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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필버거 Aug 17. 2021

땡그랑, 산책 한 푼.

쉰, 삶은 여전하다 (사진 : 이상희 작가 / 글 : 수필버거)

이기고 싶다면 충분한 고민을 버텨줄 몸을 먼저 만들어.

'정신력'은 '체력'이란 외피의 보호 없이는 구호밖에 안 돼.



이른 아침 회사 근처 산책로를 걷고 내려오는 길에 조그만 동네 단골 슈퍼에서 캔커피를 마셨다.

땀을 닦으며 잠시 뿌듯했고, 행복했다.

일과를 시작하고 두어 시간이 지난 무렵.

공장 뒤뜰에서 선선한 바람을 맞으며 믹스 커피 한 잔을 마시는 데, 또 한 번 작은 행복이 치민다.

행복은 강도가 아니라 빈도라고 아무리 외쳐도 일말의 행복도 못 느낄 때가 있고, 이런 사소한 틈에서 아득하게 느낄 때가 있다.

생각을 했다. 나는 주로 어떤 상태에서 이러는가.

몸 컨디션이 좋을 때구나.  


에버노트에 필사 해 놓은 '미생'(윤태호 작)의 대사를 찾아 읽었다.


"네가 이루고 싶은 게 있거든 체력을 먼저 길러라.

평생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되거든 체력을 먼저 길러라.

게으름, 나태, 권태, 짜증, 우울, 분노.

모두 체력이 버티지 못해 정신이 몸의 지배를 받아 나타나는 증상이야.


체력이 약하면 빨리 편안함을 찾게 마련이고,

그러다 보면 인내심이 떨어지고 그 피로감을 견디지 못하게 되면 승부 따윈 상관없는 지경에 이르지.

이기고 싶다면 충분한 고민을 버텨줄 몸을 먼저 만들어.

'정신력'은 '체력'이란 외피의 보호 없이는 구호밖에 안 돼."


새삼스럽다.


사업에 몰두하느라 팽개쳤던 운동을 다시 시작한 때는 이대로는 내가 죽겠구나라는 생각이 들 즈음이었다.

얼추 10년 전이다. 흥하고, 망하고, 쓰러지고, 다시 일어나는 그 과정에서 망가진 몸의 아우성을 들었을 때.

살아야 했고, 밤낮없이 일을 해야 했다.

걷고 걷고 또 걸었다.

자전거 페달을 밟고 밟고 또 밟았다.

그리고 역기와 아령을 들었다.

꽤 긴 시간 동안.


서른의 운동은 마흔에 쓰게 된다. 마흔의 그것은 쉰을 지탱한다.

운동은 대략 10년 단위의 저축이라고 생각한다.

오늘 저금한 산책이 훗날의 나를 살게 하고 행복하게 하리라고 믿는다.


오늘 작은 행복을 느끼게 해 준 내 건강이 고맙다.

새벽에 산길을 걷겠다고 무거운 발을 내디딘 내 의지도 고맙다.


생각이 행동을 낳고, 말과 글을 낳는다.

체력은 그 생각을 받친다.  


사진(제목, 본문) - 이 상희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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