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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리오 Apr 05. 2019

십센치의 <3.0> 그냥 그렇다 치자

[음악] 십센치의 <3.0> 

  어쩌다 가게 된 십센치의 공연에서 검은 정장을 입은 의문의 남자가 나 찾아왔다. 경호원처럼 보이는 그는 권정열 씨가 대기실에서 나를 찾는다며 자신과 같이 좀 가자고 했다. '나를? 나를 왜?' 공연장 안이 시끄러워서 내가 잘못 들었나 싶었지만 그는 내 이름을 다시 한번 분명히 물었다. 딱히 팬도 아닌 나에게 공연을 앞둔 가수가 도대체 무슨 볼 일인가 의아했다. 하지만 설마 유명인이 해코지를 하겠나 싶어서 순순히 그를 따라갔다.

  그와 함께 도착한 대기실 검은 문에는 '10cm'이라고 적힌 종이가 붙어 있었다. 남자가 그 문을 열어주자 검은 소파가 보였고, 거기에는 권정렬 씨가 거의 눕다시피 한 자세로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그의 가늘어진 눈과 잔뜩 당겨진 입 주변으로는 장난기가 깊게 흐르고 있었다. 하지만 문 앞에 선 나를 발견하자 그 모든 것들이 싹 가셔 버렸다. 그는 별다른 인사도 없이 격이 없는 말투로 정색을 하며 이것저것 물었다. "아... 야, 너는 형이..." 내 기억이 틀리지 않았다면, 분명 전에 그를 본 적도, 몇 다리 건넌 친분도 없었다. 어리둥절한 나는 문 앞에 그대로 서서 뭐라 뭐라 대답을 했다. "네? 저기 그러니까..." 그는 계속 고개와 시선을 빙빙 돌리며 잔뜩 거드름을 피웠다.


  그러다 갑자기 순식간에 그의 얼굴에 다시 장난기가 고였다. "야, 장난이야" 모든 것이 장난이란다. 나는 어리둥절했다. "일로와" 그는 나에게 자신의 옆에 와 앉으라고 했다. 그의 말투는 전보다 더 격이 없어졌다.

  우리는 밤새도록 대기실에서 떠들고 장난치며 . 배도 고프지 않았고 졸리지도 않았다. 마치 예전부터 알던 사이처럼 서로 죽이 잘 맞았다. 왜 나를 불렀는지는 서로 까맣게 잊고서.

   '근데, 콘서트는 왜 안 하지?'


  나는 눈을 떴다. 몸은 너무 찌뿌둥했고 시야는 흐렸다. 머릿속에는 당장 부엌으로 가서 커피를 마실 생각밖에 나지 않았다.


  모든 것이 꿈이었다.


  이해할 수가 없었다. 도대체 왜 꿈에서 십센치에 콘서트에 갔는지, 왜 거기서 권정열 씨와 그러고 장난을 치며 놀았는지 이해할 수가 .  십센치의     않았다. 당연히 특별히 좋아하는 노래도 없었다. 어쩌다 어디선가 그의 히트곡이 흘러나오면 '아, 십센치의 노래구나' 하는 정도였다. '  때문일 거야'라며  꿈에 나온  쳐버릴 만한 어떠한 도 생각나지 않았다.


  그날 나는    .  그와    간밤에  도 안 잔 것 같았다. 마치 시험기간 벼락치기로 밤샌 날 아침 같은 느낌이었다. 뼈가 욱신거리고 눈도  리도  움직임도 .     길에는 억울해서 괜히 권정열 씨가 얄미워질 정도였다.


  나는 도     .


그리워라라라라라라라라
그대와와와와와와와와

<그리워라> - 십센치
3.0 (2014)


  무의식이라는 것이 참 무섭다. 십센치의 <그리워라>를 언젠가 들어본 적이 있다. 직접 찾아 들은 것은 아니지만, 어디선가 분명 들어봤다. 솔직히 말하면 이 노래를 부른 권정열 씨가 꿈에 나올만한 생각을 했었다. 깊게는 아니고 문뜩 떠올랐을 뿐이지만, 아마 그것 때문인 것 같다.

  원래 추억이란 것이 그렇다. 하얀 손수건에 묻은 와인처럼 그때는 좀 싫다가도, 시간이 지나고 문득 보면 그 색이 나쁘지 않다.

  '그립다'라고 말하면 어쩐지 엄청 애달파하는 것 같아 보여 싫지만, 가끔 문뜩 그립긴 하나보다. 하지만 무언가를 좀 알게 된 지금, 이제는 '역시 그때 그 이는 이제 없으니까' '어쩔 수 없으니까'라고 쳐버린다.


  근데 이번에 십센치의 음악을 들으면서 입에 붙어서 따라 불러 보니까 음치인 내가 부르기에 그나마 편하다. 조금 더 연습하면 노래방에서 한 곡 불러도 좋을 것 같다.


<그리워라> M/V 출처 : 유튜브 MAGIC STRAWBERRY SOUND 채널




3.0 - 십센치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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