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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유진 Nov 01. 2020

알리오 올리오, 한 번도 먹어본 적이 없습니다.

태어나 처음으로 컴플레인을 받아 보았던 음식, 알리오 올리오

사진 출처 : 픽사 베이


한 번쯤 파스타를 누구나 다 먹어보았을 것이다. 그중 크림 계열의 파스타를 좋아하는 사람, 매콤한 소스의 

파스타를 좋아하는 사람, 해물 혹은 채소를 곁들인 파스타를 좋아하는 사람, 아님 밀가루 음식 자체를 

안 좋아하는 사람 등 파스타에 관해서도 사람들의 기호는 다양하다. 


나는 크림 계열에 파스타를 좋아한다. 특히나 파스타를 주문할 때면 10 중 8 이상은 까르보나라를 주문한다. 

하지만 또 어떻게 보면 다른 파스타는 잘 먹지 않는다. 


특히 '알리오 올리오' 파스타는 한 번도 먹어본 적이 없다. 




지금으로부터 6년 전, 내가 23살 때 어떤 외식 브랜드에서 주방 보조로 일한 적이 있었다. 

오전 조였는데 매일 아침 일찍 출근해 파스타 하루 분량을 예측해 미리 삶고, 부족한 소스와 밑 재료들을 준비하는 일을 맡았었다. 대부분 내가 맨 처음으로 출근해 식당의 불을 켰었는데 불을 켜기 전에 손님이 없는 빈 테이블들을 볼 때마다 기분이 항상 묘했다. 곧 몇 시간 뒤면 많은 손님들도 북적이겠구나. 바쁜 점심과 달리 무척이나 고요한 이런 아침 풍경은 평화로우면서도 어떤 괴리감을 느꼈던 것 같다. 


파스타 면을 삶다 보면 같은 아르바이트를 하는 동료들이 하나둘씩 출근하고 점장님이 출근하신다. 모두 아침 준비를 마치고 9시가 되면 그렇게 가게가 오픈이 되었다. 아침 일찍 오시는 손님들이 한 분, 두 분이 오신 경우도 있었지만 대게는 정오가 지나서야 많은 손님들이 점심을 먹으러 오셨다. 


나는 주방 보조였기 때문에 요리를 하는 아르바이트생들은 따로 있었다. 앞 주방에서 (메인 홀에 있었으며 손님들이 식사를 하시면서 요리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주로 요리를 하는 곳이었고 뒷 주방은 밑 재료를 손질하고 설거지를 하는 공간이 마련되었다. 그러니까 뒷 주방은 주로 내가 일하는 곳이었다. 


아침에 파스타를 삶고 밑재료를 준비하는 것 외에 하나가 더 있었다면 그건 바로 설거지였다. 이런 외식업에서 하는 설거지는 집에서 하는 설거지와는 차원이 달랐다. 매 분 매 초마다 밀려오는 포크, 나이프, 스푼, 그리고 접시들. 다행히 식기 세척기가 있어서 편하게 기술의 혜택을 받으며 설거지를 할 수 있었지만 그전에 접시에 있는 소스와 음식물들을 내가 직접 덜어내야 했었다. 


설거지란 정말 쉽고 단순한 일이지만 이 설거지 일을 하면서 그 당시 내가 좋아하는 사람의 유형이 생겼다면 

바로 음식을 깨끗하게 먹는 손님이었다. 사실 남의 입 안에 들어갔던 포크와 스푼 등에 묻은 온갖 음식물들을 

바라보며 덜어내는 건 그다지 유쾌한 작업은 아니었다. 무엇보다 정말 그때 처음으로 설거지를 하며 음식 쓰레기의 심각성을 깨달았었다. '다 안 먹을 거면, 이렇게 많이 남길 거면 도대체 왜 시킨 거야?'라고 속으로 툴툴 거리며 음식 쓰레기를 버리고 식기세척기에 수많은 그릇들을 집어넣었던 기억이 난다. 문득 이렇게 옛날 일을 써 내려가 보니 나는 또 그런 손님이 아니었을까 하는 반성을 하게 된다. 


아무튼 매일 같이 주방보조로서 일을 하던 차, 어느 날 일이 터졌었다. 아침에 여느 때와 다름없이 출근해 파스타면을 삶아야 했는데 (참고로 파스타 면을 삶는 전용 통과 가스레인지가 구비되어 있었다.) 가스 불이 안 들어왔었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그냥 가스 불이 안 들어온다고 혹은 잘 못 키겠다고 점장님께 솔직히 말씀드렸으면 더 나았을 텐데, 그때 당시 일을 제대로 처리를 못하는 사람으로 찍힐까 봐 두려웠었다. 

왜냐하면 나 전에 일하던 사람이 2주 내내 파스타 면을 삶는데 간단한 가스불을 계속 못 켜서 해고되었기 때문이다..


너무 당황스러웠다. 곧 있으면 점장님도 출근을 하실 테고 빨리 오픈 준비를 해야 했다. 

잠시 안절부절못하다 결국에는 다른 큰 통을 가져와 거기에 물을 붓고 부랴부랴 파스타 면을 삶기 시작했다. 

참고로 보통 파스타를 삶을 때 정해진 소금의 비율과 물의 양이 정해져 있다. 그런데 평소에 파스타 면을 삶는 전용 통의 크기와 깊이가 다른 새로운 통에다가 파스타를 삶으려니 소금의 비율과 물의 양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되는대로 부랴부랴 삶아 버린 게 나의 큰 실수였었다. 


삶고 난 후 파스타 면을 조금 뜯어 맛을 보았는데 아주 조금 짰었다 (나의 기준으로). 

'그래 이 정도면 괜찮을 거야'라고 스스로 합리화를 했고 이 사실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었다. 


그렇게 가게를 오픈했다.


하지만 결국 문제가 터지고야 말았다. 점심시간 때 '알리오 올리오' 파스타를 주문하던 손님이 파스타를 맛보시고 면이 짜다면서 바로 컴플레인을 건 것이었다. 컴플레인이 걸린 알리오 올리오 접시는 뒷 주방으로 왔고 아르바이트생들끼리 한 입 씩 먹어 보았다. 좀 짜긴 했다. 


장담하건대 그건 내 잘못이었다. 왜냐하면 파스타 면은 내 책임이었다. 앞 주방에서 요리를 하는 아르바이트생들도 있었지만 걔네는 요리를 전문적으로 배운 아이들이었고 여태껏 음식이 짜다는 이유로 컴플레인을 걸려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결국에는 이실직고 파스타를 잘못 삶았다고 고백을 했다. 다행히 아무도 나한테 뭐라 하진 않았지만 속으로는 정말 가시방석이 따로 없었다. 그리고 그때 이후로 여전히 난 알리오 올리오를 보면 그때의 일이 어렴풋이 자동으로 생각이 난다. 


나에게 알리오 올리오란 일을 대충 넘기지 말자! 의 교훈을 깨우쳐 준 음식이다. 


그래서일까? 크림소스의 파스타를 좋아하는 이유도 있지만 알리오 올리오를 보면 나도 모르게 이 음식을 피하는 것 같다. 하지만 한 번은 꼭 먹어보고 싶다. 이번 2020년이 지나기 전에 버킷리스트로 알리오 올리오를 먹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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