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교시 후 항상 흰 우유를 먹었던 시간들.
어쩌면 이 이야기는 ‘라떼는 말이야’ 장르의 이야기가 될 수 있겠다.
내가 초등학생이었을 때 2교시가 끝난 후 흰 우유를 필수적으로 먹어야 하는 세대였다.
초록 박스에 담아져 오는 여러개의 흰 우유들. 난 그 우유를 먹는 시간이 참 싫었다.
지금은 흰 우유를 좋아한다. 특히 빵이랑 같이 먹는다면 말이다. 하지만 반드시 필수적으로 먹어야 했던
그 흰 우유를 먹는 시간은 왜 그렇게 싫었는지 모르겠다.
각 조별로 5~6명씩 앉아 한 명씩 번갈아가며 조별 인원수대로 우유를 가져와 나눠 주어야 했었다.
아이들이 먹기 싫어하는 걸 잘 아는 담임 선생님은 우유를 꼴찌로 먹는 조는 점심을 꼴찌로 먹게 하는 바와 같은 패널티를 주셨다. 그러면 아이들은 웅성대며 “야 빨리 먹어!” 하며 부랴부랴 우유를 먹기 시작했다.
각각 우유를 먹는 방식도 제각각이었다. 천천히 먹는 아이도 있었고, 우유를 먹다가 실수로 책상에 한 바가지
우유를 흘려 곤혹을 치르던 아이도 있었고, 우유를 빨리 마시고 빈 우유각을 희안하게 접어 이목을 끄는 아이도 있었다. 보통 조별로 우유를 다 마신 뒤 한 아이의 우유각을 상자로 두고 나머지 조원들의 빈 우유각을 다 접어 그 빈 상자 역할을 하는 우유각에다가 깔끔하게 넣었어야 했는데 그 희안하게 접은 우유각 때문에 나머지
조원들의 접은 우유각을 넣지 못하는 경우도 있었다. 하지만 어떻게든 구겨 넣으면 그래도 잘 넣을 수 있었다.
또 흰 우유를 먹는 방식을 얘기해 보자면 제티를 가져와 우유에 타 먹는 애도 있었다. 우유에 타 먹기 전에
제티를 흔들고서 우유에 붓는 모습을 보면서 그 초코맛이 나는 우유를 나도 먹고 싶어 입맛을 다셨다.
하루는 그 친구가 제티를 각각 조원들에게 조금씩 나누어 주었다. 나 또한 제티 가루를 조금 받아 흰 우유에
타 먹을 수 있었다. 완전한 초콜릿 우유 맛은 아니지만 달달하게 느껴지는 제티 탄 흰 우유가 정말 그냥 먹는
흰 우유보다 맛있었다. 이렇게 운 좋게 제티를 타서 먹은 날도 있었지만 정말 먹고 싶지 않은 날에는
안 먹은 날도 있었다.
하루는 우유를 먹는 것이 싫어 몰래 우유를 가방에 넣었었다. 하지만 가방 안에 우유를 넣는다는 것은 굉장히
위험한 일이라는 걸 몸소 깨달은 경험이었다. 차가웠던 우유는 점차 시간이 지남에 따라 따뜻해진다. 그러면서 점차 우유팩이 부풀어 오른다. 학교가 끝나고 가방을 메는데 등에서 뭔가 축축한 기분이 들었다. 가방을 확인해 보니 뭐 크게 한 것도 없는데 우유가 터져버리고 만 것이다. 가방 안에 든 책, 필통, 공책 등이 우유로 젖어버렸다.
우유에 젖은 책은 정말 냄새가 장난이 아니었다. 말려보아도 썩은 우유 비린내 냄새가 잘 빠지지 않았다.
냄새와 더불어 책도 굉장히 쪼글쪼글 해졌다. 지금 와서 어렴풋이 생각나는 게 있다면 그 쪼글쪼글한 책이
마치 바다 같아서 그 위에 조개 껍데기를 그리며 낙서를 하곤 했었다.
많은 시간이 흐른 지금, 그 때 그 흰 우유를 먹었던 같은 반 친구들은 지금 쯤 어떻게 변했을까.
그 때 우리들은 각각의 방식대로 흰 우유를 먹었던 것처럼 각각의 방식대로 잘 살고 있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