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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유진 Oct 29. 2020

잠실역 어묵가게

퇴근 후, 어묵 한 개로 힘을 얻다.

*위 이미지는 글 속의 어묵 가게랑 관련 없는 이미지입니다. / 사진 출처 : 픽사 베이



누구나 한번쯤 길거리를 지나가다 뜨거운 국물 속에 푹 담긴 어묵을 먹어본 적이 있었을 거다.

추운 겨울날 횡단보도 앞에서 신호등을 기다리다가 배고프진 않지만 문득 어묵이 먹고 싶어 포장마차로 발걸음을 돌려 어묵을 사 먹거나 혹은 붕어빵을 3000원어치 사다가 즉흥적으로 어묵까지 사 먹게 되는 경우 등 말이다. 


어묵이 우아한 음식은 아니지만 가격이 저렴하고, 빠른 시간 안에 배를 채워준다. 무엇보다 겨울날 특유의 따뜻한 낭만이 배어있어 왠지 모르게 추운 날씨에는 자꾸만 생각이 나는 음식이다. 그래서 추운 겨울은 어묵과 붕어빵의 철인 것 같다.  


이 맘 때쯤이면 약 2년 전쯤 출퇴근하는 길에 가끔 사 먹었던 잠실역 8번 지하철 길목에 위치한 어묵 가게가 이따금 생각난다. 그러니까 약 2년 전쯤, 퇴근 후 잠실역 8번 지하철을 타러 가는 길에 항상 어묵 가게를 꼭 지나쳤었다. 


잠실역 어묵가게


그곳은 여러 햄치즈김밥, 돈가스 김밥 등의 다양한 김밥을 팔고 있었고 떡볶이, 순대까지 파는 분식집이었다. 유동 인구가 많은 잠실역에서 그 어묵 가게는 언제나 늘 사람들이 북적였다. 회사를 다닌 지 얼마 안 되었을 때 늘 그곳엔 사람들이 많아 '대체 얼마나 맛있길래 저렇게 사람들이 바글바글 모인 것일까?'라고 늘 궁금했었다. 


출퇴근할 때 눈에 자꾸만 띄는 그 어묵가게는 내게 늘 친숙한 풍경이었다. 어느 날 퇴근 후 집을 향해 지하철 8번으로 가는 길이었다. 그 날은 이유도 없이 왠지 모르게 힘든 날이었다. 아마 회사원들 반 이상이 회사에서 자신이 갖고 있는 에너지의 70~80% 이상을 소모할 것이라 생각한다. 일이 그렇게 많지 않은 날에도 내 뒤에는 상사들이 다 앉아 계셔서 왠지 모르게 몸에 힘이 저절로 들어가며 긴장이 되는 나날들의 연속이었다. 그래서 퇴근 시간에 맞춰 지하철을 타러 가는 길목에는 자주 피곤함과 배고픔이 공존했었다. 


평소와 같이 그 어묵가게를 지나칠까 했었지만 잠시 들려 간소하게 어묵과 미니김밥으로 배를 채우고 싶었다. 왠지 꼭 그래야 할 것 같았다. 집까지 지하철로 약 1시간 반. 그것도 퇴근 시간에 많은 사람들이 몰리는 시간이라 내내 서서 가야 했다. 운 좋게 빈자리가 생기면 앉아서 갈 수 있었지만 그것도 사람들이 많이 내리는 신분당선 정자역 이후부터 기대할 수 있는 거였다. 그러니까 지하철을 타고 집으로 가는 것조차 내게는 하나의 '일'의 연장선이었다. 그때 지친 상태로 바로 지하철을 탈 생각이 너무 까마득하고 막막해져서 발걸음을 돌려 그 어묵가게로 향했다.


항상 그렇지만 저녁 시간, 그 어묵가게는 퇴근하는 사람들, 어딘가 목적지로 향하는 사람들로 항상 북적였다. 어떻게든 틈새를 찾아 비집고 들어가 어묵에 꽂힌 긴 막대 하나를 겨우 잡을 수 있었고, 그 막대를 잡았으면 또 내가 편하게 먹을 수 있는 나의 영역을 확보해야 했다. 하지만 여간 붐비는 게 아니라서 몸을 움츠리고 먹거나, 조금 비스듬한 자세로 꽤 불편하게 음식을 먹어야 했었다. 


하지만 하얀 김이 모락모락 나는 어묵을 들고 그 위에 간장을 한 겹 발라, 한 입 베어 물으면 그 짭조름한 맛에 피곤함 한 꺼풀이 사르르 녹아내리는 것 같았다. 그리고 종이컵에 뜨거운 어묵 국물을 조심스럽게 붓고서 후후 불며 한 입 마시면 오늘 하루 힘들게 보낸 나에게 그 온기가 선물과 같이 느껴졌다. 


어딘가 촌스럽지만 그 어묵가게의 낭만을 한층 더 살려주는 라디오 음악, 그리고 나처럼 말없이 어묵 하나 씩, 하나 씩 조용히 먹는 사람들, 다 먹은 다음 돈을 지불하고 바삐 걸음을 옮기는 또 다른 사람들, 뜨거운 어묵들의 연기, 묵묵히 손님들에게 어묵과 김밥, 떡볶이 등을 포장해 주는 그 가게 사장님들. 


모두 다 어떤 하루를 보내고서 그 어묵 가게에 모여들었을지는 몰라도, 집으로 가는 그 발걸음에 힘을 보태기 위해 모인 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혹은 그냥 배고파서, 아니면 음식을 통해 위로를 받기 위해서 저녁시간 그 어묵가게에는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항상 모이는 것이 아닐까? 나와 비슷하진 않았을까? 요즘 들어 부쩍 따뜻한 어묵이 생각나는 계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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