는 성급한 여론이, 어쩌면 양자적 시공간에 대한 더 깊은 이해를 방해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과 함께, 앞으로 재미있는 일이 많이 있겠구나 하는 기대감으로 미래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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